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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13. 2016

지노 배낭여행기 - 남미편 19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2014년 5 월 8일( 목) 맑음



  남미에서 이동은 역시 고역이다


파타고니아 지방에서도 이동은 역시 험난하다. 칠레 파이네국립공원 다음 여정이 페리토모레노 빙하가 있는 아르헨티나의 빙하국립공원인데 지도에서 빨간 선이 보여주듯이 바로 파이네 국립공원 위에 있다. 길만 있으면 바로 넘어 갈 수 있다. 길이 없기 때문에 푸에르토나타레스에서 푼타 아레나스로 다시 나와 리오가예고스를 경유해서 칼라파테로 이동해야만 한다. 푼타아레나스에서 칼라파테로 직행하는 뱅기가 있는 모양인데 알아 보지 않고 이번에는 우직하고 배낭여행자답게 버스로 이동했다.


어제 밤 마지막 버스로 다시 나온 PUNTA ARENAS 시내. 두 번째로 걸어보는 시내거리이지만 어차피 아르헨티나로 바로 이동해야 하기에 시내구경은 별로 하지도 못했다.


시내 공원에 서있는 마젤란 동상. 남부 파타고니아에 가장 많은 이름을 새긴 인물이 바로 마젤란이다. 마젤란 대학교, 마젤란 해협, 마젤란식당, 마젤란거리 등등…


페르디난드 마젤란(1480-1521)은 포르투칼 출신 항해가이며 탐험가이다. 마흔살 때 스페인 국왕과 부자 상인들의 후원으로 5척의 배와 약 300여명의 선원을 이끌고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나아가는 항로를 찾아 서진하였다. 리스본을 출발하여 남미 지금의 브라질 동부 해안을 따라 내려와 CAPE HORN을 통과하여 태평양으로 나아갔다. 그 때 통과한 남미 끝 해협을 마젤란 해협이라고 명명 하였고 결국 태평양을 횡단하여 마리아나 제도를 거쳐 108일 항해 끝에 필리핀에 도착하여 카톨릭을 전파한 계기가 되었지만 필리핀에서 원주민들과의 전투에서 패하고 전사하여 그 뼈를 필리핀에 묻었다. 이렇게 모험자들의 뼈는 슬쓸한 타국에 묻혀지게 마련인 모양이다.





   어디로 먼저 갈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배낭여행이 주는 자유여행의 참 맛은 계획된 여로에서 갑자기 이탈하여 삼천포로 쉽게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걸 해 보지 않는 사람은 그 맛을 물론 모를 것이다. 푼타아나레스에서 페리토모레노 빙하를 보러 칼라파테로 가는 것이지만 버스시간이 어정쩡하여 근처 여행사에 들러 다른 대안이 있는지 알아보니 기가 막힌 루트를 찾았다. 세계의 땅끝이라하는 우수아이아는 빙하국립공원을 보고 난 후 칼라파테에서 뱅기로 가려고 계획했는데 그렇게 하지않고 여기서 칠레의 땅끝마을인 푸에르토 윌리엄스로 바로 가는 뱅기가 있다는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다. 칠레 푸에르토윌리엄스에서 페리보트타면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로 바로 건너 갈 수 있다.


비글해협을 마주하고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와 칠레의 푸에르토윌리엄스 마을이 마주 하고 있다.

그래서 물어물어 칠레 로칼 항공사인 DAP을 찾아 가서 뱅기시간을 알아보니 오늘 두 편 있는데 오전편은 떠났고 오후편이 있단다. 그런데 16명 정원에서 15명 차고 자리가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달고 온 모델 K를 어떻게 할 수 없어 이 좋은 기회를 날리고 천상 버스로 라오가예고스로 향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데 우째든 배낭여행은 혼자서 해야 하는게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해서 푼타아레나스에서 뱅기로 우수아이아로 못 가고 버스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리오가예고스로 향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입국할 때, 아르헨티나 비자 문제로 한동안 속을 끊여야 했다.





   버스로 아르헨티나 국경을 넘어


비수기라 버스가 텅텅 비어 이층 맨 앞좌석에 앉아보니 앞 시야가 확 트여 사진찍기에도 좋았다.


특별하게 풍경이 좋거나 뛰어난 걸 찾기보다 여기 현지 풍경이나 현지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도 약간 엿보는 것이 여행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여기 남부 파타고니아의 지리적 환경이 열악해서 큰 도시도 몇 개 없다. 안데스 산맥이 지나가는 산악지대는 아르헨티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까지 계속되고 산맥에서 멀어지는 곳은 스텝 초원지대로 비나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다. 결국 초원지대에서는 목축업이 발달해서 아르헨티나 소고기가 유명해지고 ……”ASADO”란 유명한 스테이크도 소개된다. 아사도는 아르헨티나인들이 즐겨 해먹는 소고기 스테이크 굽는 방식으로 통고기 덩어리채로 구우면서 소금만 뿌려서 먹는 것으로 남미에서 살다 온 사람들은 줄곳 이 맛을 잊지못한다고 한다. 나도 이번 기회에 한번 시도해보려고 한다. ASADO여 기다려라. 내가 너를 만날 때 까지.


한참을 내려가다 새로운 표지판을 발견했다. RUTA DEL FIN DEL MUNDO. 영어로 옮기면 ROUTE OF THE END OF WORLD이다. 세계 땅끝마을로 가는 도로라는 뜻인데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가 세계 땅끝마을이다. 미국의 땅끝마을 KEY WEST로 가는 길하고 비슷한 것이다.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154마일 떨어진 키웨스트까지도 드라이브하기에도 정말 멋진 길이다.


리오가예고스까지는 쭉 이런 길이다. 중간에 마을도 없고 버스는 그냥 달리기만 계속한다. 도로 양쪽으로 누런 스텝지대만 보이고 때때로 방목하는 가축들만 눈에 들어온다.


칠레-아르헨티나 국경선

근 세시간 정도 달리면 칠레 국경선이 나온다. 출국 수속은 여기서 따로 하지 않고 아르헨티나 입국 사무실 안에서 같이 한다. 여행하다보면 다른 나라로 입국하는 것이 약간 긴장이 되기도 한다. 혹 무슨 사유로 입국 거절 당할까봐 노심초사한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아르헨티나 국경

리오가예고스 근처의 아르헨티나 입국 사무실. 원래 어느 나라든지 입국사무실 건물이나 이민국 내부 사진을 절대로 찍어서는 안된다. 내가 옛날에 쿠바 아바나공항에서 공항 내부 사진 찍었다가 1시간 취조 받았던 기억이 있다. 특별히 별거 찍은 것도 아니고 걍 뱅기가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 노선이 있는지 궁금해서 DEPARTURE와 ARRIVAL 알려주는 모니터 사진찍었다고 공항에서 일하는 대머리 열혈당원에게 걸려서 한시간 불려 간 적 있었다. 이 사진은 버스 안에서 찍어서 별 문제는 없었는데 큰 문제는 입국할 때 터졌다.





  겨우 입국 VISA를 받아


아르헨티나 이민국에서 ON-LINE으로 겨우 받은 10년짜리 VISA

문제의 시작은 나의 무지때문이었다. 배낭여행 가기전에 웬만한 곳은 사전에 가 볼곳이나 비자 면제인지 아니면 비자가 필요한지를 다 알아보고 간다. 아르헨티나도 입국시 미국시민한테는 160불 받는다는 것도 알았다.(한국국적에는 비자 면제다) 볼리비아도 라파즈 공항에서 140불주고 받았다. 그런데 아르헨티나는 그게 아니란다. 입국시 비자비를 징수하는것이 아니고 사전에 인터넷으로 비자비를 카드로 내고 그 영수증을 보여줘야 한다. 칠레에서 아르헨티나로 버스를 같이 타고 온 사람은 14명정도인데 거의가 칠레인으로 별 문제없고 우리 둘만 비자를 못 받고 실강이만 하고 있었다. 미화주면서 걍 비자 찍어달라고 떼를 써보았지만 그럴 수가 없고 컴퓨터로 지금 인터넷으로 신청하란다. 할 수 없이 일하는 젊은 녀석 랩탑 빌려가지고 신청하려고 보니 자판이 스페니쉬고 내 이매일 주소를 영어로 쳐봐도 컴퓨터가 받아 주지를 않는다. 운전기사가 와서 아주 걱정스런 눈길을 주고 가길래 우리 땜에 같이 타고 온 다른 사람들이 입국하는데 지체되는지 내심 속을 끊이고 있었다. 결국 내 이매일로 못하고 그곳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원 이매일을 사용하여 크레딧 카드로 결제하고 위 사진과 같은 영수증을 받아 여권에 입국 도장을 받았다. 입국날짜가 오늘 2014년 5월 8일 인데 EXPIRE DATE가 2024년이니 천상 그 안에 아르헨티나로 몇번 더 가서 비자 수수료 본전을 뽑아야 할 것 같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 영수증만 지니고 있으면 아르헨티나 입국은 식은 죽먹기와 다름없다.





  리오가예고스에서 칼라파테로


모델K의 인증샷

리오가예고스 시외 버스 정류장. 입국심사를 마치고 도착하니 어둠이 벌써 깔렸다. 입국 심사보다 세관통과가 더 시간이 걸렸다. 이번에는 우리가 문제가 아니고 현지인들이다. 칠레에서 공산품을 사 가지고 아르헨티나로 가지고 들어 올 때 엄청 심하게 조사하는 걸로 보아 칠레 공산품 가격이 훨씬 싼 모양이다. 세관에서 14명 짐을 하나도 빠짐없이 검사해서 운동화, 아동복, 새옷같은 것은 전부 다 잡아내어 관세를 물린다. 이런 장거리 버스를 이용해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여기서 칼라파테로 가는 버스는 저녁 8시 반에 있단다. 버스표를 사 놓고 근처 그로서리파는 가게에서 피자로 저녁을 때우고 버스터미날에서 죽치고 앉았다.


한자가 있어 찍었는데 중국계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요가교실 선전화보같았는데 자세히 보니 그 유명한 파룬궁(법륜공, 法輪功)을 수련하는 클래스 안내 광고문이다. 파룬궁은 1990년 초에 중국에서 기공수련 열풍이 불었는데 그 핵심이 파룬궁으로 기공훈련을 통하여 일종의 '자기계발 수련법'으로 중국 인민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99년에는 약 7천만의 수련인들이 파룬궁을 연마하자 1898년 천안문사태로 크게 십겁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들의 눈에는 파룬궁 수련이 또 다시 사회개혁운동으로 발전할까봐 사전에 파룬궁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전국적으로 탄압정책을 실시하였다. 그리하여 사상개조란 명목으로 파룬궁 수련자들을 구금 학대하여 전방위적인 반인권적인 박해를 가하여 투옥된 수십만 수련자들중 약 2천명이 구금중 학대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 후 파룬궁의 일부 지도부들은 박해를 피하여 미국등 해외로 피신하여 세계적으로 조직망을 구축하여 지금은 약 70 개국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며 현재도 중국내에서는 박해를 받아가며 파룬궁을 연마하는 수련자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의 노을. 두꺼운 구름층 밑으로 저녁 노을이 깔리면 구름같이 바람같이 돌아다니는 나그네들의 가슴엔 한가지 생각밖에 없다. 오늘 밤은 또 어디에서 이 피곤한 육신을 뉘여야 하는지? 저녁 8시 반에 출발한 저녁버스는 깜깜한 어둠을 뚫고 계속 달린다. 4시간이상 걸린다하니 자정이 훨씬 넘어야 칼라파테에 도착할 것 같다.


가다가 한번씩 정차하는 시외버스 터미날. 내려서 기지개도 한번 펴고 화장실도 가기도 한다. 앞에 앉아 길가를 봐도 모두가 암흑천지라 보이는게 하나도 없다. 버스가 나사홈 같이 파인 산중턱 길을 빌빌거리며 올라가면 저 멀리 산아래 동네 불빛이 겨우 보이지만 마을을 지나고 나면 버스가 뿜어내는 헤드라이트 빛 말고는 사방천지가 온통 칠흑이다. 이럴 때는 그냥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는게 최상인데……… 그렇게 달리고 달려 칼라파테 버스터미날에 도착하니 자정을 훌쩍 넘긴 새벽 1시가 되었다. 배낭을 매고 버스터미날이 있는 언덕을 걸어 내려와 제일 가까운 게스트하우스에 배낭을 풀었다. 기나긴 하루였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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