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노킴 Jun 29.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22

아비뇽(Avinon) 다리 위에서

2009년 11월 8일(일) 맑음


니므 - 아비뇽

니므(Nimse)와 퐁듸가드(Pont du Gard)를 구경하고 바로 아비뇽으로 올라갔다. 아비뇽 유수(幽囚)라고 역사 시간에 들은 유명한 사건이 있는 장소이니까 볼거리가 있을 거라고 짐작하고 지나가는 길에 잠깐 둘러보기로 하고 아비뇽으로 향했다.


아비뇽 성곽

아비뇽 외곽성 벽은 옛날 모습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있어 지금도 도시의 경계로 사용하는데 군데군데 성문을 헐고 새로 출입로를 만들어 차들이 드나들게 되어 있다.


아비뇽 성 안 주거지

한번 차를 몰고 성안으로 들어갔다가 십겁 하고 나왔다. 안에 길이 너무 좁아 운전하기도 힘들고 주차장소 찾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성 안의 주거지



아비뇽 교황청

빨래드빠퍼(palais des papes)라고 부드럽게 된소리와 연음으로 발음해보세요. 이마엘이 갈캐 준거다.  영어로 말하면 PALACE OF PAPES이니까 교황 궁전보다는 교황청이라 하면 되겠다. 케케묵은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아비뇽 마을 한가운데 떡하니 버티고 서있었다.


교황청 앞으로 가니까 세월에 찌든 낡은 건물이 웅장하게서 있고,  대신 구경하는 관광객들이 별로 없어서 여기는 무료입장이 되는 걸로 좋아했더니 아니 다른 데보다 더 비싸게 받네요. 10.50유로. 저런 낡은 유물 단지를 비싼 돈을 주고 관람해야만 할까?




아비뇽 교황청

두 줄로 표를 파는데 한참을 서가지고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내 앞 손님까지만 받고 잠시 서비스 중단 푯말을

올리네. 옆줄에 서있던 아지매가 니 참 안 됐네 하는 표정으로 동정표를 던졌다.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잠시 야마(화)가 올라 새이들 알아듣던 못 알아듣던  영어나 한국말로 내 앞에서 자르는 이유나 물어보려고 폼 잡았다가 참았다. 느긋한 관광객처럼.



아비뇽 교황청 입구

청에 들어가면 일단 곰팡이 냄새부터 난다. 많은 장소는 출입이 제한되고 일부만 보여 주는데 많은 곳들이 오래되어 망가져 군데군데 방치되어 있다. 일부 방을 구분해서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각 교황들의 휘장이나 성구들을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다. 벽에는 몇 점의 벽화가 있는데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아 보기가 민망했다. 몇 분 교황의 동상이 있고 벽에는 부조로 몇 점 유물이 전시되어있다.   





      아비뇽 유수(幽囚)


아비뇽 교황청 내부 전경

문헌을 찾아 아비뇽 유수를 다시 정리해 본다. 유수(幽囚)란 한자말의 뜻은 <잡아 가둔다>라는 의미로 비슷한 말로는 유폐가 있다. 그런즉, 교황이 아비뇽 교황청에 유폐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에 의해 유대 왕국이 망하고 유대인들이 바빌론으로 노예로 끌려갔던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붙여진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마디로 쉽게 요약하면, 왕권을 강화한 프랑스 왕(필립 4세)이 교황과의 세력 타툼을 하다가 말 잘 듣는 프랑스 출신 추기경을 교황(클레멘트 5세)에 앉히고 1309년 로마에 있던 교황청을 강제로 아비뇽으로 옮긴 사건인데 이때는 프랑스 왕조의 세력이 막강하여 주위 다른 나라들이 이의를 걸 수 없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그 후 1377년 다시 로마로 교황청이 옮겨가기까지 7 명의 교황이 아비뇽 교황청을 거쳐갔는데  전부 다 프랑스 출신이었다. 요새 한국 정치로 보면  지역 안배 안 한다고 난리 나겠지만 힘 있는 놈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9 명의 교황님 사진을 올리니 잘 보고 인물평을 해보시기 바란다. 다행히 어둑 컴컴한 곰팡이 냄새나는 교황청 구석에 역대 아비뇽 교황청의 9명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어 다 찍어 왔다. 9 명 교황을 순서대로 배열해보면


                            클레멘스 5세(1305 - 1314년)


                               요한 22세(1316 - 1334년)



                         베네딕트 12세(1334 - 1342년)


                          클레맨스 6세(1342 - 1352년)



                     인노첸시오 6세(1352- 1362년)



 

                        우르바노스 5세(1362 - 1370년)


 

                            그레고리 11세(1370 - 1378년)


그레고리 11세는 1377년 교황청을 다시 로마로 옮겼으나 다음 해 1378년 선종하였다. 그 해 로마 교황청에서는 후임으로 이태리 출신 우르바노스 6세를 새 교황으로 선출하였으나 프랑스파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아비뇽 교황으로 클레맨스 7세를 선출하였다.



                                    클레맨스 7세


프랑스파에 선출된 클레맨스 7세는 로마 교황청과 대립하였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에도 그들의 교황이 있고, 아비뇽에는 또 다른 교황이 있어 서로를 대립 교황으로 불렀다.

이 시기를 서방교회의 대분열 시대라고 하는데 이태리 출신 우르바노 6세 로마 교황을 지지하는 나라는 잉글랜드 왕국, 아일랜드 왕국, 플랑드르, 북이탈리아, 신성 로마 제국, 헝가리 왕국, 폴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었고, 프랑스 출신 클레맨스 7세 아비뇽 교황을 지지하는 나라는 프랑스 왕국, 스코틀랜드, 부르고뉴, 나폴리 왕국, 아라곤 왕국, 카스티야 왕국, 키프로스, 사보이, 포르투갈 등이었다.



           아비뇽 교황청의 마지막 교황 베네딕트 13세


결국 1417년 콘스탄스 종교회의에서 로마 파, 프랑스파 두

대립 교황을 폐하고 단일 교황으로 마틴 5세를 선출함으로써 마침내 교황이 일원화되었다. 1309년에 분열된 교황청이 1417년 단일 통합되었으니 한 100년간 교황청이 두 군데로 분열된 셈이었다.   





     아비뇽 다리 위에서


아비뇽다리

<아비뇽 다리 위에서> 아니 <미라보 다리 위에서>인가  그런 노래도 있었는데.  찾아보니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프랑스 민요가 있는데 내가 이걸 기억하는 걸 보니 중학교 때 음악시간에 배웠던 것 같다. 아비뇽 다리 밑으로 흐르는 강이 론강인데 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아비뇽 북쪽으로 흘러 지중해로 빠져나간다.



끊어진 아비뇽 다리

이 끊어진 아비뇽 다리 이름이 쌩베네제 다리라 한다. 원래는 총 900 미터나 되는 긴 다리였는데 홍수로 유실되어 지금 이렇게 남아 있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고 한다.


여기에도 찾아보니 전설 따라 삼천리가 있었다.

옛날 이름이 베네제라고 하는 아비뇽 목동이 꿈속에서

론강에 다리를 놓으라는 하느님 음성을 들었다. 하지만 아무런 능력과 재력도 없는 그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되물어보니 오로지 믿음과 가지고 하라고 하였다.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나 다리를 세워야 할 곳으로 베네제를 데리고 갔다. 양치기는 하느님 명령에 따르기로 하고 아비뇽 주교 한 데 가서 자신이 론 강에 돌다리를 놓겠다고 하자 처음에는 주교도 비웃었다. 그러자 양치기는 보란 듯이 석재들을 옮겨와 다리를 놓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마을 유지들이 조직한 <다리 형제회>에서 기부금을 모아 1178년 착공하여 7년 만인 1185년에 900미터 길이의 아비뇽 다리가 완공되었으나 1669년 론강의 범람으로 한쪽 부분이 유실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라고 다리 위에 올라가는데 돈 받는다. 절대로 돈 내고 가기는 싫어 올라가지 않았다.



교황청 넓은 광장 맞은편에



앞 벽면에 요란스럽게 장식한 건물이 있는데  


한쪽을 확대하여 촬영해 보니 무슨 조각의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도통 알 수가 없다. 이럴 때는 현지 가이드가 필요한데.....



아비뇽 성당

가다 보면 교황청 왼쪽 언덕 위로 교회(성당)가 있는데 교황청이 있을 당시 여기서 교황과 추기경들이 미사를 보았다고 한다. 지금은 유적지로 남아있다.




예수와 성모상

성당 지붕 맨 꼭대기에는 성모상을 세워놓고 그 밑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상이 처연하게 걸려있다. 생각해보면 로마 베드로 성당 지붕에도 똑같은 예수와 성모상이 있을 터인데 두 분이 로마와 아비뇽을 왔다 갔다 하시기에 참으로 바쁘고 번잡하실 것 같았다.





    교황청을 구경하고 시내 공원에 가 보니



이런 멋진 동상이  있는데 보니 앞에 있는 1791 - 1891로 보아 프랑스혁명 100주년 기념 동상 같다.




근데 맨 위에 서있는 처자는  상의가 실종되어있고

중앙에는 삥 둘러 가며 여러 조각상들이 자리 잡고



포효하는 사자의 가래 끊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비뇽. 그 이름만으로도 역사의 향기가 나는 듯하다.  



그 옛날 한 때는 유럽 전역의 성직자들을 호령했던 교황청이 지금은 쾌쾌 묵어 버린 돌멩이 사이에서 곰팡이 냄새가 풀풀 난다. 흐르는 시간 앞에는 정지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비뇽 유수의 역사적인 현장을 보니 그런 사건들도 이제는 시간 속에 묻혀 우리들에게는 다 잊히고 역사가들의 주머니 속에서 놀고 있을 뿐이다. -jh-




 

작가의 이전글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