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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08. 2017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22

Tonga로 가는 길

2017년 6월4일 (일) 맑음 그리고 오후 한때 소나기


   통가로 가는 길


바누아투 --> 피지 --> 통가 여로

바누아투 다음 일정으로 통가로 이동해야 하는데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Port-Vila에서 바로 통가로 직행하는 연결편은 없고 다시 뉴칼레도니아로 나가던지, 아니면 피지를 거쳐 통가로 갈 수 있다. 피지로 다시 들어 가더라도 다행인게 다시 거쳐 가는 곳이 저번에 머물렀던 낭디(Nadi)가 아니고 수도 수바(Suva)로 가게 된다는 것이고, 바로 통가로 가는 뱅기가 없어 수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오후에 통가로 가야 하기에 수바에 있는 피지 국립 박물관을 구경할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태평양 여기저기에 널브러져 있는 여러 섬나라를 여행할 경우에는 주 교통편인 비행기 연결 방법을 여러 각도로 알아 보고 시간이나 비용등을 잘 고려해서 최적의 루트를 찾아 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바누아투 호텔 종업원들로 전형적인 멜리네시안이다

아침에 호텔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의 어제 찍은 사진을 프린트해주고 호텔을 나섰다. 어제 렌트한 차를 공항으로

return하니까 따로 공항가는 교통편을 염려할 필요는 없어서 좋았다. 항상 공항에서 시내로 들락 날락하는데 신경이 쓰이는게, 입국보다도 출국할 때 공항도착 시간에 맞추어 가려면 택시를 이용하면 편한데 먼 경우에는 요금이 만만찮고, 관광객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뜯어내려고 덤벼드는 택시기사와 실강이 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그러나, 오늘만은 렌트카로 공항에 반납을 해야 하니까 시간도 맞추어 출발할 수 있었고 택시를 이용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바누아투 Port-Vila 공항 면세점

공항내에 면세점이라고 상점 서너개가 문을 열고 있다. 그냥 한눈으로 훌터 보아도 눈을 끄는 상품들은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쳤다. 먼 길을 돌아 다니는 배낭 여행자들에게 또 하나의 금기 사항은 쓸데없는 물건을 사서 짐 무게를 늘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초보 배낭 여행시절에는 여행지의 각 박물관에서 책 욕심으로 사 모은 책을 짊어지고 다닌다고 땀깨나 흘린 추억이 있는데 그 때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던 것이었고, 지금은 배낭 무게를 늘리는 어설픈 짓거리는 과감하게 삼가하고 있다.



피지 Suva행 피지 항공기를 바누아투 Port-Vila에서 탑승


바누아투 Port-Vila 공항을 떠나며





  Suva의 국제공항 Nausori 공항


피지의 수도 Suva에 있는 Nausori 국제공항

두시간 남짓한 비행 끝에 피지의 수도 Suva에 있는 국제공항 나우쏘리(Nausori)에 도착하였다. 헤아려 보니 이것이 세번째 피지 입국이었다. 하와이에서 피지로 날아 간 것이 첫번째였고, West Samoa에서 피지로 들어간 것이 두번째였고, 오늘 입국이 세번째인 셈이다. 피지가 남태평양의 교통 요지임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피지로 들어가는 대부분 뱅기는 Suva가 아니고 낭디(Nadi)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Suva 공항시설이 열악하여 대형 비행기가 착륙할 수 없어 낭디 국제공항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여기 Suva도 국제공항이긴 하지만 연결편이 매우 제한적으로 피지의 진정한 국제공항은 Nadi(낭디)라고 해야 할 것이다.



피지 수바(Suva) 국제공항

무거운 배낭을 메고  공항 청사 밖으로 나오니 택시 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Suva에서는 호텔 예약을 하지 않았기에 어디로 딱히 가야할 곳도 없었다. 다만 내일 오전은 시간이 있어 Suva에 있는 피지 국립 박물관을 보려고 박물관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 배낭을 풀고 싶었다. 공항에서 Suva 시내까지 약 20km 상당히 떨어져 있어 택시나 버스를 타고 가야한다. 버스 정류소가 공항 안에 있지 않고 공항 밖에 있어 배낭을 메고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었다.



공항을 나가는 길

야자수가 가로수처럼 줄지어 서있는 길을 공항에서 한참을 걸어 나가서야 비로소 버스 정류장을 만날 수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한바탕 소나기를 퍼부울 작정이다. 정류장을 바로 몇 미터 앞에다 두고 빗방울이 들기 시작하였다. 다행히 정류장에 처마가 있어 비를 간신히 피할 수는 있었다. 잘 곳도 없는 배고픈 나그네에게 내리는 비는 좀 처량한 것이 아닌가? 다행히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버스를 탈 수 있어 비를 맞지않고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20km 떨어진 Suva 시내로 향하였다

나는 택시보다 버스를 타면 진짜로 멀리 떠나온 여행의 기분이 더 난다. 그리고 버스를 타서 보게되는 현지인들의 일상이 오래토록 기억에 남는 것 같기도 하였다. 결국 여행에서 남게되는 추억을 크게 보면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위대한 자연(때론 타지마할같은 인공적인 건축물도 포함되지만)의 풍광에서 느끼는 아름다움과 다른 하나는 현지인들의 일상을 잠깐 들여다 봄으로써 객관적으로 간직하게 되는 추억이다. 개별 성향으로 개개인이 느끼는 것도 다르겠지만 여행에서 결국 남게 되는 것은 그런 빛바랠 추억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일요일 Suva에 비가 내리고

버스 창가에 기대앉아 추근추근 비가 내려 촉촉하게 젖은 피지의 아스팔트를 바라보는 것이 나그네의 낭만인가?

한참을 달린 버스가 꽤 번잡한 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차하였다. Suva 부근의 큰 마을같았다. 다른 행선지의 버스를 갈아 타는 것으로 보아 교통의 분기점같기도 하였다. 지명을 찾아보니 나지누(Nasinu)라는 곳으로 수도 Suva의 위성도시 같은 곳이었다.



Suva 버스 터미널

40분 이상을 달려 바닷가 부근에 위치한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Suva에서 운행되는 모든 버스는 여기에서 출발하고 여기로 들어오는 종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또 다른 버스를 타기 위하여 줄을 서고 있었다. 버스 터미널의 전형적이고 바쁜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도 모르는 나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버스에서 내려 번화가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곧 거리엔 어둠이 찾아오고

아무도 아는 이도 없는, 어느 곳도 알지 못하는 낯설은 여행지에서 혼자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려 앉은 것처럼 목적지도 없이 배낭을 매고 거리를 배회하는 것이 퍽 익숙하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혼자서 배낭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고독한 여행자가 될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이 갖추어진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다. 약간은 쓸쓸하지만 그 외로움을 깡그리 깔아 뭉겔 수 있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넘쳐 나기 때문에 세계 어디라도 혼자서 길을 떠날 수 있다. 피지 수도

Suva의 버스 터미널 뒷길을 혼자 걸으면서 배낭 여행자의 궁색한 변명을 대변하여 당시의 심정을 토로한 것이다.



버스 터미널 근처의 거리 행상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내고


쇼윈도우에 전시된 인도 전통 의상들

Suva 시내에 전시된 인도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의 진열장이다. 이 나라 민족의 구성비가 원주민> 인도인>소수민족순으로 채 백만명도 안되는 전체 인구중 인도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40%이상으로 이들이 피지 경제계를 장악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의 인도인이 피지에 처음으로 들어 온 때가 1879년으로 당시 피지를 식민지로 통치하던 영국 정부가 사탕수수 농장에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려고 유입한 4만여명의 인도인이 시초였다. 피지 원주민보다 민첩하고 상술에 밝은 인도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경제계를 장악하는게 당연하여, 결국 굴러 들어온 인도돌이 박혀 있던 멜라네시안계 피지 원주민돌을 밀어내게 된 것이다.


전시된 화려한 인도 전통 의상들

그러나, 경제계를 장악한 인도인들이지만 정치계는 피지 원주민들이 유리하도록 선거제도나 경찰 정원수, 대학 입학 정원수 규정등을 마련하여 원주민들이 우세하도록 하다보니 인도 이민자들과 잦은 충돌이 발생한다고 한다.

경찰 정원수는 원주민>인도인>소수민족 순으로 정원수를 미리 규정하여 원주민 수가 많도록 되어있고, 대학 입학 정원수도 원주민과 인도인 비율이 동등하도록 되어있어 교육열이 월등한 인도인들이 대학교육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되어있고, 선거제도도 상하원 의원수를 원주민이 우세하도록 되어있어 집권당 총수도, 상하원 의장도 모두 원주민들이 선출되도록 되어있어 인도계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한다. 그런 사회 및 정치제도의 차별에 반발하듯이 인도인들은 경제적으로 성공하여 원주민들을 역차별하고 있는 듯하다.



Harbour Front 라 하는 건물?

Harbour Front라고 하는 대형 쇼핑몰이라고 한다. 이런 쇼핑몰도 앞에서 말한대로 인도계 이민자들이 대다수의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그들의 상술에 두 손을 들고 마는 민족이 있는데 인도인과 다른 하나는 중국인이다.



곧 거리에는 땅거미가 짙게 깔리기 시작하였다





    태권도 교관출신의 한국 영감님


오늘 저녁에 묵을 호텔을 찾아 보아야 하는데 가급적 내일 오전에 둘러 볼 피지 국립 박물관 근처에 있는 호텔에 묵고 싶었다. 여기가 어디쯤되는지 지도에서 찾아 보려고 근처에서 WiFi를 잡을만한 곳을 찾다가 맥도널드 가게가 보여 와이파이를 찾아 그곳으로 걸어 갔다. 기대와는 달리 WiFi가 없었다. 가게 밖에 비치된 테이블에 현지인 몇몇이 앉아 있었다. 그 중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일본계 동양인같이 보이는 영감님께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지도를 들이대며 영어로 물어 보았다. 뜻밖에도 한국인이었다. 둘 다 반가운 마음에서 조선말이 동시에 유창하게 흘러 나왔다.


피지로 약 20여년 전에 들어와서 피지 대통령 경호실의 태권도 교관으로 근무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영감님은 손전화를 꺼내 옛날에 교관시절에 대통령과 경호실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잘 나갔던 그 시절을 회상하는 듯하였다. 정확한 연세는 말하지 않았지만 곧 80세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하는 폼으로 미루어 볼 때 70대 후반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젊은이들은 나이를 깎아서 이야기하고 늙은이들은 역으로 반올림하여 말하는 경향이 있다). 운동을 오래해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정정하게 보였고 살도 별로 찌지 않은 호리호리한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금 뻥치게 들렸지만 영감님은 지금도 100m를 18초에 주파할 수 있다고 자랑하면서 웬만한 좀도둑이나 소매치기들은 자기 손아귀에 있다고 말하면서 나의 70-200mm렌즈가 달린 커다란 캐논 카메라를 가리키며 조심해서 들고 다니라고 충고하였다.


원래 나이가 들면 외로워지고 말수가 많아지는 법인가? 영감님은 줄기차게 말을 이어갔다. 내가 미국에서 거주한다고 하니 어느 지역인지 관심을 보였다. 영감님의 배우자와 자녀들도 미국에서 거주하는데 별로 연락을 하지 않고 피지에서 혼자 살고 있다고 하였다. 무슨 말을 못할 사연이라도 있는 듯하여 독거노인의 진한 외로움이 물씬 풍겼다. 그런 독거노인의 말상대(주로 들어주는 편으로)가 되어 피지에 살고있는 한인 교포들의 실상과 살아가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내일 오전에 피지 국립박물관을 찾기 쉽게 박물관 근처의 호텔을 알려 달라고 하였더니 고맙게도 영감님이 택시를 불러 박물관 근처 호텔까지 태워다 주며 택시비도 영감님이 먼저 지불하여 몇푼의 경비를 아낄 수 있었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영감님의 호의로 이국 타지 피지의 Suva에서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영감님, 건강하게 지내시다가 죽을 때까지 100m를 18초에 주파하세요.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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