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나 치노 유학생
2011년 8월 10일(수) 맑음
쿠바 혁명군과 비스무리하게 강행군해서 일단 차로 동부 Santiago de Cuba까지 돌아보고 마지막 날 저녁에 santiago에서 havana까지 1000km를 밤새워 한잠도 자지 않고 달렸다. 물론 운전은 돈 받는 가이드가 하고, 지는 29세이니까 아직 한창나이인 청춘이 아닌가. 중간중간 물어봤지. 힘들면 내가 좀 해주꾸마하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 지는 아직도 틴에이저 같다나.(그래, 그라몬 니가 다 해라. 이렇게 차로 편하게 여행해 보는 것도 첨이다) 그래 사람들은 다 그렇게 느끼는 모양이다. 그래 나의 느낌도 나는 40대 초반이니까.
치노 유학생의 무임승차
산티아고에서 저녁을 먹고 출발하려는데 중국인 같은 어린 여학생이 내 가이드한테 스폐뇰로 뭐라고 물어보는데 가이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난처해하면서 나한테 물어보라고 한 모양이다. 여학생이 스폐놀로 나한테 물어보는데 귀가 안되잖아. 통역 내용 즉, 중국에서 유학 온 대학생으로 아바나 근처 대학에 다니는데 주말에 버스 타고 내려와서 구경하고 오늘 저녁 아바나로 올라가야 하는데 버스표가 매진되어 다른 방법이 없다고 제발 아바나까지 무임승차시켜 달란다. 맴 좋은 내가 그런 딱한 처지를 보고 그냥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어 태워주고 대신 쿠바의 외국 유학생에 대한 좋은 정보를 얻었다. 물론 통역을 통해서.
외국인에 대한 특별 교육 프로그램
쿠바와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외국에 대해서는 특별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는데 그중 관계가 좋은 나라 중의 하나가 중국인데 아마도 지금 현재 제일 많은 중국 유학생들이 쿠바에서 완전 짜배기로 공부하고 있다. 이 애가 다니는 학교에만 약 천명의 유학생이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중남미 스페니쉬하는 국가와 중국이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다른 대학교까지 고려하면 많은 유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는 소리다. 수업료, 기숙사비, 식비까지 무료고 개인 용돈만 있으면 되는 모양이다.
이 학생은 중국 운남성 곡부(曲阜) 출신인데 그곳에서 고등학교 마치고 3 년 전에 쿠바에 와서 스페니쉬 어학연수 과정에 있는데 2년 더 학부과정(스페니쉬 전공) 마치고 의대에 진학할 예정이란다. 그러니까 쿠바는 아직도 medical science 분야에서는 중남미 및 카리브해에서는 어깨에 힘주고 있다. 돈이 없어 최신 의료 기계가 없을 뿐 의료 인력은 풍부하다는 소리다. 중국에서 선발되는 조건은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여자애가 야물딱지게 생긴 게 우리로 치면 국비 장학생쯤 되겠지. 1990년생이니까 올해 스무 살이다. 그런데 영어를 전혀 못한다. 내가 영어 하냐고 물었더니 딱 한마디 하더라. No memory. 아마 배웠는데 다 엿사묵고 까묵었다는 이바구다. 중국에 있는 부모가 용돈을 보내 주는데 일 년에 약 1000유로 정도로 현재 환율로 약 1250불 정도이니 한화로 백오십만 원 정도의 약소한 금액이다. 나도 진작 이 프로그램 알았더라면 내 딸내미도 쿠바로 유학 보냈으면 학비 안 내고 남은 돈으로 거부 실록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제일 궁금한 질문이 당연히 들제.
북한 유학생이 없다니?
El numero de nord corea estudiantes? 간단하게 스페니쉬 본토 말로 물어보았다. 돌아오는 대답은 cero(세로). 좀 이상하더라, 천명되는 유학생 중에 북한 유학생이 없다니. 다른 나라 유학생 분포를 물어보니 이태리, 스페인, 중남미 유학생이 소수이고 chino가 대부분인 모양이다. 요새 정일이가 몸이 아파 피델하고 라울(카스트로 동생)하고 사이가 별로 서먹서먹해진 건지. 북한 유학생이 없다는 것이 좀 서운한 부분이다.
아바나 시내를 카메라 매고 걸어가면 좀 사교적인 본토인들이 면전에서 물어본다. 처음에는 치노? 치노? 하고 묻다가 대답 없으면 자방? 자방? 묻는데 일본인인지를 묻는다. 난 그때 슬며시 꼬레아라고 말해 주는데 그러면 반드시 이렇게 물어 온다. 수드 아니면 노드인지. 난 대부분 노드(북쪽)이라고 말해 주는데 그렇게 말한 의미는 남한 중에서도 북쪽인 서울 물을 좀 먹었다는 의미로 말한 거다. 내가 북한 주민은 아니잖아.
무반주 가라오케로 시간을 죽이면서
차 타고 가면서 전부 다 심심하잖아. 첨에는 필담으로 중국 유학생과 신나게 대화를 하다가 한자 밑천이 서서히 떨어지고 나면 가이드 통역을 통해서 대화가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내가 돌아가면서 노래 한곡씩 하자고 제의해서(차주로써 좀 강제성을 가진 명령 비슷하게) 내가 먼저 한곡 돌리고. 그냥 심심하면 신나게 흥얼거리는 노래로 바비킴의 파랑새를 불렀다.
https://youtu.be/zl1jo5zhCsE
가사 중에 재미있는 노랫말이 이런 거다. <그대 없이 그대와 사는 나의 하루는 문 열린 감옥과 같겠죠> 얼마나 기발한 비유냐. 사랑하는 이 없이 살아가는 지루한 삶이 감옥 생활 같지만 그래도 문이 열려 있어 때론 자유롭게 들락날락한다는 소리로 재치 있는 비유다.
다음에 기사겸 가이드가 한 곡 뽑는데 물론 스페니쉬로 부르는데 좀 듣기에 맬랑꼬리해서 영어로 번역해 보라 했더니 이런 내용이다. <내가 너를 그렇게 잘해 주었는데, 그대는 나를 영영 떠나갔는지 이제는 전화조차 해 주지 않네요. 내가 너를 이제 잊어야만 하는지 알 수가 없네요. 제발
전화라도 한번 해 주세요.> 대강 이런 내용의 노래인데 국적이 어느 나라 노래인지 물어보니 쿠바 노래가 아니고 푸에뜨로리코 가수가 부른 노래란다. 이런 퇴폐적인 노래가 쿠바 젊은이에게 먹히고 있다는 이바구다. 중국아는 지가 젤 싫어하는 게 가라오케라면서 노래를 흐지부지하게 끝내버린다. 그리고 쿠바에도 가라오케 비디오 파는데 LG 제품이다. 공항 면세점에 진열되어 있었다.
무사히 야간 운전을 마치고
그렇게 밤을 패가면서 달려온 덕분에 새벽에는 치노 유학생을 학교가 있는 근방에 내려주고 해가 뜨는 아침에는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공항에서 내리고 가이드가 빌린 차를 반납하고 차 빌릴 때 내놓은 보증금($150)을 찾아서 갖도록 하고 공항에서 가이드와 작별하였다.
저번에 입국할 때는 호세마티 국제공항을 세세히 보지 못하였는데 오늘은 출국하면서 일층 로비를 둘러보니 어느 공항 못지않게 깔끔한 건물이었다. 다만 다른 나라 공항과 다른 점은 공항의 인구밀도가 낮다는 것으로 이용객의 대부분이 외국 관광객들이고 쿠바 내국인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공항의 일층 로비 반대편으로 각종 기념품 판매점과 상점들이 문을 열고 영업을 하고 있지만 이곳도 다른 공항과는 달리 이용객이 많지는 않았다.
공항 이층에는 ticketing 하는 항공사들로 부스가 마련되어 있다. 운항하는 비행기 노선이 많지 않다 보니 여기도 사람들이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용객들 측에서 볼 때는 줄을 서지 않아 출국 절차가 매우 간편해서 나쁜 것은 아니다.
전반적으로 볼 때 세계의 다른 어느 공항보다 세련되고 깨끗하다만 전혀 붐비지 않는다. 쿠바 내국인의 해외여행은 거의 없기 때문에 관광객 말고는 공항 이용객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어디에서 쿠바 아바나로 들어오는 뱅기노선이 있는지 궁금해서 공항에 비치된 도착 스케줄 모니터를 보니까 ….
보니까 같은 커리비안 국가로서는 내가 타고 들어 온 바하마 낫소와 도미니카 공화국이 있고, 중남미 국가로서는 멕시코, 온두라스, 페루(리마)가 있고, 유럽 국가로는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프랑스 파리 등이 보인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쿠바 여행이 2014년부터 풀렸기에 그 전에는 미국 시민권자는 바하마에서 쿠바로 바로 들어가면 안 되고 미국이나 바하마가 아닌 제3 국(주로 멕시코 캔쿤이나 캐나다 토론토)에서 쿠바로 들어가야 안전하게 다시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난 바하마에서 겁 없이 바로 쿠바로 들어갔기에 문제가 좀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바하마에서 미국으로 입국하는 여행자는 바하마에서 미국 입국 심사를 먼저 하기 때문에 모르게 쿠바를 갔다 오면 여권에 바하마 입출국 도장이 찍히지만 쿠바 입국 도장은 없어 조금만 세세하게 입출국 스탬프를 조사하면 쿠바 갔다 온 게 밝혀지게 된다. 진짜 운 좋게 바하마에서 미국 세관을 통과해서 마이애미행 뱅기를 탈 수 있었다. 마이애미 공항에 2시간 연착되어 도착해보니 집에 가는 노폭행 뱅기가 이미 떠나버려 연결 편이 없었다. 뱅기회사에서 공짜로 호텔 주고 밥 주고 하길래 좋은 호텔방에서 짜배기로 따끈따끈한 어제 일을 적어 보낸다.
지나고 보니 당시 2011년도의 쿠바 여행은 일종의 모험 같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쿠바 여행을 금지하지만 배고픈 쿠바 정부는 여권에 입출국 도장을 찍어주지 않고 별도로 사증을 발급하면서 관광객을 허용하고 있으니 모순된 시스템으로 쿠바 여행을 장려하는 셈이다. 그래도 나는 운 좋게 현지 가이드가 연결되어 지방까지 둘러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게 얼마나 값진 경험인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이제는 합법적으로 쿠바 여행을 갈 수 있으니 시간 되면 여권에 쿠바 입출국 도장을 선명하게 받아 가면서 다시 한번 쿠바 땅을 구경하고 싶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