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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Sep 24. 2021

벨라 피구라(La bella figura)

'가오'가 빠지면 안 되지

출장을 위하여 볼로냐를 가려면 직항이 없어서 항상 유럽의 허브공항에서 환승을 하여야 한다.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파리 그리고 가끔 이스탄불 공항을 이용하여 볼로냐로 들어간다. 파리 공항은 그 넓이와 비효율성으로 인해 잘 이용하지 않는다. 여기저기 흩어진 터미널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볼로냐로 가는 터미널은 한참 떨어져 있어서 항상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실제로 몇 번은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다. 여행객들마다 호불호가 갈리진 하지만 선호하는 공항은 암스테르담이다. 일단 터미널이 하나여서 여차하면 뛰어서라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유럽 공항의 시스템은 장거리 운항을 하는 대형 여객기와 유럽 내 도시를 운행하는 중소형 여객기가 사용하는 터미널 또는 구역이 다르다. 매번 가도 헷갈리는 환승 동선을 따라 이탈리아로 운행하는 구역으로 이동하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 사람들이 외모상으로 비슷하긴 해도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면 콕 집어 표현할 수는 없는 다른 분위기가 있다. 특히 이탈리아 사람은 잘 살펴보면 구분하기가 어렵지 않다. 이탈리아 사람임을 단번에 맞출 수 있는 확률이 비교적 높다는 말이다. 물론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으므로 백 퍼센트 장담할 수 없다.


몸에 착 맞는 슈트, 머리에 올려 쓴 선글라스 그리고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전화로 수다를 떨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면 이탈리아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패션에 관심이 많아서 잘 꾸며 입고 다녀서 그런가 보다 했다. 이것도 아주 틀린 생각은 아니었지만 꽤 오랜 시간을 이탈리아 친구들과 지내다 보니 그것 말고도 뭔가가 더 있었다.


벨라 피구라(La Bella Figura)


사전적인 뜻으로는 Beautiful figure이지만 Good impression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올바른 해석일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는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다. 엉망진창인 관료시스템은 외국인들에게 악명이 높다. 우리 같은 관광객들이야 무비자로 여행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관료시스템을 경험할 기회가 없어서 예쁜 겉모습만 보고 온지만, 일 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살아보기를 결심한 이탈리아 러버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이다. 오죽하면 그 길고도 복잡한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낸 사람들도 있다. 물론 책의 리뷰에는 그대로 했는데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불평이 올라오는 처지이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규정을 가지고 있는 나라에서도 모두가 지키고 있는 규정이 있다. 물론 어디에서 기술되어 있지 않지만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불문율 같은 것이다. 벨라 피구라라고 하는 것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첫인상과 평판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남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 그것이 바로 벨라 피구라이다. 벨라 피구라가 외모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 좀 더 복잡한 내용들이 추가되어 벨라 피구라가 완성되지만 외국인이 완전하게 벨라 피구라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탈리아의 시장에 가서 채소가게를 가보자. 채소를 팔고 있는 나이 지긋한 할머니들을 보면 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고 채소를 돌보고(?) 있다. 누가 맨손으로 채소를 만질라치면 손등을 찰싹 칠 지 모른다. 이 할머니에게 있어서 채소를 맨손으로 만지는 것은 벨라 피구라가 아니다.


사례 1.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면서도 핸드백을 들고나가는 아주머니들,

사례 2. 런웨이를 걷고 있는 모델과 같은 복장으로  장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돌아다니는 여자들,

사례 3. 뜨거운 여름에도 슈트를 고집하는 남자들.


벨라 피구라의 전형적인 사례들이다.



그래도 외모와 관련된 부분이라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알 수는 있다. 하지만 문화와 행동양식에 걸맞은 벨라 피구라를 말하는 것이라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이다.


사례 1.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침식사는 크로와상같은 빵과 카푸치노이다. 카푸치노는 아침 식사이기 때문에 그 외의 시간대에는 절대 마시지 않는다. 관광객이 북적거리는 로마에서야 오후에 카푸치노를 주문해도 별문제 없겠지만 산지미냐노와 같은 소도시에서는 '이건 뭥미?'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바텐더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에게 커피란 에스프레소이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는데 에스프레소와 뜨거운 물을 대접받았다면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보통은 '없다'가 정답이다.


사례 2.

다른 사람과 음식을 나누어 먹지 않는다. 하물며 피자도 예외가 아니다. 1인 1 피자가 원칙이다. 물론 피자 같은 경우에는 맛보기를 위하여 한쪽 정도 교환(?)해서 먹을 수는 있지만 이것도 아주 허물없는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다만 안티파스토는 모두가 나누어 먹는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프리미와 세콘디를 먹기전에 가볍게 먹는 에피타이저라서 나누어 먹으면서 식사 분위기를 북돋운다.


사례 3.

다양한 모양의 파스타마다 그에 걸맞은 소스와 조리법이 있다고 당연히 믿고 있다. 자기 집을 방문한 친구에게 제대로 된 식사 대접을 하려면 지켜야 할 규칙이다.(물론 나는 샐러드용 냉파스타에 뜨끈한 토마토소스를 부어주어도 개의치 않는다)

라자냐에 어울리는 소스는 볼로냐식 소스에 송아지고기, 프로슈토 크루도(생 햄)이 어울린다.

펜네에 어울리는 소스는 토마토, 오일, 치즈이다. 여기에 매운고추와 삼겹살을 추가하게 되면 펜네아라비아타가 된다. 매운 맛이 입안에 확 도는 앵그리(angry) 펜네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끝이 없다


사례 4.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 먹는 일은 상당히 노련해야 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서 서빙을 받는 것보다는 서서 간단하게 한잔하고 다시 제 갈 길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카페에 가면 일단 사람들 틈으로 슬쩍 끼어들어가 자리를 잡고 웨이터의 눈과 마주쳐야 한다. 일단 눈이 마주치면 웨이터는 상대해야 할 손님 리스트를 올려놓는 듯하다. 이윽고 주문을 한다. 카푸치노는 절대 안 된다. 그냥 에스프레소가 안전하다. 선불로 지급하고 받아 둔 영수증은 잘 가지고 있다가 내 커피가 나오면 웨이터에게 보여준다. 끝을 살짝 찢고 돌려준다.(아마도 받아 마시고 안 받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이 모든 과정이 물 흐르듯이 아름답게 지나간다. 벨라 피구라이다.

참고로 난 이런 아름다운 장면을 항상 구경만 하고 있다. 아침에 마신 카푸치노로 족하기 때문이다. 절대로 이 아름다운 장면에 아름답지 못한 행동(La Brutta Figura)을 할까 봐서가 아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음식점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손을 흔들어 웨이터를 부르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메뉴를 골랐으면 웨이터의 눈과 마주쳐야 한다. 쉽지 않다. 웨이터는 항상 바쁘기 때문에 한참을 쳐다봐야 할 때도 많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달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엄청난 인내가 필요하다. (이건 유럽에서 거의 일반적인 것 같다)


사례 5.

학교에 아이들을 보내 놓고 엄마들이 기대하는 것은 Good Behavior이다. 학업의 성취도보다는 어떤 자세로 학교생활을 하는 것을 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슬리퍼를 신고 파자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당연히 금기이다.


사례 6.

비즈니스의 경우에 전화나 이메일로 하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적어도 이탈리아에서는 얼굴을 맞대고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건 어느 정도 우리나라와 닮았다. 마주 보고 앉아서 커피를 마시면서 아주 천천히 시작하는 것이 빠르게 가는 길이다. (거두절미하고 일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아름답지 않아요. 하하하)


이 모든 예들이 벨라 피구라이다.  

 

이렇게 매너와 평판을 중요시하게 여기면서도 산책 나온 개똥을 치우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신호등을 지키는 사람도 드물다.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소리 지르는 사람도 보았다.


"아니 그렇게 매너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이건 뭐 하는 거지."


 이 대목에서 내가 벨라 피구라를 잘 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 보았다. 이런 이야기를 이탈리아 친구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누구도 속 시원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오늘도 때로는 신기하고 재미있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이탈리아를 제3자의 눈으로 관찰해보고 있다. 그나저나 관찰은 현장에서 해야 제 맛인데...


어느 문화나 나라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이야기하는 것은 편견일 수 있어 조심스럽다. 나의 이탈리아 동료들 중엔 벨라 피구라와는 거리가 먼 친구들도 많기 때문이다. 그냥 재미로 읽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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