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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11. 2022

농濃한 시간, 담淡한 시간

문제는 밸런스라니깐요

무더운 주말.

아파트 위아래층에서 가동 중인 에어컨 때문일까요. 창문으로 더운 열기가 후욱  들어옵니다. 아이는 어디서 또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조금 더운 거 참아야 한다면서 에어컨 가동을 반대하고 있네요.      


지구를 살리기 전에 엄마 아빠부터 살려다오.

엄살떨지 말라네요.


책에 넣을 그림이 부족할까 싶어 베네치아 풍경도 한 장 더 그려보고, 글도 쓰고 싶은데 머릿속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습니다. 브런치 여기저기를 돌아다녀 봅니다. 제목에 끌리기도 하고 사진에 끌리기도 하는데, 오늘은 그림에 끌렸습니다.


거의 매일 직접 그린 정감 어린 그림과 글을 업로드하고 계신 작가님을 발견했지 뭡니까. 일단 구독을 누르고 차근차근 그림과 글을 살펴보았습니다.      


난 뭐 다 좋았습니다. 좋은 햇볕으로 말린 수건에 코를 박고 햇볕의 냄새를 맡고 있는 그림도 좋았고, 차라리 비가 오라고 우산으로 구름을 쿡쿡 찌르고 있는 그림도 좋았습니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곶감 빼먹듯 랜덤으로 즐기고 있었는데...어제는 ‘시간과 관계는 어느 정도의 힘이 있는 것일까요?’라고 묻고 계십니다.


아마도 시간과 공을 많이 들였다고 생각했던 관계에서 실망을 느끼셨나 봅니다. 가만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라서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나는 어느 정도의 농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사실 나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과 그다지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의 사랑조차도 언제부턴가 부담스러울 정도라니깐요.


이 지경이니 이십 년을 넘게 같이 살고 있는 아내에게도 살짝 거리를 둡니다.(이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천생연분입니다.) 이런 우리에게서 태어난 꼬맹이는 당연히 엄마 아빠보다 지구를 살리는 일이 중요했겠지요. 헛헛헛.


모든 사물은 밀도를 가지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공기의 밀도는 아주 가벼워서 우리의 ‘숨’을 지켜주고 있잖아요. 가벼운 공기는 나의 폐로 들고 나면서 나를 살리고 있지만 내 몸에 남는 것에 미련이 없어 보입니다. 들숨과 날숨을 재어 볼 수 있다면 똑같은 양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비해 어떤 금속류는 내 몸을 유지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물질이기도 합니다. 미련 없이 떠나가지 않도록 꽉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철분이 부족하면 어찌 되는지 아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에 그리고 내 기억에 각인되는 농밀한 관계는 때로는 아주 힘이 들게 합니다. 마치 크롬(Cr)일 때는 좋았는데, 6가크롬(Cr+6)이 되면 내 몸을 해치는 것처럼 말이죠. 연애를 하면서 사랑에 빠져 있을 땐 그렇게 다정하던 사람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시진 않겠지요. 뭐 모든 사랑이 그렇다는 것은 저얼~대 아닙니다.


시간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농밀한 시간만 있으면 생활이 끈적해지고 뭔가 헤어나기 어려운 기분이 들어요. 아주 연해서 그냥 가볍게 공기처럼 흘려보내는 시간들이 있어야 농밀한 시간도 견뎌낼 것 같단 말입니다. 제 주변엔 제법 공기처럼 가벼워도 너무 가벼운 인간들이 좀 있습니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 아주 즐겁습니다. 물론 남는 건 없지요. 당연한 거 아닌가요.


어떤 만남은 쌓아 올린 시간에 비례하여 농(濃)한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시간에 관계없이 언제나 공기나 물처럼 담(淡)한 관계가 될 수도 있겠지요. 좋고 나쁘고는 없습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사이의 일이라잖아요. 농(濃)하든 담(淡)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마음이 평화로운데...그래도 조금은 농(濃)한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봐요.


에휴하면서도, 그래도 나를 보면서 한번 웃어주는 것이 좋아서 오늘도 이렇게 허접한 농담을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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