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역사공부

토스카나 도보여행 - 4

by 지노그림

(전편에 이어 이번엔 자비에르 할아버지와 피엔차 역사지구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성벽아래의 빈자리에 자그마한 피아트(역시 주차하기 어려운 이탈리아에서는 소형차가 대세)를 주차하시고 성큼 성문으로 들어가신다. 조금 올라가니 바로 성당이다. 성당 바로 앞에 있는 바에 가서 오렌지주스 두 잔을 주문하고, 성당이 바로 보이는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으신다.

<잠시 내가 역사학도가 되었던 바 >


“자네... 르네상스를 아는가?”

(아니, 이 양반이...)

“르네상스는 Rebirth,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야. 중세가 Feudal system(봉건제)에 기반한 암흑시대라고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네. 적어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나름대로 독자적인 문화를 발전시켰다고 생각하네. 아마도 도시국가의 성장과 관련이 있었겠지. 모데나 성당이 로마네스크 양식을 대표하고 있다면, 르네상스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뒤를 이어 나오게 되는데 피엔차의 성당이 바로 르네상스를 열게 되는 첫 번째 건축물이라네.


피엔차란 도시가 만들어지기 오천 년 또는 육천 년 전부터 이곳에는 에트루리아인이 살고 있었다네. 새 교황이 이곳에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는 도시계획을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 로셀리니에게 의뢰했고, 기존의 에트루리아 거주지를 대충 허물고 그 기반 위에 성당을 건설하기 시작했다네.


기반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랬는지, 공사시작 후 얼마되지 않아 지반이 가라앉기 시작했다네. 나중에 성당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성당의 한쪽은 경사가 느껴질 정도로 심하게 가라앉아 있는 걸 느낄 걸세. 기둥의 높이도 가라앉은 부분과 정상적인 부분과 높이도 다른 걸 보게 될 걸세”


“이탈리아에서는 공사 중에 지반문제로 기울어지는 것은 크게 개의치 않았나 봅니다. 피사의 사탑도 그렇고, 부라노 섬의 성당도 기울어져 있잖아요. 여기도 그렇구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경험이 많은 장인과 석공들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낸 거지. 그때나 지금이나 여기 사람들은 몹시 플렉시블 하니까 말이야. 이곳을 만든 교황이 있었다고 했지. 교황이 선출된 스토리도 아주 재미있어. 들어볼 텐가? 그 이야기를 하려면 역사공부를 좀 해야 해.”(어르신, 지금까지 하신 게 역사공부 아니셨어요? 물론 마음의 소리이다)


아까 잠깐 이야기했던 봉건제가 흑사병으로 인해 붕괴되었는데, 흑사병이 나왔으니 한마디 해야겠네. 시에나와 피렌체를 가본 적이 있겠지? 두 도시는 서로 앙숙이었다네. 비슷한 지역에서 토스카나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하던 중에 흑사병이 두 도시를 덮친 거야. 시에나가 큰 타격을 입었는데 도시주민의 60%, 즉 열명 중 여섯 명이 사망했단 말이지. 이후부터 시에나는 계속 내리막길이었어. 피렌체는 어찌 된 일인지 시에나처럼 타격을 입지는 않았다네.



봉건제가 이전과 같지 않게 되면서 도시가 이곳저곳에서 생기기 시작했지. 법률가, 기술자, 상인, 예술가와 기존의 지주들이 도시를 다스릴 카운슬 Council을 만들기 시작했지. 처음에는 같이 모여서 도시를 꾸려나갔는데 점차 지주계급은 밀려나는 추세였지.


피콜로미니 가문도 그런 지주가문의 하나였는데, 가문의 수장이 미래를 볼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나 봐. 막내아들 실비오에게 귀족수업을 시키는 대신 대학에 보내 라틴어를 공부하게 했어. 오래된 고전 중 특히 키케로(씨세로)의 연설문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해. 키케로가 누군가 하면 로마제국역사에서 손꼽히는 정치가이며 철학자이며 연설가였거든. 결국엔 그의 말 때문에 시저의 수양아들 옥타비아누스에게 제거당하게 되지만, 그는 위대한 공화국 옹호론자였어.


실비오는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게 되면서 추기경의 비서로, 합스부르크 가문의 비서 그리고 대학의 교수로 종횡무진 활약하게 있었지. 라틴어로 훌륭한 연설문을 쓸 수 있다면 어디에서든 쓸모가 아주 많았거든. 실비오가 서서히 유럽의 정치계 및 종교계에 이름을 알릴 무렵, 유럽은 교황이 무려 3명으로 난립하던 시기였어. 각자 다른 계파에서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 3명이 서로 자기가 교황이라고 주장하고 있었거든. 말이 안 되었지. 3명의 교황이라니.


이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어야 한다는데 서로 동의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계파의 이권이 걸린 문제라서 해결이 쉽지 않았어.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실비오가 매우 중요한 연설을 하게 되지. 바로 문제가 되는 3명을 모두 퇴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자는 주장이었어. 3명 중 어느 누구도 양보를 하지 않을 것이 뻔했으니, 3명의 동시퇴위가 절묘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계파가 모여 다시 새 교황을 선출하게 되었지. 이 연설로 실비오는 이제 전체 유럽에 이름을 알리고 매우 중요한 인물로 부각이 되었어.


행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보통 교황이 병이 들면 3-4개월 정도는 시름시름 앓다가 승하하게 되는 게 일반적이었어. 그동안 계파들은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기 계파의 추기경을 교황으로 추대하고자 엄청난 짓을 저질렀지.


그런데 실비오가 추기경으로 있던 바로 그때, 교황이 어느 날 급사를 한 거야. 당장 교황을 뽑아야 하는데, 부정한 일들이 끼어들기 전에 적격자로 실비오가 거론되더니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거야. 그가 바로 Pio II세야.

그때가 어떤 때였는가 하면,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튀르크에게 함락되고, 이를 되찾기 위한 십자군을 다시 만들자는 논의가 활발한 때였지.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말이지.


배운 게 많은 사람이라 그랬을까. 교황의 권력을 이용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 바로 르네상스를 공식화하는 건축물을 남기고 싶었던 거지.

그리고 피엔차라는 이상적인 계획도시를 에트루리아의 거주지 위에 만들기로 해. 아까 올라올 때 보았던 거대한 바위 기억나는가? 성벽이 바로 그 바위부터 시작되었는데. 옛날에 이 거대한 암반 위에 에트루리아의 거주지가 있었다고 전해져.



이탈리아의 성당은 보통 동서로 축을 만드는데, 피엔차의 성당은 특이하게도 축이 남북으로 되어 있어. 이유는 피엔차의 북쪽에 에트루리안의 성소(santuary)가 있었는데 교황은 이 기운까지 받고 싶었던 모양이야. 당시 건축가 로셀리니에게 의뢰하면서 두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하게 되는데, 성당의 축을 남북으로 할 것, 르네상스의 정신을 건축물에 부여할 것이었다고 해. 고대 로마의 기술을 현대화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지.


피엔차 성당 정면의 3 분할은 바로 고대로마의 개선문으로부터 온 거야. 지금은 꽃으로 뒤덮인 이 꼴사나운 광장에는 말이지 아주 중요한 것이 숨겨져 있어. 이 꽃밭을 빨리 치우라고 해도 아무도 말을 듣지 않아.(이 부분에서 매우 분개하셨다)”



나보고 구글로 피엔차 성당의 옛 모습을 찾아 보여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거의 다 끝나간다고 하신다. (진짜요? 거의 두 시간이 다 되어가요. 이야기도중 동네 친구분들을 만나시면 한 십여분 수다를 떨고 다시 시작)


“옳거니, 바로 그 사진이면 좋겠군. 성당 앞에 흰색 선들이 보이는가? 이게 어떤 선이냐 하면, 춘분과 추분 정오가 되면 정확하게 성당의 십자가가 이 끝선에 닿게 되는 거야. 해가 가장 긴 하지는 중간선의 끝에 닿게 되고 말이지. 이게 어떤 의미이냐 하면 세계의 중심에 교황이 있고 하늘의 태양과 교황의 권위가 동일하다 뭐 그런 기호인데, 지금은 온통 꽃밭으로 덮여있어서 이것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정작 피엔차 구경할 시간을 놓쳤다. 이곳을 방문했던 홍여사 말로는 골목길이 매우 아름답다고 했는데 말이다. 여기서 더 지체하면 오늘 몬테풀차노를 가지 못할지 모른다. 나의 사정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자비에르 할아버지는 또 한 번 거의 끝났다는 말을 하신다.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또 들을 수 있을까. 다 포기하고 들으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딴생각으로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중간중간 종횡무진 뻗어간 이야기는 마르코폴로, 갈릴레오, 코페르니쿠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모두 등장하고, (정말 이러시기예요? 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이 등장하고(미치겠네.) 그리스 기둥양식도 빼놓을 수 없지. 코린트, 이오니아, 도리아식 기둥, 이 부분에서 엔타시스를 설명하시는데 이 부분이라면 나도 질 수 없지. 우리의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도 바로 엔타시스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매우 유사한 구조이다. 비록 나무이긴 하지만. 우리 민족도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고 깨알자랑을 잊지 않았다.


자비에르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그동안 얼마나 있었을까. 혹시 내가 처음은 아니겠지. 하하하.


이야기는 끝냈지만 아직 성당구경은 하지 못했다. 골목길 구경은 몬테키에로나 몬테풀차노에 가서 하라신다. 이 동네 골목 다 그게 그거라고 하신다.(나중에 사진을 보니 맞는 말씀인 것 같다. 어디가 어디였는지 잘 구분이 안 간다) 다른 건 몰라도 성당의 내부는 들어가서 내가 설명한 부분을 보고 르네상스의 정신을 느끼고 가야 한다고 하신다.


“그럼요. 성당내부는 저도 궁금해요. 말로만 들어서는 어떤지 알 수 없거든요. 보는 게 믿는 거잖아요.”


과연 성당의 한쪽은 심하게 가라앉아 있었고 기둥 높이도 달랐다. 정갈하게 구획된 지붕구조는 단순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화려한 벽화로 장식된 유명한 다른 두오모에 비하면 화려함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오히려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게다가 나는 이제 성당의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자세히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자비에르 선생님과 성당을 나와서 드디어 작별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두 가지 잊은 게 있다고 하신다. 하나는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와서 다시 차로 가야 하고, (휴우, 난 또 뭐라구) 또 다른 하나는 피콜리미니 가문의 상징인 반달 모양이 피엔차 성당 장식물 중에 숨겨져 있다고 하신다.(아, 할아버지는 아직 나를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으셨구나)


“자네 성당 벽면에 열쇠가 보이는가?”

“아 그거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천국으로 가는 베드로의 열쇠가 아니옵니까?”

“제법이군. 그 밑에 있는 방패에 조각된 반달모양이 바로 피콜리미니 가문의 상징이라네, 자 이제 차로 가세. 갈 길이 바쁘다로 하지 않았나? 서둘러 가세. 내가 몬티키에로로 가는 길이 시작하는 곳까지 같이 가 주겠네. “

이렇게 해서 피엔차 방문은 끝이 났다. 성당 앞에 있는 바에서 역사공부하고 정작 피엔차는 구경하지 못했다. 다시 피엔차를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다음에 갈 때는 피엔차부터 먼저 보고 자비에르 할아버지를 찾아뵈야겠다.


이제 다시 길을 가야 할 시간.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다음에 또 볼 것을 약속하고 악수를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주고 헤어진다. 우리는 독일인과 한국인이므로, 볼인사는 어쩐지 어색하다.


- 다음 이야기는 비를 맞으면서 기어코 몬티키에로와 몬테풀차노를 가는 이야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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