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킴 Nov 07. 2019

지노 배낭여행기-Atlantic Canada편 8

Arch 주립공원

       Arch 주립 공원에서


북부 해안가에 위치한 아치 주립공원

그로스몬 국립공원을 떠나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만나는 주립공원이 하나 있는데 반드시 들러 보아야 할 코스이다. 보이는 그대로 커다란 돌방구 하나에 큰 구멍이 3개나 생긴 아치형 석굴 형태를 가진 조물주의 작품을 보게 된다. 동글동글한 자갈로 뒤덮인 해변가에 아치형 굴이 패인 기다란 돌방구가 기나긴 세월의 훈장을 달고 떡 하니 누워있었다.


세월에 닳아빠진 해변의 조약돌


그런 조약돌로 가득한 아치공원의 해변가

바로 밑에 한 수 위인 국립공원이 있어선지 찾는 이 거의 없다. 해가 뉘엿뉘엿 거릴 즈음 갔더니 아무도 없다가 사진 작업하고 있는데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현지인이 와서 능숙하게 돌방구 위로 올라가는 폼이 여기 자주 오는 것 같았다.



한 폭으로 담을 수 없어서 두 폭으로 나누어 찍어 붙였다.                 세 개의 아치 구멍을 가진 거대한 돌방구였다


바다로 통하는 아치

돌방구가 너무 길어서 한 폭에 담기가 힘들다. 오랜 세월 동안 풍상, 파도에 시달려온 모습이 이렇게 변했구려. 얼마나 오랜 시간을 견뎌내야만 이런 모습으로 환생할 수 있을까?




       무한한 시간의 개념


불교에서 말하는 시간 개념에는 겁(劫)과 찰나(刹那)라는 단위가 있다. 뭐뭐 하려는 찰나에 그가 나타나서… 이런 표현을 많이 쓰고, 겁도 억겁 또는 영겁의 시간을 지나서… 라고 표현한다. 겁은 우주가 생성해서 소멸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개념으로 수학에서 말하는 무한대 적분과 유사한 것이고, 반대로 찰나는 순간적인 생각의 길이를 말하는데 염(念)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백 년 채 못 되는 시간을 겁에 비유하자면 조족지혈은 커녕 바닷가에 깔린 모래알 하나에 비유할 수 있으니까 그런 모래알 같은 존재들은 가진 게 많다고 그렇게 잘난 척하며 살 필요도 없고, 또는 가진 게 없다고 이 막막한 세상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겁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시간은 찰나에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짧은 한순간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아치

위 사진에 두 개의 아치와 이 사진까지 큰 3 개의 아치를 그리고 있다.



바닷가쪽으로는 동굴둥글한 자갈들이 풍성하다.


현지인 부자가 돌방구에 올라가서 잘 노닥거린다. 나도 올라가 보려 하다 접었다.


마침 떨어지는 낙조에 황금빛으로 물든 바위


Golden time의 돌방구

바닷가 쪽의 바위들은 낙조에 물들어 황금빛 똥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돌방구 색감 내기에 아주 좋은 사진 시간대다. 해가 넘어가기 전이 바로 이러한

사진 촬영의 golden time이 된다.


위치를 바꿔 물이 빠진 바닷가쪽에서 촬영

위의 사진들은 아치를 백사장 반대 방향인 바다 쪽에서 잡은 모습이다. 마침 썰물 때인지 해변가에 물이 빠져 있어 신발을 벗지 않고도 바다 쪽으로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그래도 끄트머리로 밀려오는 파도들이 내 발을 적셔 보려고 무단하게 애를 쓰고 있었다.


수석 애호가들이 좋아할만한 돌무늬

  




      내가 돌아가야 할 길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닥거리며  놀다 보니 해는 기울어 점점 수평선 아래로 떨어지면서 붉은 낙조를 바다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돌아갈 집도 절도 없는 나그네는 어디로 갈까나. 해가 지고 땅거미가 밀려오기 시작하면 배낭 여행자에게 늘상 따라다니는 화두는 - 무얼 먹어야 하며, 어디서 피곤한 육신을 뉘어야 할지 - 이런 하찮은 것들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세상의 모든 자유를 갈구하는 저 넓은 평원을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이 지구상을 훨훨 날아 다니게 된다.



황혼에 잠겨가는 아치 바위

공원을 걸어 나가면서 멀리서 전체를 한 폭에 담아보았다. 찍는 앵글이 시원찮아 오른쪽 세 번째 아치가 숨어 버렸다. 해변가에서는 짙은 땅거미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점점 바닷가로 다가가고 있었다.



점점 어둠에 묻혀가는 아치 바위

그래 돌아가자. 어디로던 내 지친 육신 하나 고요히 뉘일 그곳을 찾아가자. 오늘 하루의 피로를 살라버리고, 평화와 안식을 누릴 나만의 공간을 찾아 길을 떠나자. 내일도 태양은 찬란히 떠 오를 테니까.


윤동주 시인의 <길>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 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다.



아치 주립공원의 빈 하늘

길이 난 공원의 숲을 지나 내가 잃은 것을 찾으러 가자. 내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내가 진정 잃은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잡으려고 길을 떠나자.


연이어지는 썰렁한 해변가

공원을 나와서는 지금부터는 이런 황량한 바닷길을 왼쪽 품에 안고 상구 올라가야 할 것 같다. 얼마나 올라가야 마을이 있을지는 알 수 없으나, 길은 아래 위로 한 줄 밖에 없으니 북쪽 길을 찾아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될 것 같다.





     뉴펀들랜드의 낙조

                                                

오늘은 특집을 하나 마련했는데  뉴펀들랜드의 낙조를 시간대로 변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아직은 펄펄하게 살아있는 태양은 중천에서 비추고


서편 하늘의 태양

아치 공원을 걸어 나올 즈음에도 태양은 여전히 서편 하늘에 높이 걸려있어 따끈한 석양을 바다 위로 길게 드리우고 있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잠시 한 줄기 구름 속에 숨어서 곧 다가 올 작별을 아쉬워하듯, 마지막 고운 단장을 하고 고개를 뺄쫌히 한번 내 보이려고 하더니



잡을래도 잡을 수 없는 그 대

수평선에 닿을 듯 말 듯 속절없이 떨어지는데 찾아드는 새 한 마리 없고, 잡아주는 따뜻한 님 손길도 없어 돌아가는 길을 무척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물망초처럼 나를 잊지 마세요

이윽고 가느다란 몸은 수평선에 반쯤 잠기어 가고, 겨우 목만 수면 위로 내놓아 목숨을 부지하는 부초처럼 떠 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당신을 기다릴 수도 없어요. 부디 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 내일 다시 당신을 맞이하러 갈게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님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 서편 하늘엔 점점 노을만 더욱 붉어지는데


그대 자리를 그리워하며

붉은 노을마저 사라진 하늘가에는 빈 구름만 무성하고, 다시 찾아드는 고요함에 그대를 그리워한다.

내일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대를 기다릴 테야.



미인의 눈썹같은 달이 동편에 뜨고

양귀비 눈썹이 동편 하늘에 걸리면  뉴펀들랜드 춘 오월에 불어오는 삭풍이 나뭇가지만 울려놓고 달아난다. 혼자라서 내 마음이 더욱 더 쓸쓸해지는 것일까, 연신 빈 가슴만 쓸어내린다. 차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도로의 일부분만 삐꿈이 보이고 주위의 모든 것들이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차체에 부닥치는 바람이 차창 틈새로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차 안으로 비집고 들어 오려고 발부둥치고 있을 때, 북으로 난 430번 도로를 어둠 속에서 바람과 함께 달리고 있었다. -jh-










작가의 이전글 지노 배낭여행기-Atlanctic Canada편 7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