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의 즐거움
제가 가끔씩 쓰는 어쭙잖은 에세이에 비해 소설가들이나 시인들이 쓰는 산문집을 보면 확실히 다름을 느낍니다. 뭐랄까 소설가의 산문은 좀 더 ‘이야기’스럽고, 시인의 산문은 좀 더 ‘시’ 스럽다고 할까요.(쓰고 나서 보니 하나마나한 이야기가 되었군요)
'삼천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철새에게서는 꿈의 냄새가 난다.'
이건 누가 봐도 시인이 쓴 한 구절처럼 보입니다.
물론 소설가이면서도 산문을 아주 읽기 어렵게 하지만 멋지게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김 훈 선생이 <자전거 여행>에서 봄의 흙이 부풀어 오르는 장면을 묘사한 것을 읽은 적이 있나요.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봄이 되자마자 아파트 앞 화단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도 있다니까요. 보는 눈이 달라서인지 선생이 본 흙과 내가 본 흙이 달라서인지 그런 기운을 못 느껴서 서운했습니다. 선생이 본 흙은 <대지>에 나오는 그런 흙이었을 겁니다. 이런 흙에 농부들은 봄이 오면 가만 놔두지 않고 뒤집어서 사람을 먹일 작물을 심고, 대지는 있는 힘껏 그 작물들을 키워내는 그런 흙이요. 내가 본 아파트의 흙과는 달랐던 게지요.
농부의 고단함은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는 고단함은 사람들이 잘 알아주지 않습니다. 글을 써서 책을 내고 강연을 몇 차례씩 해내는 유명 작가님들도 년간 수입이 고작 천만 원이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무명작가님들은 어떨까요. 그래도 책 읽기를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있어 글을 쓰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요즈음은 독자보다 작가들이 많은 시대라는 말도 합니다. 글을 쓸 수 있는 통로가 그만큼 넓어져서 글을 쓰고 싶으면 누구든지 글을 쓸 공간이 생겼으니까요.
서점에서 자기 책을 사주는 분을 보면 업어주고 싶다는 작가님도 있고, 가장 훌륭한 독자는 내 책을 사주시는 독자님이라고 아양을 떠는 작가님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독자라도 있다면 나는 기꺼이 쓰는 고통을 감내할 것이다라는 비장한 작가님도 있습니다. 어떤 기분일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책을 내면 대충 이런 기분이 들겠지요.
<잠깐 광고>
편집자님께서 간단한 톡을 보내오셨습니다. 책에 사용할 그림을 골라놓았으니 한번 살펴보고 드럼 스캔을 부탁한다는. 드디어 마지막 편집 작업이 시작될 모양입니다. 한 달 정도 편집 작업을 한다고 했으니 11월에는 드디어 제 책을 갖게 될 것 같습니다.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는 분이 계십니다. 소설가의 산문이라서 아주 재미있게 술술 잘 읽힙니다. 이 분 역시 몇 권의 소설과 산문집을 내고도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고단한 밥벌이가 해결이 안 되는 분입니다. 그래도 아주 멀리 있지는 않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문학이 사라진다니 더 쓰고 싶다>의 여러 꼭지의 이야기 중에 통째로 인용하고 싶은 글이 있습니다.
'도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건가요?'에 대한 작가의 대답이었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올려봅니다.
...... 중략......
그럼에도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멈추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은 스스로 멈추기 위해 읽는 것이다. 당신이 스스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독서 안에는 ‘멈춤의 과정’이 반드시 존재한다. 그 과정이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두 눈을 감고, 책을 읽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책을 펼친 후, 쭉 독서를 하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만나면 우리는 그 앞에 선다. 밑줄을 긋기도 한다. 잠시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기록을 한다. 공책에 옮겨 적거나 사진을 찍기도 한다. SNS에 공유하기도 한다. 마음을 사로잡힌 순간, 우리는 기꺼이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생각에 빠진다.
맞아, 나도 그랬었지. 그때 그 사람이 생각나네.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후회하기도 하고, 다짐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 독서라는 행위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그리고 우리는 ‘생각’을 한다. 그것이 독서와 영화감상, 독서와 게임, 독서와 드라마, 독서와 유튜브, 독서와 SNS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영화에서 명대사가 나왔다고 관람을 멈추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게임하다가 너무 감동적인 순간이라며 헤드셋을 벗어던진 경우도 보지 못했다. 드라마를 보던 중 주인공의 감정에 이입해 잠시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뒤, 눈물을 흘리는 시청자도 찾기 힘들다. 유튜브 세상에는 멈춤이 없고, 다만 ‘건너뛰기’만 존재한다. 멈출 틈을 주지 않는다.
세상은 멈추는 것을 낭비라고 정의한다.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빨리, 더 많이 보기 위해 멈춤을 제거하는 일에만 몰두한다. 건너뛰기, 빨리 보기, 몰아보기가 기본인 콘텐츠 소비. 조금이라도 지루하다면 가만 놔두지 않은 콘텐츠 소비.
그런데 독서는 다르다. 독서는 우리를 멈추게 한다. 우리는 멈춰서 ‘생각’이라는 것을 한다. 평소에 우리가 잘하지 않는 그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문장에 대해서, 그 감동에 대해서, 그 문장과 감동 뒤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생각의 끝에서 우리는 ‘나’를 만나고 만다. 아름다운 문장 앞에 잠시 서서 그 문장이 좋은 이유에 대해 생각하고 나지막이 다시 한번 읽어보기도 하며, 소설 속 주인공에 공감하면서 비슷했던 추억 하나를 끄집어내기까지 한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거나 소설 속 첫사랑을 나의 첫사랑과 비교하기도 하고, 소설 속 부모님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의 부모님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때로는 그리움을 이기기 못해 전화를 하거나 찾아갈 수도 있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독서의 가치이자 이유라고 생각한다. 독서는 내가 나를 깨닫는 과정이다. 독서는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볼 시간을 만들어주는 장치다.
어떠세요? 근사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왜 책을 읽고 계신가요?
예전엔 그냥 '심심해서, 뭐라도 읽고 있는 게 좋아서'였는데 좀 더 그럴싸한 답변을 생각해 두어야겠습니다. 혹시 누가 알아요? 누가 저한테도 같은 질문을 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