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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an 09. 2022

이탈리아 그리고 코로나

우리가 우리에게 닿기를. 김민주 지음. 제철소

팬데믹 2년째.

본사로 출장을 가는 대신 TEAMS을 이용한 미팅을 자주 하고 있다. 15시간의 긴 이동시간 없이 시간만 정하면 얼굴을 맞대고 미팅을 할 수 있으니 정말 좋아졌다.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게다가 메타버스가 가져올 세상은 이보다 몇 배 아니 수십 배 좋아진 가상공간과 체험을 구현할 수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세상이 어찌 변할지 가늠하기 어렵다. 은퇴를 바라보고 있는 나로서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아날로그 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다가올 세상이 그다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지금도 예전처럼 오랜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의 크리스마스 휴가는 8월의 Ferragosto 다음으로 중요한 휴가이다. 대략 12월 23일경부터 시작하여 다음 해 1월 첫째 주 또는 둘째 주까지 회사문을 닫고 쉬게 되므로 2주 내지 3주 정도의 휴가를 즐길 수 있게 된다. 휴가를 가기 전 프란체스코와  통화를 했는데 온 가족이 코로나에 감염되어 모두 자가격리 중에 있다고 한다. 처음엔 딸이 그리고 아내가 마지막으로 본인의 감염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어떡하냐? 얼굴 보니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증상이 심한 것 같지는 않네. 다행스럽게도"


실제로 자기는 약한 감기 증상뿐이고 아내와 딸도 증상이 약해서 그냥 모두 집에서 크리스마스 휴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냥 조용하게 가족과 함께 지낼 계획이었기 때문에 코로나 때문에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다고 한다.

2021년 회사의 실적은 어려운 환경에도 비교적 선방을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 회사까지 어려웠으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우리는 운이 좋았던 편이라고 한다. 역시 낙천적인 이탈리아 친구이다.




브런치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의 본업은 정말 다양하다. 이탈리아에서 가이드를 업으로 하고 있던 작가님이 있다. 국내에서 아주 잘 알려진 회사의 투어가이드를 하고 있었으니 어쩌면 이탈리아 출장 중에 만났던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이야기라면 늘 관심이 있던 터라 구독을 하고 있었다.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책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당연히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책을 주문했다.


'엥, 그런데 여행 이야기가 아니라 생활 에세이잖아'


책을 구매하면서 여행 이야기 책치곤 제목이 좀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이제서야 떠오른다.


'그래도 이탈리아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읽어줄 수 있어' 라는 심정으로 첫 장을 펴고 읽기를 시작한다. 이탈리아에 가이드로 정착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가고 있다.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날들은 모두 지나가고 즐거운 일만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팬데믹이 왔다고 했다. 아마도 팬데믹에 직격탄을 맞은 비즈니스 섹터가 여행업일 것이다. 사람들이 여행을 포기하게 되는 순간, 여행 가이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냥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그동안 나를 그리고 가족을 지탱하여 왔던 기둥이 사라져 버리는 기분이었으리라.

 

주인공은 막막한 기분이었겠지만 아직까지 가족들과 아웅다웅하면서 지내고 있고, 쉬지 않고 글을 쓰면서 힘든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남편은 유튜브를 통하여 실시간 랜선 여행을 기획하고 여행에 목이 마른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하고 다시 여행 가이드가 되어 사람들을 만날 꿈을 꾼다. 이 부부와 아이들 이야기 중간에 나오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본사의 동료들이 생각난다. 뉴스에서 좋지 않은 소식을 들을 때마다 메시지를 보내서 안부를 확인하던 그 동료들이다. 6시가 되면 통금이 시작된다면서 집 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들려주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던 친구들이다.


주인공이 만났던 이탈리아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이들을 데려갈 수학여행 버스가 늦어지게 되자 회사에 출근할 걱정보다는 가능하면 유쾌하게 보내려고 하는 학부모들, 아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어서 혼자서 뭔가를 해보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하는 선생님들, 관광객이 사라져 버린 도시에서 그래도 피아노 피아노(천천히 천천히)를 되뇌이며 에스프레소를 대접하는 카페 주인들... 갑자기 무언가 뭉클해지면서 이탈리아를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한다. 메타버스를 이용한 가상현실이 아무리 편리하게 바뀌더라도 기어코 불편함을 무릅쓰고 출장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다. 더군다나 나는 디지털보다는 아직도 아날로그를 편하게 느끼고 있는 올드보이 세대이니 말이다. 음식 냄새를 맡고 짧은 감탄사를 낸 후 눈을 감고 한 입을 먹으면서 느끼는 감정을 어찌 가상현실 따위로 구현해 낼 수 있느냐 말이다.       


처음에 책을   골랐다며 읽기 시작한 이야기는 실망에서 공감으로 어느덧 찬사로 바뀌었다. 막막했던 현실을 조금씩 바꾸어가면서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가 끝으로 가고 있지만 끝이 해피엔딩이 될지 어떨지는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힘든 시간은 지나갔고 가족은 다시 모험을 떠나려 하고 있다. 살아보니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  하나도 없다는 주인공이 말에 절대 동감한다. 요즘처럼 불확실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세상에서는 더욱 그렇다.


새해 계획을 세우면서 우리집 꼬맹이에게 물어본다.


"계획은  세우는지 아니?”

"글쎄, 잘 지키려고 세우는 거 아냐?"

"아니, 계획은 망치려고 세우는 거야. 그러니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올해도 엉뚱한 책을 고르게 되면서 세워두었던 모든 계획을 망칠 거 같은 좋은(?) 예감이 든다. 그리고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만든 가상 사무공간이 앞으로 대세가 될 것이라는 말따위는 믿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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