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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Jul 29.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바하마 그리고 쿠바 6

아바나 시내 관광

2011년 8월 4일(목) 맑음


대리석을 깐 Paseo del Prodo

처음으로 가 본 시내로 paseo del prado라 하는데 번역하면 프라도 거리다. 바닥이 삐까 반짝이는데 놀랍게도

전부 통대리석이다. 물론 스페인 식민지시대에 건설된 도로다. 유명한 캐피탈 건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거리인데 손에 카매라든 사람은 전부 관광객이다. 들어보니 옛날 식민지시대에 스페인 귀족들이 가족을 데리고 산보하던 거리란다.  그래서 바닥이 전부 대리석이라는데.  그뒤 줄곧 군대나 시민들의 parade 장소로 각광을 받았는데 현재 모습은 1927년에 재건설한 모습이라고 한다.



Prodo 거리의 사자상

이 거리에 있는 다른 명물은 사자상. 사자는 아바나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1927년 재건설 때 같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쿠바 국회의사당

이 거리를 돌아 큰길로 나가면 Capitolio를 만나는데 영어로 Capitol이다. 처음 보았을 때, 어디서 안면이 많은 빌딩이었다. 알고보니 바로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국회 의사당을 본떠 만든 건물이다. 이 건물이 쿠바 아바나의 상징적인 건물이 된 것이  1926년 공사를 시작하여 1929년 완공되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데모 집결지가 된 것이다. 1933년 군부 독재에 항거하여 마차도 정권 타도를 외친 시민들이 Capitoloi 앞에서 모여 시위를 하였으나 군대가 데모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도 하였다.  1959년까지는 국회의사당 기능을 하다가 지금은 역사 박물관으로 시민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Cuba Havana Capitolio

담배 공사로 가기 전에 멀리서 잡아본 시청사 capitolio.


시청사를 스케치 모드로 전환


쿠바 차이나 타운 입구

담배공사 뒷길로 가다보니 쿠바에도 china town이 있다. 정말로 세계 곳곳에 박혀있는 민족이 역시 화교다. 어쩐지 친밀감이 온다. 이 사회주의 국가에도 중국인이 모여 산다니. 차이나타운은 시간상 전부 다 둘러 보지는 못했지만 외국인 관광객들이 꽤 보인다.  



차이나 타운 거리

화교들의 거리라고 <화인가>라고 명명하였다. 다른 어느 나라에 있는 차이나 타운과 흡사하다. 내가 사는 미국의 대도시에도 어김없이 그들의 차이나 타운이 있고 대부분이 관광코스의 하나로 소개되고 있다.



쿠바 국립 미숙한 전경

혁명 박물관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쿠바의 국립미술관. 원어로  museo nacional de bellas artes 로 영어로

번역하면 fine arts national museum. 1913경  설립된 미술관으로 쿠바의 국내 및 세계적인 예술품을 사 모아

전시하고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  들어 가 보지는 못했다.



 

쿠바 현지식

쿠바와서 처음으로 사먹은 저녁식사다. 그냥 해산물 잡탕인데 해산물은 랍스트 꼬리, 새우, 생선 필레밖에 없다. 저기 대서양 물건너 지중해에 가면 무셀(홍합)하고 갑오징어도 넣어 주는데. 그래도 시장이 반찬인데 주는대로 남김없이 접시를 비웠다. 가격은 미화 16불로 관광객들에게 받는 요금으로 쿠바 현지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음식이다.



아바나 한 잔하러 모히또로 갈까

그리고 훼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는 모히토(MOJITO) 칵테일도 한 잔 마셔 보았다. 저녁 늦게 혼자서 호텔방에서 사진 정리하다가 목이 말라 호텔바로 내려 가서 미국 발음으로 마히토 달라고 했더니 바텐더가 못 알아 먹었다. 겨우 메뉴판 보고 집어 줬더니 아, 모히또하면서 한 잔 말아주었다. 이제 내 경상도 사투리 영어 발음도 미국화되는 모양이다.






      혁명 박물관이 되버린 대통령궁


수리중인 혁명 박물관

혁명의 나라답게 혁명 박물관도 있다. 국립 예술작품 박물관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만난다. 수리 중이라 들어 가 볼 수는 없었지만 밖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혁명시 사용된 전쟁무기와 그후 쿠바 미사일 위기시 장착된 미사일도 보여준다. 그 때가 젊은 케네디 대통령과  흐루시초프간의 힘겨루기할 때로 1961년 그 해에 이를 빌미삼아 케네디가 EMBARGO(교역금지령)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되어 근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내가 쿠바여행하는데에 애를 먹이고 있다. 미제 크레딧카드도 안 받아 주고 미제 달러는 똥값으로 치주고, 대신 캐나다 달러나 유로화가 대접받는다.





       쿠바 미사일 위기


1961년 1월 미국 35대 대통령에 취임한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 비밀리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한다는 첩보를 보고 받고 당시 소련 당서기장 후르시초프에게 제3차 세계 대전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날린 사건으로, 당시의 주변 정세로 보아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미국이 터키나 중동의 친미 국가에 소련 영토를 공격할 수 있는 핵미사일을 설치하자 이에 안보의 위험을 느낀 소련이 친소 노선인 쿠바에 미본토 사정거리에 드는 미사일 기지를 비밀리에 설치하려고 한 것이다. 1961년 10월 거의 군사력 대결까지 갈 뻔한 이 사건은 양측의 합의로 미국은 이태리와 터키에서 핵미사일을 철수하고, 소련은 쿠바에서 미사일 기지 설치를 중단하고, 미국과 소련은 쿠바 내정에 간섭하지 않기로 하고, 미국과 소련간 직통 hot-line을 개설하여 외교 창구를 마련하였다.




     미국의 피그스만 침공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려고 하였던 배경에는 1961년 4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미국 CIA 지원으로 훈련한 1400명의 쿠바 망명자들이 쿠바 남부 피그스만에 상륙한 사건이 있다. 1960년 1월 혁명으로 친미 바티스타정권이 붕괴하고 친소 정권이 들어 서자 이를 예전처럼 돌려보고자 미국으로 망명한 친미 쿠바 망명자들을 CIA가 지원하여 침공을 감행하였지만, 소련의 지원을 받은 쿠바 혁명군의 저항으로 사흘만에 작전은 실패하였고 많은 인원이 생포되어 거액의 몸값을 지불한 뒤 포로들을 미국으로 돌려 주었다. 이런 미국의 침공에 자극을 받아 소련은 쿠바 지원 및 보호 목적으로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고 하였던 것이었다.



쿠바의 Pigs 만


혁명 박물관 앞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쿠바 군바리 총각. 내가 열심히 사진찍어도 암말없었다.



       

 혁명 당시 혁명군이 사용한 짚차 및 탱크



혁명박물관은  이전에는 대통령 궁전이었는데 혁명정부가 접수하여 박물관으로 전환했다. 옛날에 본 영화중에 로버트 레드포드가 주연한"HABANA"라는 영화 장면에서도 연말에 부패한 정부 관리들이 궁전에서 화려하게 연말 파티를 열고 있는데 혁명주역들이 혁명을 성공하여 정부관리들이 뿔뿔히 흩어지며 국외망명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가 바로 그 궁전이었다. 다시 찾아보니까 지금은 기억이 잘 나는데, 그 영화를 다시 보면 당시의 대통령궁과 인접 거리 모습들이 되살아 날 것 같다.


이 박물관에서 제일 관심을 끄는 것은 쿠바 혁명사를 읽어보면 등장하는 유명한 배가 있는데 배이름이 GRANMA(할매)라고 한다. 피델, 라울, 시엔푸에고스 그리고 체 게바라 지휘하에 멕시코에서 결성된 혁명군 82명이 이 배를 타고 1956년 12월 쿠바 남동부로 야간 잠입하여 그 후 혁명과업을 달성했는데 바로 그 배가 외부를 유리벽으로 막아 놓고 전시되어 있다. 그 후 이 이름 GRANMA는 쿠바 공산당 당기관지의 공식 이름이 되었다. GRANMA는 말 그대로 누구의 할머니를 생각하여 작명된 배 이름이라고 한다.



혁명군 운반선 할매호(Granma)





    거장 시드니 폴락의 영화 <Havana>


영화 Havana 포스트

1991년 개봉된 시드니 폴락 감독의 영화. 유난히 로버트 레드포드와 영화를 많이 만든 이 감독은 우리가 좋아하는

<아웃오브 아프리카> <Three days of the Condor>

<The way we were> <Jeremiah Johnson> <War

Hunter> < The electric Horseman> 등 여러 히트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 <Havana>는 쿠바 혁명이 최고조에 이른 1960년대를 배경으로 실제 쿠바 혁명의 이야기를 주제로 그 속에 얽혀있는 여러 인물의 애증어린 사연을 그려내고 있다.


미국의 프로 도박사 잭 웨일(로버트 레드포드)은 세계의 유명 카지노를 전전하는 직업 도박꾼이다. 미국서 배를 타고 쿠바 아바나 카지노로 가던 잭은 배 안에서 미모의 여성 바비(레나 올린)를 우연히 만나 그녀의 작은 부탁을 들어 주었다. 비싼 향수라고 세관 통과가 힘드니 미국 관광객인 잭에게 통관을 부탁한 것이었다. 바비가 부탁한 것은 향수가 아니고 혁명군 지휘에 필요한 미제 무전기였고, 바비는 혁명군 대장의 부인으로 무전기 구입하러 미국을 다녀 오던 길이었다. 무사히 아바나에 입국한 잭은 물건을 돌려 주기 위해 아바나에서 바비와 그녀의 남편을 만나는 와중에 열혈 혁명 당원인 바비와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혁명을 도와 달라는 제의를 받지만 도박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이 없는 잭은 일언지하 거절하고 헤어진다. 며칠 후, 비밀경찰의 기습으로 바비 남편은 사살되고 바비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잭은 가지고 있던 도박자금으로 썩어 빠진 고위층에게 뇌물을 주고 바비를 석방시켜 준다.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온 바비는 미국으로 같이 가자는 잭의 호의에 이끌려 혁명도 집어 치우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쿠바 아바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사살된 바비의 남편이 죽지 않고 옥중에 구금된 것을 안 잭은 그냥 모른척 할 수가 없어 도박 자금으로 팔뚝에 살을 파고 숨겨논 다이야몬드를 꺼내 다시 뇌물로 바비 남편을 석방시킨다. 곧 공산 혁명이 성공하여 많은 미국인들이 쿠바를 떠나야만 하게 되자 잭은 혼자서 배를 타고 아수라장판 아바나를 떠나 플로리다로 돌아온다. (쿠바에서 잘 지내던 훼밍웨이도 이 즈음 미국으로 돌아와서, 아이다호주에서

1961 7 엽총으로 자살하여 생을 마감한다.) 미국으로 돌아  잭은 바비를 잊지 못하고 쿠바 아바나가 지척에 보이는 Key west 해변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키웨스트에 있는 미국 최남단 표지석으로 쿠바까지 직선거리 90마일이다


수호 천사 교회

1693년에 수사들의 은거지로 축성된 수도원이었는데 1788년 수호 천사 교회로 탈바꿈하였다. 혁명 박물관과 옛시가지 사이에 우뚝 서있다. 국부 호세 마티가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아 더욱 더 유명세를 탔다고 한다. 쿠바의 노벨상 수상자  Cirilo Villaverde가 이 교회를 배경으로 해서 쓴 소설이 있는데, 현지 처자와 백인 부유층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바구라고 한다.



     

길바닥에 남겨진 성채 황성옛터

지금의 혁명 박물관 앞에 서 있는데 과거의 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지금은 다 뭉게져 과거의 유물이 무덤에서 다시 살아 나온 것처럼 눈길을 끈다.


바로 이 혁명 박물관을 보고 돌아 나오면 갑자기 앞이 훤히 트인 거리가 나오는데 바로 아바나 가면 꼭 가 보라고 여러 여행기 사이트에 올려진 명소 말레꼰(MALECON) 해변이다. 아바나 가면 꼭 찾아 가보아야 할 곳이 커비리안 해변에 일자로 길게 뻗은 말레꼰 해변이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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