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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n 29. 2021

걷기 본능을 자극하는 것들

책의 발견

내가 원래 한 가지 취미를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다. 잘하지 못해서 절망한 채 그만두거나 재미를 찾지 못해서 또는 취미생활에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도보여행도 그렇게 그만 둔 취미중 하나였는데 이 경우에는 오프라인에서 만난 사람들과 너무 친해졌다가 선을 넘는 경우가 생겨 마음이 떠났다.(금 밟으면 죽는 거지)   

  

걷기라는 것이 반드시 모임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라 지금도 혼자서 둘이서 때로는 어울려서 걷고 있다. 오롯이 걷기에만 목적을 두고 있다면 혼자걷기가 당연 편하다. 나만의 템포로 걸을 수 있고 머릿속의 잡다한 생각들도 말없이 걷다보면 사라질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아내와 둘이서 걷기인데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걸을 수 있기 때문에 심심하지 않지만 이야기의 주제가 한정적이어서 아쉽다. 마지막으로 어울려 걷기이다. 살다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현상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어울려 걷기도 그중 하나로 승화(?)되는 경우가 많다. 걷기보다는 먹고마시기에 재능을 보이는 친구의 꾐에 너무 쉽게 넘어간다.


걷고 달리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었다. 선사시대 사냥을 하던 털 없는 원숭이의 가장 큰 재주는 오래달리기였다. 우리의 DNA에는 수 만년을 이어온 걷기와 달리기 본능이 새겨져 있다. 우리의 몸은 오래 달리기에 최적화되도록 진화해왔다. 찰고무처럼 질긴 아킬레스건과 몸의 열을 배출해주는 땀구멍은 다른 동물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인간만의 특징이다.


부시맨이 사냥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사냥을 위하여 화살촉 끝에 아주 약한 독을 사용하여 사슴을 중독시킨다. 나와 내 가족이 먹을 음식이므로 맹독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화살을 맞은 사슴도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약한 독이므로 한번에 쓰러지는 대신 길게는 3박4일정도 계속 도망을 한다. 사냥꾼역시 사슴을 줄기차게 좇아 다니고 결국엔 사슴이 지쳐서 쓰러지게 된다. 이게 실화인지 구라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지구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의 걷기본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과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걷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퍼시픽 트레일은 미국의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동부지역을 남북으로 관통한다. 총 길이는 퍼시픽 트레일은 4200km, 애팔래치아 트레일은 3300km정도로 퍼시픽이 조금 더 길다.


어느 쪽을 선택하던  아무리 빨리 걸어도 족히 4개월은 꼬박 걸어야 끝이 나는 길이다. 눈이 녹는 늦봄에 시작하여 얼음이 얼기 전인 초가을에 끝낼 수 없다면 남은 구간은 내년으로 미루어야 하는 트레일이다. 트레일에는 트레커들만 다니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숲길이므로 곰도 있고 방울뱀도 있고 온갖 벌레들이 달려들 것이고 중간중간에 마련해 놓은 식수탱크는 오염되어 있을 수도 있다. 게다가 일주일간 먹을 식량을 짊어지고 트레일의 다음 보급지까지 걸어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이런 힘든 길을 일부러 걷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절박한 사람일 수도 있고 재미삼아 걷는 사람일 수도 있다. 세릴 스트레이드는 엄마를 잃고 섹스와 마약에 찌든 쓰레기같은 자신을 구하고자 퍼시픽 트레일을 걷는다. 정반대쪽 애팔레치아 트레일에는 빌과 카츠가 있다. 빌은 트레일에 호기심을 느껴 친구인 카츠를 꼬드겨서 함께 걷는다. 카츠는 무엇 때문에 걷고 있는 건지 모호하다. 길을 걷고 있는 내내 투덜거리기 때문이다. 투덜거리기 위하여 걷는 건가? 이렇게 정반대쪽 트레일에 전혀 다른 이유를 가진 사람들이 걷고 있다.


세릴은 가능한 모든 구간을 혼자 걸어서 완주를 한다.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트레일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마음의 위안을 얻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트레일을 걷는 내내 혼자였다. 그녀의 글에서는 아픔과 치유가 느껴진다.


반면 빌과 카츠는 배불뚝이 옆집 아저씨같은 사람들이다. 달콤한 청량음료와 햄버거와 케익이라면 기꺼이 영혼이라도 바꿀 기세이다. 빌의 글에서는 동병상련(?)이 느껴진다. 아니 이런 친구들도 걷는데 나라고 걷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그런 느낌이다. 걷기는 걷지만 철두철미하게 걷지는 않는다. 너무 힘들고 지치게 만드는 구간은 훌쩍 뛰어넘어가기도 하고 자기들이 고작 지도상의 몇 센티밖에 걷지 못했다고 자조하면서 포기를 하기도 한다.


세릴이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고행의 길을 택했다면 이 두 아저씨는 모험을 위하여 고행의 길을 택했다. 당연히 트레일을 대하는 태도이며 트레일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어느 것이 좋다 라고 말하기 어렵다. 두 책 모두 읽어도 후회하지 않을 장점을 가지고 있다. 단점은 책은 그만 읽고 나도 좀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걷기본능을 자극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자극에 지속적으로 반응하기에는 쉽게 포기를 하는 내 성격이다.


나는 절대로 이런 무섭고 험난한 트레일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멀게는 이탈리아 칭퀘테레에서의 트레킹처럼 하루 동안 잘 걷고 저녁때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 후 맛있는 티본스테이크를 먹어야 한다. 가깝게는 강원도 정선의 운탄고도길을 살랑살랑 걷고 나서 맛있는 삼겹살에 막걸리를 곁들이는 것이 적당하다. 우리 동네 뒷산에 오르면 그 길이 서울의 둘레길과 연결된다. 이 길을 걷고 나서 시원한 맥주 한잔 하는 것도 좋아한다.


그런데 누가 조지아 코카서스 산맥근처에 기가 막힌 트레킹 코스가 있다고 속삭이는 것이 아닌가. 60km정도를 4일에 걸쳐 하루 15km정도를 걷고 트레킹 코스에 있는 마을에 들려서 맛있는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고 시골 외갓집같은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개운한 기분으로 다시 15km를 걷는다고 했다. 걷는 동안 마주치게 될 코카서스의 풍광과 작고 예쁜 마을들은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줄 거라고도 한다. 그래 하루 15km정도라면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빌과 카츠도 600km를 걸었는데 그깟 60km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진다. 게다가 일주일치 식량을 배낭에 지고 다닐 필요도 없는 곳 아닌가 말이다.    


아내에게 넌지시 내년에는 조지아에 가야겠다고 하니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는 표정이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이리 와서 빨래가 개키라고 한다. 현실적인 아내와 몽상을 버리지 못하는 남편의 대화는 항상 이렇게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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