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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Dec 11. 2021

강릉과 설악

출장과 여행 사이

강릉으로 출장을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게다가 금요일 출장이다. 오전에 일을 끝내고 오후에 반차를 내면 꿀을 빠는 출장이 되겠다 싶어 아내를 꼬드겼다.

아내는 귀찮아하면서도 맛있는 점심을 사주겠다는 말에 ‘속는 척’하고 따라나선다. 이런 우리를 보면서 아이는 ‘또 그러는군’이라는 표정을 짓는다.


6:30분 이른 새벽이지만 벌써 도로의 일부 구간에는 차들로 붐빈다. 그래도 본격적인 정체가 시작되기 전에 서울을 빠져나왔다. 막힘없이 술술 가다 보니 어느새 양양 그리고 강릉이다. 아내는 차에 두고 출장업무를 서두르고 있다. 검수와 미팅을 끝내고 나니 겨우 10:30이다. 아침부터 서두른 보람이 있다.


약속대로 아침 겸 점심을 먹으러 순두부 전문점을 찾아간다. 강릉 초당순두부 중에서도 ‘동화가든’이라는 곳이 가장 유명하다고 했다. 명성에 걸맞게 벌써 대기표까지 받아야 할 정도이다. 10여분 기다리니 자리가 나왔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이렇게 까지 사람들이 몰리는지 궁금하면서 기대가 된다.

드디어 주문한 짬뽕순두부와 백 순두부가 나온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짬뽕순두부는 교동짬뽕에 순두부를 넣은 맛이고 백 순두부는 그냥 상상했던 순두부 맛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하긴 순두부 맛이 거기가 거기지. 무슨 특별한 맛을 기대할 수 있을까. 아쉬운 마음에 식사를 끝내고 입가심으로 옆 가게에서 순두부 젤라토를 먹는다. 오호 이건 괜찮다. 쫀득한 젤라또에 부드럽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다.

점심을 먹고 바로 고속도로로 올라가는 대신 해안도로를 따라 주문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가는 길에 또 하나의 강릉 명물인 ‘테라로사’가 있기 때문이다. 커피 ‘잘알못’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커피’라고 소문이 난 곳이니 들려본다. 초겨울 날씨치곤 볕이 너무 좋은 날이다. 이런 날은 당연히 야외테이블이지. 케익 한 조각과 커피 한잔을 앞에 두고 느긋한 기분이다. 살짝 산미가 돌면서 고소한 맛이 나는 커피이다.


자 이제 어디를 가볼까?

설악산으로 방향을 정하고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급한일이 없다. 가다 보니 낙산사 표지판이 보인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가본 적이 없단다. 최소한 기억이 나지 않는단다. 해수관음보살이 있는 곳이라고 해도 모르겠다고 하신다.


‘그럼 가봐야지’

십수 년 전 양양지역 산불로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었다고 들었는데 어찌 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비수기인지라 주차장이 텅 비어 있다. 일주문을 지나 홍예문으로 들어선다. 어디를 먼저 가볼까 하다가 절의 주인이 앉아 계신 원통보전을 먼저 가보기로 한다.


절집의 명당자리는 바로 부처님이 앉아 계신 곳이다. 당연히 부처님이 바라보는 시선이 가장 멋진 뷰이다.

무료찻집은 쉬어 갈 수는 있지만 코로나로 차를 대접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아쉽다.

원통보전을 옆으로 돌아 해수관음상을 보러 간다. 담벼락과 조그마한 돌탑들이 인상적이다.


가는 길은 온갖 염원을 담은 작은 리본들이 펄럭이고 있다.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세상일이 모두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아 버릴 정도로는 살았다.

그래도 바람에 펄럭이는 작은 리본들 중 발길을 잡은 것은 아픈 아이를 낫게 해달라는 간절한 부모의 소망이다. 나도 다른 소원은 들어주지 않더라도 이 소원만은 들어주십사 마음속으로 되뇌며 염원의 길을 지나간다.


다음은 보타전.


화재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져 있다. 오직 사건의 전말을 요약해놓은 입간판만이 그날의 참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제 마지막 코스인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향한다. 웅장한 해수관음상이 그 자체로 볼거리일 수 있겠지만 홍련암은 주변의 풍경 속에 묻혀버린 것으로 훨씬 더 보기 좋다. 오솔길을 오르듯이 작은 계단을 오르고 내린 후에야 절벽에 붙어있는 작은 암자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이야말로 오늘 절집 구경의 백미가 아닐까 한다.


이제 설악산으로 가야 한다. 절집 구경에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외설악이 코 앞이니 어찌 되었건 가보기로 한다.

비수기 중에서도 늦은 오후인지라 주차장은 텅 비어있다. 주차요원은 바로 권금성 케이블카 앞 주차장까지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런 특권과 같은 행운을 받았으니 권금성을 가야 한다.

당연히 예의 그 케이블카 앞에는 긴 줄도 사라지고 없다.


설악에서 바라보는 설악은 언제나 최고이다.

글로 설명하기에도 말로 설명하기에도 부족한 나의 글재주와 말재주가 아쉬울 뿐이다.

아내도 몹시 만족스러워하면서도 아쉬워한다. 아쉬움을 달래 보려 비선대로 방향을 잡았지만 20여 분 만에 어두움이 깔려 발길을 돌린다. 인적 없는 숲길에 마스크를 벗고 마음껏 설악의 공기로 폐를 채운 것으로 만족한다.


이제 짧은 여행의 마지막이다. 속초 맛집을 검색하던 아내는 해녀마을이 괜찮을 거 같다고 한다. 감히 누구의 말이라고 거역을 하랴.

냉큼 네비에 주소를 찍고 이미 캄캄해져 버린 설악을 뒤에 두고 빠져나온다. 캄캄해진 밤길에는 무서운 귀신이야기가 제격이다. 아내는 무섭다고 하다가 어이없는 결말에 웃음을 터뜨린다.


전복과 곤드레로 만든 돌솥밥이다.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아내를 추켜세울 정도이다. 부드러운 식감의 전복, 곤드레의 옅은 내음 그리고 돌솥 바닥의 고소한 누룽지까지 완벽한 화음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가 너무 반가워한다. 스무 살만 되면 독립할 거라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우리 눈엔 아직도 어리기만 한 꼬맹이이다.

명태젓과 오징어젓갈로 밤참을 야무지게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강릉에서 가져온 쿠키까지 냠냠거리며 먹고 있다.

만 하루 만에 본 엄마가 좋았는지 제 침대에서 엄마랑 노닥거리다가 같이 잠이 들었다.


2021-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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