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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Oct 18.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남미편 4

잉카의 배꼽, 쿠스코

2014년 4월 24일(목) 맑음 그리고 소나기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Gateway)


마추픽추의 옛 주거지들

현재 페루의 수도는 리마이지만 리마는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1533년 정복한 후에 만든 계획도시이고 예전에 화려했던 잉카제국의 수도는 오늘 우리가 가고 있는 쿠스코이다. 쿠스코란 말도 잉카인이 사용했던 케추아어로 ‘배꼽’ 이란 뜻이다. 신체의 중심이 배꼽이듯이 제국의 중심이라는 의미에서 Cusco라고 명명한 것 같다. 태양신을 숭배하고 대제국을 건설한 잉카인들에게 쿠스코는 그들에게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겼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쫒기어 잉카인들은 쿠스코를 버리고 산속 깊숙이 길도 어려운 곳으로 가서 건설한 도시가 바로 마추픽추로 쿠스코에서 약 120km 떨어져 있고 해발 2400m 정상에 있다. 마추픽추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쿠스코를 거쳐야 한다. 그래서 쿠스코는 마추피추로 가는 GATEWAY로 일년내내 관광객으로 붐비는 페루 최대의 관광도시가 되어 그 수입이 페루 정부 재정에 엄청난 도움을 주고 있다.




  비행기로 가는 쿠스코


리마에서 쿠스코까지는 편도거리가 1,000km가 넘는 먼 거리이다. 그래서 보통 시간이 충분한 배낭 여행자들은 리마에서 약 450km 떨어진 나스카(NAZCA)란 곳으로 버스로 이동해서 나스카의 지상화란 유적을 구경하고 쿠스코로 가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을 경우에는 우리처럼 나스카를 뛰어 넘고 비행기로 바로 쿠스코로 직행하는 것이다. 만일 Lima에서 버스로 쿠스코로 바로 간다면 24시간이상 걸리는 장거리 여행길이지만 뱅기로 가면 두시간 남짓이다.




  불가사의한 Nazca Lines


나스코 지상화들(사진은 인터넷에서 퍼옴)

나스카의 지상화란 그곳 광활한 대평원에 직선, 삼각형 동물, 물고기, 곤충, 식물등 약 200개의 그림을 거대하게 그려 놓았는데 그림의 크기가 작은 것은 10m에서 큰 것은 300m에 달하여 지상에서는 그 형태를 볼 수없기에 반드시 경비행기로 하늘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누가 언제 어떻게 왜 이런 대규모의 도형 그림을 땅 위에 새겨 놓을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불가사의한 일로 남겨져 있다. 이번에는 나스카 지상화를 못 보고 그냥 쿠스코로 이동하게되어 천상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한다.




  

  하늘로 날아 쿠스코로


비행기에서 잡은 미라플로레스 해안선

운좋게도 날개가 보이지 않는 창가에 앉게되어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열심히 보이는대로 샤터를 눌러댔다. 덕분에 어제 갔다 온 미라플로레스 근처 해안선도 눈에 들어오고 리마 시가지도 공중에서 잡았다. 도시 전체가 공해로 뿌연 안개에 둘러 쌓인 것 같고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전체적으로 먼지가 풀풀나는 그런 매마른 지형이다. 인구가 대도시로 집중되어 웬만한 산 중턱까지 집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이 페루 수도인 리마이다.


하늘에서 본 뿌연 리마 시가지

비행기에서 광활한 안데스 산맥이라도 운좋게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짙은 구름때문에 볼 수는 없었지만 낮은 산들의 풍광은 이륙하고 난 뒤 잠깐동안 몇 점 건졌다. 거의가 민둥산으로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없는 그런 삭막한 산이었다. 그런 산들 사이로 푸석한 훍먼지만 일으키는 도로만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쿠스코행 비행기에서 잡은 안데스 산맥의 일부로 산을 넘어가는                   도로가 선명하게 보인다


하늘에서 본 쿠스코

장거리버스로 리마에서 쿠스코까지 약 24시간 걸린다고 한다. 비행기로 2시간만에 쿠스코 공항에 사뿐히 내려 앉았다. 리마에서 점심먹고 오후 1시에 타서 오후 3시경 쿠스코에 도착하였다. 이게 다 라이트형제 덕분이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쿠스코도 어느 다른 도시처럼 인구가 밀집되어있는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건물 지붕이 붉은색 기와로 되어있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붉은색만 보인다.

Nazca 지상화를 구경못한게 조금 아쉽지만 지루한 장거리버스대신 뱅기로 날아오니 몸도 편하고 시간도 하루 정도 절약한 것 같았다. 오후 짜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어서 여행 일수가 부족한 우리 여정에 있어서는 쿠스코 뱅기이동이 안성마춤형 교통편이었다고 생각된다.


고산증 해소제 Sorojchi 선전 광고판

처음에는 무슨 광고인지 몰랐는데 나중에 고산증세 오고나서부터 알았다. 말그대로 해법이란? 무슨 해법? 고산증 해소제. SOROJCHI인데 발음은 소로치다. 남미가서 고산증세오면 약국가서 ‘소로치’하면 된다. 공항에 내리면 좌우로 관광 상품파는 회사가 줄지어 있다. 주로 쿠스코에서 마추픽추가는 팩키지 관광상품을 파는데 벽에 진열한 화보와 사진들이 온통 마추픽추 일색이다. 마추픽추 관광은 출발도 여기 쿠스코이고 종점도 여기 쿠스코이다. 왜냐하면 마추픽추에서는 다른 곳으로 빠질 길이 없고 무조건 다시 쿠스코로 돌아와서 칠레나 볼리비아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 공항에 있는 여행사에서 관광팩키지를 구매할 필요없다. 쿠스코 중앙통인 아르마스 광장에 가면 사방 천지에 여행사들이 들어 앉아 있다. 공항에서 아르마스광장까지도 택시타고 갈 필요없다. 공항나서면 택시기사들이 벌떼같이 몰려드는데 다 물리치고 왼쪽으로 난 길로 공항을 빠져 나오면 바로 시내버스 정류장이다. 물어보니 아르마스광장으로 바로 가는 버스는 없고 광장 근처에 내려서 2블락 걸어가면 된다. 택시타면 5솔 인데 버스타면 10분의 1 수준이다. 돈보다도 배낭 여행자의 기본 수칙을 지키고자 한다.





  쿠스코 시내 버스 Tour


쿠스코의 중앙통인 Armas 광장. 왼편 건물이 대성당이고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Iglesia de la Compañia라고 하는 교회당이다


Iglesia de la Compañia


La Catedral(대성당)

쿠스코는 호텔 예약없이 무작정 왔다. 지금은 성수기도 아니니까 방 구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고 한다. 버스로 2블락 전에 내려서 조금 돌아서 나오니 바로 아르마스 광장이 보인다. 관광지답게 인파로 생기가 넘친다. 잘 곳도 정하지 않고 배낭을 맨채로 쿠스코 시내관광 버스에 올라탔다.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이층으로된 시내 관광 버스

이렇게 뚜껑없는 이층버스로 쿠스코 시내를 돌아보고 쿠스코 전체를 볼 수 있는 뒷산에 올라가서 삭사이우아만(SACSAYJUAMAN)이란 유적지까지 간다. 쿠스코 시내는 차로 한바퀴 돌고나서 꼬불꼬불한 언덕 길을 한참이나 올라 가면 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 언덕에 있는 팔벌린 예수상과 짝퉁인 예수상까지 간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쿠스코 전체가 보인다.


쿠스코 시내를 달리는 이층 관광버스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본 쿠스코 시내

이 뒷산에서 쿠스고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사진 중앙에 이 버스가 출발한 아르마스 광장이 보이고 산중턱까지 올라 간 집들이 수더분하게 앉아있다. 집들 기와가 전부 적갈색으로 통일된 것도 이채롭다.


wide로 연결한 쿠스코의 포토샵 사진

쿠스코 전체를 사진에 담아 보고싶은 마음에서 세로찍기로 9장으로 나누어서 찍은 뒤 포토샵으로 연결한 사진인데 원판이 무려 사진사이즈가 420MB나 되어 줄여서 보니 윤곽이 희미하다. 나중에 원판을 보여 줄 수 있도록 해보자.


쿠스코 중앙통인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 중앙통인 Armas 광장을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위 사진처럼 중앙에 사각형의 광장이 있고 한 쪽 코너에 교회와 대성당이 자리하고 광장 둘레로 여행사, 호텔, 게스트하우스, 식당과 까페들이 들어차 있다.



모델 K의 인증샷으로 원주민 행상 아지매와 함께

알파카를 데리고 나온 원주민 행상 아지매와 한장. 이 알파카로 만든 양모제품이 일반 WOOL제품보다 훨씬 비싸다. 훨씬 부드러운 촉감이 있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고 한다. 그래서 돈많은 대기업의 회장님들이 알파카 양모로 지은 양복을 애용한다고 한다. 관광버스도 돌아 가는 길에는 알파카 양모제품 파는 가게에 손님들을 내리게 하여 쇼핑시킨다.


짝퉁 예수님 동상 아래에서

짝퉁 예수님 동상아래서 평화로운 쿠스코시를 내려다 보면서 망중한을 즐기는 관광객들. 저 뒤로 밀려오는 먹장구름이 한 이십분 뒤에 에누리없이 한바탕 소나기를 뿌리고 지나간다.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마을에 무지개가

한바탕 소나기가 지나간 그 자리에 오색창연한 무지개가 그림처럼 걸린 마을에 있는 알파카 양모제품 가게를 들리고 다시 고갯길로 내려와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오니 해는 지고 땅거미가 스물스물 기어나온다. 우선 잘 곳을 찾아 봐야지 하면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몇 곳을 찾아다니다가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이인용 방 하나를 3박 예약했다. 내일은 쿠스코 근처에 있는 잉카 유적지 “성스러운 계곡”을 하루종일 돌아보고 그 다음날은 쿠스코 시내를 발품팔면서 돌아 다니면서 사진이나 열심히 찍기로 하였다. 이렇게 돌아 다니다 보니 밤이 되면 피곤한 몸이 별다른 저항없이 잠에 떨어지곤 한다. 집에 있을 때하고 확연하게 틀린다. 그렇다면 그냥 배낭메고 정처없이 계속 길을 떠나는 것이 건강해질 수 있는 해답이란 말인가?


호텔과 게스트하우스가 말집해있는 쿠스코



  삭사이와만(Sacsayhuamán) 요새


쿠스코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석서이와만 요새

쿠스코로 들어오는 길목을 막는 전략적인 요새로 예전에 여기서 스페인 정복자들과 잉카제국 부흥자들과 간에 오랜 대규모 전투가 있었던 자리로 지금은 유적지 공원화되어있다. 1533년 피사로가 잉카제국을 멸하고 쿠스코 통치를 어린 동생들에게 맡기고 피사로가 Lima로 돌아 간 후에 허수아비로 내세운 잉카 황제인 망고 잉카와 피사로 동생들간의 갈등으로 잉카인들이 단결하여 반기를 든 것이다. 대규모 전투는 1537년 6월에 발발하였는데 이를 코스코 포위전 또는 삭사이와만 공성전으로 부른다. 이 전투에서 대처를 잘 하였다면 쿠스코를 회복하고 스페인 정복자들을 몰아 낼 수 있었던 절호의 챤스였는데 반란이 진압되고 말았다. 당시 양쪽 전투 인원을 비교해보면 무장한 스페인 군사는 196명에 약간의 흑인 노예와 스페인 정복자를 지지하는 잉카 원주민(우리로 치면 한일합병 당시 이완용일파와 같은 친일파 새이들) 오백명 정도이고 코스코를 완전 포위한 잉카 군사는 약 10만명(약간 과장된

느낌도 들고 정확한 숫자를 모른다) 으로 갑옷 투구에 대포, 총과 말로 완전무장한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직물옷을 입고 창을 든 잉카인(활을 쏘는 궁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들이 대항하는 것이 바위에 계란치기와 비슷한 모양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삭사이와만 공성전에서 스페인 정복자들이 승리하여 쿠스코를 방어할 수 있었고 장기전으로 버텨낸 덕분에 Lima에서 출병한 스페인 지원군이 합세하여 그 후에도 이어진 잉카인들의 저항을 진압할 수 있었다고 한다. -JH-


노을에 물들어가는 삭사이와만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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