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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Mar 25. 2018

지노 배낭여행기 - 남태평양편 24

통가 본섬 일주

2017년 6월6일 (화) 맑음


왕궁이 있는 통가 본섬 Tongatapu 지도




Vuna Road를 달리다


북부 해변가를 끼고 달리는 Vuna Rd에 왕궁이 있다

택시를 타고 몇군데 가 본 차렌트 회사에서는 빈손으로 허탕치고 바로 호텔에 첵인하여 배낭을 풀고 호텔에서 차를 렌트해서 오후 늦게 해가 살아있는 동안에 섬을 돌아 보기로 했다. 확대한 위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Vuna Rd가 해안을 끼고 섬 북쪽에 동서로 길게 나있다. 지도를 보니 왕궁도 Vuna Rd에 위치하고 있고 다른 섬으로 가는 배 터미날도 Vuna Wharf(부두)에 있는 것 같았다. 호텔도 Vuna Rd 선상에 위치하여 있기에 먼저 Vuna Rd를 달렸다.


Vuna Rd 끝에 위치한 해안 풍경

지도에서 보이는 Vuna Rd를 따라 서쪽으로 조금 가다보니 도로가 막혔다. 도로 끝에 차를 세워 놓고 해안가로 내려가 보았다. 모래사장이 있는 해변이 아니고 돌박으로 이어진 해안이었다. 그래도 맑은 바다를 끼고 있는 해안이라 경치는 수려한 편이었다.


해안가 돌방구 위로 무성하게 자란 수목들

돌방구로 뒤덮인 해안을 조금 올라가 보아도 별다른 풍광은 없었다. 숲속으로 난 길 뒤쪽에 현지인 십대 서너명이 모여 boom box를 틀어 놓고 춤을 추며 놀고 있었다. 통가 젊은이들의 취재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돌아섰다. 무거운 카매라를 든 내 처지도 그렇고, 대낮이긴 해도 인적도 없는 너무나 외진 해변가라 혹시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안전을 위해 몸을 도사린 처사였다. 해안 풍경 사진을 몇장 훔친뒤 파킹해 놓은 차로 바로 돌아가서 Vuna Rd 반대편으로 달렸다.




   통가 왕궁을 찍고


Vuna Rd 선상에 자리잡은 왕궁

길이 끝난 Vuna Rd 서쪽에서 이번에는 동쪽으로 길을 달렸다. 왕궁이 Vuna Rd 선상에 위치하여 길을 막아 길이 ㄷ자로 왕궁을 뒤로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왕궁은 철책 울타리로 경계를 만들어 놓아 외부와 차단시켜 놓았지만 차로 지나 가며 왕궁 안뜰을 볼 수 있었다. 차를 여유가 넉넉한 갓길에 세워놓고 내려서 카매라를 철책 안으로 밀어 넣어 마치 경계가 없는 것처럼 해서 왕궁 사진을 찍었다. 왕궁 외곽을 경비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아 임금님이 사는 곳인지 의심스러울만큼 조용한 궁궐이었다. 1867년에 완성된 영국 빅토리안 스타일의 건물로 관광객이나 방문객들에게는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 그냥 나처럼 철책 밖에서 사진이나 담아 오는 수 밖에 없다.


왕궁 중앙탑에 게양된 깃발로 통가 국기는 아니고 왕가를 상징하는듯 싶다

영국과 같은 입헌군주국으로 임금님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1616년 통가를 처음으로 발견한 유럽인은 네덜런드인으로 그후 항해가이자 탐험가인 네덜런드인 Abel Tasman(1603-1659)이 1645년경 남태평양을 항해하다 발견하여 상륙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향신료 무역에만 열중하였던 네덜란드인들의 무관심속에 Abel이 상륙한 통가는 방치되었다가 약 130년 뒤인 1773년에 이 섬에 상륙한 제임스쿡 선장에 의해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시작하여 영국의 보호아래 자치 왕국으로 체제를 유지하다 1970년에야 영국으로부터 완전 독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통가왕국의 역사는 AD 950년경 근처의 여러 섬을 통일하여 강력한 왕국으로 출발하였다고 한다.


왕궁 담 위에 놓여진 문양(Emblem)





  Abel Tasman의 이름이 새겨진 뉴질랜드


Abel Tasman(1603-1659)

1642-43년 남태평양 항해를 하던 네덜란드인 Abel Tasman이 현재의 호주의 남쪽 섬인 Tasmania를 발견하였고 뉴질랜드를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그리하여 뉴질랜드 남섬에는 그를 기념하여 Abel Tasman 국립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뉴질랜드편 여행기에서도 소개하였던 Abel Tasman 국립공원이 이 탐험가를 기념하기 위하여 남섬 북쪽에 아름다운 바닷가를 끼고 조성되어 있다.



뉴질랜드 남섬 서북부의 Tasman bay를 끼고 있는 Abel Tasman 국립공원지도로 북섬 Wellington에서 페리보트를 타고 남섬 Picton에 내려서 차로 Nelson 시를 지나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Abel Tasman 국립공원 지도

이 국립공원은 뉴질랜드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공원이다. 그러나, 온화한 기후와 금색빛 백사장을 자랑하며 백사장을 둘러싼 울창한 숲으로 많은 사람을 끌어 모은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찾는 트레킹코스는 COAST TRACK으로  해안길을 따라 가는 약 51KM(32 MILE) 짜리 트레킹코스이다(녹색선 코스).


국립공원 입간판

2014년 11월 아들을 데리고 뉴질랜드 배낭여행시 북섬에서 페리보트를 타고 남섬으로 건너가서 차를 렌트하여 이 Abel Tasman 국립공원을 방문할 적에는 Mr. Tasman이 그저 유명한 사람쯤되거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통가에 와서 그의 이름을 다시 보고 확인해보니 통가와 뉴질랜드등 남태평양을 탐험한 유명한 네덜란드인인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여기 통가 본섬에도 17세기에 남태평양 탐험시 아벨 타즈맨이 처음으로 통가에 상륙한 지점을 역사적인 장소로 지정하여 놓았다.


Abel Tasman이 최초로 통가에 상륙한 장소를 역사적인                              사이트로 정해 놓았다

이정표에서 Abel Tasman이 처음으로 상륙한 지점이라고 표시된 곳은 섬 왼쪽에서 위쪽으로 올라간 끄트머리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 곳을 보기위해 차로 열심히 달려갔다.


Abel Tasman이 상륙한 북쪽의 landing site


Abel Tasman 일행이 상륙한 지점을 기념한 표지석

역사의 현장을 찾아 헤매는 탐험가처럼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북쪽으로 난 길을 끝까지 달렸다. 해안에 접한 북쪽 어느지점에 표지석을 세워 놓았다. 철책 난간을 세우고 중간에 지표석을 세운 저 곳이 1645년 Abel Tasman 일행이 남태평양을 항해하던 중 처음으로 통가 본섬에 발을 디딘 그 역사적인 현장이다.



도로도 아닌 이면 샛길로 들어섰다가 포기하였다

북쪽 해안에 설치된 Abel Tasman이 상륙한 지점을 확인하고 돌아 서는데 바로 옆에 숲속으로 길게 이어진 오솔길이 있어 차들이 들어간 흔적을 보고 저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여( 나딴에는 해변으로 이어진 멋진 바다풍경을 기대하였다) 차를 협소한 그 오솔길로 몰고 들어갔다. 한참을 좁은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는데 곧 키가 높게 자란 나무들이 오솔길 중간으로 솟아나 있어 더 이상 들어갈 수 가 없었다. 차에 내려서 걸어서 가 보려고 했지만 그 오솔길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지도에도 없는 이 오솔길로 내가 왜 들어 섰는지, 이런 외지에서 차량에 문제라도 생기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련지도 모른면서 막연한 호기심에 이끌려 오솔길로 들어선 것을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반성하는 마음으로 내려서 사진으로 남겼다.  통제할 수 없는 나의 이런 무모한 호기심이 언젠가는 나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뜨렬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이 가슴으로 엄습해 왔다.


그런 호기심으로 재미없는 세상을 헤치고 살아 온 날들이 많았다. 때로는 그런 미지에 대한 갈망으로 인하여 생긴 호기심이 인생을 살아 가는데 촉매제로써 역활을 할 때도 있었다. 호기심이나 그것을 찾아가는 꿈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지리한 일상이란 강물속에서 허우적거릴 때 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 된다는 것을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증명된 사실이다. 그러나,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호기심이 때로는 인생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을 수도 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감을 잡기도 하였다.





    풍운아 쿡선장의 Landing Place


태평양의 풍운아라고 할만한 James Cook(1728-1779)은 생전에 3차에 걸쳐 태평양을 탐험하여 그의 이름을 남태평양 여러 섬에 남겼다. 태평양 항로를 개척하여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를 비롯하여 여러 남태평양 섬과 현재의 북미대륙의 베링해협까지 탐사를 하여 당시로서는 전대미문의 태평양 항해항로를 개척하여 그의 이름을 뚜렷이 항해사에 남겼다.


쿡선장이 처음으로 상륙한 장소

쿡선장이 위 지점에 상륙한 때가 1774년 2차 항해한 때로 1645년 통가를 처음으로 발견한 화란인

Abel Tasman보다 무려 130여년 후의 일이었다.

Abel Tasman은 북부 해안에 상륙한 반면 쿡선장은 내만으로 깊숙히 들어온 해안에 상륙하였다.


쿡선장이 상륙한 landing site

쿡선장이 상륙한 곳은 내만으로 깊숙하게 들어 온 곳으로 썰물시에는 갯펄이 훤하게 드러내보이는 곳이다. 몇 백년전하고는 주변 환경이 많이 변했을 것 같지만 대형 선박이 들어오기는 수심이 얕아, 상륙시에는 본선은 바깥쪽에 정박시켜 놓고 상륙은 작은 보트로 노를 저어 이곳으로 올라 온 것 같았다.


쿡선장이 상륙한 지점에 세워논 기념품점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Mount Cook 국립공원

뉴질랜드 곳곳에 쿡선장을 기념하여 뉴질랜드 여러 지명에 그의 이름을 남기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곳은 남섬에 있는 만년설이 덮여있는 Mount Cook 국립공원으로 뉴질랜드 국내는 물론 전세계로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북섬과 남섬 사이에 놓여있는 청정 바다를 쿡해협이라고 부르고 있다.


Cook 선장 상륙 site로 가는 길에서 만난 좌판대로 구근식물을 파는데          생전 처음보는 뿌리라서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버스 터미날같은 주차장


통가 시내버스 터미널로 추정되는 곳

왕궁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Vuna road를 왕궁뒤로 ㄷ자처럼 돌아서 다시 바닷가로 난 길을 따라 나오니 위사진처럼 버스가 몇 대 정차해 있는 넓은 공터를 만났다. 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보아하니 버스 종점같은 분위기인데 손님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 넓은 광장에는 키큰 야자수들만이 푸르고 맑은 하늘위로 솟아 있었다.


종점에 정차된 통가섬 버스들




   Vuna Wharf(부두)로


Vuna 부두 전경

해안가에 넓게 조성된 버스 터미널을 지나면 바로 Vuna 부두가를 만난다. 방파제를 좌우로 쌓아 배가 들락거릴 입구만 빼꼼하게 열어 놓았다. 대형 크루즈 유람선도 정박할 수 있고 여기에서 통가 본섬 근처에 있는 섬으로 가는 페리보트도 연결된다.


부두에 정박된 세일보트

남태평양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나라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교통수단의 하나가 바로 세일보트이다. 섬과 섬을 연결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뱅기이지만 그건 여행이란 개념보다는 비지니스 출장가는 것 같았다. 푸른 바다를 바람에 의지하여 이리저리 돌아 다니는 세일보트야 말로 진정한 여행의 올바른 방법같았다.


  

피지 앞바다인 마마누카제도에 떠 있는 세일보트


남태평양 바다에서 딩기를 뒤에 달고 정박하고 있는 세일보트


뉴칼레도니아 수도 누메아의 모젤만에 정박된 세일보트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정박된 세일보트


통가본섬 Tongatapu Vuna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선박들





  애완동물(Pet)처럼 키우는 통가섬 돼지


어미 돼지를 따라 가는 돼지 새끼들

차를 타고 통가섬의 마을을 지나는데 길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차길이 마을 중앙으로 나 있었다. 길 한쪽으로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조그마한 강아지같은 크기의 물체들이 눈길을 잡았다. 첨에는 집에서 기르는 작은 강아지인줄 알았다. 근데 나중에 커다란 젖통을 좌우로 출렁이며 코를 땅에 박고 먹이를 찾는 암퇘지를 쫄쫄 따라 다니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들이 강아지가 아니고 돼지 새끼인 줄 알았다. 섬에서는 돼지를 우리에 가둬 사육하는 것이 아니고 이렇게 놓아서 방목하여 기르고 있었다.


낮잠을 즐기는 돼지 새끼들

2011년에 쿠바를 배낭여행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이렇게 돼지를 방목하여 키우고 있었다. 그 당시에는, 쿠바가 원래 가난하여 사람먹을 것도 부족한데 짐승한테 돌아 갈 먹이가 없어 저렇게 풀어 놓아 배를 채우게 하는가보다라고 생각하였는데 통가에서도 똑같이 방목하여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니 섬에서는 이런 사육 방법이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


통가 꿈나무들

귀여운 돼지새끼를 사진 찍으려고 차에서 내려 마을을 걸어 가다가 이방인을 보고 신기해하는 꼬마들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카매라를 들여댔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웃을 줄 아는 꼬마들의 표정을 보니 내 마음이 온통 싱그러움으로 가득 찼다. 영국시인 Wiliiam Wordsworth가 그의 시 Rainbow에서 읖조렸듯이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구절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Blowhole을 찾아


Blow Hole이 있는 본섬 서남부 해안

지도를 보니 해변에 Blow Hole이 있다고 나와 있어 지나가는 길이라 들렀다. Blow Hole을 조선말로 풀어쓰면  <빨아들여 뿜어내는 구멍>정도로 할 수 있겠다. 세찬 파도로 해안바위가 침식되어 커다란 구멍이 생기면 이 구멍으로 많은 양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갑자기 수압이 높아지면 바위 위로 뚤린 구멍으로 물기둥이 세차게 솟아 오른다.


하와이섬 중에 주도 Honolulu가  있는 오하우섬의 동북부 해안에 이와 같은 Blow Hole이 있다. 이름이 Halona 빨구(빨아 들이는 구멍)로 아래 사진처럼 전망대에서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오허우섬에 있는 Halona Blowhole


Halona Blowhole

오하우섬 Halona Blowhole은 내가 볼 적에는 파도가 세지 않아 수압이 약한지 구멍으로 분출되는 물기둥이 약해 별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통가 본섬 해안에서 만난 blow hole은 제대로 이름값을 하는 것 같았다.


Blowhole 전망대에서 바라본 세찬 파도

통가 본섬에 있는 Blowhole은 위 지도에 보이는 것처럼 Liku road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다 마을에서 좌회전하여 조금 들어가면 바닷가 쪽으로 철책을 친 전망대 파킹장에 다다른다. 차를 파킹할 수 있는 넉넉한 자리에 위에서 아래로 조망할 수 있도록 평평한 전망대가 있다. 평일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나말고 현지인같은 젊은 남녀 한 쌍이 나랑 차를 막 대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Bliwhole 해안

남태평양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밀어내는 파도에 해안 암석들이 무수하게 두들겨 맞아 패일대로 패여 여기저기에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속으로 집채만한 파도가 몸을 던지면 하얀 포말이 일제히 하늘에서 춤을 춘다. 이쪽 해안선이 바람을 직접 받는 지역으로 해안선 전체가 그런 깨어지는 하얀 포말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쪽 해안선 전체가 blowhole 이었다



암석에 깨어지는 하얀 포말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해안선의 풍경이 장관이었다. 바위를 뒤덮는 바닷물의 크기가 엄청난 것이었다. 그렇게 넘실대는 커다란 파도물결이 한두번 바람따라 춤을 추다가 마지막에는 거대한 몸을 내던져 바위에 충돌하면 사진처럼 하얀 포말들이 공중으로 흩어지는데, 마치 거대한 물탱크를 바위 위로 일시에 부어 버리는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촬영한 통가 해안의 blowhole




   'Anahulu Cave(석회침식동굴)


쿡선장 landing site 아래쪽 해안에 위치한다

석회동굴로 위 지도에서처럼 동부 해안가에 있어 통가 본섬에서는 특별히 구경할 곳도 별로 없어서 차를 그쪽으로 몰았다.


동굴 안내판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는 표지판부터 통가의 관광 인프라 실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허접한 판자에 칠한 페인트가 세월의 무상함에 분풀이라도 하듯 벌떡 벌떡 일어서고 있었다. 입간판의 형태로 보아서는 으시시하고 무시무시한 천년 동굴의 아가리로 들어 가는 것 같았다.


길 안으로 들어서니 조그마한 주차공간이 있었다. 내가 입구로 들어서자 나무로 지은 방갈로같은 오두막에 누워있던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 멀리서 온 관광객을 맞았다. 무료 관광지는 아니었고 입장료를 징수하였다. 돈을 받고 난 관리인 청년은 동굴로 내려가는 길을 내게 일러주고 부리나케 뒤쪽으로 달려가서 전기 발전기를 돌렸다.


석회 동굴 속에 있는 맑은 물웅덩이 모습

동굴은 해안으로 내려 가는 비탈길을 따라 가면 입구에 다다른다. 동굴 속은 빛이 통하지 않아 매우 컴컴하였으나 관리인 청년이 돌린 발전기가 동굴 중간에 설치된 희미한 형광등에 불을 밝혀 주어 겨우 한발 한발 내디뎌 아래로 내려 갈 수 있었다. 동굴 폭은 길지는 않고 수직으로 내려가면 맑은 물이 고여있는 커다란 물웅덩이를 만나게 된다. 이 물웅덩이가 이 곳의 유명한 풀장이라고 하며 수영을 할 수 있다고 저녁에 만난 한국식당 바깥 주인양반이 알려 주었다.


동굴 내부의 종유석

동굴 내부 모습은 석회 동굴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종유석으로 가득하였다. 유명 석회동굴에서 볼 수 있는 넓은 광장은 볼 수 없고 내부 폭이 협소하다는 느낌이었다. 유명 석회동굴 내부에는 각종 원색의 조명등으로 기묘한 종유석을 비추어 화려하게 장식을 해놓았지만 여긴 그런 화려함은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그냥 한번 둘러보고 동굴 내부 사진만 몇장 훔치고 돌아 섰다.





  한국식당을 찾아서


통가 본섬에 있는 한국식당 Frangipani

호텔 카운터에서 일하는 현지인(이름이 Beauty라고 해서 우리말로 이쁜이라고 부르자. 결혼한지 6개월된 새댁으로몸이 퉁퉁한 통가 원주민이다) 으로부터 통가 본섬에 한국식당이 두 군데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이쁜이가 알려주는 약도를 들고 저녁을 해결하러 차를 운전해서 길을 나섰다. 이쁜이 근무시간만 아니었더라면 같이 나가서 좋아한다는 한식으로 저녁이라도 한끼 사줄 수도 있었는데.....


처음으로 찾아간 한국식당은 불이 끄져 있어 영업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두번째로 찾아 간 식당이 위 사진의 한국 식당으로 Frangipany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한국식당이었다. 이역만리 남태평양 섬 통가에서 한국식당을 찾으리라곤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기에 새로운 기분으로 식당으로 들어섰다.


원양 어선을 타다 내렸는지 주인 내외는 통가에 정착한지 25년이 되었단다. 아들과 딸이 통가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에서 대학을 나와 아들은 현재 스위스 제네바에서 공학박사 과정중이고 작년에 독일 여자를 며느리로 맞아들였고, 누나가 되는 딸은 대학을 마치고 유럽에서 일하다 얼마전에 서울로 자리를 옮겼다고 하니 통가에서 밥장사해서 자식농사는 잘 지은 것 같았다. 현재 통가에 한국 교포는 총 10명으로 4명은 자영업인 한국식당을 하고 나머지는 선교사로 체류하고 있다고 한다. 통가가 지리적으로 남태평양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간혹 세일보트를 타고 타히티,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통가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세일보트로 통가로 들어 온 한국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단다.


저녁을 먹고나서 주인장 내외와 한참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데 호텔에서 뷰티가 전화를 걸어 왔다. 공항에 갈 시간인데 서둘러야 한다고 하기에 주인장 내외와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식당을 떠났다.





    통가에서 쿡아일랜드로


피지 - 통가 - 오클랜드 - 쿡아일랜드  - 타히티 여정

지도를 보면 통가에서 다음 여행지 쿡아일랜드로 바로 가는 것이 직선거리로 매우 가깝다. 그러나, 아쉽게도 통가에서 쿡아일랜드가는 직항 노선이 없다. 그래서, 통가에서 오클랜드로 가서 그곳에서 쿡아일랜드 뱅기로 갈아 타야한다. 거리를 눈으로 대략 짐작해서 보아도 엄청 먼 거리다. 통가에서 오클랜드까지 거리는 1238마일(1992km)로 뱅기로 약 3시간 소요된다. 그리고, 오클랜드에서 쿡아일랜드까지는 약 1885마일(3015km) 떨어져 있다. 이에 비해 통가에서 쿡아이랜드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1000마일(1600km)로 통가에서 오클랜드가는 것보다도 훨씬 짧은데도 불구하고 직항편이 없어서 오클랜드로 둘러 가야 하다니 효과적인 여정이 아니었다.


오늘 저녁 9:10분 뱅기로 통가 누쿠알로파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거쳐 쿡아일랜드의 수도 라로통가(Rarotonga) 로 날아가는데 문제는 통가에서 바로 쿡아일랜드로 가는 뱅기편이 없어 뉴질랜드 오클랜드를 경유해서 가야 하는데, 오클랜드에서 무려 17시간을 layover 해야한다. 별수없이 그렇게 해야 하기에 틈틈이 여행기나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통가본섬 Tongatapu의 이곳 저곳


하늘에서 본 통가 본섬

통가 본섬 Tongatapu에 착륙하기 직전에 뱅기에서 내려다 본 북부 해안으로 지도에서 처럼 내만으로 깊숙이 들어온 물길이 언뜻보기에는 호수처럼 펼처져 있었다.


물이 빠진 통가 해안지대


해안지대에서 자생하는 나무 맹그루브


통가 본섬의 북부 해안지대

통가 본섬을 차로 한바퀴 둘러 보아도 모래사장이 있은 해안보다는 돌박으로 형성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안 전체가 전부 암석지대는 아니고 모래사장이 있는 비치도 몇군데 있었다.


썰물 때의 바닷가


썰물때의 바닷가

바닷물이 빠져나간 해안에는 물밑에 숨어있던 돌바닥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잠시 하늘을 덮은 구름 아래의 바다풍경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이기도 하였다. 지척에 놓여있는 작은 섬들의 형태를 보여주는 맹그루브숲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통가 해안의 파노라마 사진

여러 장을 합성하여 북부 내만의 풍경을 얻었다. 호수처럼보이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고 바다에서 육지 안쪽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물길이 원형을 이루는 해안에 둘러싸여 그렇게 호수처럼 보일 뿐이다.


어느 초등학교의 위생교육

학생들이 선생님 동작에 따라 칫솔로 이딲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구강 위생교육 시간인지 올망쫄망한 남녀 학생들이 모두 모여 실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통가 공동 묘지 전경

길을 가다 공동묘지의 풍경이 예사스럽지 않아 차에서 내려 둘러 보았다. 묘지를 직사각형 틀을 만들어 비석을 세우고 검은 화산재 잔돌로 덮고 꽃과 휘장등으로 장식하여 놓았다. 한눈으로 보아도 요란스러운 치장들이 많았는데 어떤 무덤에는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플랭카드에 무덤 주인의 사진과 추모하는 글귀를 새겨넣어 무덤 옆에 세워 놓아 마치 무슨 선거운동의 유세현장 같기도 하였다.


통가의 빈 하늘

여러 곳을 돌아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통가 본섬인 Tongatapu도 잠시 지나가는 곳의 일부분이었다. 여기에서 특별히 보아야 할 곳도 없고 특별히 본 것도 없었다.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나라 통가 사람들이 그렇게 일상을 죽이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의 현장을 잠깐 훔쳐 보았을 뿐이었다. 한때 행복지수 세계 1위였다는 통가에서 사는 국민들이 그렇게 행복스럽게 살고 있는지 어떤지 확인해볼 방법도 없지만, 사람사는게 기본적으로 의.식.주만 해결되면 행복한 것인지 그것조차도 알 수 없기에 과연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에 기준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 여러 이견이 많을 것 같다. 그런건 다 차지하더라도 현재의 나에게 물어 보거늘 - 지노는 통가를 보고나니 행복하냐?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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