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죽도 재래시장
점심으로 물회를 한 그릇하고 다시 해변가로 산책을 하다가 싱싱한 회를 구경하려면 포항 죽도 시장으로 가보라고 하길래 물과 회로 가득찬 뽈록한 배를 안고 버스로 죽도시장으로 향하였다.
생활에 활력을 잃은 사람은 재래시장으로 가보라는 말이 있다. 시장터가 하도 뽁작거리니까 그만큼 사람들이 바쁘게 살아 가는 곳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불어 터진 나 자신과 당연히 비교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엄숙한 삶의 이치를 조금이라도 터득할 수 있게되는 곳이 시장터다. 70이나 80을 훌쩍 넘긴 할매들은 시장 바닥 난전에 자리를 펴놓고 도라지나 각종 산채 나물을 팔고 있다. 얼굴은 그동안 살아 온 시간의 훈장으로 이마부터 볼까지 깊은 주름으로 치장하고 찌그러진 눈으로 손님을 기다린다. 손님이 없어면 도라지 뿌리를 칼로 다듬어 갈기갈기 찢어 상품으로 만들며 일초라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 그런 품팔이에 비해 나는 내 시간의 물꼭지를 그냥 틀어 놓고 헛되이 하수구로 흘러 보내지는 않았는지 반성을 해보기도 한다.
그 옆 다른 할무이는 조그마한 소쿠리에 포도, 복숭아, 자두등을 담아 놓고 땟깔 보기 좋아라고 과일을 이리저리 문지르고 있다. 싱싱한 포도가 침샘을 자극하길래 한 소쿠리를 비닐봉지에 담아 걸어가면서 연신 빨아본다. 3천원이다. 할매가 앞에 놓인 소쿠리 다 팔아도 얼마나 버는 것일까? 아마도 버는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저것이 저 할무이가 오늘 하루를 알차게 살아가는 생활의 방식일 것이다.
살아있는 싱싱한 오징어와 문어를 파는 가게 앞에서 물 속에서 사부작거리며 잘 노는 생물을 부질없이 꾹꾹 찔러보기도 하고........생선 시장 좌판에는 좋은 먹거리들이 여기 저기 널브라져 있어 팔려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멍게, 소라, 대합, 칼치, 고등어, 참치 등등
오후 내내 죽도시장을 가로 세로로 여러번 왕복하다가 우연히 마주친 그녀 집. 고래고기 파는 아지매 집. 우리 초딩 때만해도 부산 자갈치시장까지 안 가도 동네 재래시장에만 해도 큰 다라이에 고래고기 수북이 담아놓고 손님을 부르는 아지매가 많았다. "고래고기사이쏘. 맛조은 고래고기사이쏘." 그러나, 요즈음은 고래 포획금지로 이런 광경을 찾아 보기가 힘들다.
고래고기가 약 300가지 부위가 있다는데 생고무같은 찔긴 껍질부터 부드러운 육즙이 느껴지는 맛까지 나도 무척이나 고래고기를 좋아 했었다. 좌판 앞에 놓여진 긴 일자 의자에 궁둥이를 서로 밀어넣고 아지매가 부위별로 골고루 썰어주는 고래고기 한 접시에 소금을 찍어 입안에서 씹어 돌리면 고기맛과 소금 짠맛이 서로 뒤성켜 혀바닥 미각을 자극하면 어서 빨리 식도로 밀어 넣어라고 뇌에서 명령이 내려온다. 덥수룩한 아저씨들은 고기 한 점에 소수 한 잔으로 요기를 하지만 초딩들 우리들이 소주 맛을 어찌 아랴.(마침 활어를 실컨 먹고 나오는 바람에 고래고기를 못 사먹고 사진만 찍었더니 주인 아지매가 한마디 하시더라. ㅠㅠ. 지송함니데이)
위 사진의 그림이 해부장이다. 고래를 잡아서 부위별로 해체하는 곳이다. 2012년 동부 카나다 지역으로 여행하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기 어장인 뉴펀들랜드섬에서 페리를 타고 퀘백본토로 건너가서 RED BAY란 포구에 들렀는데 그 곳에 있는 박물관에 찍은 사진이다. 그 곳이 그 당시 고래잡이 기지로 해부장이 있었던 곳이다. 옛날 우리 나라에 울진 밑으로 있었던 해부장은 울산 방어진이었다.
RED BAY 근방에서는 1560 -1600년까지 고래잡이가 왕성하게 진행되었는데 여기로 원양조업을 온 사람들이 프랑스, 스페인 사람들로 약 20여척의 포경선과 600 여명의 선원들이 고래잡이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그 직업이 요새 말로 극한 직업에 해당되는 것으로 협소한 배 안에서 지내야 하고 주어진 음식과 마실 것들이 제한되어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했지만 그들의 꿈은 오직 하나 고래를 많이 잡아 큰 돈을 버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직업은 매우 힘들고 위험이 따르는 직업이라 요새로 치면 북양 어선을 타고 파도가 높고 거친 북태평양 바다에서 명태나 Snow Crab을 잡는 그런 극한직업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목숨을 걸면서 고래를 포획하는 이유는 우리같이 맛조은 고래고기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고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서다. 당시 유럽에서는 가정의 램프오일로 고래 기름이 사용되었기에 한 배 가득이 고래기름을 싣고 돌아가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고래잡이는 고래기름보다 고기에 비중을 두었고 유럽인들은 고래기름을 얻기 위해 그런 극한 직업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16세기 당시 유럽인들이 포경에 사용했던 작살과 여러 도구들로 RED BAY 박물관에서 한 컷한 것이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