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Samoa
2017년 5월27일 (토) 맑음
오늘도 생체리듬은 살아있어 집에서는 새벽같았던 아침 7시에 눈이 저절로 뜨졌다. 오늘은 무얼 할 것인가? Apia 구경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아메리칸 사모아로 하루 나들이 갔다 오려고 마음을 먹었다.
일단 아침 9시경에 택시를 타고 아메리칸 사모아로 가는 Polinesian Airline이 있는 파갈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까지는 걸어서 가기에는 좀 멀었다. Apia 시내에서 택시의 기본요금이 6ST(미화로 2불 35센트)이니 물가는 싸다고 할 수도 없는 그런 수준이다.
공항이라 하기에는 시설이 너무 열악하다. 우리의 시외버스 터미널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아메리칸 사모아로 가는 경뱅기편은 하루에 5차례나 있어 당일치기로 왕복하기에는 편하게 되어 있었다.
공항 앞에 있는 점방에서 숲으로 늦은 아침을 때웠다. 처음으로 사먹는 현지음식인데 소고기를 푹 고은 육수에 호박, 타라(남태평양산 고구마)를 넣고 끊인 숲으로 국물을 좋아하는 내 입맛에는 잘 맞았다. 미국령 사모아로 날아 간다고 하니 지금까지는 남태평양 여행은 술술 잘 풀리는 실타래처럼 무난한 것 같았다.
30살에 85kg이 가벼운 몸무게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공항에서 일하는 이 아가씨가 퍽이나 사랑스러웠다. 내보고 싱글이면 사모아여자 소개해줄테니 결혼하면 어떻게냐고 농을 걸기에 나같은 65kg 남자가 거구의 사모아 여자를 어떻게 모시고 살 수 있겠냐면서 손사래치고 말았다.
대합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사진처럼 Duty free shop이란 배너만 걸려 있었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공항 대합실이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 열 명도 채 안되는 승객들이 하나 둘씩 모였다.
왕복 경뱅기를 예약하는데 사모아돈으로 380 wst(미화 152불정도) 들었다. 승객들을 보니 아메리칸 사모아에 돈벌러 가는 사람도 있고 역으로 서사모아에 와서 직업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고향에 다니러 가는 승객도 있었다.
아메리칸 사모아의 지도를 찬찬히 들여다보니 그리 간단한 섬나라는 아닌 것 같다. 수도 팡고팡고(Pago Pago)가 있는 큰 섬이 Tutuila이고 그 오른편에 작은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Manu'a Islands가 Ofu, Olosega, Ta'u이다. 맨 오른쪽에 치우쳐 있는 또 하나의 섬이 Rose Atoll인데 Atoll이란 반지처럼 둥글게 형성된 산호초로 환초라고 한다. 위 지도에는 없지만 본토 섬인 Tutuila으로부터 북쪽 230마일 떨어진 곳에 Swains Island가 하나 더 있다. 하여간, 남태평양의 섬나라를 세세하게 들어가 보면 양파처럼 까고 또 까도 새로운 것들이 속속 들어나는 것 같다.
경뱅기가 새처럼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창문을 통해 아래를 보니 Samoa 섬의 해안선이 그림처럼 놓여있다. 해안선이 하얀 파도가 산호초에 부서져 하얀 포말로 이어져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섬의 해변에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거지가 퍽이나 평화스럽게 보였다.
어떤 해안은 물길이 마을 깊숙이 안으로 들어와서 파도도 없는 조용한 내만을 이루고 있고 그 사이로 군데군데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푸른 하늘을 새처럼 날아서 망망대해를 건너 아메리칸 사모아섬으로 내려 앉았다. 약 30분 정도 걸렸다. 섬나라들에게는 국경선이란게 아예 없는 것 같다. 있다면 바다 위에다 선을 그어야 할텐데 그럴 수 없으니 어디까지가 내 나라이고 어디서부터 남의 영토인지를 볼 수가 없다. 그냥 이 섬이 내 나라이고 저 섬이 남의 나라로 여길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빌려 전체 섬일주를 계획하였으나 시간상 어려울 것 같아 수도 팡고팡고(Pago Pago)가 있는 오른쪽 해안도로를 따라 돌아 보기로 하였다. 도로는 해안선을 따라 쭉 이어져 있었다.
시원하게 해안도로를 달려본다. 그러나, 빨리 달릴 수는 없게 되어있다. 해안선이 겹겹이 싸여있어 한 구비를 돌고나면 다음 구비가 기다리고 있어 도로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일단 수도 팡고팡고(Pago Pago)로 향하였다. 오른쪽으로 태평양바다를 끼고 해안선을 타고 돌아가게 되어 있어 한 구비를 지나 다음 구비를 돌 때면 매번 새로운 풍광이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운전 속도는 20-25마일로 세월아 네월아 하고 간다. 동부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여 커브길이 많아 그렇기는하다만 갈 길이 바쁜 나그네의 복장에는 열불이 난다. 한 커브를 돌고나면 새로운 신천지가 나타나서 새로운 풍광이 눈길을 끈다. 해변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수더분한 여인처럼 해변가에 솟은 바위섬은 아름답기만 하였다. 혹 중간중간에 하얀 백사장을 가진 해변이 나오면 나도 어김없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훔치곤 했다
한구비 한구비를 돌 때 마다 새로운 풍광으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차를 댈 수 있는 갓길이나 버스 정류소가 있으면 어김없이 차를 대고 내려서 멋진 풍경을 훔쳤다. 도로를 이렇게 해안선에 인접하여 만들어 놓으니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는 해안의 경치가 이렇게 빼어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해변 경치만 보면 남태평양의 어느 섬보다 나은 듯하다. 그런 뛰어난 풍광때문에 별로 시간이 넉넉하지도 못한 나도 꼬박꼬박 영상으로 기록을 남겼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이 땅에서 과거 가난에 허덕이다가 1960년대 월남전 파병으로 젊은 병사의 목숨으로 바꾼 외화를 벌어 들였고, 1970년대 독일 탄광에서 취업한 광부들의 그리고 병원에서 일한 파독 간호원들의 외화벌이가 본국으로 들어왔고, 1980년대 중동 건설붐으로 많은 근로자들이 열사의 땅에서 흘린 땀으로 벌어들인 오일달러가 그들의 가족들에게 송금되어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경제에 윤활유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나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이런 외화벌이의 시작을 찾아보면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원양어업 즉 남태평양의 참치잡이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참치원양어업 1호선인 지남호의 성공적인 외화벌이가 알려지자 그 후 많은 원양어선이 참치잡이에 나섰는데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1960~1970년 한국 경제성장을 견인하는 일등공신이 되었다고 한다. 수치로 보면 1960-1970년대 당시 원양어선들이 벌어들이 외화는 약 20억달러로 파독 근로자들의 외화획득 규모(1억153만 달러)보다 20배 가량 많았고 당시 한국 총수출액의 5%(1971년 기준)를 차지했다고 하니 외화벌이의 일등공신이 아닐 수 없었다.
팡고팡고 항구가 대한민국 남태평양 참치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 자리잡게 되자 배에서 내린 한국인들이 팡고팡고에 정착하게되어 지금 약 600여명의 한국인이 정착하고 있다고 한다.
팡고팡고 시내에 들어오자 미국 본토에서 자주 보았던 표지판이 눈에 쏙 들어왔다. 미국 국립공원 표지판으로 여기에 아메리칸 Samoa National Park의 Visitor center가 있다는 것이다. 자다가도 국립공원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나라서 다른 것 제쳐놓고 일단 국립공원으로 가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뒷산으로 차를 몰았다.
길은 팡고팡고 뒷산으로 계속 이어져 Pagasa pass(고개)를 넘어간다. 고개위에서 차를 대놓고 내려서 공원입구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 국립공원의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이다.
국립공원 입구는 관리인도 없이 그대로 개방되어 있었다. 카메라매고 조금 올라 가 보았다. 입구에 트레일을 안내하는 입간판이 하나 세워져 있고 트레일은 숲속으로 이어져 있고 울창한 수목사이로 난 트레일은 비가 오면 물이 흘러 내려오는 물길로 변하는지 여기저기에 골이 파여있어 그 사이로 돌들이 흉칙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오른쪽 밑에 보이는 화살표시가 트레일이 시작되는 Pagasa 고개로 적색으로 표시된 곳이 Alava 산 정상까지 이어지는 트레일로 3.5마일(5.6km)이고 산 정상에서 Vatia 마을까지 5.2마일(8.3km) 트레일이 이어 진다고 한다.
1988년에 지정된 국립공원은 다섯 지역의 열대우림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안지대(Coast), 낮은 지대(Lowland), 산간지대(Montane), 산등성 지대(Ridge), 상층 구름지대(Cloud)로 구분되어있고 그안에서 자생하는 여러 종류의 열대 식물들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국립공원은 이 섬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른편에 위치한 마누아 아일랜드(Manua Islands)에 속한 두 섬 타우(Ta'u)와 오푸(Ofu) 에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이렇게 아메리칸 사모아 국립공원은 남태평양 한가운데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없는 독특한 환경으로 그 숨어있는 매력을 한층 더해주어 지상의 마지막 낙원이라고 불리워 지기도 한다.
그런 지상의 낙원을 시간에 밀려 찾아 보지도 못하고 다시 고개를 넘어 팡팡고로 내려와서 동쪽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달려갔다.
팡고팡고는 바다로부터 내만이 깊숙이 들어 온 곳에 위치하고 있어 자연적인 피항의 조건이다. 수도라 하지만 고층 빌딩건물은 없다. Port of Pago Pago란 항구표시만 보이고 별 특별한 건물이나 붐비는 지역은 아니었다. 그런 조용한 팡고팡고의 해안도로를 지나 커브를 트니 거대한 공장건물이 떡 하니 모습을 보이고 많은 근로자들이 쉬는 시간인지 공장 앞 이곳 저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작업복 차림에 근로자들이 일할 때 착용하는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리고 있었다. 근처 섬나라에서 이 곳에서 일하기 위하여 많이들 아메리칸 사모아로 모여 든다고 한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스타키스트 참치 통조림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40%라고 한다. 이 회사를 동원참치로 유명한 한국의 동원그룹이 2008년 3억6천만 달라에 인수하여 현재는 동원그룹이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StarKist 참치 통조림 공장은 1954년 설립하여 여기서 가공된 참치캔이 미국 본토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공급되어 “the chicken of the sea"라는 캐치플래이를 내걸고 세계인들의 식탁에 올라온 유명 브랜드였다. 2008년부터 한국의 동원그룹이 이를 인수하여 운영한다고 하니 1957년처음으로 참치 원양어업을 시작한 이래 이제는 참치 세계시장을 주무르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낄 뿐이다.
Aunu'u Island 는 본섬인 Tutuila의 오른쪽 끝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점차 동쪽 끝으로 해안선을 구비구비 돌아나가자 보이기 시작하였다.
동쪽 끝을 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올라 가자 새로운 풍광들이 눈을 즐겁게 하였다. 썰물때라 물이 빠진 해변에는 바닥의 돌들로 가득하여 그 위로 무심한 파도만 밀려왔다.
동쪽해안 끝에 위치한 국민학교. 토요일이라 학교는 텅텅 비워 있었다. 학교를 지나자 길을 산 위쪽으로 올라 가기 시작하였다. 길이 끝나기 전에 마지막 용틀림을 하는 것처럼 크게 돌아 나간다.
산위로 난 해안도로를 내려가자 저멀리 바위섬으로 보이는 여러 섬들과 가파른 산악지대가 놓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까지가 마지막 해안도로였다. 지도를 보니 Onenoa라는 마을이었다. 차를 마지막 도로변에 세워 놓고 해변가로 걸어나갔다.
마을은 울창한 야자수에 가리워 드문드문 보였다. 마을 앞해변에는 물빠진 바다에서 무엇을 건지는지 마을 애들이 물속에서 모여 놀고 있었다. 하늘에 빗겨 걸린 태양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마을 앞에 놓인 모래사장은 뜨거운 복사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을애들처럼 나도 시원한 물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달려갈 해안도로도 없고 쉬지않고 허겁지겁 달려온 나도 갑자기 맥이 빠지는듯 어디 시원한 곳에서 쉬고 싶었다. 아메리칸 사모아 본섬의 동쪽 땅끝을 밟아보았다는 것이 별 것이 아니겠지만 무성한 야자수아래 금빛 모래가 빛나는 해변에서 푸른 바다에 부서지는 흰 파도들을 이렇게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약간의 희열을 느꼈다. 아메리카 사모아섬의 동쪽 땅끝마을 Onenoa 해변에서 혼자 스스로 감격스러워 하였다.
Tutuila섬을 일주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부랴부랴 공항으로 돌아왔지만 아슬아슬하게도 예약된 시간의 뱅기를 놓쳐버렸다. 다행히 다음 편이 연이어 있어 별 문제없이 서사모아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하루에 구경할 수도 없는 분량의 구경꺼리를 하루에 벼락치기로 끝낸 그런 기분으로 APIA 호텔로 돌아와서 긴 하루를 마감하였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