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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Apr 13. 2020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16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2)

2009년 11월 4일(화) 쾌청


알함브라 궁전 조감도



     6. W. Irving's Apartment:


Washington Irving(1783-1859) 초상화

지금은 알함브라 궁전이 세계적인 관광의 명소가 되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렇게 된 사유에는 어느 미국인 소설가의 책 한 권이 결정적으로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와싱톤 어빙은 미국인 소설가 및 수필가로 뉴욕 맨해튼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46세가 되던 1829년 봄에 마드리드의 러시아 영사관에서 근무하던 절친과 함께 안달루시아 지방인 세비야에서 그라나다까지 여행하면서 스페인 남부의 시골 풍경에 매료되어 어떻게 해서라도 스페인 여행을 연장하기로 하였다.


그러던 중 그라나다 지역을 관장하는 태수의 허락을 받아 알함브라 궁에 거처하였는데 그가 거처한 방을 위에서처럼 W. Irving’s Apartment라고 명명되어 있다. 당시 어빙이 머물렀던 알함브라 궁전은 지금처럼 정부가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완전히 방치되어, 아름다운 홀과 정원은 페허 속에 밀매업자, 불한당 등 범죄자들의 은밀한 은신처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페허가 된 사유에는 스페인 왕국이 통일된 후에도 알함브라 궁전은 왕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18세기 초에는 수도가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은 거의 기억에서 잊혀지게 되었다.


소년 시절부터 역마살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고 풍경과 세속적인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지고 알함브라 궁전을 둘러싼 많은 신기한 이야기들을 수집하여

1832년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란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에 대한 세간의 평은 ‘낭만을 재발견한 작가’였다고 하니 그런 작가와 낭만적인 알함브라 궁전의 만남은 당연한 결과 일련 지도 모른다.



궁전에 새겨진 와싱턴 어빙 기념관

알함브라 궁전에서 워싱턴 어빙이 거처했던 방은 원래는 <여왕의 규방>으로 유령이 출몰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기피하였던 외진 곳이었는데, 이 낭만적인 작가는 이 곳을 거처로 정하고 알함브라 궁전에 전해 내려오는 각종 민담과 전설 등을 수집하여 입심 좋은 이바구꾼의 재능으로 기록하였던 것이다.


어빙이 알함브라 궁전에서 기거할 때 도움을 주었던 하녀 안토니아 아줌마와 그녀의 조카와 가난한 이웃들이 있어서  낭만적인 작가가 그만의 상상과 환상을 잘 혼합하여 마술적인 알함브라 궁전의 이야기를 새롭게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는 마치 그와 비슷하게 입담이 걸쭉한 후대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쿠바 시골 어촌마을 <꼬히마르>에서 주민들과 술과 이야기로 어울리면서 그들의 삶을 그려낸 소설 <노인과 바다>를 탄생시킨 것과 비슷한 것이다.


내가 방문한 그 해가 어빙의 사후 150주년이었다

작가가 <알함브라의 궁전 이야기>에 소개한 몇 가지 전설적인 이야기를 소개하면,


<왕녀들의 탑>

왕녀들의 탑이라는 이름은 폭군 왕인 아버지에게 갇혔던 세 공주의 사랑 이야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점성술사의 예언에 따라 결혼 적령기에 이를 때까지 탑에 갇혀 자라난 세 공주는 우연히 보게 된 잡혀 온 에스파냐 기사 포로들과 사랑에 빠지고, 두 언니는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는 데 성공했지만, 불쌍한 막내 공주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남게 되는데, 결국은 그때 달아나지 못했던 것을 한스러워하다 요절하였다. 죽은 막내 공주가 밤마다 구슬피 울거나 은류트를 연주하여 <왕녀들의 탑>에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아 기피대상 1호가 되었다고 한다.



<피리 부는 공주>

망루인 거대한 무어식 사각 탑인 <정의의 문>에도 낭만적인 설화가 있다. 정의의 문은 알함브라 궁전이 지어지기 전에 이미 있었다고 한다. 수백 년 전 그라나다를 다스리던 왕과 늙은 점성술사는 아름다운 고트족의 공주를 사이에 두고 다투게 되었는데, 점성술사는 자신의 마술에 계책을 더하여 왕으로부터 공주를 납치하여 정의의 문 지하에 있는, 마술로 봉해진 동굴에 감금하였다. 지금도 아름다운 공주가 부는 피리 소리에 맞춰 꾸벅꾸벅 조는 점성술사가 살고 있다고 한다. 공주의 피리 소리는 사람들이 잠들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 문 앞에서 보초를 서는 병사들도 피리 소리를 듣고 근무지에서 조용히 존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은 “기독교 세계를 통틀어 가장 졸음이 많이 오는 군사 주둔지”로 알려져 있는데, 그 배후에는 이러한 마력의 힘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7. Alcazaba:


우뚝 솟은 성채의 성벽

Alcazaba는 영어로 The Castle이다. 말 그대로

알카사바는 성채를 뜻하는 것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옛날부터 지형 특성상 요새로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어 궁전이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여기가 주요 군사 전략지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성채에서 궁전으로 통하는 <포도주의 문>


망루로 향하는 미로같은 길


성채에서 제일 높은 망루인 벨라탑


성채가 완전하게 자리 잡았을 때는 장병들의 숙소와 목욕탕 등 여러 생활시설들이 구비되어 있었겠지만

지금은 성벽과 몇 개의 망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성채 안쪽에서 올려다 본 망루

성안에서 제일 높은 망루를 올려다 보아도 꽤 높은

망루임을 알 수 있다. 요새의 관문이니 성을 공격하는 적이나 수성하는 방어군이 전력을 다하여 수비를 하였던 곳이 바로 저 망루이었을 것이다.



깃발이 나부끼는 벨라탑


어느 후미진 성벽 밑의 구조물


성채 속으로 미로처럼 난 길


오래된 망루


성채 벨라탑에서 북향으로 내려다 본 그라나다

성채가 해발고도 약 740m 정도에 위치하여 성채의 높은 망루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근처 마을이 발아래로 보인다. 지명을 찾아보니 그라나다의 북동쪽에 위치한 Albacin 지구라고 한다. 하얀 벽들의 주거지가 일사불란하게 늘어서 있다.


지하 동굴로 감옥소로 쓰인 듯하다





   또 다른 후원인 Generalife:


조감도 4번인 가장 오래된 궁전 Partal 궁전의 오른편 위에 다른 여름 별궁이 잘 손질된 푸른 정원 속에 자리하고 있다. Generalife 헤네랄리페라고 읽는데

여름 별궁으로 쓰였다고 한다. 알함브라 궁전 중에서 제일 나중에 건축된 건물인 것 같다.


여름 별궁 Generalife 조감도

조감도에서 보이는 곳처럼 녹색의 정원으로 아름답게 조성되어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인증샷을 날리는 곳이 Patio de la Acquia라는 곳이다.



   Patio de la Acequia:


Patio de la Acequia(아세퀴아 안뜰)

Generalife로 들어서는 관광객들이 서로서로 인증샷을 남기고 싶은 곳이 바로 여기 아세퀴아 안뜰이다. 직사각형 길쭉한 분수대에서 물이 올라오고, 완전 대칭을 이룬 양 건물 사이로 서서 인증샷을 남기고자 한다.


아세퀴아 안뜰의 분수대

분수대 연못이 작경 약 50m로 그 양쪽으로 설치된 분수대에서 물이 뿜어져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소리가 푸른 화초들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 아세퀴아 안뜰을 <물의 정원>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이란 멋진 타이틀이 처음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여기 아세퀴아 안뜰이다.

프랜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 Eixea, 1852 ~1909)는 스페인의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로, 그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이 있었다. 이에 상심한 타레가는 스페인 곳곳을 여행하다가 알함브라 궁전에 머물게 되었다. 작곡가는 궁전의 아세퀴아 안뜰에서 분수대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사랑의 아픔을 기타곡으로 작곡한 것이 바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2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왕비에 대한 무슨 애틋한 사랑의 추억이 아니고, 단지 기울어 가는 나라의 운명 앞에 왕조 사직을 포기해야 하는 비장감으로 아름다운 궁전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추억을 기타곡으로 명곡을 남긴 프랜시스코 타레가의 가슴 아픈 추억을 말하는 것이다.


원래 이 곡은 기타곡으로 작곡되어 클래식 기타를 좀 친다는 사람은 한 번씩 도전하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첨부터 끝까지 트레몰로(tremolo) 주법으로 연주되는 이 곡은 많은 기타 대가들이 실력을 뽐내는 곡이기도 하다. 마침 트럼펫 버전 악보를 구해서 한번 연주해본다.


작곡: 프랜시스코 타레가

연주: 지노킴



  


     Moorish Arches의 변천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정착하면서 새로이 선보인 그들의 기둥 양식을 크게 위와 같이 4기로 구분해볼 수 있다.


1. Caliphal Arch: 929-1031년대로 비교적 단순한

기둥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이베리아 반도에 초기에 이동하여 정착하였던 고트족들이 사용하였던 말발굽(horseshoe) 모형을 그대로 이어받은 형태.

2.Almohad Arch: 1081-1248년대로 알모하드 왕조시대 때 유행하였던 기둥 양식으로 기둥 사이의 폭이 좁아진 것이 특징이다.

3. Mudejar Arch: 1215년 이후의 양식으로 Mudejar 말 그대로 이슬람 양식에 스페인 양식이 혼합하여 탄생한 양식으로 1492년 마지막 이슬람 왕조였던 Nasrid 왕조 후에도 계속하여 이어졌던 양식

4. Nasrid Arch: 1238-1492년 사이 알함브라 궁전을 건축하였던 나사리 왕조 때 유행하였던 양식이다. 기둥 위에다 Mocarabe 양식으로 아름다운 장식을 하여 전체적으로 화려함을 더하였다.


모카라베 장식으로 마무리한 알함브라 궁전


전체적으로 궁전 내부는 아름답게 조각만 되어있지 실내에 장식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 이채로운 것은 전부 다 대칭형 무늬 조각인데 무늬가 방마다 같은 듯하면서도 사실 같은 것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어디가 틀려도 약간씩 틀리게 장식되어 있었다. 자꾸 보니까 예전에 학창 시절에 학교에서 이건 무슨 IQ TEST 할 때처럼 비슷한 모양 만들어 놓고 어긋나는 그림을 찾게 하는 그런 느낌을 받게 되었다.



기와와 처마가 있는 건축 양식

지붕은 기와를 입혀져 있어 보니까 한국처럼 그런 썻가래나무로 가로질러 놓고 그 위에다 기와를 얹어 놓았는데 기와가 우리 것보다 동글동글한 모양임.



처마를 댄 나무 하나에 정교한 조각 장식으로


모든 문이나 벽기둥에는 대칭 무늬를 사용하여 일부러 비대칭을 찾아보려고 좌우를 한참을 번갈아

돌려 보았다.



아름답게 장식된 벽기둥도 완전 대칭 무늬



아치 양식을 이중으로 만들어 놓았다. 방에 발을 들여놓은 관광객들은 모두 넋을 잃고 바라보는 듯하다.


문 하나 하나에 정교한 조각으로 장식


이슬람 특유의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된 벽


     


    물과 자연이 어우러진 궁전


건물과 겅물사이에는 물로 연결되어 있다


물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풍경


물이 빚어내는 풍경


몇 겹의 아치로 장식된 알함브라 궁전


알함브라 궁전의 건축미를 후세 사람들은 물과 자연이 빚어낸 완성체라고 말을 한다. 쉬지 않고 흐르는 물길이 건물과 건물을 이어주고 있다. 마치 사막에서 발견하는 오아시스 같은 천국을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속에 그들만의 독특한 문양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조형미로 이슬람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그런 자연미와 인공적인 조형미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알함브라 궁전을 찾아 제각각의 추억을 가슴에 새기고 돌아가는 듯하다. 그렇게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은 오늘도 전 세계인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고 있다. 알함브라에 가 본 이는 물론, 가 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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