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누아투(Vanuatu)에서(1)
2017년 6월3일 (토) 간간이 비
한번 지도를 훑어 보아도 많은 섬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어 머리에 쏙 들어 오지 않았는데 지역별로 6구역으로 분류한 지도가 있어 바누아투 공화국 전체를 보여준다. 구역이 색상별로 분류되어있다. 구역은 providence로 주(州) 개념으로 보면 된다.
1.Torba: Torres Islands and Banks Islands
2.Sanma (Luganville): Espiritu Santo,Aore and Malo
3.Penama: Pentecost, Ambae and Maewo
4.Malampa: Malakula, Ambrym and Paama
5.Shefa (Port-Vila): Shepherd Group and Efate
6.Tafea:Tanna, Aniwa, Futuna, Erromango and Aneityum
바누아투에서 가까운 이웃나라는 북으로는 솔로몬 제도, 동쪽으로는 피지, 남서쪽으로 뉴칼레도니아가 자리잡고 있다. 약 25만명의 인구가 83개의 섬에서 거주하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부족 언어가 약 120개 정도라 하니 섬마다 고유의 언어가 있다는 소리다. 120개의 부족어를 25만명이 고루 사용한다고 가정하면 1 부족어를 겨우 2천명 정도가 사용한다는 것으로 어떤 부족어는 겨우 몇 백명이 사용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공식 언어는 영어, 불어와 Bislama인데 1980년 독립할 때까지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통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영어와 불어가 공식 언어가 되었고 Bislama란 원주민 언어와 영어가 혼합된 비빔밥언어로 남아공과 나미비아에서 사용하는 아프리칸스(Afrikaans)어와 동아프리카의 최대 공용어인 스와힐리어와 비슷한 짬뽕언어이다. Afrikaans는 남아공에 일찍 진출한 네덜란드인이 사용한 네덜란드어와 토착 언어가 혼합되어 탄생한 언어이고, 스와힐리어는 잔지바르에서 시초로 아랍어와 토착 언어가 혼합되어 탄생한 언어로 탄자니아와 케냐에서는 영어와 더불어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그외 동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공통어로 통용되고 있다.
Bislama로 몇가지 표현을 해보면
Hello Alo
Goodbye Bae
See you. Mi lukem yu
How are you? Olsem wanem?
I'm fine, thank you. I gud nomo, tankyu
tumas.
Sorry. Sore
Please. Plis
Yes/No. Olraet/No
Do you speake English? Yu tok tok Engglis?
I don't understand. Mi no save
바누아투에 섬이 그렇게 많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일찍감치 다른 섬으로 건너 갈 계획은 접어 버리고( 사실 건너가 볼 시간도 없었고) 수도 Port-Vila가 있는 본섬 Efate나 렌트카로 돌아 보려고 마음을 정했다. 지도를 보니 Efate Ring Road라해서 약 200마일 정도의 섬순환 도로가 나있었다.
수도 포트빌라는 항구도시로 안으로 깊숙히 들어온 Mele Bay에 자리하고 있어 천연적인 내항의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마을은 물가를 따라 형성되어 있고 높은 건물은 별로 없고 Kumul Hwy가 해안가를 따라 가다가 Efate Ring Road를 만나게 된다. 호텔, 식당, 박물관을 비롯한 관공서가 모두 Port-Vila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Port-Vila 바로 앞에 있는 휴양지 섬 Iririki Island으로 사진에서 보이는 수상 방갈로가 물가에 늘어서 있다. Port-Vila 물가에서 섬으로 가는 통통배가 수시로 있어 관광객과 현지인을 싣어 나르고 있었다.
호텔에 체크인할 때 종업원이 화산 구경하러 언제가냐고 물어왔다. 바누아투 관광의 포인트가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활화산 구경을 하러가는 것 같았다. 사진은 바누아투 전체 지도의 4 구역인 Malampa province에 속하는 섬인 Ambrym에 있는 Mt. Marum 화산의 분출 광경이다. Ambrym섬을 Black Island라고도 부르는데 분출된 검은 화산재로 덮여 있어 그렇게 부른다. 이 섬에는 1270m 높이의 Mt. Marum 외에 1159m의 Mt. Benbow가 있는데 둘다 활화산이다. 가이드를 대동해서 활화산을 구경하러 갈 수 있다고 하는데 밀림 정글을 헤치고 꽤나 고생하며 올라 가야 하는 모양이다.
위 사진은 관광 안내책에서 발췌한 것으로 바누아투 화산 관광지로 유명한 Yasur 화산이다. 가이드는 벼랑끝에 앉아 이글거리는 용암을 마치 캠프 파이어를 보고 있는 듯하고, 관광객은 웃으며 감격에 겨워하는 인증샷을 날리고 있다. 바누아투 전체 지도중 맨 아래쪽 6구역인 Tafea Province의 Tanna섬에 있는 361m 높이의 Mt. Yasur 화산의 전경이다. Mt. Marum보다 훨씬 낮아서 일반 관광객들이 올라 가기 쉬워서 상대적으로 Yasur 화산을 많이 찾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차를 한 대 렌트해서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여기서는 편리하게 차를 호텔에서 주문하면 렌트카 회사에서 호텔로 가져다 주고 반납은 공항에서 하도록 한다. 내일 공항갈 시간을 고려해서 24시간 하루만 빌렸다.
박물관은 여기 명칭대로 부르자면 Vanuatu Cultural Center 이지만 국립 박물관이나 마찬가지다. Port-Vila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입장료는 700 VT(여기 통화로 바투라 하고 환율은 미화 1불이 20바투)로 일요일은 쉬고 월-금요일은 9시부터 4시반까지, 토요일은 12시까지 오픈한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부랴부랴 서둘러야 했었다.
입구에 방문록이 비치되어 있어 나도 한자 써 넣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오는 관광객이 많은지 보려고 두 페이지 정도를 찍었다. 눈으로 대략 헤아려 보니 호주에서 오는 관광객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뉴질랜드였다. 그것도 추정해보니 호주나 뉴질랜드 관광객들이 뉴칼레도니아로 구경갔다가 나처럼 온김에 가까운 바누아투로 올라 오는 것 같았다.
각종 전시물을 유리창으로 막은 진열대에 넣어 두어 사진찍기에 무척 힘이 들었다. 그래도 플래쉬없이 사진찍는 것을 허용해서 눈에 띄는 그들의 전통적인 전시물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바누아투에서만 볼 수 있는독특한 풍물들도 많았다.
고고학적인 발굴에 의하면 약 3천년전부터 여러 섬들에 인간이 살았던 흔적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 섬을 최초로 발견한 때가 1606년으로 포르투칼 탐험가에 의해서 발견되었으나 다행히 섬에 상륙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 후 1774년 태평양의 발발이 제임스 쿡선장이 섬에 상륙하기 전까지는 이민족 특히 유럽인의 지배없이 그들만의 원주민들로 행복한 삶을 이어온 것 같았다. 쿡선장이 이 섬나라에 새로운 이름으로 New Hebrides라고 명명하여 1980년 독립전까지 그렇게 불리워왔다. Hebrides는 쿡선장의 고향인 스코틀랜드에 있는 Hebrides 다도해의 지명을 여러 섬들이 흩어져 있는 여기를 그렇게 New Hebrides라고 작명하였다. Vanuatu 란 국명은 1980년 7월 독립하면서 개명한 것으로 여기 현지어로 <우리의 땅>이란 뜻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대형 세계지도를 찾았다. 영국 항해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James Cook 선장의 3차에 걸친 세계일주 항로를 표시하여 놓았지만 색상이 뚜렷하지 못해 알아 보기가 힘들었다. 한 눈에 알아보기 쉬운 세계지도를 찾아 올린다.
__________ 1차 항해로(1768-71)
__________ 2차 항해로(1772-75)
__________ 3차 항해로(1776-79)
-------- 3차 항해로(James Cook 사망한 후)
지도에 표시된 항로처럼 영국의 걸출한 항해가인
James Cook이 3번째 세계일주에 나섰다가 1778년 1월에 하와이Big Island를 발견하여 James가 공식적으로 하와이섬에 닻을 내린 최초의 유럽인이 되었다. 3차 항해로에서 보듯이 James Cook 일행은 하와이섬을 떠나 미국 서부해안선을 따라 Bering 해협을 탐험하고 다음해인 1779년 초에 하와이 Big Island의 Kealakekua Bay에 정박하여 한달정도 체류하면서 배를 수리정비하여 다음 탐험을 준비하려고 하였으나 원주민과의 불화로 여기서 죽음을 맞이 하였고 그의 부하들이 나머지 항해를 마치게 된다.
2차 세계일주 항해중 1774년에 통가, 이스터 섬, 뉴칼레도니아, 바누아투를 발견하고 되고 바누아투에 상륙하여 지명을 New Hebrides로 명명하였다. 당시의 지명으로 지금의 호주를 New Holland로 명명한 것도 매우 이채롭다.
박물관은 주로 전통적인 공예품으로 가득하였는데 TV에서 보았던 가면 - 축제나 행사에 사용하였던 - 돌과 나무를 깎아서 만든 나무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오래된 양식의 카누와 도자기, 의식에 사용되었던 머리 장신구들, 부족들의 특이한 사진과 비데오를 볼 수 있었다.
왼편은 특별한 제식에 사용된 머리 장신구로 튀어나온 코뿔이 섬찍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알고보니 야생 돼지의 두상을 본뜬 마스크로 용감한 부족의 전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야생 돼지의 해골로 양쪽으로 튀어 나온 이빨이 권위와 용맹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용감한 부족 전사의 상징으로 표시하기도 한다.
부족들의 축제나 의식에 사용되었던 여러 형태의 가면들. 박물관에 특히 이런 가면이 엄청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흡사 미국의 할로인데이에 볼 수 있는 그런 마법사의 가면탈같았다. 원시 부족들의 제사 의식에 사용되었을 것 같은그런 섬찍한 이미지가 배어 있다.
왼편 사진은 무슨 동물을 타고 있는 형상이고 오른쪽 사진은 용감한 부족 전사를 표시하는 머리상으로 용맹의 상징인 멧돼지 이빨을 붙여 놓았다.
바누아투의 원시 종교도 다른 원시 국가의 그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그들이 믿는 이 세상을 창조한 창조신인 타하라(Tahara)와 그에 대항하는 사탄과 같은 악의 상징으로 사라타우(Saratau)가 존재하여 선과 악으로 구분한다.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축제나 의식에 나타나도록 가면을 만들어 사용하였다고 한다.
박물관 벽에 걸린 사진으로 의식을 행사하는 주술사의 머리에 놓여진 새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다. 19세기 중반 유럽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이 섬나라에서도 원시적인 주술의식이 성행했다고 하는데 식인 풍습도 그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Tanna섬에서의 최후의 식인축제>란 제목의 사진으로 영국인 Charles E. Gordon Frazer(1863-1899)가 1885년 남태평양 항해에 나섰다가 몇년에 걸쳐 뉴질랜드, 호주, 뉴기니아, New Hebrides(현재의 바누아투) 를 탐험하고 남긴 그의 유화 작품을 사진으로 찍어 박물관에 걸어 놓은 것이다. 그후 찰스는 1899년 blackwater fever(말라리아)에 걸려 36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고 한다.
보통 식인풍습이 섬에서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그렇게 자행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새로운 연구 결과로 식인 풍습은 부족간의 대립 또는 전투나 전쟁의 결과로 승리한 자들의 주술의식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다. 즉, 패배한 부족들에게 지배자로서의 면모나 위엄을 과시하여 복종을 강요하는 보여주기식 의식이라는 것이다. 식인 풍습이 만연한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는 돼지를 비롯한 여러 동물 개체가 풍부하여 고기(단백질)를 얻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는 것이 그 설을 뒷받침해준다.
여러 섬에 흩어져 있는 발굴 작업을 통해 그들의 독특한 도자기 제조 방식이나 양식들을 재발견하고 있다.
발굴된 도자기 파편들
전시된 목각 공예품중 몇 점만 카매라에 담았다.
문양은 주로 거북 형상이었고 조각 기술도 매우 정교하여 뛰어난 기술을 보여 주었다.
눈에 확띄는 형태라서 카매라에 담아 왔다. 자세히 살펴보니 중앙의 바가지를 따로 만들어서 접착한 것이 아니고 전체를 하나의 나무에서 깎아 내어 완성한 작품이다. 남녀를 형상하는 두상의 양식이 이채롭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창같은 무기로 낚시 바늘의 미늘처럼 한번 들어가면 빠지지 않게 날카로운 홈을 연이어 파서 치명적인 타격을 주도록 고안되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것과 똑같이 만든 손창을 gift shop에서 판매하고 있어 기념품으로 살까 하였는데 살상무기같이 보여 뱅기에 실어 줄 것 같지 않아 접어 버렸다.
바누아투의 여러 섬에서 채광되는 광석을 소개하고 있다. 지역별로 분포되어 있는 광물질을 샘플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하반신에 걸치고 있는 mat를 설명하는데 그 크기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한다. 큰 mat는 잠자리용 깔판으로 사용되고 작은 mat은 사진처럼 옷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Ambae섬에서 제작된 mat 형태와 양식을 설명하고 있다. Moon, sun and Tabu 세가지 디자인을 그림과 함께 보여 준다. Tabu design mat은 돼지를 잡아 제사를 올리는 의식에서 걸쳐야 하는 mat라고 소개되어 있다. Sun design mat은 잠을 잘 때 깔거나 덮는 담요의 기능도 있지만 물물교환시 화폐의 기능도 함께 하였다고 한다.
그런 전통 의상에 사용되는 재료들과 부장물을 보여준다
박물관 이층 한구석에는 바누아투 그들만의 양식으로 제작된 실물 카누를 전시하고 있었다. 남태평양 여러 섬의 다양한 민족들이 제각기 독특한 양식의 카누를 만들어 해양생활에 적응하였기 때문에 나라별로 그 모양과 양식이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바누아투 양식의 카누로 out-rigger형이라고 한다. 사진에 보면 카누 본체가 있고 옆에 작은 보드를 달고 있는 모양으로 이를 out-rigger라고 한다. out-rigger의 기능이 큰 파도나 물결에 카누가 전복되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이런 out-rigger 개념을 현대의 요트제작에 응용한 것이 catamaran으로 1개의 선체(hull)가 아니고 두 개이상의 선체로 연결하여 바다에서 요트의 안정성을 높여 새로운 요트의 한 모델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전에 아프리카 나미비아 국립 박물관에서도 원주민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이 있었는데 이와 유사한 매우 뿔이 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별로 모델로 서고 싶지 않은 원주민을 억지로 내세워 찍은 것 같았다.
2015년 아프리카 여행시 나미비아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으로 선교사가 촬영한 나미비아 어느 부족의 여자 상반신 사진이다. 언짢은 표정으로 눈을 내리 깔고 있는 두 여성의 표정으로 보아 위의 바누아투 원주민의 모습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그런 표정이다.
전시된 대형 소라고동 껍질
산호석으로 만든 공예품
각종 산호석과 대형 고동 껍질
꽃으로 단장한 꽃남자.
옛날에는 응당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그냥 달고 다녔을 물건들을 나뭇잎에 싸서 허리춤에 꽂아 덜렁거리지 않게 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Ball(불알)은 그대로 노출시켜 요즈음 잣대의 눈으로 바라보면 semi-porno 사진에 가까운 노출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원주민 여자들이 전통 의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머리 치장은 길게 늘어뜨린 염색한 가발형태로 하였고 치마도 역시 길게 늘어뜨린 술로 장식한 것으로 덮여 있다. 잘 익은 구리빛 피부가 건강미를 자랑하고 있는 듯 하다.
앞의 아기를 안고 있는 원주민 여자들과 확연하게 다른 것은 젖무덤이 작은 봉분처럼 봉끗하게 솟아 올라 출산이나 육아 경험이 전혀 없는 Virgin 들인 것 같았다.
박물관에서 새롭고 신기한 풍물을 보고 찍고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닫을 시간인 정오를 훨씬 넘겨 버렸다. 관람객은 나혼자 뿐인데 관리인이 나가달라는 말도 없어 언제 문닫냐고 물어보니 기다려줄 수 있으니 실컨 구경하라고 했다. 나중에 나오면서 하도 고마워서 gift shop에서 단단한 나무 열매로 만든 목걸이를 몇 개 기념품으로 사 가지고 왔다.
나오면서 보니 박물관 바로 옆에 그들 전통 양식으로 지어진 벽이 없이 확트인 집에 많은 현지 여성들이 모여서 토론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여성관련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여성들이 모여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제주도의 돌하르방같은 조각상이 여기 저기 널려 있었다. 주로 돌로 만든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른쪽 사진처럼 나무로 만든 조각상도 눈에 띄였다. 모양새는 거의 비슷하게 크다란 눈부위와 깊고 넓게 파인 입부분에 특징이 있었다.
바누아투 국회 의사당
박물관 바로 앞에 길을 건너편에 위치한 반뜻한 건물로 국회 의사당이라 해서 들어가 보았다. 정문 철문은 열어 놓았지만 본관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현대식 건물에 군데 군데 기둥 양식은 박물관 안에서 보았던 돌하르방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국회 의사당을 밖에서 사진이나 몇 판 찍고 나오다 보니 청동으로 만든 가족상이 세워져 있었다. 전통적인 원주민 의상이 아니고 현대적인 복장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부인과 큰 아들에게 손짓을 하며 무엇인가를 일러주는 아버지를 표현하여 단란한 핵가족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것 같아 박물관 안에서 보았던 전통적인 원주민의 사진에서 풍겼던 그것과 너무나 차이가 있어 바누아투의 먼 과거로 돌아가서 보았던 시간여행에서 퍼뜩 깨어나서 금방 21세기로 돌아온 것 같았다. 마치 한 편의 춘몽처럼 꿈속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바누아투의 원시사회로 돌아 가서 불알을 내놓고 살다가 금시 현세로 복귀한 것 처럼.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