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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Oct 30. 2019

지노 배낭여행기 - Atlantic Canada편 3

Burin 반도를 한 바퀴 돌아서

2011년 6월 1일(화) 맑음

어제 달린 여정은 빨간색, 오늘 둘러본 여정은 녹색선으로 Burin 반도의 끄트머리를 한바퀴 돈 셈이다

오늘은 어제 묵었던  Marystown을 출발하여 프랑스령 섬으로 가는 페리보트가 있는 Fortune 마을로 향했다. 이제는 내려가니까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간다. 어제 아침부터 쭉 보아온 바닷가 경치가 서로 비슷하다. 캐나다 국립공원에서 캠핑해 보려고 가스버너, 코펠과 마른 부식거리를 토론토에서 장만했는데 세인트 존스행 뱅기타고 나서야 아차 했는데 쌀을 얻어 온다는 것을 깜박해 버렸다. 그래서, 미국 체인 대형 슈퍼마켓인 K Mart가 있길래 쌀을 찾아보니 한국 쌀은 없고 중국인이나 필리핀, 베트남인들이 먹는 찰기가 없이 푸석한 long grain(보통 알랑미라고 하는데 안남미를 지칭하는 말이다) 밖에 없어 우선 한번 사서 내일 밥이나 한번 지어먹어 보아야겠다. 미국에 있는 중국집에서 알랑미 밥을 많이 먹어봤는데 배고프면 밥맛도 날 것이라고 믿는다.



Fortune 마을 입간판이 먼저 반긴다

세인트 피에르(St. Pierre) - 미퀘롱(Miquelon)가는  관문(gayeway)인 Fortune 마을로 가는 길 안내판이 먼저 반긴다. 인구 천오백 명의 이 조그마한 어촌마을 Fortune이 무슨 연고로 프랑스령 섬으로 가는  페리보트를 운영하는 것일까?  


마을로 들어서자 보이는 집들과 마을 전체 분위기가 관광도시 냄새는 아니고, 가난한 어촌의 일상적인 따분하고도 밋밋한 풍경만 눈에 들어왔다. 마을 중앙길 뒤편으로는 고기잡이 배 몇 척이 보이고, 오래된 어구들이 한구석에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Boarder control이라는 간판이 있는 office 빌딩에 차를 대고 들어갔더니 여기는 표 파는 곳이 아니니 저 뒤편에 있는 그린색 사무실로 가라고 한다. 일종의 세관 역할을 하는 Border control 빌딩 앞에는 여느 국경처럼 술, 담배, 돈에 대한 엄격한 규제가 붙어있다. 이걸 보니 진짜로 요 앞에 있는 섬으로 가는 것이 마치 외국으로 가는 걸랑 동일하게 취급하는 모양이다.




  그냥 프랑스령 섬에 가서 한 며칠 놀다가 올까?


페리보트 표 사는 곳이 두 군데나 있다. 한 군데는 급행 보트로 섬까지 1시간 정도 걸리고, 완행 보트는 2시간으로 운영하는 회사가 각각 틀린다. 급행은 내일 오후 2시에 가니 표를 사려면 내일 아침에 오고, 완행은 내일 아침 9시에 가는데 지금 표를 살 수 있단다. 요금이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전에 사무원 왈  “내일 들어가면 돌아오는 배는 토요일에 있음데”  하길래…….  “내일 아침에 들어갔다가 구경하고 오후에 돌아 나올 수 없어요?”라고 재차 물어보았다. 지금은 비수기라서 배편이 매일 없고 6월 중순부터 시즌이 시작되면 매일 보트가 왔다 갔다  한단다. 그리고 차는 태울 수 없고 사람만 싣는 페리보트라고 하였다.

“근데요, 저 섬에 가면 뭐가 있는데요?”  자기도 잘 모르고 관광객들이 그냥 구경하러 많이 간단다. 내가 가진 가이드 북에는 프랑스풍 거리, 바게트와 프랑스 요리가 있다고 하는데 구구절절하게 무엇이 볼만 한지는 알려주지도 않는다. 바게트 빵과 포도 주마시러 3,4일 섬에 처 박힐 일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무엇이 있기는 있으니까 페리도 두 종류가 운영되고 가이드북에도 나와 있지 않을까? 여행할 그때는 시간이 없어 두 섬이 왜 지금도 프랑스령으로 남아 있는지 알아보지도 못했는데 나중에 여행에서 돌아와서야 궁금점을 문헌을 찾아서 해소하였다.


세관 빌딩 앞에 게시된 물품 반입 규정

거주자, 비거주자들에 대한 담배, 술, 선물 등에 관한  규정을 세세하고 꼼꼼하고 구질구질하게 늘어놓았다. 가이드북에는 이 섬이 1930년대 금주법 시절에 밀주 본산지로 당시 약 3백만 상자의 밀주가 이 섬을 거쳐 북미 전역으로 팔려 나갔다는데 지금도 선착장에는 당시 밀주를 제조했던 창고 건물들이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단다. 아마도 1930년대 알 카포네가 등장하는 시대의  금주법을 검색해 보면 혹시 이 섬에 대한 다른 이바구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겠다.


세인트 피에르-미퀘롱 섬은 1520년에 첨으로 포르투갈 항해자가 발견하였다고 한다. 약 30년 뒤에 프랑스 인들이 점유하여 거주하기 시작하였는데, 1670년에 영국 해군이 섬에 거주하는 프랑스인을 내쫒아 한 때는 무인도로 방치되어 오다가, 프랑스와의 7년 전쟁에 이겨 북미에 산재한 프랑스 식민지를 넘겨받는 조건으로 세인트 피에르-미퀘롱 섬을 프랑스에 내어 주게 되어 지금까지 프랑스령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인구는 6-7천 명 정도로 프랑스 해외 영토로 관리되는 프랑스령이다.




       미국의 금주법 시대(禁酒法時代)


1919년 미국 의회에서 주류의 양조·판매·운반·수출입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한 법을 통과시켰다. 특별한 경우, 즉 의료 목적에 사용하는 일부 주류와 종교적 목적으로 성만찬에 필요한 포도주 등만이 허용되었고, 그 외 개인이 제조하거나, 소유하거나, 소비하는 행위는 일절 금지토록 하였다. 이러한 금주법은 1933년에야 해지되었다. 이러한 법제정의 배경은 지나친 알코올의 소비로 인한 가정 내 폭력이나 학대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법으로 방지하고자 마련된 것이었다. 이렇게 법적으로 술 판매를 금지하니까 자연스레 음성적으로 밀주가 제조되고, 불법으로 유통시켜 이익을 챙기는 집단이 생겨나게 마련인 법이다. 영어로 moonshine이 <밀주를 제조하다>라는 뜻의 슬랭이고, moonshiner는 밀주 제조자를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밀주를 불법으로 유통시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집단이 바로

1920- 30년대 시카고를 본거지로 한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알 카포네가 이끄는 마피아 조직이었다. 그들의 주요 수입원이 도박, 매춘, 밀주 유통이었는데 특히, 금주법 시대에는 밀주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고 한다. 그 시절에 세인트 피에르-미퀘롱 섬 주민들도 캐나다에서 위스키를 수입하여 그것들을 미국에 밀수출하여 큰 이익을 남겼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보아 섬 주민들의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적토마처럼 군말없이 잘 달리는 렌트카


어촌 마을 한구석에 자리한 어구 통발


마을에 있는 해산물 처리 공장 옆의 바닷가.


70-200mm 렌즈의 테스트 사진

Canon 70-200mm/2.8 LI 렌즈는 신문사 등 언론사들의 사진기자들과 사진 애호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렌즈로 우수한 해상력을 자랑하고 있다. 녹물이 줄줄 흐르는 피사체를 조리개 F2.8로 최대한 열고 한번 테스트해 보았다. 배에서 나온 이런 고철 등이 여기저기 버려져 있다.


저 멀리 보이는 프랑스령 섬

fortune 마을을 지나 내려오면서 근처 공원에서 잡은 희미한 St. Pierre 섬 모습이다. 길쭉하게 아래 위로 퍼져있는 모습이다.


   


    Burin 반도 끝을 돌아서


Burin 반도의 해안 마을

당일치기로 나오는 배편이 없어서 프랑스령 섬 구경은 접고, 지금부터는 부린반도의 최남쪽으로 내려가서 반도 끝을 한 바퀴 돌아서 어제 내려온 길을 상구(계속) 올라가야 한다. 여기서는 길이 하나밖에 없어 그 길을 다시 타고 올라가야 한다. 바닷가에는 위 사진에서 보이는 단층집들이 즐비한데 미국식으로 말하면 100% waterfront house로 많은 사람들이 물가 집을 선호하는 편이다.



어린 솔방울과 꽃

키 작은 솔나무인데 여기 지형의 기후가 바람이 잦고 추운 지역이라 자라도 키가 작은 난쟁이 식물이다.


5억 4천만년을 단 15분에 주파할 수도

Fortune 마을에서 20킬로 떨어진 공원인데 입간판을 읽어 보면 fortune head interpretation centre는 20킬로 떨어져 있는 옛 고동화석등을 수집 보관한 진열관으로, 시간대는 5억 4천만 년 전의 화석들을 되돌아볼 수 있지만 단 15분 운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으로 Fortune 마을에 오면 한번 구경하러 오라는 이바구다. 다녀보니 캐나다는 이런 interpretation center가 곳곳에 잘 마련되어 있다.


야생 새들의 보금자리

어느 해안가 집 뒤뜰에 세워 놓은 새집인데 주인장이 새를 엄청 좋아하는지 열몇 개를 세워 놓고 새 모이를 넣어두고 있다.




    Fortune 마을 남쪽으로는 관광지는 아닌 듯


프랑스도 못 가 보고 그냥 Burin 반도 남쪽으로 말을 몰고 내려오는데 10킬로 정도마다 마을 표시판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마을 이름 뒤에 cove가 붙는데 우리말로 번역하면 작은 포구 정도인 것 같은데, 바다를 끼고 있어 자기 집 앞 또는 뒷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온다. 그냥 말로 하니 물가 집으로 매우 낭만적일 것 같은데 집 규모를 보면 그게 아니다.  특히 여기 Burin 반도의 남쪽 마을들은 집이 너무 작고 초라하다. 작은 포구에 낡은 고깃배는 몇 척 보이는데 수입원이 무언지 몰라도 보기에도 우리나라

한국 어촌의 가난한 모습과 일맥상통하다. 이런 작은 궁색한 어촌은 어디에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다 보니  Allen’s island란 이정표가 있어 들어가 보니 조그만 섬이었는데 다리를 연결해서 쉽게 마을로 드나든다. 위에 있는 새장 사진도 여기 알렌 섬에서 주웠다. 알렌 섬으로 들어가 보니……




     쓰나미는 예전에 이곳에도 있었다


슬픈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판

1929년 11월  18일 오후 7:50분에 조용한 이 마을을 쓰나미가 덮쳤다. 대서양에서 발생한 지진의 여파로 쓰나미가 밀어닥쳐 28명의 인명을 앗아 갔다고 한다. 아래 기념판은 그때의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제목이 faith 신념인데 - 쓰나미가 닥쳐도 낙심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그런 믿음을 말하는 것 같다. 불어로 Foi가 영어의 Faith인 모양이다. 하여간 이 쓰나미로 인해 생긴 재해가 지금까지 캐나다 최대의 재난이라 카는데……28명은 우리에 비하면 새발에 피도 아니다.


산업물 쓰레기장

버려진 이동식 가옥으로 마국에서는 이런 가옥을

Fifth wheeler라 한다. 대신 차 엔진이 붙어 있는 것은 motorhome이라 한다. 가다 보면 이런 이동가옥을 그냥 갖다 놓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미국에도 제법 있는데 1-2만 불하면 Fith Wheeler 같은 새집을 살 수 있어 때로는 이런 이동식 가옥으로 빈민촌을 형성하기도 한다.


버려진 창고? 가옥?

창고인지 집인지… 이번에는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풍경들을 골라서 보여 주려고 했는데 그래도 사진은 이쁘게 나온다. 내 의도는 아닌데…….



파노라마로 잡아본 바다 풍경

산업 쓰레기로 가득한 Burin 반도 끝이지만 그래도 여기에서 바라보면 저렇게 멋진 바다를 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사는 장소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100평짜리 현대식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나, 여기 Burin 반도의 가난한 어촌 마을에서 저런 형편없는 이동가옥에 사는 것이나 내 몸 하나 뉘일 세평 공간은 똑같은 면적이다. 그럼 중요한 게 무엇일까? 이 세상에는 물질만이 만능이 아니고 중요한 것은 철학자의 가난한 맴이라고 말들 하는데, 가난하지만 욕심이 없는 호수 같은 잔잔한 평점심을 가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한다.



마을 청사

알렌 마을 바로 옆 동네 point au gaul 마을의 town hall이다. 그러니 내가 다른 말로 부연 안 해도 마을의 형편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는 세상에서 살기 좋은 국가 top 5에 들어간다.


시원한 바다 풍경

Burin 반도의 끝자락에서 고개를 넘다 보면 저렇게 탁 트인 바다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여기저기 해안가에 앉아있는 마을이 비록 화려하지는 않아도 탁 트인 바다가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완성된 한 폭의 풍경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


Burin 반도 끝자락에서 만나는 해안

이런 시원한 해안 경치로 눈과 마음이 즐거우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런 작은 포구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해안가 풍력 발전기

구릉 위에 풍력발전기가 있다. 석탄과 석유 매장이 곧 고갈되면 다음 대체에너지가 수력, 풍력, 원자력, 태양 에너지라서 그런지 요즈음 어딜 가도 풍력발전기가 보인다.




     뉴펀들랜드에서 하룡 배이를 만나다


부린 반도 남쪽에 산재한 포구마을들을 하나하나 지나오면서 쉬엄쉬엄 가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다시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좌회전을 하면 어제 내가 묵은 Marystown을 지나 북쪽으로 가고, 우회전을 하면 Burin 마을로 돌아서 위로 가게 되어 있다. 어디로 해서 올라갈까 딸망딸망 하다가…… 오늘 내내 포구 마을을 지나왔는데 다 그렇고 그랬는데 하면서 …… 조그만 들어갔다 나오자 하면서 오른쪽으로 들어갔는데 뉴펀들랜드의 하룡 배이를 만날 줄이야. 세계 관광지 중에서도 왕중왕에 들어가는 베트남 북부 하노이 근처의 하룡 배이인데(작년에 베트남 호지명시에서 여기로 가려고 폼 잡았는데 빡빡한 일정 때문에 지르지 못했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 하룡 배이로 마무리하자.


부린 마을 표지를 보고 우회전했는데 갑자기 경고 표시가 나온다. <다음 구간 30킬로는 길이 지그재그로 되어 있으니 운전자는 조심조심 운전하세요> 길을 따라 가보니 진짜로 구곡 양장인데 바닷물이 그곳까지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 길이 30킬로나 이어져 있었다.


Burin 반도의 하룡배이

길을 돌자 확 펼쳐진 해안의 풍경이 한눈에 척 들어오는데 “하룡배이다”라고 감탄사를 내뱉는데… 작은 섬들의 크기가 진짜 하룡배이의 그것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맑은 물 위에 떠 있는 그 모습은 비스무리하였다.


바닷가를 따라 산책길을 나무다리로 이쁘게 만들어 놓았다.


70-200mm 테스트

이런 걸 보면 그냥 못 지나간다. 다시 한번 카메라 렌즈 70-200mm를 테스트해보고


이렇게 마을의 역사도 깨알같이 잘 정리하여 소개해 놓았다. 어촌으로 시작한 마을이 1940년대 수산물 가공처리 공장이 들어서자 고용이 증대하여 마을이 급속도로 발전하였다는 것도 설명해 놓았다.



잘 빠진 바다 갈매기

이름이 바다 갈매기의 일종인 northern garnnet이라 하는데…… 부리(조디)가 크고 이쁘다.


산책로 다리 받침대


바다가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

구도 한번 잡아보고…… 해안을 따라 조망할 수 있도록 물 위에 나무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다. 산책로에 가로등까지 달아 놓아 야간에도 산책로를 거닐면서 밤바다를 음미할 수 있다.


바다로 나가는 길

강이 아니고 바다라는데…. 즉, 짠물이라는 것이다.

확 퍼진 넓은 내만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은 좁게만 느껴진다. 양쪽으로 이어지는 작은 구릉들이 포개져서 그런 느낌을 가지게 하는 것 같다.


등대 모형물

등대의 축소 모형물을 집 뒷마당에 장식으로 세워 놓았다.



이렇게 집 앞마당/뒷마당까지 물이 들어온다.



파노라마식 사진 연결

사진 몇 장을 merge 하여 Pano 효과를 내려고 하였는데 해질 무렵이라 각각 사진의 노출 차이가 넘 심해 이음새를 손질할 수 없다. 특히 오른편 이음새가 눈에 썩 거슬린다.




     지도를 보고 최단 단축 경로를 발견하고


이렇게 하룡 배이를 따라가 보다 보니 시간이 지나 해가 져 버렸다. 좀 더 많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해가 빛을 거두자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Burin 반도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 지도를 보니 옆의 해안으로 건너가는 ferry boat가 있다고 하길래 혹시나 하고 페리보트가 있다고 하는 그 마을로 들어갔다. 저녁 10시인데 마을에는 사람 그림자도 없다. Bay L’argent라는 곳인데 밤이지만 약간은 주변 경치를 식별할 수 있는데, 높은 절벽 밑으로 마을이 들어서고 마을 앞으로 바다가 탁 트여있다. 낮에 보면 꽤 멋진 풍광일 것 같았다. 분명 페리보트가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는데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일 아침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해서, 어쨌든 페리보트 확인을 해 보고 없다면 하는 수 없이 다시 위로 올라가던지 해야 하는데……


길 가 근처에 있는 한 집을 보니 커튼 친 창문 사이로 TV 화면이 자주 바뀌는 걸 보니 가족들이 아직 자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용기 있게 집 대문을 두드렸다. 주인아주머니가 나와서 친절하게 알려주는데 매일 9시에 페리보트는 있는데 차는 실지 않고 손님만 싣고 간단다. 망연자실. 차까지 싣고 가면 나는 3,4백 킬로는 운전 안 해도 되는데 차를 실어 주지 않으니 페리보트를 접어 버렸다.

확실히 알았으니 과감히 포기하고 달빛을 벗 삼아 북도 150킬로를 바람처럼 내달아 오늘 하루를 마무리했다.


뉴펀들랜드 섬의 면적이 일단 넓다. 그리고 길이 여러 개가 없어 이동거리가 매우 길어진다. 2주라도 이 땅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  충분치 않고 또한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하기사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는 운전하고 사진 촬영하는 것이 제일 쉬운 일 같기는 하다마는.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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