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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Feb 06. 2020

지노 배낭여행기 -지중해를 찾아서 10

Morocco 입국


배가 항구에 도착하여 차를 몰고 나가니 입국 심사도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  생각에는 모로코 정부가 관광수입을 올리려고  편하게 대해 주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사실을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도착한 Ceuta의 이슬람 사원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가니 여기가 별천지이었다. 키 큰 야자수에 이슬람풍의 고층건물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거리에는 가로등이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는 차나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갑자기 심한 졸음이 몰려와 길옆에 차를 대놓고 토막잠을 잤다.



Ceuta 거리 풍경

한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 보니 해가 밝게 비치고 학교 가는 애들이   옆을 지나가면서 낯선 이방인을 한 번씩 쳐다보았다. 거리를 한번 드라이브해 보니 지금까지  유럽의 어느 도시에 뒤떨어지 않는 도시환경에다 주거 건물도 아파트나 콘도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모로코는 GPS 안되어 지도를 보고 첫 행선지 띠따안(Tetouan)으로 차를 몰았다.

 



   혹독한 모로코 입국 심사


조금 달려가니 갑자기 주위 풍광이 싸늘하게 달라지는데, 키 큰 야자수와 삐까번쩍한 건물이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철조망으로 경계를 친 넓은 광장에 보따리를 이고 진 사람들과 폐차 일보 직전의 시커먼 매연을 뿜어대는 차들이 한 줄로 서서 통관절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차 행렬에 줄을  있는데 갑자기 키가  현지인이 와서 유창한 영어로  여권을 빨리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갑자기 당하여 기분이 나빠 다짜고짜로 투명스럽게 되물었다.

“너 누군데?”

“나, 가이드야.”

라이선스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외국인들이 입국하는데 도와주는 도우미란다. 그제야 보니 목에 ID 하나 걸치고 있었다. 속으로 나도 영어로는 니없어도 입국할  있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권 심사원이 본토 말로 묻는데 옆에서  친구가 잘 통역해주었다.


다음에는  등록증을 보여달라고 하였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렌터카 영수증 밑에 자세히 보니 영국  주근깨가  이름을 <김병부>라고 아주 얼토당토않게 이름을 기재해 놓았다. 사인할  미처 확인을 못한 이유가 인터넷으로 예약할  정확하게 영문으로 KEY IN 했기에 그런 오류가 생기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걸 트집 잡아 입국할  없다고 계속 우겼다.


키가  통역관이 나를 세관장에게 데리고 갔다. 키가 자그마하고  먹는지 영양상태가 좋아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는,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세관 관리였다. 영어는 유창하게 잘하였다. 

“KIM 맞는데, 혹시  브라드나 친척  아냐?”

“아냐, 내가 런던에서 렌트했어. 사무원 실수 같아.”다른 렌트 서류를 보여주며 해명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세관장이 나보고 

 재키 챈 알아?”라고 묻길래

그래,  알아,   재키 챈 영화 좋아해.” 그랬더니

 재키 챈  닮았어.” 하더라고. 그래서 마드리드에서도 프라도 미술관에 단체 구경 온 애들   명도 그러더라고  주었다. 세관장도 아마 성룡 팬인 것 같았다. 내가 거의   성룡 영화 이바구를 둘이서 한참 동안 신나게 주고받았다. 세관장이 서류에 사인을 해 주었다. 세상에, 성룡이  닮았다나.

아님 내가 성룡을 닮았나?


통역이 와서 이번에는 경찰서에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며 서류를 들고 갔다. 혼자  있는데 다른 키 작은 통역관이 와서 어디 가냐며 물으면서 혼자 가면 위험하니 자기가 동행하면 안전하다고 자기를 가이드로 쓰라고 하였다. 나도 그쯤은 책에서 보고 아는데, 그런데 그것은 나중에 내가 사하라 사막 갈  현지인 고용해서 가는 거지 산에 가는 데까지 가이드를 데리고  이유가 있나 싶어 일단은 노땡큐 하였다. 


마침내 서류  여권에 도장 찍어 주는데 60 비자를 주었다. 충분하지. 일단 팁을 줘야 하는데 모로코 디램이 없어 잔돈도 없고 보니 20유로 지폐  장을 꺼내 주면서 둘이 나눠 가져라 하고 차를 몰아 이민국을 통과하였다.


여기서 밝혀진 사실은 새벽에 페리보트가 도착한 삐까번쩍한 Ceuta란 곳은 모로코 영토가 아니고 스페인령으로, 영국이 스페인 본토에 있는 지불알타를 돌려주지 않고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스페인도 예전에 식민지로 점유하였던 Ceuta 지역을 돌려주지 않고 지금까지도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힘없는 꼬마가 사탕을 샀는데 동네 힘센 형아들한테 사탕을 하나 둘 빼앗기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 사탕같이 달달한 곳이 바로 지중해로 들어오는 길목인 지불알타로 영국 넘이 지금까지 빨아먹고 있고,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지중해 항구가 있는 Ceuta는 스페인넘들이 단물을 쫄쫄 빨고 있었다.

 

 


    모로코 시골길을 달려


Ceuta - 띠따안(Tetouan) - 셒샤원(Chefchaouen)- 엘호시마    국립공원(El Hoceima)이 계획한 여로였다

모로코 현지인들은 버스와 택시를 타는데 전부 폐차 일보직전의 벤즈였다. 지나 내나 벤즈 타고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전부  합승이었다. 짐처럼 꾸개가지고 차 안에 빽빽하게 태워 가지고 갔다. 바닷가 쪽으로는 그런대로 인도도 만들어 놓고 예쁜 집들이 많이 있는데 어떤 멋진 건물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은 전시용 같기도 하였다.

 

길을 가는데 빼빼 마른 현지인 남자  명이 짐을 들고 힘들게 걸어가고 있길래 태워주었다. 나보고 프렌치 할  아냐고 묻길래 못한다 하니까 영어로 어렵게 몇 마디 하였다. 궁금한 참에, 저기  멋진 건물에 사람 사냐고 물어보니 그냥  건물이라고 하였다.  이유를 물어보니 정확한 답이 되돌아오지를 않았다. 빈병들을 수집해서 재활용하는데 자기가 슈퍼마켓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10분 정도 달려 현지인의 슈퍼마켓에  내려주고 나는  도시 띠따안으로 아침도 거르고 차를 계속 몰았다.




    모로코 띠따안(Tetouan)에서 아침을


슈퍼 주인을 내려주고 30분 정도 가니까 티따안마을이 나왔다. 도로 중간중간에는 그런 전시용 주택들이 많이 보였다.


병원 건물같기도 하고 꼭 이북 평양 근처의 전시용 주택을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찜찜하였다.

배가 고파 무엇을 사 먹으려 해도 현지 통화가 없다. 은행에 가보니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혹시나 하고 현금카드로 인출해보니 작동되었다. 2000디럼(환율은 10대 1로 미화200불)을 가지고 식당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어느 본토인이 모패드를 타고 와서 헬로우하며 아는 체하였다. 그래서 영어가 되겠지 하고 근처에 맥도널드 가게가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며 앞장을 섰다. 모패드를 졸졸 따라 한 5분쯤 가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하는 말인즉, 지금 맥도널드 문 안 열고 12시 30분부터 영업한데요. 지금 겨우 11시이고 배는 되지게 고픈데 말이야. 이 빌어묵을 ㅇ새야, 진작 그렇게 이야기하지.(ㅇ새는 빼고 그렇게 영어로 했다). 알았다, 수고했지만 니는 No Soup이다. 국물도 없다는 말이다. 관광 가이드 책하고 똑같네. 현지인들 중 영어 조금 할 줄 알면 관광객 오면 도와주고 팁 달라고 하는 것이 정형화되어있다고 했다. 그ᄅ면 그냥 동전 한 두 잎 주면 된다 했는데, 얼치기 도우미를 그대로 남겨두고 결국 현지인 본토 식당을 찾아갔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본토인 식당에 떡 들어서니 빵 말고는 아무것도 안 보였다. 일단 빵을 가리켜 보이고 커피를 주문했다. 거의 입에도 안 되는 커피를 한 잔 곁들여서. 근데 일하는 젊은 남자애가 겨우 영어 한마디를 하였다. 빵을 샌드위치로 할 거냐고 아니면 뒷말에 뭐라고 하는데 영어가 아니었다. 나를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다. 아메리카. 그랬더니 그 녀석 하는 말이 중미 과테말라가 맞냐고 되물었다. 사람 돌아뿌제. 미국하고 중미 하고 분간을 못하고 있다니. 야, 밥이나 다오. 캐시어 보는 여자애가 날보고 방실방실 웃었다. 보아하니 남매 지간인 것 같고, 뒤에서 일하는 사람도 아버지 같았다. 저그들끼리 본토 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나에 대해서 각자의 통밥을 짚어 보는 것 같았다. 알 도리가 있나, 밥이나 다오.


먹는데 진짜 꿀맛이었다. 영어 속담에 <시장은 최고의 식욕이다>란게 있는데 무조건  맞는 말이다.  

얼마냐고 물으니까 방실이가 20 디렘이라고 해서 주니까 아니라고 12 디렘이라고 하였다. 방실이가

twenty 하고 twelve를 혼돈했대요. 괞잖아 방실아, 니는 얼굴도 보름달같이 둥글고, 웃음도 방실방실하니까 맏며느리감으로 적격이라는 덕담을 해주고 싶었는데 저 애가 내 말을 못 알아들을 것 같아 나도 돈 주면서 씩 한번 웃어주고 말았다.




   가축시장을 구경하고


높은 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침 요기를 하고 다음 행선지인 셒시원(Chefchaouen)으로 부리나케 달려가는데 먼 산들이 폼나게 다가왔다. 15분쯤 달려가다 보니 야산 중턱에 사람들이 웅성 웅성 모여있었다. 확인해보고 싶어 차를 그쪽으로 향했다.


야산 중턱에 형성된 가축 매매 시장

가서 보니까 양하고 소들이 많이 있어 가축 매매시장 같았다. 이 좋은 사진 기회를 놓칠 수가  없지. 그리로 차를 몰았다. 차문을 단단히 걸어 잠가놓고 카메라 2대만 어깨에 걸치고 그 시장터로 접근했다.


소와 양들이 매물로 나와 있었다

예상한 대로 한 두 명씩 본토인들이 내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런 시선들을 무시하고 난 사진이나 열심히 박았다. 양들하고 소들하고 본토 사람들. 어느새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둘러싸는 모양새가 되었다. 나는 양 한 마리 매매 가격이 궁금해서 손짓으로 얼마냐고 물으니 한 녀석이 본토 말로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잉글리시 잉글리시를 외쳐도 소귀에 경읽기같았다.


일본 국기가 새겨진 일제 잠바를 입은 현지인

어느 머리가 좀 돌아가는 현지인이 핸폰 열어서 150이라고 찍었다. 그래 양 한 마리가 15불이구나. 이번에는 소를 가리키면서 얼마냐고 물었더니 이번 에는 1000을 찍었다. 100불. 와! 100불 내고 그냥 소 한 마리 사 가지고 여기서 보신을 해버릴까. 안심,꽃등심, 살치살, 채끝살, 부채살, 꾸리살, 홍두깨살, 보섭살, 삼각살, 목심, 사골, 우족, 곱창, 안창, 차돌박이, 양지머리, 업진살, 치마양지, 도가니, 생갈비, 꽃갈비, 참갈비, 토시살, 안창살, 제비추리, 아롱사태, 뭉치사태, 앞사태, 상박살, 기타 등등 소부위가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데 더 이상 찾기도 힘들다.(더 찾아보고 싶은 독자는 아래 그림을 참조하시라)


네이버에서 찾은 소고기 부위별 명칭



들이대는 카매라에 웃음짓는 현지인들

결국 나는 본토인들한테 둘러 쌓인 재키 챈 같은 원숭이 신세였다. 역시 한 녀석이 재키챈하더라고. 그 녀석도 성룡 영화는 본 모양이지. 내가 웃기려고 태권도 기마자세를 취하니 그 녀석 나보다 한 술 더 떠면서 두 팔로 현지인들을 뒤로 밀치며 내보고 고정하시라우 하는듯한 재밌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야들은 순진무구한 모로코인이야. 나도 너그들이 맴에 쏙 들어. 가진 게 없어도 괜찮아, 그런대로 잘 살아가면 된다..   



말라빠진 당나귀


태워 준 십대 소년들

차를 몰아 셒샤원(Chefchaouen)으로 들어가는데 이 놈의 거주지가 산 중턱에 붙어있다. 산 중턱으로 열심히 올라가는데 소년 3명이 마포 자루에 무얼 담아가지고 들고서 걸어가고 있길래 세워서 뒤에 타라고 하니까 야들이 신이 났다. 한참을 운전해 저그들 동네로 들어가니 아는 동네 어른과 친구들을 보니까 더 신이 나서 아예 창문을 내리고 벤즈 타고 왔다고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다 왔다고 내리라 해도 안 내리네. 운전하면서 들은 것으로 모로코 현지어 세단 어는 완벽하게 배웠다. 세에(똑바로), 띠완(오른쪽) 그리고 세완(왼쪽).



재래시장의 가게들

녀석들이 내리려 하지 않아서 점심을 사 먹이고 해서 모로코 현지 재래시장을 구경하였다. 시골의 재래시장이라 그런지 팔려고 벌려 놓은 것들이 전부 중고품들로 옷, 운동화 같은 신발, 가전제품 같은 것들이 새 제품이 아니고 대부분이 중고 제품이었다. 세 소년을 앞세워 조그마한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다음 행선지로 가기 위해 녀석들을 겨우 내리게 했는데, 그중 한 녀석이 돈 달라고 손을 벌렸다. 크게 고함질러 쫒아 버렸다. Get Out. SOB.



중고제품을 파는 가게들


모로코 십대 소년들

이 세 녀석을 내려주고 다음 산길로 접어드는데 여기서 운명적인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운명이란 것이 때로는 잘 차려놓은 아침 밥상처럼 피할 겨를 없이 마주 앉아 수저를 들어야 할 때도 있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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