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불알타(지) 내불알타(나)
2009년 11월 3일 (월) 맑음
모로코 탈출기를 머리에 떠올리면 그 악몽이 되살아나,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맴이 꿀떡인데 돌아가는 길도 이 근방이 아니고 영국 런던이고 해서 원래 예정된 길로 말을 몬다.
광란의 모로코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아침을 배 위에서 맞았다. 페리보트는 지불알타 해협을 건너고 있었다. 왼쪽이 망망대해 대서양으로 나가는 길이고 오른쪽이 지중해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서유럽 이베리아 반도 끄트머리에서 북아프리카 모로코로 들어가는 최단 뱃길이 열려 있다. 지불알타 해협 중 최단 폭은 14km이고 가장 폭이 넓은 곳은 58km라고 한다.
지불알타의 어원을 한국어원적으로 살펴보니 이런 것 같다. 영국 놈들이 황금 싸라기 같은 지불알타 식민지를 안 돌려준다 하니까, 스페인애들은 애가 무척 탔다. 우리말에 <니가 애타지, 내가 애타나>해서 흔히 하는 말로 <니 불알 타지, 내 불알 타나>하잖아. 그래서 영국 놈들이 스페인애들보고 지불알타지 내불알타나 한 것 같아서 걍 <지불알타>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세계사를 들쳐보면 영국이 스페인의 영토인 지불알타를 점령하게 된 사유는 다음과 같다.
1700년 스페인 왕국에 후계자가 없자 당시 힘 좀 쓰는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 왕위 계승권의 적자임을 주장하고 나섰다. 이를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이라고 하여 1701 - 1714년까지 스페인과 프랑스군 연합군에 대항하여 영국과 네덜란드가 연합하여 싸운 전쟁으로 이 와중에 영국이 지불알타를 점령하여 지금까지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타 보고 느낀 것은 영국 놈들이 졸라 나쁜 놈이다는 것이다. 식민지로 오랜 세월 점유했다 하더라도 명백한 스페인 영토이니까 돌려주는 게 당연한 처사 같은데, 돌려주지 않고 영국 해외영토로 관리하며 지중해 선박 입출입세 챙기고, 엄청난 관광 수입 올리고, 군사 요충지라 해서 공군 비행장까지 가지고 있었다. 하여간 약아빠진 영국 넘들이다.
지불알타 내항에 건설된 영국 공군기지로 길게 뻗은 활주로가 보인다. 특이하게도 군용 활주로이지만 여기서 영국 주요 도시로 가는 민항기 노선이 몇 개 있어 민간 항공사와 활주로를 공동 사용하고 있다.
겨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돌산인데 무얼 보러 오는지 관광객들이 엄청 많다. 전체 면적이 여의도 면적의 2/3 정도인 7평방 km이라고 하니 큰 땅덩어리는 아니다. 스페인 영토에서 지타에 들어가려고 하니 입국 조사와 관세조사 등으로 영국 경찰들이 똥폼을 잡고 있었다. 이뿌장하게 생긴 여자 경찰관이 나를 보면서 관세 신고하라고 하였다. 없다. 아모 것도 없데이. 있어도 죽어도 하기 싫데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스페인과 아무 연관도 없는 나 같은 배낭 여행자도 이런 영국넘뇬들의 호들갑에 배알이 틀리는데, 바로 같은 땅을 딛고 사는 스페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뒷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멀리서 보여 그거 한번 타보려고 그쪽으로 차를 몰았는데 새로운 길을 찾아 지타를 완전일주하고 정상까지 가버렸다. 덕분에 지타는 100% 정복해서 보고 왔다.
산 밑에서 해안으로 도로가 나있는데 정상까지 전부 차 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산 중턱까지는 차 길이 있어 차로 올라갈 수 있고, 그곳부터는 발품을 팔아야 시원한 정상을 볼 수 있다.
여기가 지불알타 정상으로 저 해안선 따라 위로 올라 가면 지중해 내해로 들어가게 된다.
발품을 팔아 정상에 서니 대서양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아프리카 땅의 모로코까지 희미하게 보였다. 위쪽으로는 스페인 해안이 굽이쳐 이어지고 있어 내가 달려갈 여로이기도 하였다. 지타 정상에 서서 망망대해 대서양을 바라보며 나도 언젠가는 하얀 돛단배를 몰고 내가 지금 서있는 돌산 지타로 들어오는 날이 있을까 하는 그런 몽상을 그려 보았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지불알타 내항 모습. 지중해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여기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정학상으로도 금싸라기 같은 곳이다.
지타 해안을 따라가다가 해안길이 더 이상 밑으로는 못 가고 돌아서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잠깐 이상한 건물과 간판이 있어 보니까 화장터였다. 왜 여기에 화장터가 있을까. 들어가서 하나 태우는데 얼마 하는지 물어보고 가려다가 가만 생각해보니 화장하려면 시신이 있어야 되는데 내가 배 타다가 바다에 실종되면 시신이 없어 화장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접었다. 좁은 땅덩어리에 묏자리 쓸 땅이 없다 보니 여기서는 태울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영국 넘들 진짜 치사한 놈들이다. 정상에 올라가려면 입장료 8 유료 내야 하는데 유로는 안 받는다. 그래서 나는 파운드 돈이 없으니 크레디트 카드로 받을래 하니까 카드 기계가 고장이라고 끝가지 파운드로 지급하라고 우겼다. 그ᄅ면 나보고 다시 내려가서 파운드로 환전해 오라는 소리냐고 따져 들었더니, 합의점은 유로화로 받고 거스름은 영국돈으로 받는 걸로 했다. 아이고 이 못된 영국 십새들아.
지타로 올라가는 산 중턱에 바바리 원숭이 여러 마리를 길가에 그대로 방치해서 관광객 눈요깃감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로 먹이를 현지 관광 가이드들이 주고 있었다. 바바리 원숭이라 하는데 유럽에서는 이 지역에만 서식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익숙해서 사람들을 전혀 겁내지 않고 던져주는 먹이를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일화로 여기에 원숭이를 사육하는 한, 절대로 지불알타를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는 전설이 있어, 영국 넘들이 원숭이가 서식되도록 노력을 하였다고 한다.
영국 수상이었던 윈스톤 처칠은 원숭이 수가 줄어들자 특별 보호 정책을 펴서, 한 때 원숭이 수가 3마리로 내려가자 모로코에서 원숭이를 수입하여 다시 원숭이 수를 늘렸다고 한다.
지불알타 정상에 올랐다가 바로 하산하였다. 지타를 뒤로 하고 이제부터는 지중해 해안을 따라 피카소 고향인 말라가로 가서 피카소 박물관이나 구경하고 난 뒤에는 이슬람 건축의 백미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무엇인지 한번 알아보려고 한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