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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Dec 14. 2017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23

통가(Tonga) 입성

06/05/2017 (월) 오전 피지 흐림, 오후 통가 쾌청



  피지 국립박물관 관람


피지 국립 박물관 입구

박물관 개관 시간인 9시에 맞추어 호텔 체크아웃하고 배낭을 매고 걸어 갔다. 어제 저녁 태권도 영감님이 잡아 준 호텔에서 박물관까지는 가까워서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걸어 갈만한 거리였다. 박물관은 잘 손질된 넓은 잔디 마당 한가운데에 단층 건물로 아담하게 세워져 있었다. 몇 푼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면서 플래쉬없이 실내 사진을 찍을 수 있는지 관리인에게 확인해 보니 찍을 수 있다고 해서 부지런히 똑딱이 카매라에 진열된 여러 자료를 담았다.



수도 Suva의 옛날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 전시하여 발전상을 전시해 놓았다

피지의 여러 부족들의 역사적인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사진과 유물들과 함께 전시해 놓았다. 주로 피지의 역사를 시간 순서대로 진열하였고, 그 중에서도 특히 피지의 수도인 Suva의 이 곳 저 곳을 예전(흑백사진)과  현재(칼러사진)의 사진을 비교 전시하여 그 발전상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고학적으로 본 피지인의 뿌리


Lapita 문화의 이동 경로

피지 본섬인 Viti Levu와 인근 섬에서 발견된 도자기 파편에서 새겨진 독특한 문양을 Lapita 문화라고 이름짓고 이런 도자기 문화를 전파한 피지의 선조를 Lapita인이라고 부르는데 약 32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와 비슷한 도자기류가 Vanuatu, New Caledonia, Solomon 제도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피지의 선조들은 약 3200년 전부터 솔로몬제도를 거쳐 남으로 이동한 Lapita인이라고 간주된다.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통가(Tonga)는 피지에 전래된 Lapita 문화가 그 후에 전래된 것이고 통가에 정착된 문화가 그 뒤 Samoa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피지 언어의 족보

현재 피지 언어의 뿌리는 약 5000여전의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및 마다가스카르계통의 proto-Austronesian로부터 시작하여 약 3000여년전 proto-central pacific에서 갈라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는 Lapita 문화의 전파와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셈이다.





  Fiji의 원시 종교


spirithouse 라고 부르는 신전

피지의 원시종교는 부족의 리더인 추장이나 주요 제사장들에 의해서 spirithouse(일종의 신전)라는 곳에서 신에게 제물을 올리는 것으로 Yaqona라고 한다. 이런 원시종교는 남태평양같이 여러 섬으로 분리되어 각 섬지역이나 부족에 의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원시종교가 형성되었다.



신성하게 숭배되어온 Sacred Stone

피지에서는 19세기까지 식인 풍습이 유행하였다고 한다. 특히, 쓸모없는 과부나 만성적으로 병을 않는 환자들을 죽여서 제물로 받쳤다고 한다. 이러한 식인풍습은 유럽에서 들어온 전도사들에게도 종종 행하여 기독교가 전파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기도 하였다.



식인풍습에 희생된 선교사 사진

피지의 Suva 박물관에는 특이하게도 식인관습에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선교사를 희생 제물로 삼은 유물이 몇 가지 전시되어 있었다. 다름아닌 끔찍한 유물은 선교사와 그의 집단을 살해해서 인육을 먹은 도구와 식기를 진열대 안에 전시해 놓았다. 살해한 도구와 피를 담은 나무로 만든 컵과 인육을 담은 나무 접시들이 썰렁하게 박물관 전시 유리관 안에 진열되어 있었다.


이러한 카니발리즘(식인풍습)에 대하여 일반적으로는 섬에 부족한 단백질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하여 행해졌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런 것 보다는 전투에서 승리한 부족장이 상대 부족의 우두머리를 (섬찟한 식인 풍습으로) 제압함으로써 권위와 복종을 위한 상징적인 의식에 불과하다는 것이 새로운 정설이다.





  Lali라고 부르는 Town Bell


Lali 라 부르는 나무 드럼

통나무를 잘라 속을 파내어 drum으로  초기 교회의 예배시간을 알리는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한 때는 우리의 종루처럼 매 시간마다 drum을 쳐서 시간을 알려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원양 항해가 가능한 돛단배 개량


전시되어 있는 개량된 돛단배

피지인들은 섬주변에 국한되지않고 원거리 항해를 가능하게 한 새로운 형태의 돛단배를 개발하였다. 종래의 단일 선체에 outrigger라고 부르는 다른 선체를 연결한 보조 선체를 붙여 배가 전복되는 것을 방지하고 선체위에 주거 면적을 넓혀 장기 항해에 적합하도록 배를 개량하였다.





  Beachcomber에도 등급이 있었다


18세기에 새로운 항해술이 발달하고 뱃길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피지 근해를 항해하던 배가 산호초에 좌초되어 난파된 선원이 섬에 상륙하기도 하였고, 피지에 정박한 선박으로부터 지리한 항해 생활에 이력이 난 선원들이 도망쳐서 피지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섬에 정착한 외국인을 통털어 비치코머라고 호칭하였다. 비치코머(beachcomber)의  원래 뜻은 배가 좌초되어 섬에 표류된 사람을 의미하였는데 나중에는 무슨 사연이나 이유로 섬에 정착한 외국인을 통털어 그렇게 불렀다. 초기에는 이들 외국인들은 개화된 선진 지식이나 특화된 기술로 섬 통치세력에 협력하여 미개한 섬주민을 지배하는 계층으로 분류되어 여러 현지 부인을 거느리고 일반 주민들 위에 군림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비치코머들에게도 출신지에 따라 그 등급이 정해졌다고 하는데


1. 미국인과 유럽인: 선진 과학지식으로 선두 자리

2. 뱅갈출신의 인도인:

3. 중국인과 아프리카 흑인:

4. 마닐라인과 폴리네시안인(타히티, 하와이, 마오리족): 순으로 그 등급이 정해졌다고 한다.





    피지섬의 주요 교역 품목


sandalwood: 1800-1820년 주요 교역품

피지섬에서 나는 sandalwood  수익을 남기게 되자 본격적으로 백단향(sandalwood) 교역을 위하여 외국 상선들이 피지로 구름같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상선의 주류가 영국 식민지로 정착되어 가던  호주 상선과 인도 캘커타에 본거지를  동인도회사 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  미국 코쟁이 Yankee 상인들이었다. 이런 sandalwood 교역은 1820 후에 새로운 교역품인 말린 해삼인 sea slug 출현하기 전까지 피지의 주요 수출품이었다.

sandalwood는 향이 많이 나는 향나무의 일종으로 남태평양 여러 섬에서 자생하는 식물이다.



채취한 해삼을 건조시키는 작업장 사진



Beche-de-mer(해삼)


불어인 beche-de-mer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우리가 좋아하는 해삼으로 18세기 피지에서 가장 수익이 좋은 교역품으로 주로 미국 상선들이 피지에서 수집하여 마닐라로 운송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냉장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피지에서 채취된 해삼을 삶아 말려서 건삼형태로 마닐라로 운반하였다고 한다. 건해삼 운반선 선장들이 섬의 유력한 추장들을 통하여 해삼을 채취하여 건조장에서 건조시켜 물량을 확보하여 교역을 활성화시켰다고 하는데 이 기간이 백단향(sandalwood) 교역이 거의 끝나는 1820년부터 1860년까지 성행하였다고 한다.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EEZ)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배타적 경제수역 지도

고래가 산란기나 새끼 양육을 위하여 남태평양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남태평양에 산재한 여러 섬나라 국가들이 고래 생태계 보호 목적으로 각나라별로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여 고래와 같은 해양 포유류의 보호 구역을 설정하여 놓고 있다.





  피지 목각 공예품들


나무로 조각된 여자 두상


나무를 깎아 만든 쟁반에 거북 문양의 그림이 조각되어 있다. 비슷한 제품을 박물관내 기념품점에서 팔고 있어 사고 싶은 품목이었다


배를 젖는 노같았다


노비슷한 것으로 옛날 피지인들이 쓰던 무기같았다


조개껍질을 갈아 만든 목걸이


조개껍질을 정교하게 다듬어 만든 돈이라고 한다


나무로 만든 빗




      FIJI의 옛 사진들

  

초기 정부의 수도 Levuka 모습으로 지금의 Suva가 되었다

피지 공화국의 최초의 정부형태가 1871년 출현하였다. Cakobau 정부로 약 4년 유지하다가 영국에 의해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태평양 여러 섬나라들의 역사를 뒤져보니 하나같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왔다. 16-17세기 항해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각자가 정착한 섬에서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서서히 옮겨 가면서 비록 아랫도리 주요 부분만 가리고 현대적 문명 혜택없이 살아 왔지만 - 외세의 간섭없이 그들만의 전통방식으로 행복한 삶을 유지해 왔지만(행복이 꼭 문명의 혜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측면에서) - 항해술이 발달하여 뱃길이 알려지자 유럽의 열강들이 미지의 영토를 개척하기 위하여 태평양 여러 섬나라들을 개척하기 시작하여 하나 둘씩 그들의 식민지로써 속국으로 넘어 가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섬나라의 부족사회가 걸출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작은 왕국을 거치면서 19세기 외세의 침입내지 열강들의 식민지 속국으로 억압을 받아 오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후 독립을 쟁취하여 오늘에 이르러고 있는 것이다.



영국 식민지하의 피지


전통의상으로 치장한 피지 원주민들


주요 부위만 가리고 살았던 피지 원주민들


요새 눈으로 보아도 첨단 패션으로 치장한 피지 원주민





  오후 뱅기로 통가로 이동


Suva 공항 대합실

박물관 구경을 마치고 부랴부랴 Suva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늦지않도록 이번에는 택시를 이용하였다. 버스처럼 중간 중간 정차하지 않기 때문에 단숨에 시간을 맞추어 공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통가가는 길에 발견한 무인도

피지 수바를 떠난 뱅기는 짙은 구름이 깔린 남태평양 상공을 비행하여 통가로 향하였다. 희끗희끗한 구름 사이로 푸른 바다가 간혹 보이기도 하였다.  창가에 앉아 호시탐탐 약탈을 노리는 오랑캐처럼 오늘도 창가 자리에 앉아 카매라를 손에 들고 창밖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통가로 가까이  어느  망망한 대해에서 섬을 발견하여   사진을 남겼다. 무인도같은 섬이라도 오랜 항해중에 발견한 육지나 섬같이 무척이나 반갑기만 하였다.


조그마한 섬 주위로 형성된 산호초에 파도가 부서져 하얀띠를 선명하게 남기고, 섬 주변의 바닷물 색이 완연하게 다르게 투명한 남색이다. 구름이 걷히고 태양이 눈부시게 내리쬐여 선명하게 보여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마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을성 싶은 그런 조그마한 섬이었다.



통가 Fua'amotu 국제공항

공항에 도착해보니 섬사이즈 수준에 맞는 그런 공항크기다. 이민국과 세관 통관  나가서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여긴 진짜로 시내로 나가는 버스는 없다고 한다. 공공 버스가 없으면 공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출퇴근하는지 몹시 궁금해서 물어보니 차편을 share 해서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Car Rental 오피스가 하나 있는데 겨우 오후 3 반인데 문을 걸어 잠그고 퇴근한  같다. 결국 공항을 나서자마자 처음부터 나를 따라붙는 몸체구가 일본 쓰모 씨름선수만한 택시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시내로 향하였다.



통가 왕국의 약도로 크게 5그룹의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도는  제일 큰 섬인 Tongatapu에 위치하고 있다

택시를 가면서 먼저 Tonga 정확한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니 통아라고 한다. 통가는 잘못된 발음이라는 것이다.  176개의 크고 작은 섬이 통아에 속하는데   37 정도의 섬에 사람이 살고 나머지는 무인도란다. 인구는 고작 10만명정도로 1970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입헌군주국으로 통아왕이 있는 왕국이다.  년전에 어디서  기억이 있어 통아가 히말라야 산자락에 있는 불교국가 부탄처럼 행복지수로 세계 1위에 오른 적이 있었음을 운전기사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사실을 알고 있냐고. 그랬더니 무엇이 1위인지 그것은  모르겠고 하나 확실한 것은 섬에 먹을 것이 풍부하여 통아 국민들 중에는 배가 고파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삶의 기본조건이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여긴 더운 지역이니 옷은 별로 필요없고 야자수등 열대나무가 많으니 집지을 재목도 널려 있다고 보면 되니 배만 충분히 채울 수만 있다면 그냥 행복하다고   있는 모양이다.



왕궁이 있는 본섬 Tongatapu


하늘에서 본 통가 본섬 Tongatapu

뱅기가 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기 전에 하늘에서 바라본 통가의 본섬 Tongatapu로 사진에 보이는 물은 호수가 아니고 바다 물길이 섬 깊숙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해가 구름에 파묻혀 빛이 거의 없다. 옅은 구름 사이에서 겨우 삐져나온 한줄기 햇살이 내려 앉은 바다 표면이 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통가 수도 Nuku'alofa 시내 약도




  차를 렌트하여 섬일주


통가 수도 Nuku'alofa 시내 약도

시내로 들어 가면서 기사에게 차를 렌트할 수 있는 곳이 공항말고 다른 곳이 있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아는 곳이 두서너군데 있다고 하여 그리로 우선 찾아 갔다. 두 곳을 갔으나 한 곳은 문을 닫았고 다른 한 곳은 렌트할 차가 없어 할 수없이 예약된 호텔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문을 닫은 Sunshine Rental 사무실

일단 호텔로 가서 배낭을 풀었다. 다행히 호텔에서도 렌트차량을 몇 대 가지고 있어 투숙객들에게 대여하고 있어 꼭 공항에서 차를 렌트하지 않아도 호텔이나 시내에서 렌트할 수 있는 것이 남태평양 여러 섬들에서의 특징이었다. 지금은 관광 성수기도 아닐뿐더러 Tonga를 찾는 관광객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호텔 방도 남아 돌아가고 렌트 차량도 여분이 있는 것 같았다.


호텔에서 렌트한 렌트카

차를 렌트하고 바로 섬을 돌아 보려고 길을 나섰다. 호텔에서 주는 관광지도만 달랑 들고 호텔이 위치하고 있는 Vuna road를 따라 해변가를 달렸다.


Tonga Cook Island 가는 길에 잠시 거쳐가는 여정이기에 오늘 하룻밤만 자고 내일 저녁 뱅기로 Cook Island 떠나야 하기에 오늘 오후의 짜투리 시간과 내일 온하루로 Tonga 본섬만 둘러 보아야 하기에 서둘러 해변도로를 달리는 이유다. Tonga 섬에 무슨 구경거리가 있는지 이제부터  눈으로 확인해  시간이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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