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해변에서 만난 한국식 바베큐 식당
2009년 11월 3일(월요일) 쾌청
본격적으로 지중해 연안 탐사를 위해 지타를 떠나 피카소 고향으로 알려진 말라가로 가는 길에 이번에는 하이웨이로 가지 않고 제일 밑으로 나있는 동네길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가는데 어찌 보니까 다른 데하고는 너무 차이 나게 삐까번쩍한 호텔에다 집들과 콘도들이 화려하였다.
유럽 지중해 연안의 길이 대부분 3가지 형태로 되어 있는데, 바닷가를 따라 맨 아래쪽에 형성된 길은 차량은 다닐 수 없는 주민들이 걸어 다니는 길이고, 그 위쪽으로 차량들이 다니는 local 도로로 신호등이 많이 있는 길이고, 그 위쪽으로는 고속도로인 하이웨이 길이 되어있다. 하이웨이는 빨리 다닐 수는 있지만 좌우로 펼쳐지는 풍광은 별로 볼 것이 없어 가능하면 신호등이 많아 번거롭지만 로컬 길로 다니는 게 많은 구경거리를 접할 수 있다.
가이드북을 보니까 COSTA DEL SOL이라고 태양의 해변이라나. <태양의 해변>이 세계적인 휴양지가 된 이유가 일 년에 평균 300일 이상 해를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일 년 내내 찾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태양의 해변>의 중심이 되는 해안 마을이 MABELLA인데 유럽의 귀족, 부호들, 돈 많은 영화배우들, 한마디로 돈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인간들이 일 년 4계절 내내 무위도식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비치가 28개, 골프장 30개, 호화 요트 정박장 등 인생을 즐기기에는 전혀 지장 없도록 인프라가 되어 있어 주민의 반이 현지인이 아니고 외국인 거주자라고 한다. 그런 태양의 해변을 차로 그냥 지나쳤다.
그곳을 조금 지나오니 배가 고파 점심 요기할 곳을 두리번두리번 찾고 있는데 한국식 바베큐라고 눈에 익은 세종대왕체 간판이 얼핏 지나가길래 어잉 우찌 이런데 한국식당이 있을까 싶어 부리나케 차를 돌려가지고 식당 앞 도로변에 주차하고 간만에 한국말로 썰 한번 풀 거라고 기대하면서 기분 좋게 식당으로 들어갔다.
옛된 총각이 맞아 주는데 동양인 모습이었다. 웨이터 같은데 주인집 아들인가 하고 여겼는데, 처음에는 본토 말로 하길래 내가 아니라고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더니 영어가 나왔다. 나는 조선말로 <뭘 드실래요>라고 기대했는데 영어로 물었다. 현지에서 태어나서 조선말을 잘못할 수도 있겠지 하고 이번에는 영어로 주인장(OWNER)은 어디 있니 하니까 대답이 가관이었다.
“주인장이 뭔데요?”
“Owner가 무슨 말인지 몰라”
다른 말로 설명을 해주니까, 그제야 주인장은 한국인이 아니고 중국사람인데 한국 주인이 팔고 새 주인은 중국인이라고 했다. 약간은 실망한 채로, 알겄다 메뉴판이나 가지고 오너라. 두꺼운 메뉴판을 보니 한국 메뉴는 모두 있었다. 설렁탕, 곰탕을 비롯하여 한국 요리 메뉴는 총망라되어 있었다. 보니까 바베큐 메뉴가 눈에 쏙 들어왔다. 갈비나 불고기 등 단일 메뉴가 아니고 서너 가지 짬뽕으로 선택하게 되어있었다. 나는 갈비, 돼지불고기, 닭고기, 왕새우 모둠으로 되어 있는 걸로 주문하였다. 가격은 10유로이니 엄청나게 싼 편이었다. 총각이 물었다, 주방에서 구워 올까요, 아니면 바깥 테이블에서 손수 구워 드실래요. 내가 친히 구울 테니 밖에다 준비하거라.
식당 안에는 연기가 빠지는 후드 시설이 없고, 대신 밖에 테이블이 서너 개 준비되어 있었다. 불은 가스 레인지판으로 되어있었다. 사진처럼 갈비 5점, 양념된 돼지고기, 닭고기, 대하 2마리에다 야채는 상추도 나왔다. 여기 식인지는 몰라도 따로 감자, 호박 슬라이스 2점에다 맛없는 김치까지 나왔다. 그래도 맛있게 구워 먹는데 무엇이 하나 빠진 것 같았다.
그래 생마늘 한 접시가 빠져 있었다. 사환을 불러서 애야 나는 이런 바베큐의 원조 나라에서 온 사람이다. 여기에는 마늘이 꼭 있어야 하니 한 접시 가지고 오너라. GARLIC이 뭔데요? 몰라 마늘. 한심하네. 그래도 이 기특한 놈이 전자사전을 가지고 와서 스펠링을 묻네. G-A-R-L-I-C을 입력하더니 아하 하고 미소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더니 마늘을 한 접시 가지고 와서 잘 구워 먹었다. 혼자서 고기를 구워 먹는데 길을 지나가는 본토 사람들이 이를 보고 멈춰 서서 내가 고기를 구워 쌈 싸 먹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볼 테면 봐라, 나는 먹어야 사니까.
주린 배를 간만에 가득 채우고, 다시 해안도로를 타고 말라가로 향하였다. 그냥 지중해 해변으로 가서 아무 곳에서나 퍼질러 놀려고 했는데 모두들 알함브라궁전은 꼭 봐야 한다하길래, 서글픈 기타 연주곡은 옛날에 몇 번 들은 적은 있지만, 내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나. 그런데 어차피 말라가를 지나서 가야 하니 한번 가볼까나.
해안길을 따라 가는데 야자수 나무가 우거진 해안 쪽으로 작은 건물이 눈에 띄어 그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 갔다. 차를 대고 보니 파출소였다. 겁 없이 파출소 파킹장에 차를 대고 건물 뒤로 돌아가니까 지중해 파도가 파출소 뒷마당까지 들어와서 철썩거렸다.
야! 멋지다. 진짜로 지중해는 우아했다. 내 품에 안고 영원히 살고 싶었다. 이 정도 경치의 파출소에 근무할 수 있다면 스페인에서 순경이라도 하고 싶었다. 파출소 사진은 아니지만 저런 지중해 파도가 파출소 뒷마당까지 들어와서 찰랑거리는데 그만 맘이 훅하고 빨려 들어갔다. (파출소 사진을 찍었는데 어디 있는지......)
처음에는 지타에서 피카소 고향인 말라가로 가서 피카소 박물관이 있는지 한번 보고 그라나다는 건너뛰고 바로 발렌시아로 직행하려고 했었다. 피카소가 안달루시아의 말라가에서 태어났는데 아부지가 맹부삼천지교를 알았는지 피카소가 14살 때 바르셀로라로 이사 가서 아부지는 미술관에서 일자리 잡아가지고 일하면서 아들을 미술학교에 보냈다고 하더라. 아부지가 미술관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들이 미술에 소질이 있는지는 알아챈 모양이다.
말라가 시내에서 한두 시간 헤매다가(때로는 GPS가 주소를 잘 받아 주지 않아) 시내 성터만 구경하고
그라나다로 바람처럼 달렸다. 120 - 140마일(192 -
224km)로 쏜살같이 달릴 때는 이런 영화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FROM HERE TO ETERNITY(지상에서 영원으로) 1953년에 발표된 흑백영화로 버트랑캐스트, 미남 배우 몽고매리클리프, 풍만한 육체파 여인 대보라커, 가수 프랭크시나트라, 악연 조연 명품 연기로 유명한 어네스트볼그닌이 출연한 영화로 예전에 한국의 주말 명화극장에 자주 방영되었던 고전 명화였다.
왜냐하면 140마일(224km)이면 핸들 조작만 자알하면 1-2초 사이에 ETERNITY로 쉽게 갈 수 있어 제목이 뜻하는 의미가 무언지 금방 알 수 있다.
영화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배경은 1941년 진주만 공습이 바로 있기 전의 하와이 호놀룰루 미군기지로 이곳으로 갓 전입 온 프루윗(몽고메리클리프) 일병은 트럼펫 나팔수로 복싱 미들급 챔피원이었으나 시합 중 상대 선수의 눈을 멀게 하여 양심의 가책으로 복싱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프루윗 일병의 권투 경력을 알고 부대 내의 권투시합에 그를 차출하려고 마음먹는다. 중대 선임하사관인 워든 상사(버트랭카스트)는 원칙을 고수하는 철저한 군인으로 결혼 생활에 적응 못하는 중대장 부인 카렌(데보라커)과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 프루윗 일병과 가까운 전우 안젤로(프랭크시나트로)가 보초 근무 중 부대 이탈로 영창으로 가게 되는데 이들과 관계가 좋지 않은 영창 담당 하사관 저드슨 하사(어네스트볼그닌)로부터 모진 괴로 힘을 당하다 죽음을 맞게 된다. 죽은 안젤로의 복수를 위하여 홑몸으로 저드슨 하사와 격투를 영외에서 벌여 그를 죽이지만 부상당한 몸으로 부대로 귀대하는 프루윗 일병은 경비병의 오인 사격으로 즉사한다. 영화 제목처럼 <지상에서 영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나팔수인 프루윗이 죽은 전우 안젤로를 위하여 불어주는 한 밤의 트럼펫 진혼곡이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첨으로 영화에 출연한 프랭크 시나트로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을 받기도 하였다.
http://t1.daumcdn.net/brunch/service/user/1Mxf/file/hkKp1pP3jJFDodxD9U1a0cFseH4.wav
연주곡:My Way
작사곡:폴 앵카
연주:지노킴
원래 이 곡은 당시 가수로서는 한물 간 프랭크 시나트로를 위하여 후배 가수인 폴 앵카가 작곡하여 크게 히트한 곡이다. 안젤로와 프루윗 일병을 추모하며 이 연주를 Eternity에 머무는 그들에게 바친다.
말라가를 떠나 저녁 늦게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알함브라 궁전 옆에 있는 Alixares 호텔에 여장을 풀고 오래간만에 커다란 욕조에 따신 물을 가득 채워 지친 몸을 담갔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