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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21. 2022

눈이 빛나서, 미소가 예뻐서, 그게 너라서

책 읽기의 즐거움

그럴 때 있지 않나요. 출근길 라디오에서 무심하게 흘러나오던 음악에 갑자기 마음을 뺏긴다거나, 아무 생각 없이 들추어 본 책 속의 한 구절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와서 먹먹하게 하는 그런 거요. 가을이 다가와서 그런가. 원래 말랑말랑한 구절들이 많은 글은 오글거려서 잘 읽지 못했습니다. 근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호르몬에 변화가 생긴 건지 이제 이런 글들을 봐도 읽은 만하고 드라마에서 오글거리다 못해 소름을 돋게 하던 대사들도 들어줄 만합니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물리학자가 있습니다. 물리학자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냐는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이 양반 근사한 대답을 해서 질문자와 시청자를 기쁘게 합니다. '사랑은 상변이'라고 정의합니다. '상변이'란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질문자에게 친절한 설명이 이어집니다. 물이 액체상태를 유지하다가 온도가 낮아지면 어느 순간 고체상태로 변하게 되는 '상변이'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인데요.


사랑에 빠지면 이렇게 갑자기 변하게 된다는 의미로 '사랑은 상변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물의 속성과 얼음의 속성은 전혀 다릅니다. 물은 안정적이나 얼음은 안정적이지 않습니다. 얼음을 안정적으로 유지시키려면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계절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물을 일상의 상태라고 한다면 얼음은 사랑에 빠진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랑에 빠진 순간 모든 것이 영롱해 보입니다. 세상은 아름답고 나는 구름 속을 거닐고 있는 것처럼 사뿐 거립니다. 시간이 흘러 얼음이 녹아내리듯이 사랑이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차가운 얼음 속에 갇혀 제대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그러다가 사랑이 가고 나면 또 다른 사랑을 찾아 불나비처럼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고, 고치가 되기를 스스로 자처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는 ‘바람둥이’라 부르고 후자는 ‘순정파’라 불러 볼까요.


바람둥이는 쉽게 사랑하고 쉽게 헤어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은 가볍고 경쾌합니다. 이런 매력에 이외로 ‘순정파’는 쉽게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순정파에게 상처를 주는 나쁜 여자와 나쁜 남자들입니다. 나쁜 여자를 하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즐거웠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고, 낙엽처럼 굴러다니는 이야기들을 주고받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사실 나쁜 여자나 나쁜 남자는 그냥 붙인 이름일 뿐일 겁니다. 나만 바라보지 않기 때문에 ‘나쁜’이라는 딱지를 붙였겠지요. 나쁘다고 하면서도 쉽게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헤어지는 순간 고치의 길을 택한 순정파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며 침묵과 고독 속으로 빠져듭니다. 자학을 하는 것은 봐주겠는데, 주변 사람들도 힘들고 지치게 합니다. 이럴 땐 그냥 멀리서 내버려 두는 게 상책입니다. 고치 속에 있던 애벌레는 극한의 변화를 겪고 나서야 나비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옵니다. 아니 고치 속에서 어떤 여정을 견뎌내길래 꼬물꼬물 기어 다니던 징그러운 애벌레가 날개를 가진 화려한 나비로 태어나게 되는 걸까요?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한 녀석들입니다. 이제 나비가 된 애벌레는 다른 차원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겨우 한 계절에 지나지 않는 사랑이지만 이 녀석들에게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일 테지요. 고치가 되는 길을 택한 순정파에게는 많은 사랑이 필요치 않은 까닭입니다. 세상의 남아 있는 순정파들에게도 희망이 찾아오기를 바래봅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여기로 흘러 들어왔을까요. 아, 일전에 읽었던 말랑말랑한 책 이야기를 하려다가 그랬습니다. 이 책 속에는 온통 오글거리는 대사들로 가득합니다. 이런 글들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우와 대박’이라며 좋아하실 겁니다. 지금 사랑에 빠져있는데 적당한 마음의 감정을 찾지 못하는 분들에게도 딱 좋은 책입니다. 아마도 책 어딘가에서 '아, 내가 지금 딱 이런 기분이야'하면서 좋아하실테구요.

그런데 사랑이란 게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그런 거잖아요. 이제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이런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만한 구절들이 많이 있습니다. 헤어짐에도 단계가 있잖아요.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이 솔솔 나오는 때, 그랬다가도 좀 더 뒤로 미루어보고 싶어 져서 그냥 미적거리는 때, 헤어져서 몇 날 며칠을 이불만 덮고 지내던 때, 안 되겠다면서, 못 헤어지겠다면서 다시 만나는 때, 그러다가 다시 도돌이표처럼 그 모든 번뇌가 다시 시작하는 때, 이제 진짜로 헤어지게 되어 평생을 마음 한 구석에 넣어두고 살아가야 하는 때.


 속의 말랑말랑한 구절들이 이런 마음들을 톡톡 다독여 주는 기분이에요. 너무 아프지 않게 너무 힘들지 않게 위로를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생각들을 모아서 글을 썼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이런 글을  사람은 사랑의 전문가일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바람둥이가 순정파가 되기도 하는 것이 오묘한 사랑의 세계이니깐요.


책 제목만으로도 오글거리시나요. 눈이 빛나서, 미소가 예뻐서......그게 너라서...... 너무 좋지요. 사랑에 빠졌는데 무엇이면 안 좋을까요.

마지막으로 오글거리는 글 하나 들어보실래요.


나는 말야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고운

단어만 골라

너에게

들려주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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