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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Oct 03. 2017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21

바누아투(Vanuatu)에서(2)

2017년 6월3일 (토)  간간이 비뿌림


   Angelfish Cove Villas


Angelfish Cove로 빠진 길

박물관 관람을 대충 마치고 Efate Rong Road를 바로 돌아 섬을 일주하려고 출발했다가 어정쩡한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서서 본의아니게 막다른 Angelfish Cove로 가는 길로 들어 서게 되었다.




Angelfish Cove로 가는 비포장도로

한참을 가서야 길을 잘못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길은 비포장도로였고 군데 군데 파여있어 크게 속도를 높일 수도 없었다. 지나가는 원주민에게 혹시나 하고 Ring Road로 빠져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냐고 물어 보았더니 외통수같은 외통길이라 하였다. 길은 좌우로 두꺼운 숲으로 덮여 있어 해안이 얼마나 가까운지도 짐작할 수도 없었다. 돌아 나가야 하는데 여기까지 들어온 수고가 아까워 끝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아마도 나의 피나 유전자에는 옛날의 탐험가나 모험가들에게 있을법한 그런 호기심(Curiosity) 인자가 바글거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럴만하다고 여겨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는 것이 Angelfish Cove에 뭐가 있는지 관광안내서에도 나와 있지 않고 아무 것도 아는 것도 없이 그 길을 끝까지 가보겠다고 똥고집을 피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고집을 활활타는 불꽃처럼 끝까지 태웠다.



Angelfish Cove Villa 입구

마침내 길을 끝까지 달렸다. 달려간 길 끝에는 잘 꾸며진 Angelfish Cove Villa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었다. Cove는 Bay하고 같이 만(灣)으로 번역되는데 Bay보다 규모가 작은 만을 Cove라고 부른다. Bay보다 훨씬 큰 만을 Gulf라고 하는데 그런 만의 크기를 결정하는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고 한다. 대충 알아서 부르는 모양이다.



Villa 입구에 좌우로 세워 놓은 나무 조각상으로 남녀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그들의 전통적인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우리의 장승백이와 같은 그런 토착신 같았다.



Angelfish Cove Villa 전경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고 취재할 카메라만 들고 내렸다. 때마침 걸어 나오는 관리인 아지매에게 물어보니 임대하는 Villa라고 하길래 마치 오늘 저녁 묵고갈 관광객처럼 가격이 어떻게 하냐고 물어 보았더니 Villa가 독채로 되어있어 크기에 따라 미화로 250-500불이라고 하였다. 일단 둘러 보고 싶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허락하였다.



Angelfish Cove Villa 전경

전부 독채로 현대식으로 잘 꾸며진 빌라로 가족 단위로 지내기에 안성마춤인 휴양지였다. 빌라는 바로 바닷가에 위치해있어 걸어 나가면 바로 바닷가 해변이었다. 바로 소위말하는 Angelfish Cove를 마주하게 된다는 곳이다. 흠, 가족을 이끌고 오기에는 여기보다 더 적당한 곳은 없을 정도로 안성마춤이니 혹시 대군을 이끌고 다시 바누아투를 찾을 적에는 여기로 와야겠군.




전용 풀장이 구비된 Villa 내부


해변으로 나가는 길

빌라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나가니 누런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야자수 사이로 바다가 반겨 주었다. 해가 구름에 가려 비록 바다물색은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은 이내 즐거워졌다. 모래사장은 기대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해변을 느끼기에 그리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모래보다 바위가 더 많았다.



파도가 이는 Angelfish Cove


빌라 아래쪽에 있는 호텔

바닷가로 나와서 왼편으로 눈을 돌려보니 해변가에 호텔같은 시설이 자리잡고 있었다. 역시 조용하고 아름다운 해변가라 풍광이 수려해서 호텔들이 들어 서는 것 같았다.



빌라 해변에서 바라본 Angelfish Cove 풍광

역시 해변은 모래사장보다 돌들이 많았다. 그러나, 매우 조용한 바닷가에 자리하고 있어 이보다 멋진 휴양지도 없을 듯 하였다. 세상에서 지치고 힘든 육신과 영혼을 쉴 수 있는 그런 곳으로 마치 휴양지 콘도의 분양 광고 멘트처럼 그런 표현이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한참 동안을 바닷가에 서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느끼면서 멀리 떠나온 여행길의 피곤함을 날려 보냈다. 배낭여행의 재미나 보람이 그렇게 위대한 것도 아니고 또한 그리 고상한 의미를 찾는 것도 아님을 깨우치는 것이 이런 소소한 것에서부터 희열을 느끼게 되어 그런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다. 때로는 옛날의 탐험가나 모험가들만이 그들만의 고집만으로 새로운 신천지나 신세계를 발견하는 것처럼 무작정 떠나는 배낭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런 풍광들이 마음과 눈을 기쁘게 해 줄 때 여행의 작은 의미가 살아난다고 할 수 있겠다. (외통길로 들어선 댓가의 변명아닌 변명)



모래대신 돌로 뒤덮인 Angelfish Cove 해변



화산석으로 만든 돌화분에 심어논 화초와 역시 구멍이 숭숭한 화산석으로 만든 돌하르방같은 석상(박물관에서 많이 보았던)이 빌라 이곳 저곳의 구석을 장식하고 있었다.



빌라 돌계단에 내려앉은 이름모를 새



노오란 야자수 열매는 알겠는데 왼편의 양파같이 생긴 열매는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그냥 둘 다 먹음직스러웠다.





   섬일주를 시작하다


갈림길에서 Efate 순환도로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Angelfish Cove에서 다시 돌아 나왔다. 잘못 찾아 들어간 갈림길에서 이번에는 바르게 Efate Ring Road를 찾아 들어 섰다. 본격적으로 섬의 서부 해안도로를 타고 올라 가는 모양새였다.



Port-Vila에서 만난 중국인이 운영하는 일식집

우연히 보게되어 들어가서 점심 먹거리를 포장해왔다. 일하는 현지 종업원에게 주인장에 대해 물어보니 중국인이라고 하였다. 먼 여행길에서 입에 맞는 음식을 찾기도 힘이 드는데 남태평양 외진 섬 바누아투의 포트빌라에서 운좋게 일식집을 만나게 되어 한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포장해간 김밥말이 2통으로 점심 요기를 든든하게 하였다



섬 서부 해안도로

대부분의 도로는 해안으로 나있지 않았고 해안과 좀 떨어진 후미진 뒷쪽으로 연결되었다. 순환도로는 왕복 일차선 으로 잘 포장된 pavement 도로였다. 본섬의 한가지 특징이 대부분 울창한 열대 우림지역에서 보이는 숲으로 둘러 싸여 있어 짙은 녹색의 넓은 잎을 가진 식물들로 이루어져 있다. 도로를 달리는 버스나 승용차도 그리 빈번하게 마주치지도 않았다. 매우 조용하고 하품이 날 정도의 한적한 해안도로를 달렸다. 갈림길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한참 달려가면 약 50도 정도의 매우 가파른 경사길을 올라 가야 했다. 그 경사길 정상에 올라가면 멀리서 바다 풍경이 한가득 눈에 들어왔다.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 본 휴양지같은 섬

한눈에 알아봐도 휴양지같았다. 섬을 돌아가며 하얀 모래사장이 보이고 숲속에 여러 숙박시설이 앉아 있고, 수심이 얕은 물가에는 사람들이 물속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고개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해안선

오른편으로 눈을 돌려보니 굽이치는 해안선이 흰 파도선을 그리며 연이어 이어지고 있었다. 발아래에는 바람이 많은 해안에서 자생하는 키가 낮은 관목이 작은 구릉을 덮고 있었고, 해가 쨍쨍하게 비쳐 바다 물색만 남색으로 칠해 준다면 짙은 녹색의 나무들과 잘 어울려 한 폭의 풍경화를 이룰만한 그런 멋진 풍광이었다.



울창한 열대 우림 산속으로 빽빽한 나무사이로 중간 중간 키가 높은              야자수가 키다리처럼 눈에 띄였다.


섬 일주 해안도로


에파테 순환 도로의 이정표




    바누아투의 최초 세계 문화 유산지


세계 문화 유산지를 알리는 입간판

바누아투에서 첫번째로 지정된 세계유산 지정지라고 하는 입간판만 서 있고 다른 정보는 없었다. 천상 인터넷을 뒤져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세계 문화 유산지 지도

13세기경 전설적인 추장 Roi Mata가 활동하였던 세 섬을 이은 점선이 세계문화 유산지역으로 Efate, Lelepa and Eretoka섬을 둘러싸고 있다. 걸출한 부족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흩어진 여러 부족을 통일하여 소위 말하는 평화시대를 이룩했다고 한다. 그렇게 요순시절을 이어가던 추장은 그의 권력을 넘보던 동생에 의하여 독살되어 Hat Island(Ere toka Island)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업적은 거의 잊혀졌다가 구전으로 내려오던 민요를 접한 프랑스 고고학자가 그의 매장지를 찾아 내었는데 발굴해보니 집단 매장지에 30-50명 정도가 함께 매장된 무덤터를 발견하여 그의 시종이나 가족들이 함께 순장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터넷에서 찾은 대추장의 무덤터

Eretoka 섬에 있는 대추장 Roy Mata의 무덤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프랑스 고고학자 Jose Garranger가 구전되어 내려오던 민요를 수집 분석하여 1967년에 발견하였다고 한다.


정상이 구름에 덮인 Hat Island이 앉아있다

섬 이름답게 모양새가 모자같이 생겼다. 그러나, 섬 정상은 한무리의 구름으로 덮여 있어 전체를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입간판만 하나 서 있고 섬으로 가는 배나 선착장은 근처에 보이지 않았다. 바누아투의 세계 문화 유산지로는 선정되었지만 관광객들에게는 그렇게 끌리는 관광지는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돌로 이어진 해안


Lelepa Island 광고

바누아투 첫번째 세계유산 지정지가 있는 섬이 Hat Island이고 그 오른편에 떨어져 나가 앉은 섬이 바로 Lelepa Island이다.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고 멋진 백사장이 있다고 광고를 때리고 있다. 세계 문화 유산 안내판에는 이 섬에

Fels Cave(동굴)이 있다고 한다.



해변가는 돌로 가득하였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했다



마을 Tanoliu 이정표

Tanollu 마을은 Havannah Bay가 시작되는 해안 마을이다. Havannah Bay가 몇 개의 섬으로 둘러 싸여 있어 태평양전쟁 기간에는 미해군 기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이 마을에 이름도 거창한 World War II 박물관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Havannah Harbour가 있는 마을 Tanoliu

위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하바나 하버는 본토섬

Efate, Lelepa와 Moso섬으로 둘러 싸여있어 천혜의 항구로 태평양 전쟁시에는 미 해군의 전략적인 해군기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서남방향으로 후방에 위치한 뉴칼레도니에는 당시 태평양 전선을 지휘하는 연합군 사령부와 야전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하바나 하버를 투어(관광 및 낚시)를 제공하는 호텔

부근에는 호텔이나 게스트하우스는 전혀 없고 이것이 유일한 호텔이었다. 전통 주택 양식으로 지어진 호텔은 아니고 현대적인 건물이었다.



잘 손질된 잔디위로 나체의 나무가 눈길을 끌어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화가 차를 멈추게 하였다. 오성급 호텔이 있을 것 같은 그런 입구여서 입간판을 찾아 보았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고급 레스토랑 The Point

예상을 벗어나 고급 식당 간판이었다. The Point.

매번 느끼는 생각으로 restaurant을 조선말로 식당으로 부르는 것이 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았다. restaurant이라고 하면 웬지 바이올린, 피아노와 첼로의 선율이 울리는 공간 속에서 짙은 브라운색 식탁이 은은한 불빛아래 자리를 잡고 있는 그런 이미지가 떠 오르지만, 식당이라고 말하면 돼지국밥 냄새가 폴폴나고 파리가  싸구려 티가 나는 에나멜칠한 식탁 위로 비행하는 그런 국밥집이 연상된다.

사대주의적인 나만의 발칙한 상상일련지도 모르겠다.


입간판을 확인하고 한 폭의 풍경화같은 입구를 보고 내가 비록 미식가(gourmet)나 대식가(gourmand)는 아니지만 The Point restaurant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오전에 길을 잘못들어 Angelfish Cove로 빠지는 바람에 해 떨어지기 전에 Efate ring road도 다 돌아 볼 수 있을련지도 몰라 크져가는 호기심을 지긋이 눌러 앉혔다.



Tanoliu 마을 원주민 아이들

언제 어디서 촬영해도 후회되지 않는 아이들 사진이다.

SNS 계정이 있냐고 물어 보니 facebook이 있다고 해서 스스럼없이 사진찍자고 하였다. 바누아투 여행에 대하여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흑인금발>이란 표제어를 발견할 수 있다. 순수 흑인혈통에서 발견되는 금발이 바누아투 원주민에게서 유일하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웃통을 벗은 꼬마에게서 <흑인금발>을 볼 수 있었다. 물어보니 염색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버누아투 원주민 아이들

첨에는 길에서 만난 세 아이를 찍었는데 근처에 놀던 아이들이 몰려 와서 그룹사진을 찍게 되었다.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이 그렇게도 마음에 들어 몇 번의 샤터를 눌렀다. 멜라네시안의 검은 피부들이 나의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 차곡차곡 쌓였다.



근처 마을 주택으로 전통 가옥 양식이다






    World War II Museum이 있다고


이차 세계 대전 박물관 이정표

길을 가다 이정표를 발견했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박물관이 있다고 하니 여행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머리 한 구석에 상상했던 그런 일반적인 박물관이 아니었다. 멋진 예상을 완전히 산산조각낸 그런 기상천외의 박물관이었다.



글자 그대로 WWII 박물관

입장료는 없었다. 그러나, 박물관을 관리하는(?)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았다. 동네 주민들중 일없는 한량들은 모두 자원 봉사자같이 박물관 주변을 지키고 아니 어성거리고 있었다. 거두절미하고 한마디로 잘라 말하면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그런 공공 박물관은 아니고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꾸며 논 엉터리 박물관이었다. 엉성하게 지은 건물에 슬레트 지붕을 얹고 문도 없이 들락거리는 그러나, 명칭만은 거창한 이차 세계 대전 박물관이었다. 입구 벽면에는 만화같은 그림을 그려 놓았다.



입구에 그려 놓은 그림

GI-Joe대신 GI-James라고 그려 놓았다. GI는 군인을 뜻하는 Government Investments의 약자로 GI-Joe는 남자군인을 여군은 GI-Jane으로 호칭한다. GI-James는 누굴 뜻하는지 알 수가 없다.

USS MaryLand는 1920년에 건조된 미전투함으로 이차 세계동안 태평양 전쟁에 투입되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뒤 1959년에 은퇴하였다고 한다. 그런 전투함이 태평양전쟁시에는 바누아투에 있는 하바나 하버에 정박하면서 전투준비를 하였다고 한다.




입구 벽면에 그려진 코카콜라 그림

미국의 상징으로 Coca-Cola를 그려 놓았다. 더운 지방에서는 물보다도 시원한 콜라가 군인들의 갈증을 해소시켜준 모양이다. 미군의 대표적인 문화를 그려 놓았다.



입구 벽면에 그려 놓은 그림으로 처칠경을 구세주로 표현

당시 영국의 수상인 Winston Churchill이 이차 세계 대전을 종식시켰다고 적혀있다. 바누아투가 영국과 프랑스의 오랜 지배를 받아 왔는데 이런 그림을 보니 프랑스보다는 영국의 영향력이 더 큰 것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정해본다.



입구 벽면에 그려진 정체불명의 미국 대표 James Shirty

William Bar 나 James Shirty가 누구인지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알 수가 없었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을 미국 대표로 그려 놓았는데 Native Pride라고 해서 인디언이 미대륙의 주인이란 뜻으로, 바누아투의 원주민인 멜리네시안이 이 땅의 주인이란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듯 하다.



입구 벽면에 그려진 바누아투 국기

박물관 창시자로 Pua Ernest Kalkoa로 소개하고 있다. 마을 주민인 모양이다. 코카콜라 모자를 쓰고 있는 창시자를 Captain Efate로 부르는 것도 유머스럽다.



박물관 진열품이 주로 미국, 호주 및 뉴질랜드산 콜라병들이다

진열실에 들어 서니 선반위에 진열된 물건들이 대부분 깨어진 코카콜라 병 조각들이었다.


수집한 코카콜라 병들

한 현지인 청년이 수집한 각종 코카콜라병 밑둥을 보여 주는데 그 곳에는 미국내에서 생산한 제조장소가 찍혀 있었다. 혹시 내가 사는 Virginia주에서 생산된 것이 있는지 물어보니 주별로 분류해 놓아 살펴보니 Portsmouth, VA라고 찍힌 코카콜라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여간, 박물관에 진열된 품목중 제일 많은 것이 깨어진 코카콜라병이다.


진열대에 전시된 수류탄과 포탄


진열된 군용 물자들

엉성하게 나무로 짜놓은 진열대에는 근처에서 수집해놓은 각종 군용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군용 나이프, 총탄, 숟가락, 일회용 면도기, Old Spice라는 남성 향수병(현재도 판매되는 유명 브랜드)등을 볼 수 있었다.



진열된 각종 포탄 껍질





    섬의 북부 해안도로를 타고


Efate 북부 해안 지도


Efate 순환도로 이정표

공짜 박물관 구경을 하고 북부 해안도로를 다시 달렸다. 이정표에서 보이는 Malafau와 Siviri 마을을 지나 길은 어느듯 호젓한 해안도로로 이어지고 있었다.


Efate 북부 해안 도로

마을로 들어서는 내리막 길위에서 차를 멈추고 경치를 보았다. 마을 뒤쪽으로 보이는 것은 다른 섬인듯 보였다. 마을을 둘러 싸고 있는 키큰 야자수가 눈에 쏙 들어왔다.



키 큰 야자수가 이곳 저곳에


키 큰 야자수가 길가에

유난히도 키가 크고 쭉쭉 뻗은 야자수가 마을 앞뒤로 서있었다. 남태평양 어느 작은 섬에서 이런 야자수를 바라보니 내가 일상적으로 지내던 곳으로부터 아주 멀리도 떠나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하면서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주변 경치에 흠뻑 젖었다. 마을을 지나는 동안 키 큰 야자수 숲은 계속 되었다.



다음 마을의 이정표가 보이고


이정표 마을 Emua, Paonangisu 부근의 지도


Emua 마을 부근의 해변 경치

마을 근처에 배를 댈 수 있는 선착장이 있어 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공터가 보여 차를 정차해놓고 해변가로 내려섰다. 선착장 끝에는 조그마한 어선이 출어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곳도 모래사장보다는 작은 돌맹이로 뒤덮인 해변으로 그곳에는 유난히도 물에 반쯤 잠긴 나무뿌리들이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었다. salt water에서 자라는 식물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데 어떤 나무뿌리인지 궁금하였다.



해변가에서 자라나고 있는 나무뿌리들


마을 Emua의 해변 경치


Emua 해변에서 바라본 두 섬

해변에 서서 멀리 바라보니 두 섬 사이로 바다로 빠져 나가는 물길이 보였다. 지도에 찾아보니 오른쪽 섬이 Pele Island이고 왼쪽 섬이 Waralapa Island라고 나와 있다. 멀리서 바라 본 두 섬은 섬전체를 울창하게 우거진 나무들로 옷을 입어 어디 한 곳도 허술하게 비워놓은 곳은 없었다.



마을 Emua 해변의 경치


마을 Takara 이정표


해변에서 바라보니 섬이 지척에 있는 것 같았다


해변에는 모래사장대신 작은 돌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해변가에 위치한 나무뿌리가 땅 깊숙히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지표면 위로 핏줄같이 드러나 있다


근처 해변 풍광으로 모래사장이 아닌 바위투성이다


Manua 초등학교 이정표


Manua 초등학교 교사

토요일 오후라 학교는 텅텅 비워 있었다. 학교 건물 벽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바누아투의 Efate섬이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 지도상에 표시하려고해도 매우 힘들 것이다. 거의 조그마한 점으로 밖에 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섬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세계지도는 무한한 꿈을 제공하는 원인 제공자가 되어 섬 밖으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바누아투의 소년 소녀들이여, 세계지도를 보고 큰 꿈을 가져라>라고 외쳐주고 싶었다.



학교내에 있는 야외 학습장같이 보이기도..,



   

   또 다른 World War II 박물관을 찾아서


길에 세워진 입간판을 보고

길을 가다 새로운 입간판을 보았다. 1944년에 내버려진 전투기 잔해를 볼 수 있다고 해서 도로에서 빠져 나와 샛길로 들어 섰다. 이게 진짜 이차 세계 대전 박물관일까?


  

전투기 잔해를 보러 가는 샛길

길은 자동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샛길로 이어져 있었다. 별다른 방향 표시도 없어 그냥 숲속 길을 따라 들어가 보았다. 한참을 샛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운전해서 들어 갔다.



빨랫줄에 걸어 논 옷들이

숲속에 사람들이 사는지 바람에 나부끼는 빨랫줄에 널린 옷들을 보았다. 샛길을 중앙에 두고 양쪽으로 철조망을 친 울타리가 길을 따라 이어져 있었다. 이런 곳에 박물관이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하였다. 그래도 차가 들어 갈 수 있는 곳까지 계속 차를 몰았다.


숲속으로 이어지는 길


미해병대 연료 보급소였다는 사인판

길을 잘못 들어 온건지 더 이상 들어갈 수가 없었다. 사유지인지 철조망으로 친 울타리가 길게 길을 막고 있고 소나 가축을 방목하는지 가축들의 배설물이 이곳 저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위 사진과 같이 녹쓴 쇠기둥 옆에 미해병대의 연료 보급소였다는 사인판만 홀로 서 있었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돌아 나와야만 하였다. 나와서 처음 입간판이 있는 곳으로 와보아도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별수없이 박물관을 접고 다시 Efate 순환도로로 올라 섰다.



마을 Takara 이정표


Takara 온천 Beachcomber 입간판

화산지대라 온천수가 솟아 나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지도를 보니 해변가로 한참을 내려 가야 하는 것 같아 망설이다 계속 ring road를 타고 올라 가기로 하였다. 아침부터 삼천포로 빠지다 보니 오늘 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섬일주를 마치기 힘들 것 같았다. 섬일주를 반드시 마쳐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가 떠 있어 밝을 때 섬의 풍광을 보고싶기 때문이다.



Ring road 해안도로가 지나가는 해변 풍광


강물이 흘러 내려와 바다로 들어간다

다리가 있어 다리위에서 내륙쪽으로 눈을 돌려 보니 청정한 강물이 흘러 내려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강 양쪽으로 울창한 수풀이 강을 따라 빼곡하게 들어 차있어 열대 우림지역같았다.


바다로 흘러 드는 강물


강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해변


바다로 열린 해변의 바위들

오랜 풍상에 잘 다듬어진 해변의 바위가 마치 바다로 들어가는 출입문처럼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었다. 바위 투성이 해변을 걸어 나와 바다로 나가는 문을 통해 큰바다로 나가고 싶었다. 마치 바다로 통하는 비상구(非常口)같았다



Emergency Exit to Ocean(비상구)

한국 가요중에 비상(飛上)이란 노래가 있는데 해변에 서서 비상구같은 바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 노래의 가사가 문득 머리에 떠 오른다. 나도 비상구(非常口)를 통해 먼 바다로 비상(飛上)하고 싶은 모양이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걱정에

  온통 내 자신을 가둬두었지.
  이젠 이런 내모습 나조차 불안해보여.

  어디부터 시작할지 몰라서


  나도 세상에 나가고 싶어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줘야 해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날고싶어>



Taka Castom Village 입간판



마을 Epau 이정표

북부 해안도로를 버리고 동부 해안도로로 내려가는 길에 마을 Epau가 있었다. 마을을 지날 때 부터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도로는 해안으로 이어지지 않고 내륙으로 들락날락하며 Port-Vila로 향하고 있었다. 곧 어둠이 사방을 덮어 버리자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쳐주는 도로의 앞쪽 부분만 식별할 수 있고 나머지 부분은 어디가 무엇인지 알아 볼 수도 없었다. 어둠이 내려 앉은 Efate 순환도로를 때때로 마을 주민들이 길 양쪽으로 걸어 가고 있었다.



Efate 섬의 동부 해안 도로


어둠속에 돌아온 남부 해안 도로

땅거미가 내려 앉기 시작한 Epau 마을부터 시작하여 칠흙같은 어둠속에 도착한 Port-Vila까지의 해안도로는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었다.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Port-Vila에 가까워지자 도로 노면상태가 좋지 않았다. 도로 이곳 저곳이 패여 길을 주시하여 조심스럽게 운전하지 않으면 길에 패인 웅덩이에 바퀴가 튀어 몸이 크게 요동치게 되어 속력을 크게 높일 수도 없었다. 저녁 8시경이 되어서야 호텔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결국 반쪽짜리 Efate Ring Road 일주를 마치게 되었다. 바누아투 여행이란게 Efate섬 순환도로를 차로 돌면서 찍은 해변 풍광 사진이 전부일 것 같다. 여행이란게 때로는 이처럼 몇 장의 사진말고는 남겨지는게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쓸쓸하기도 하고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먼 길을 떠나지 못해 안달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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