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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그림 Jan 12. 2022

음식 그리고 이탈리아

이탈리아 사람들 음식에 진심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K형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여행을 가지는 못하지만 기분이라도 내야 할 듯하였나 보다. 제법 그럴싸하다.

 

이탈리아 맥주, 프로슈토 크루도, 탈리아탈레처럼 생긴 면에 트뤼플버섯, 정체불명(?)의 리조또, 비스테카에 티라미수까지 풀코스 정찬을 즐기고 있는 사진이다. 맥주보다는 와인이 좋았을 건데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건 개인의 취향이니까.


이탈리아 동료들이 출장을 오면 한식을 먹으러 다니다가 한번 정도는 이탈리아 식당에 가서 고향의 맛을 먹여준다. 나도 출장 가면 한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나름 생각해서 데리고 가면 한마디 한다.


"이태리가 아닌 곳에서 먹어본 피자 중에 제일 괜찮은 것 같다"


이해한다. 나도 외국에서 한식을 먹으면 그렇게 이야기하는 편이니까.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음식은 어떤 의미일까. 자기 나라 음식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친구들은 정도가 조금 더 심한 것 같다. 대화 도중에 수시로 음식이야기로 빠지거나 음식에 빗대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알아챌 수가 없다. '포카차 대신 빵으로 빚을 갚았다'라고 하면 이게 좋은 뜻인가 나쁜 뜻인가 알 수가 없다. 포카차가 뭔지 알아야 짐작이라도 하지. 포카차는 피자와 빵을 합쳐놓은 것 같이 생겼다. 두툼한 빵 위에 토마토소스나 간단한 토핑을 올려놓은 형태라고 보면 된다. 한 조각 정도 식전에 입맛을 돋게 하기 위하여 먹기도 하고, 길을 가다가 간식거리로 한 조각 사 먹기도 한다. 아마도 기대한 것보다 못한 것으로 되돌려 받았다는 뜻 이리라.


통일된 지 얼마 안 된 나라이다 보니 지방마다 말도 다르고 당연히 음식문화도 다르다. 남쪽 장화처럼 생긴 풀리아 지방이나 시칠리아 섬에서 사용되는 방언은 거의 외국어 수준이라고 한다. 휴가를 보내기 좋은 곳이라고 가면서도 시칠리아 사람들 참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흉을 보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말 그대로 태어나서 자라서 묻히는 곳이다. 본사 직원들 대부분은 회사를 기준으로 반경 100km 내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도 물론 있다. 아직도 농업이 주된 산업인 남부의 풀리아에서 변변한 직장을 구하기 힘들어서 북쪽의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온 사람도 있고, 트렌티노의 산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나온 사람도 있다. 공통점은 자기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고향에 대한 애착심을 이야기하면서 당연히 엄마가 해주던 전통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각 도시 또는 지방을 대표하는 음식에 대한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볼로냐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본거지와 같은 도시이다. 성벽 안의 구 시가지는 검붉은 벽돌로 모든 건물이 지어진 것처럼 보일 정도로 붉게 보인다. 그야말로 '붉은 도시'이다. 볼로냐는 또한 토르텔리니의 성지이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무슨 논평을 내다가 "토르텔리니나 만들고 있는"이라고 볼로냐 사람들은 비하한 적이 있다. 이에 격분한 볼로냐 시민들은 공산당을 찍지 않았고 반대당을 시장으로 추대했다. 어부지리로 시장이 되어서 했던 첫 일과는 바로 "토르텔리니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토르텔리니는 만두처럼 생긴 파스타이다. 만두 안에는 시금치나 고기 또는 치즈를 넣어 만든다. 딱 보기엔 실크로드를 통하여 들어온 만두가 이탈리안 스타일로 바뀐 것이 분명하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현명하다.


내가 보기엔 똑같은 음식 같은데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르다고 한다. 그럴 때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해준다. 파마잔 치즈가 그렇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파마잔 치즈는 파르마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파르마 옆동네에 살고 있는 레조 에밀리아 사람들은 이것이 못마땅하다. 자기들이 만드는 파마잔 치즈가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애착은 심지어 같은 도시 내에서조차 경쟁을 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시에나의 팔리오이다. 매년 여름이 되면 시에나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기수들이 말을 타고 캄포 광장을 두어 바퀴 도는 매우 싱거운(?) 경기인데 이것을 보기 위하여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말안장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서 경주를 하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해 보이지만 개의치 않고 전속력으로 광장을 질주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전통음식은 언어와 같다. 둘은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단단한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언어를 통하여 비슷한 사고체계를 가지며 정신세계를 공유하는 것처럼 전통음식을 통하여 같은 동질감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탈리아를 조금 알게 되었을 때는 그냥 조상을 잘 만나서 잘 살고 있는 게으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조금 더 알게 되니 다른 것이 보인다. 게을러서 바꾸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존을 하기로 작정을 한 것이었다. 동네마다 자신들의 수호성인이 있고 두오모(성당)가 있고 오래된 골목길이 있고 친구가 되어버린 카페 주인과 식당 주인이 있다. 이런 것들을 보존하면서 내가 태어난 이곳이 나에게는 가장 좋은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이곳을 떠나 다른 곳을 돌아다녀 보지만 역시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최고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뻑'이 병이라면 이탈리아 사람들은 치유불능 상태이다.


기왕에 이탈리아 사람들 흉(?)을 보기로 했으니 좀 더 가보자.

베네치아의 최전성기 때에는 인근의 트레비소, 파도바, 베로나까지 자국의 영토 내에 두고 있었다. 이런 도시들도 나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베네치아에 복속되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나 보다. 정치적으로는 굴복했을지언정 음식만은 그럴 수 없다는 듯이 무엇이든 베네치아와는 반대로 하려고 한다. 혹시 살짝 비슷한 것이 있더라도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한다. 하다못해 이름이라도 바꾸어야 직성이 풀린다. 베네치아의 요리 중에 카르바초가 있다. 얇게 저민 쇠고기 육회 같은 음식이다. 한동안 베네치아에서는 유명인사들의 이름을 새로운 요리에 붙이는 것이 유행이었다. 어느 귀부인이 빈혈 때문에 의사를 찾아갔는데 날고기를 먹으라는 처방을 받았단다. 귀부인 체면에 어떻게 날고기를 먹을까 하는 고민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준 요리사가 짠 하고 나타난 것이다. 어느 정도 얼린 후 0.5mm 두께로 얇게 썰어낸 생고기 위에 루꼴라와 같은 허브와 가벼운 소스로 맛을 낸 카르바초가 탄생한 것이다. 카르바초는 당시 떠오르던 화가였는데 이제 그림 대신 음식으로 이름이 남았다. 이 카르바초가 다른 곳에 가면 인살라타 디 카르네라고 불리기도 한다. 인살라타는 샐러드를 의미하고 카르네는 고기를 의미한다. 카르바초에 비하면 어떤 요리인지 상상할 수 있는 정직한 표현이다.


밀라노 사람들은 바쁘다. 밀라노가 이탈리아 산업의 중심지가 된 것은 사람들이 이곳 사람들이 근면하고 부지런하기 때문이다. 풍족하게 살면서도 절약하기까지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성은 음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밀라노 사람들은 파스타보다 리조토를 좋아한다. 이유는 파스타는 남게 되면 처치곤란이지만 남은 리조토는 다음 날 다시 프라이팬에 볶으면 그대로 훌륭한 요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리조토 알 살토가 태어났다. 스테이크를 요리하는 방법만 봐도 그렇다. 피렌체 사람들은 거의 1kg에 육박하는 고깃덩어리를 통째로 굽는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자랑스러워 하지만 밀라노 사람들은 조그맣게 잘라서 요리를 한다. 2분 만에 후닥닥 굽고 자를 필요도 없이 바로 입으로 넣으면 된다. 이 얼마나 간편하고 실용적인가.


음식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지만 이탈리아의 히트상품으로는 누텔라가 있다. 누텔라의 대척점에 있던 제품은 바로 미국의 땅콩크림이다. 땅콩크림의 이탈리아 상륙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페레로 형제 (맞다. 그 유명한 초콜릿 페레로를 만든 사람들이다)는 초콜릿 맛이 나는 부드러운 크림을 개발했다. 타도하려는 목표가 명확하게 보이도록 NUT라는 말에 이탈리아 접미사인 ELLA를 붙여 누텔라라 이름을 붙였다. 누텔라의 등장 이후로 미국의 땅콩크림은 맥도널드와 같은 신세가 되었다. 미국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누텔라는 미국식 자본주의를 코너로 몰아넣은 이탈리아 민주주의와 좌파의 승리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좌파에게는 누텔라를 우파에게는 땅콩크림을... 이처럼 이탈리아에서 음식은 거의 모든 것이다.


이탈리아를 이야기하면서 올리브 오일을 빼놓을 수 없다.

당뇨를 조심하라는 의사의 조언을 받은 이후로 아침에는 야채샐러드를 먹고 있다. 그냥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어서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먹는다. 마트에 가면 엑스트라 버진 등급의 올리브 오일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 궁금한 것은 아직도 수작업으로 올리브를 수확하고 있는 곳이 많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엑스트라 버진급의 올리브 오일을 이렇게 손쉽게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올리브 오일의 등급은 산도 1% 미만의 엑스트라 버진, 2% 이내의 버진과 기타 정제오일과 혼합 오일 등이 있다. 이처럼 엑스트라 버진이라 하면 최상의 등급인데 어떻게 내 손에 이렇게 쉽게 들어오는지 의문이다. 리구리아 지방은 관광객들에게는 칭퀘테레로 알려진 유명한 명소가 있는 곳인데 북서부 해안을 따라 길쭉하게 굽어져 있다. 이곳의 지형은 기계로 농사를 짓기에는 아주 불편한 곳이라서 지금도 수작업으로 올리브를 수확하고 있다. 이곳의 올리브가 좋은 품질로 유명하지만 농사비용과 생산량을 생각하면 진품이 내 손에 닿을 확률은 거의 제로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조차 리구리아의 올리브 오일을 구하려면 농부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썰'이 있다. 남쪽으로 가면 장화 뒷굽에 해당하는 풀리아가 있다. 이곳에서 이탈리아 올리브 오일의 약 40%가 생산된다고 한다. 기계로 수확이 가능하고 저렴한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아마도 진짜 이탈리아에서 온 올리브 오일이라면 이곳 태생일 확률이 높다.

내가 먹는 올리브 오일은 어디에서 어떻게 내 입까지 왔을까.   


후기)

이탈리아에서 가이드를 하고 계신 인친님이 올리브 오일 판매를 시작했다고 해서 냉큼 구매요청을 넣어두었다. 풀리아의 아주 오래된 단일품종의 올리브라고 했다. 와인이 그렇듯이 올리브도 단일품종으로 만든것은 ‘좀 쳐준다’. 놀라지 마시라. 이 농장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수령이 무려 삼천 년이라고 했다. 이 천년 된 나무들은 아직 젊은 나무 축에 낄 정도이다. 톡 쏘는 풀향과 씁쓸한 맛이 기대된다.

방구석에서 주문만 하면 다음날 배송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또 다른 세상이다. 일정기간 동안 주문을 받아서 그 양만큼 수확한 올리브 열매를 가지고 옆동네 방앗간으로 가서 기름을 짠 다음 병입을 해서 보내준단다. 족히 한 달은 기다려야 올리브 특유의 톡 쏘는 풀향을 맡아볼 수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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