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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ul 11. 2021

그리기와 글쓰기가 어쩌다 만났을까

크리에이티브 드로잉- 버트 도드슨

그리기에 목이 조금 말라 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늘 그랬듯이 심각하지는 않아서 그리 오래 가진 않았다.

취미가 너무 심각해지면 재미가 없어진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래도 조금 더 잘 그려 보려고 여기저기 조금씩 기웃거렸다.

원데이 클래스, 초급반 드로잉 클래스

드로잉 관련 책들도 몇 권 샀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더라.

힘들게 따라 그려봐도 어쩐지 흉내 내느라 기운만 빼버린 삼류가 되어 버려서인가.


그러다가 '크리에이티브 드로잉'이라는 책을 만났다.

현란한 기능보다는 '콘텐츠'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던 터라 냉큼 구매를 했다.

그림을 어떻게 세련되게 그려야 할지 보다는 창작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책이었다.

물론 책 안에 들어있는 그림들도 훌륭했다.

슥삭슥삭 힘들지 않게 그린 것 같지만 이 방면으로 일가를 이룬 작가들이므로 감히 내가 어쩌고 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책이 문제가 아니었다.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이제 머리가 굳어버린 건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떠오르지 않았다.

저자인 버트 선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창작을 할 수 있는 단초를 알려주지만, 알려준다고 모두 다 성공하면 세상일이 재미가 없지.

창작은 포기하고 나니 기껏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여행지 풍경을 그려보는 일이었다.

그래도 창작의 고민을 덜어버리고 나니 그림 그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그냥 보이는 대로 그리다가 기분이 내키면 버트 선생의 충고대로 나의 상상을 조금 더 해 그려보기도 했다.


이렇게 여행지 그림을 그리다 보니 그림이 태어난 곳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 졌다.

출장 때문에 갔던 이탈리아의 작은 소도시들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식당 이야기, 내가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가 쓰고 싶어 졌다.

글쓰기 역시 창작의 한 영역인지라 시작하려니 막막하다.


버트 선생 가라사대.

< 창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가가 명확하고 완벽하게 비전과 형식을 갖추고 작업에 임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뿐더러, 창조성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오해라고 볼 수 있다.

창조성이란 예술가와 그 작업 사이에서 일어나는 열린 대화이다. 종이에 그려 넣은 선들이 그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말을 글쓰기에 대입하면 일단 컴퓨터를 열고 뭔가를 쓰다 보면 그 뭔가가 나를 다음 단계로 인도해 줄 거라는 거지.

기세 좋게 컴퓨터를 열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닫았다. 열었다. 다시 닫았다.  

매일 열고 닫기만을 하고 있던 중에 알고 있는 작가분이 쓰고 싶은 글을 필사해 보라고 권해주었다. <김영하의 여행의 이유>를 골랐다. 이유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여행이라는 공통 소재 그리고 몹시도 부러운 인세 수입자였기 때문이다.


이십여 페이지를 필사하고 있을 때였다. 중국에 갔다가 '추방'당한 이야기였는데, 신기한게도 갑자기 쓰고 싶은 첫 도시와 첫 문장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렇게 나의 첫 여행기 '피렌체의 오래된 다리'와 몇 편의 이탈리아 여행기가 나오게 되었다.

이 몇 편의 이야기를 밑천으로 <브런치 작가>로 데뷔하게 되었으니 그동안의 '뻘짓'이 ‘삽질’로 끝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    https://brunch.co.kr/@@9UbE/18


이 그림은 버트 선생의 책 중에 내가 재미있어하는 부분이다.

내가 내 글과 내 그림을 보고 가끔 하는 말이기도 하다.

부정적인 의미로만은 아니고 ‘몹시 마음에 들 때’에도 이런 말로 나에게 칭찬을 한다. ^^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멘탈 갑’이라며 웃는다.


어제는 조그만 액자를 사다가 그림을 넣어 집안 장식도 해보았다. 핫핫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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