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그림 Dec 29. 2023

모순 없는 인간은 어디에?

비블리온 - 문지혁

    중급한국어를 읽다가 문지혁이라는 작가가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런 애매한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결단코 비하하는 말이 아니다. 막 칭찬을 하고 싶은데, 칭찬보다 작가는 애매하다는 말을 어쩐지 더 좋아할 거 같다.

<사자와의 이틀밤>은 꽤 오래전에 출간된 소설이라서일까. 도서관의 장서 목록에는 존재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찾을 수 없다. 사서조차도 찾지 못할 정도로 숨겨져 있다.


뭐 꼭 그걸 읽어야만 했던 건 아니니깐. 대신 <비블리온>과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를 빌려왔다. 단편집인 <우리가…>에 실려있는 글들은 대부분 어두운 미래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한국어교본>에서 언급한 ‘망한’ SF류의 소설들일까. 이과생이 그려낸 하이테크 하고 사이언티픽 한 소설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을 것 같다. 인문학의 관점에서 본 미래라고 생각해 본다면? 그래도 역시 애매하다.

   책이 사라져 버린 미래를 그린 단편은 애매하기보다는 아쉬웠는데, 아마 작가도 그랬나 보다. 비블리온이란 소설로 이야기를 확장시켜 주어서 좋았다. 조지오웰의 1984를 연상케 하는 통합정부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반체제활동이라고 해봐야 사라지고 있는 책을 지켜내려는 노력이 전부이다. 조직도 허술하고 거대한 정부의 손끝에 바늘만큼의 상처도 줄 수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다. 한 사람만 빼고.


   읽는 사람마다 재미가 있는 부분은 다르겠지만 내가 문지혁의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는 부분은 택시를 타고 아내를 미행하는 장면이었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의 발사’라고 떠들어대는 택시기사에게 ‘무의식의 발로’라고 고쳐주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는 부분이었다. 택시기사의 거친 입을 통해서 통합정부가 어떤 모순을 가지고 있는지 일갈하는 대목에서는 어쩐지 대한민국 정부가 떠오르기도 한다.


“ 모순 없는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내 말을 내가 뒤집어주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뒤집어 주겠는가? “

- 중급한국어(문지혁)-


진심으로 쓴 말일까. 비꼬는 말일까. 텍스트를 읽어봐도 애매하다. 나도 말과 행동이 다른 인간이라 동의할 수밖에 없는 명제이긴 한데, 나의 모순은 존재 자체가 미미한지라 사회에 큰 해악이 될 거 같지는 않다. 하는 짓이라곤 당뇨를 걱정하면서 점심에 라면을 맛나게 먹는 정도니깐.


모순하면 떠오르는 정치인들이 있다. 호기롭게 뱉어냈던 말들이 비수가 되어 돌아와도 뻔뻔스럽게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걸 보면 역시 속이 시커먼 ‘후흑학‘의 대가들이 되어야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일까 싶기도 하고. 이런 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면 자기모순을 감추려 조작을 하고 검열을 하고 여론을 왜곡하고 고소한다고 협박하고 암튼 별별 못된 짓 5종세트로 사람들을 피곤하게 한다. 아닌가? 아니면 말고.


소설의 끝은? 역시 애매하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림은 지난 5월에 다녀왔던 토스카나의 작은 마을, 부온콘벤토입니다. Happy place라고 번역되는데, 영어로 써 놓으니 어색하고 이상합니다. 음란마귀가 왔다 간 탓인지 심지어 음탕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아주 작고 평화로운 동네입니다. 로마로 가는 순례길에 있어서 순례객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고요.

성벽 앞 광장에는 주말마다 시장이 열립니다. 주변 농부들이 직접 키운 야채와 과일이 거래되고, 치즈와 햄 같은 가공품도 있더군요. 작은 마을이어도 동양에서 온 낯선 이방인에게 미소를 건네는 걸 보면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