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 전통 탈춤 공연
2016년 8월 1일(월) 쾌청
북인도 오지의 험한 산길을 비록 차를 타고 넘어왔지만 그래도 몸이 피곤해서 오늘 하루는 빨래나 하면서 쉬려고 했는데 어제 저녁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Leh에 있는 티벳곰파(사원) 피양(Phyang)에서
12년만에 축제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탈춤공연이 볼만하다고 한다. 그런데 내일이 마지막이라면서 보기 힘든 구경이라고 하길래 낼 아침 8시에 가기로 차편을 약속하였다.
우리가 어제 오후에 도착한 곳이 라다크지역중의
Leh라고 하는 곳인데 예전에는 인도 북부지역인 펀잡지방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유일한 실크로드의 한 마을이었다. Caravan들이 일년에 약 만마리정도의 말, 쌍봉낙타나 야크에 교역품을 싣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교역로인 Karakoram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우리가 어제 넘은 두번째 높은 고개인 해발 5328m 탕그랑고개도 이 지역에 있는 걸로 보아 여기 부근이 세계의 지붕이라는 파미르고원과 멀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의 주요 상호 교역품은 인도차, 인도향신로, 중국산 비단과 진주, 모직제품(카시미르산), 소금,아편, 수제 카펫과 금제품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TV로 라다크지방의 탈춤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아마도 일본 NHK 방송국의 세계 여행기이었던 것 같았다. 오늘 그 축제를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사진으로 찍고 비디오로도 녹화를 해서 돌아왔다. 라다크지방에 있는 티벳 사원(현지어로 곰파 gompa라 한다)이 주축이 되어 열리는 연중 탈춤 페스티벌은 민중과 불교를 이어주는 가교 역활을 했다고 한다. 탈춤 공연에는 그 사원의 monk들이 주축이 되고 때때론 그 지역의 주민들도 탈춤 공연에 참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가서 보니 이 근방에 사는 주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구경나온 나이가 연로한 할매와 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할매 몇 분의 사진을 찍어 프린트로 못주고(프린트를 들고 가지 않았다) 대신에 카메라 LCD 디스플레이로 보여드렸더니 할매가 뭐라고 자기들끼리 현지어로 수근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넘겨짚어 보아도 세월의 무상함을 탓하는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대화체로 각색해 보면 이런 것 같다.
할매 A: 내 사진보이 꼴이 이게 뭐꼬.
할매 B: 작년만 해도 괜찮았는데 그간 마이 상했다. 그자.
할매C:(입가를 자꾸 만지시면서) 이빨이라도 좀 성했으면 사진이라도 넉넉하게 나왔을텐데.
할매D: 아이고 쑤악해라. 이게 내 몰꼴이가.
탈춤의 동작이나 복장은 TV에서 본 그것과 완전 일치하였다. 여러 공연이 각각 다른 주제나 내용을 보여주는데 철저하게 현지어로 공연한다. 관람하는 현지 주민들외에는 아무도 100% 이해할 수는 없고 외국인 관광객들과 우리들은 마치 외국어로 쓰여진 그림책을 보듯이 한 장 한 장 그림을 넘겨보면서 내용을 유추할 뿐이다. 춤동작도 크거나 화려한 것이 아니다. 걸어가는 것 조차도 숨이 가쁜 이 고지대에서(Leh 평균 해발고도가 3500m) 춤동작을 크게 할 수 없을 뿐더러 춤에서 중요한 발동작도 크고 빠르게 할 수 없어 느릿한 음악에 맞춰 실렁실렁 춤을 춘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종종 중국 영화에서 보는 동작이 빠르고 화려한 그런 가면극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한번이라도 보는게 내가 집게손가락 아파하면서 어설프게 묘사하는 것보다 나을 듯하여 비디오 장면을 올려본다.
공연 중간 중간에는 우스꽝스럽게 복장을 하고 탈을 쓴 사람이 등장해서 일인 코미디 쇼 비슷하게 연출하면서 관중들을 웃기게 한다. 무언극으로는 두 명의 승려와 두 명의 어린애(분장없이 승려 복장으로 출연)가 출연해서 서로 치고 박고하는 코미디를 연출하는데 넘겨 짚어보니 라마(승려)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서로 자기들이 내세운 승계자(동자승)를 선택하려고 다투는 그런 내용을 풍자해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공연은 사원내의 널찍한 공연장에서 시작하는데 중앙에는 이층으로된 관람석도 있어 귀빈들이 차지하는 곳 같기도 하였다. 아래 층에는 앉을 수 있도록 좌단이 길게 마련되어 있는데 왼편으로 별도로 마이크 시설이 되어 있어 늙은 승려 두 분이 앉아 공연 내내 경을 낭송하였고 그 옆으로 6명의 승려 악단이 앉아서 공연 내내 전통악기를 느릿느릿한 템포로 연주하였다.
간만에 한다는 정보를 들은건지 Leh에 들어온 관광객은 전부 다 모인 것 같았다. 내가 티벳 할매 네 분을 촬영하는 모습을 자기 카메라에 담았다고 나에게 보여주는 몸집이 퉁퉁한 백인아지매는 물어보니 벨기에에서 왔다고 한다. 외국인 한 명씩 잡고 어디서 왔는지 일일이 물어보면 아마도 전세계의 국적이 다 나올 정도로 외국인이 많다는 것이다. 전부 다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로 탈춤공연을 찍고 녹화하는라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또 그런 모습을 담아내는 나의 작업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티벳형 얼굴이 인도형 그것과는 판연하게 틀렸다. 티벳형 얼굴형은 거의 우리와 흡사한 것이다. 공연장에서 내 옆에 앉은 현지인과 모델 K와 같이 세명이 같이 인증샷을 찍었는데 머리를 길게 기른 내 모습이 영판 티벳인이었다.
외국 관광객들이 이렇게 Leh로 몰려드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기가 근방 유명한 트레킹 출발점이기때문이다. 그중 제일 유명한 트레킹 코스가 Nubra Valley Tour 코스이다.
Leh 북쪽에 있는 누브라계곡을 따라 옛날에 중앙아시아로 교역하러 떠나는 상인들의 실크로드를 체험해보는 코스로 보통이 3박 4일짜리 코스다. Leh에서 출발하는데 이 코스중에 세계에서 제일 높은 도로인 Khardung 고개를 넘는데 해발 5578m라고 한다. 두번째는 어저께 우리가 넘은 Tanglang 고갯길로 5328m로 약 250m 정도 낮은 셈이다.(나는 이때까지 세계 제일 높은 도로는 파미르고원을 통과하는 카라코람(Karakoram) 도로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코스 트레킹을 하려면 별도로
permit을 받아야 하며 가이드는 반드시 데리고 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데리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트레킹 매니아들에게는 아주 잘 알려진 코스라고 하지만 그 정도까지에는 미치지 못하는 나에게는 그저 눈으로만 알고 가는 트레킹코스일 뿐이다.
탈춤 공연을 보다가 중간에 나와 혼자서 사원 내부를 구경하러 올라갔다. 티벳 사원의 특징은 절대 평지에 있지 않고 참배객들에게 마치 고산증 증세를 시험이라도 해보려는듯이 언덕배기나 산 정상에 지었다. 무거운 카메라를 매고 계단을 올라가는 발길이 가볍지는 않았다. 속세에서 내가 지은 죄의 무게만큼 그것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것같아 숨이 그냥 턱턱 막힌다. 그럴 때면 사원내에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막에 앉아서 잠시 숨을 돌리고 가면 된다.
Phyang 사원은 Leh에서 약 17km 정도 떨어져 있어 별도 교통편이 없기 때문에 택시를 대절하여 가야만 한다. 약 16세기경 창건된 티벳 사원(곰파)으로 티벳곰파의 4대 종파중 까규빠(Kagyupa)에 속하는 사찰로 알려져 있다. 절 안으로 올라가보니 전부 다 탈춤 공연장에 있는지 아무도 없어 혼자서 천천히 구경하면서 사진도 야무지게 찍었다. 법당을 구경하는 중에 눈에 띄는 불상중의 하나가 아래 사진에 있는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 존불이다. 원래는 인도 태생의 승려로 8세기경 인도 불교를 티벳과 부탄에 전파한 인물로 불교사에서는 제2의 부다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티벳 불교의 4대 종파중 하나인 닝마빠의 개조로 숭앙받는 인물이지만 타 종파에서도 존경하는 고승으로 티벳 최초의 사원인 삼예사를 건립하였다.
티벳 라싸에 잠깐 갔었을 때도 제일 눈에 쏙 들어오는 얼굴이 동자승이었다. 여기 Phyang 곰파에서도 그런 동자승이 많았다. 티벳가정에서 제일로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는 것이 자녀를 승려로 출가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즉, 여러 명의 남자애들이 있을 시 적어도 한 명이상이 승려로 출가시키는 것이 당연시 되는 것이다. 탈춤공연이 있는 무대에서 떨어진 언덕 위에서 한 동자승이 어린 누이와 함께 바가지로 서로 손바닥에 물을 부어주며 얼굴을 씻고 있었다. 그녀석 모습이 어찌나 사람맘을 끌던지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문득 옛날 생각이 떠 올랐다. 모델 K도 그 동자승 또래보다 어릴 적 아장아장 걸을 나이였을 때 야구캡을 씌우고 데리고 나가면 많은 이웃들이 입을 모아 귀엽다고 한소리들 하였다. 그런 모습들이 평생 남아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훌쩍 커버린 포플러나무처럼 귀엽지도 않고 별 추억거리도 없다. 코감기와 설사로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마날리호텔에 누워있을 때도 혼자서 나가서 지배만채우고 들어와서 내가 좀 어떻는지 한마디 물어보지도 않고 혼자서 잘 노는 걸 보면 때론 남남같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돌부처같은 남이라도 위안의 한마디쯤은 해 주었을텐데 핏줄인데도 불구하고 그런 남남같은 모습을 보면 이제 갈라서야 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였다. -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