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버해협을 기차에 차를 싣고
2009년 10월 25-26일 (토, 일) 맑음
미국 JFK공항을 저녁 늦게 출발해서 장장 9시간을 날아 대서양을 훌쩍 건너 런던 히드로 공항에 아침에 도착했다. 그때는 장기 배낭여행으로 그해 12월 10일에 돌아왔으니 47일간을 유럽 전역을 렌트한 필마로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 첫 번째 입국 장소가 바로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이민국 ㅣ노통과하는데 약
20분(줄 서고 기다리는 대기시간은 제외하고 순전히 인터뷰 시간만)이 걸렸다.
당시만 해도 유럽은 EU로 통합되어 입국심사가 없이 유럽 국경을 자유로이 드나드는 때였지만, 유독 영국은 입국심사를 엄격하게 하고 있었다. 당시 일부 지붕이 내려앉은 히드로 공항은 내부 공사 중으로 어수선했는데, 입국 심사장에서 검은 머리칼을 길게 길러 어깨춤까지 늘어뜨린 조금은 띵띵한 인도 처자가 나를 잡고 매몰차게 질문을 날렸다. 입국 심사장은 항상 사람들로 만원으로 심사를 기다리는 줄이 마치 뱀 뙤아리처럼 이리저리 굽이쳐 줄을 이루고 있었는데도 이 인도 처자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장기 배낭여행하는 게 배가 아픈지 나를 그냥 보내주지 않았다.
런던 히드로 공항 입국장에서
입국 심사장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각국에서 히드로 공항에 내려앉은 비행기로부터 승객들이 모여드니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유럽이 통합되어 나라들 왕래가 자유롭다고 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심사관들을 한 명 씩 관찰해보니 전부 인도인이다. 내 차례가 되어 심사관 앞으로 갔더니 검은 머리를 길게 어깨까지 늘어뜨린 인도 처자이다. 조금은 똥실하게 살이 올라 건강미가 보이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심사관이 특유의 인도 발음으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한다. 여권을 쥐고 나를 한번 힐끈 쳐다보면서 물었다.
“미국서 직업이 뭐예요?”
“회계사로 밥 먹고 살아요.”
별로 발음이 좋지도 않은 경상도 억양의 미국식 영어로 대답해주었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날짜가 언제지요?”
“12월 10일”
오래 논다고 폼 잡으면서 니는 이렇게 오래 못 놀 제하고 말해주는 그런 기분으로 거들먹거리면서 간단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랬더니 인도 처자가 단도직입적으로 파고든다.
“회사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장기간으로 여행하는 게 가능합니까?”
그렇구나, 내가 회계사무소 운영한다고 너한테 말을 아직 해주지 않았구나.
“그건 내가 사무실 운영하니까 내 없어도 직원들이 잘하니까 별 문제없어야.”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른 질문으로 나를 코너로 슬슬 몰아가기 시작하였다.
“47일 동안 어디 어디 구경할 거예요?”
점점 나도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구경이나 내 맘 꼴리는 대로 아무 데나 보고 가면 되지 너한테 미주알고주알 일러주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약간은 투명스럽게 되받았다.
“런던만 며칠 보고 나서 지중해 따라가면서 이곳저곳 구경할끼다.”
“그래요. 여행경비로 얼마나 갖고 오셨지요?”
이 질문에 내가 조금은 당황해진다. 현찰은 몇 천불 들고 왔지만 그걸로 부족하다고 돌려보내려고 그러는지 이 처자의 속내가 갈수록 궁금해진다.
“현금 좀 들고 왔어. 부족하면 크레딧 카드 있으니 경비는 별 문제없어야.”
자꾸 질문이 길어져 뒤를 돌아다보니 내 뒤로 나래비(줄) 서있던 사람들이 그녀와 나의 일문일답에 귀를 쫑긋 세우며 집중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부터 내 자존심이 누런 메주에 푸른곰팡이 슬듯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쪽이 팔리는 기분이 서서히 들기 시작하였다. 내 뒤로 길게 늘어진 줄에 서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전부 나의 뒤통수만 바라보면서 저 누런 동양인 때문에 줄이 줄지 않는다고 무언의 항의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의 기분도 이제는 상할 대로 상해 뜨거운 한증막의 수증기처럼 끊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인도 처자는 다행히 들고 온 현찰 보자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 넓은 지중해 지역을 어떻게 구경하시려오?”
이번에는 여행의 방법에 대해서 논하는 모양이다. 나의 얼굴 표정도 이제는 곱지도 않고 말투도 아주 시건방지게 그런 톤으로 변해 갔다.
“걱정 마. 차를 렌트 예약해 놓았어.”
일수 빚 독촉하러 온 년에게 대하듯 아주 쌀쌀맞게 맞받아쳤다.
“렌트 예약한 서류 좀 보여 주세요.”
이제는 전부 확인해 보겠다는 심사인 모양이다. 나래비선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배낭을 열어 렌트 예약 서류를 보여 주었다. 이번에는 돌아가는 뱅기표까지 보여 달라고 한다. 나도 서류만 보여주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 짜증 나는 게 아니겠지. 내 뒤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긴 한숨을 쉬고 있겠지만 그들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냥 한 동양인 녀석 때문에 자기들이 피해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다르게는 상상할 수도 없을 거다. 심사관이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면서 입국 도장을 찍어 여권을 돌려준다.
“체류하시는 동안에는 관광이나 여행만 하시지 취업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그녀의 손에서 여권을 낚아채면서 그녀 질문에 한다 안 한다 말도 하지 않고 배낭을 둘러 매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바로 차를 렌트해서 런던 어느 곳에도 들리지 않고 도버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기차에 차를 싣고 런던을 떠나버렸다. 그 후 다시는 런던에 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을 하면서......
독일 국민차를 렌트하고
차는 출발하기 전에 미국에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했었다. 유럽은 길이 좁다하니까 소형차로 하나를 찍었다. 당시는 대부분 차에 내비가 부착되지 않아 유럽 전역을 카버 하는 지도를 150불을 주고 미국에서 메모리 카드로 다운로드하여 갔다. 거의 대부분은 내비가 척척 알아서 길안내를 잘해주었는데, 몇몇 국가에서는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알고 보니 행정구역 변경으로 같은 주소를 넣어도 멍청한 내비는 계속 예전 길만 갈켜주고 있었다.
차를 픽업하러 렌터카 사무실로 들어서니, 주근깨가 얼굴에 깨알같이 퍼져있는 여직원이 반겨 주었다. 원래 내가 예약한 소형차를 보여 주었다. 소형차라 바퀴가 배고픈 아프리카 애들 다리처럼 매우 얄팍했다. 저런 다리로 장기간 잘 견뎌낼지 조금은 염려되었다. 그런 나의 의중을 간파했는지 세일즈우먼이 빈틈을 파고 들어왔다.
“이번 달이 세일 기간인데 이 차 한번 보실래요?”
그러면서 까만 벤즈 E220을 보여주었다. 광택이 번들거리는 벤즈는 출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 차 같았다.
“세일해서 하루에 4 파운드만 더 쓰시고 벤즈로 하시지요.”
새다리 같은 바퀴의 소형차를 보다가 벤즈의 굵은 다리통을 보니 마음이 혹하고 가버려 그녀의 낚시질에 단박에 걸려들었다.
좌측통행이 생각보다 힘들어
영국차의 오른쪽 핸들을 염려했는데 10분 타보니까 감이 조금씩 왔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반쪽 골세포가 확 살아나는 것 같았다. 단, 좌측통행을 해야 하니 그게 문제였다. 특히, 로터리를 돌 때는 미국서와는 반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야 하는데 버릇대로 왼쪽으로 돌려고 하였다. 그래서 가능한 차선에서 신호 받아 나가서 로터리를 돌아야 할 때는, 내가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다른 차 나가는 것을 보고 따라 하려고 차선 맨 앞에 서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별 문제가 없었는데, 한 번은 내가 맨 앞에 서게 되어 신호 받아 나가다가 미국식으로 우측통행할 뻔했는데, 그렇게 잠시 버벅거리는 동안에 내 뒤에서 런던 새이들 열나게 빵빵거렸다. 이런 문제는 파리로 넘어오니까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공항 이민국에서 잡칠 대로 잡친 기분은 좀처럼 풀어지지 않았다. 이민국 직원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받으면서, 기분대로 하자면 영국 입국 취소하고 그냥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차를 몰고 런던 시내로 달리면서도 어디로 갈 기분도 아니었고, 어디로 가려고 마음을 먹지도 않았다. 단지 머릿속에는 한시라도 빨리 이 나라를 벗어나고 싶었다. 런던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사진도 한 장도 찍지 않고 그냥 도버해협을 건너고자 계속 남쪽으로 달려 Dover 가까운 역에서 벤즈를 기차에 싣고 도버해협을 미련 없이 건너왔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