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랭기레 국립공원
11/10/2016(화) 맑음
결전의 날은 일수쟁이 도장찍으러 오듯이 어김없이 찾아온다. 오늘부터 무려 5일간 사파리 투어를 시작하는 날이다. 결전이라함은 사냥감을 잡느냐 못잡느냐를 놓고 보면 한판 붙는다는 의미가 있다. 오늘 게임은 서로 피를 흘리고 살점이 찢어지는 그런 혈투는 아니고 신사적으로 사파리 차량 안에서 카메라를 통하여 게임을 하는 것이니까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보통 사파리 한 차에 운전수와 가이드 외에 6명이 타도록 되어있다. 요즈음이 비수기라 그런지 관광객이 많지가 않다. 그래서 외인부대 용병을 모집하듯 여기 저기서 한 명 두 명씩 관광객을 받아서 팀을 꾸린다. 우린 그렇게해도 총 4명이다. 스웨덴 여자로 42세 미혼, 벨기에 젊은 커플 그리고 나까지해서 4명이다. 스웨덴 처자를 오늘 아침 처음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선가 적어도 한번은 만난 적이 있을상 싶은 아주 눈에 익숙한 얼굴이었다. 나이를 따저봐도 옛날에 서울서 대학 다닐 때 미팅에서 만날 수 있었던 나이도 아니고 이웃에서 같이 살았던 이웃 사촌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내가 스웨덴에서 살아 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꼭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그런 얼굴이라는 말이다. 혹 우리가 살아가다 한번씩 빠져드는 Deja Vu는 아닐까? 데자뷔를 번역하면 기시감(旣視感)이라고 하는데 현재 일어나는 상황이나 감정 또는 기억이 과거에도 똑같이 있었던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으로 누구든지 그런 기시감을 경험할 수 있다. 도대체 이 여자를 어디에서 보았단 말인가?
수잔 브링크는 스웨덴 이름이고 한국 본명은 신윤숙인데 63년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4살 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다. 입양된 새 가정에서 새엄마의 확대로 여러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 후 대학에서 만난 남자와 동거하여 애를 낳았지만 남자는 책임감도 없이 떠나버려 혼자 애를 키우며 미혼모로 지내다가 입양아를 찾는 방송국의 프로그램 도움으로 한국에서 친모를 만났고 그 후 외국 입양반대 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2009년 초에 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장길수 감독이 1991년 메가폰을 들어 만든 영화가 '수잔 브링커의 아리랑'이란 영화로 당시 잘나가던 최진실이 수잔역을 열연했었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수잔이 암으로 죽기 3개월 전에 최진실이 가정문제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둘의 죽음이 어쩌면 타고난 인연으로 그렇게 이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오늘 아침에 만난 스웨덴 노처녀는 바로 수잔 브링크와 같은 케이스로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스웨덴 국적을 가졌지만 얼굴은 한국 어디서나 만날수있는 그런 평범한 그렇지만 처음 본 순간 바로 한국인이구나 할 정도로 눈에 익은 그런 모습을 하고 나타났기 때문에 내가 Deja Vu를 운운해 가면서 만났던 기억을 끄집어 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벨기에 : 한국이 축구시합 A 매치 친선경기를 하듯 스코어 2:2 를 유지하면서 사파리 게임을 시작하였다.
Arusa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탄자니아 국립공원으로 다른 동물보다도 코끼리가 제일 많이 서식하고 있다. 1957년부터 다렝기레 야생동물 보호지로 운영되다가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중앙으로 다렝기레강이 흐르는데 건기에 해당하는 9-12월사이에는 강이 메말라 동물들의 개체수가 눈에 띄게 줄어 든다고 한다. 공원 안에 이리 저리 비포장도로가 얽혀있는데 그 길들이 반듯한게 아니고 비가 오면 파여지기 때문에 매우 울퉁불퉁해서 운전을 조심스레 하지 않으면 몸이 요동을 치게 되어 차안 모서리에 부닥칠 수 있다.
Game Drive란 말그대로 사냥감찾아 차를 몰고 나간다는 것으로 야생동물을 찾아 가야한다. 지금은 건기라 더 그런 것 같은데 처음에는 눈을 씻고 보아도 개미새끼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파리 규칙이 운전수가 동물찾아 다니는데 도로를 벗어나면 안되고 차를 정지해도 밖으로 내려서도 안된다. 그러다보니 동물을 찾더라도 그 놈들이 도로 가까운 곳으로 나오지 않으면 멀리서 잡아야 하는데 카메라로 그렇게 찍어봤자 별 볼일 없다. 아래 사진이 그런건데 사자무리를 보아도 근접할 수 있는 도로가 없기 때문에 사자들이 차쪽으로 가까이 오지 않은 이상 실감나게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내가 400mm 망원렌즈로 찍어도 사진에 보이는 사자 크기가 콩알만한데 똑딱이나 일반렌즈로 찍은 사진에는 사자 크기가 콩알보다 더 작게 나올 것이다.
다른 하나의 문제는 차 밖으로 내릴 수 없고 차안에서 동물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찍는 앵글(각도)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얼룩말 두 마리를 찾았는데 이 두 녀석이 엉덩이만 차쪽으로 포즈를 취하기 때문에 찍어도 엉덩이만 보인다. 그래서 사파리 사진찍기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오늘 처음으로 한번 해보고서야 알았다.
오늘 찍은 사진 중에서 한 장만 Best Shot으로 선정하라면 Band 윤리심사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을지도 모르는 "새끼에게 유두를 내놓고 젖을 물린 엄마 원숭이 사진"을 꼽겠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당연하고 그 외 동물들도 지새끼 사랑에는 별 차이가 없다. 골프장에서 공이 오리무리있는데로 날아 가서 공 치려고 가보면 어미나 애비 오리가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면서 쇳소리 비슷한 고음을 연속적으로 경고한다. 뒤에 있는 진짜 나우타리 좀약만한 새끼들을 보호하려고 말이야. 오늘 가이드말이 새끼를 데리고 있는 코끼리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새끼 보호하려고 어미나 애비 코끼리가 거의 미친듯한 행동을 보이기에 더욱 더 조심해야만 한다고 한다.
티비에서 새끼 코끼리를 공격한 사자무리를 격퇴하는 어미 코끼리의 활약상을 본 적이 있다. 얼마전에는 중국인들이 올린 동영상인데 알을 깨고 나온 어린 까치 새끼를 커다란 뱀이 잡아 삼켜 먹었는데 어미 까치가 이 뱀을 약 십분이상 한번 부리로 쪼고 위로 날아 오르고 해서 결국 뱀을 쪼아 죽이는 것을 보고 내가 큰 감명을 받았다.
이런 미물들이 이러진대 자식을 가진 부모에게 새끼사랑이란 말은 아예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본능적이고도 숙명적으로 서로를 묶어주는 강렬한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ECD에 들어가는 한국이 이제는 잘 먹고 산다는 한국이 영아수출에서는 여전히 우수한 순위를 고수하고 있다고 하니 억수로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겠다.
미혼모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나 다 있는 것이기에 어쩔수 없다 하지만 유독 한국인이 핏줄선호사상에 물들어 국내 입양에 매우 인색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영아의 국내 공급은 증가하고 국내수요가 줄어 해결책으로 미국이나 스웨덴같은 해외수요를 창출하다보니 오늘 내가 이 넓은 아프리카땅 탄자니아에 와서 사파리가는 첫 날에 대한민국의 만원 지하철 속에서, 시내 버스 안에서, 팝콘을 파는 영화관 안에서, 백화점 에스컬레이드위에서,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그런 얼굴을 한 수잔 브링커를 어색한 영어로 인사하면서 손을 잡아야하는 그런 일이 생기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떠나보내야 하는 그 심정이나 힘든 환경을 이해못하는 바는 아니나 젖꼭지를 내놓고 새끼에게 젖을 먹이는 애미 원숭이처럼 배고프면 잘 안나오는 젖이라도 먹이면서 거두어들이는 강한 모(부)성애를 발휘해서 지새끼 키워야지, 버리고 난 뒤에 나중에 찾게되면 아이고 그 때 내가 그렇게해서 미안하데이 나를 용서하레이 그런 클리쉐이한 말은 마아 인자 하지 마이소.
(Cliche는 진부하다는 뜻의 불어로 좀 유식한 척하느라고 한번씩 써먹는 진짜 진부한 어휘중의 하나이다)
종합뉴스로 한 자만 적어 보낸다 해놓고 다른 날보다 더 장문으로 때리는 이유는 사파리가 차타고 해서 다른 날처럼 뽈뽈거리고 다닐 이유가 없어 몸이 억수로 편하고 사파리가 일찍 끝나서 다른거 할께 없어서 이렇게 했다면 굳이 변명이 되나요?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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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편 19 - 세렝게티 국립공원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