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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Dec 05. 2021

올해 마지막 북한산-의상능선

얼음이 무서워서 올해는 이제 그만

어제 토요일 날씨가 너무 좋았다.

지난주 성불산을 끝으로 올해는 더 이상 산행이 없다고 큰소리를 쳐두었는데 이렇게 좋은 날씨라니.

아내와 아이에게 저녁때 외식을 해볼까 했더니 바로 훅 들어온다. 소고기가 먹고 싶단다.

뭐 우리 식구들이 원래 많이 먹은 타입들은 아니라서 ’까짓 거’ 하고 데리고 간다. 눈치 빠른 아내.


“내일 산에 가고 싶어서 저녁 산다고 하는 거지?”


이 여자랑 너무 오래 살았다.


오늘은 북한산성입구에서 출발하여 의상능선을 타보기로 정했다. 북한산성입구까지 가는 길이 번거로워서 살짝 귀차니즘이 올라온다. 연신내에서 704번 버스를 갈아탄다. 아침부터 등산객으로 가득하다.

시내버스로 접근할 수 있는 국립공원을 가지고 있는 서울은 복 받은 도시이다.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기 전에 의상봉 입구가 훅 들어온다. 까만색으로 등산로가 색칠되어 있다. 만만하지 않다는 뜻이다.

과연 시작하자마자 준비과정도 없이 계단과 바윗길이 의상봉까지 이어진다. 발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올라가는 느낌이다. 설치되어 있는 밧줄과 쇠줄을 손으로 당기면서 올라야 다리에 무리가 덜 간다.

경사면 중간에서 내 그림자를 보고 있다.

참으로 다리가 짧게 나왔네.

그림자를 팔아 버린 남자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 누구의 소설이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포우 였던가?

짧은 다리를 가진 그림자이지만 내 그림자라서 무어라 할 수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설과 이야기에 몰입하던 때가 있었다.

인터넷에 과몰입되듯이 그런 책들에 몰입했었다. 누구는 책에 중독되는 것은 무해하다고 하지만 그건 장담할 일이 아닌 것 같다.

가끔씩 나의 얼간이 같은 행동이 이런 류의 과거에 기인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아내와 아이는 가끔 어이없어 하지만 다은 한편으로는 재미있어하니 결국엔 무해한 건가.


아직도 헉헉거리며 올라가야 할 길이 멀다.

능선 오른쪽으로는 백운대와 인수봉의 암벽이 오늘도 당당하게 등산객들을 바라보고 있다.

드디어 의상봉이다.

여기부터는 능선길이다. 능선을 따라 쌓은 북한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구간이다.

용혈봉과 용출봉은 비교적 편한 구간이다.

이제 다시 나한봉까지 오르막이다. 북쪽 사면(응달)에는 얼음이 낙엽 속에 숨어있다. 잠깐 방심했다가 미끄러지고 말았다. 산에서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나한봉을 지나도 계속 오르막이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걷다가 온 길을 되돌아보니 나한봉의 성벽이 성냥갑만 하게 보인다.

오늘도 문수봉을 올라볼까 하다가 내려올 길을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청수동암문에서 비봉으로 길을 접고 하산하기로 한다. 여기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오르막보다 내리막길이 더 위험하다.

무릎에 무리가 갈까 걱정이다.

길고도 긴 하산길이다.

어마어마한 풍경을 앞에 두고 먹는 샌드위치.

맛은 풍경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앞에 보이는 능선이 오전 내내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른 의상능선이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향로봉을 오늘은 지나치지 않는다.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바위는 없다.

족두리봉에서 내려가는 길이 이렇게 가팔랐었나 싶다. 이상하게도 생소해서 올라오는 분들에게 이 길이 맞는지 묻고 또 물어본다.

오후 3시. 천간사를 끝으로 오늘 산행 끝

2021년 12월 5일.

북한산성입구-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나한봉- 청수동암문-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 독바위 등산로 입구.

12-13Km쯤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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