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내 단체 투어(1)
2009년 11월 12일(목) 맑음
내 차로 로마 시내투어 하는 것을 민박집 주인장이 말려 차를 파킹장에 넣어 놓고 처음으로 차없이 가이드 투어 관광에 따라 나섰다. 가이드 투어 갔더니 웬놈의 경상도야들이 다 모였는지 오늘 내내 귀에 들려오는 경상도 사투리에 여기가 고향인지 로마인지 분간이 안되었다. 단체 투어 인원은 20명 남짓한데 경상도 신혼부부 두 쌍은 창원과 울산에서 왔고, 부산 아가씨 2명에 나까지 7명의 경상도 사투리로 로마 시내가 시끄러웠다.
하루 당일치기로 끝낸 로마 시내 관광
로마 시내 관광을 글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 가이드가 대강 설명해 준다 하더라도 그걸 다 소화할 수 없다. 그러니 로마 관광가는 사람은 가기 전에 그리스 로마 신화나 로마 고대사부터 역사적인 사건이나 인물 등에 대해서는 좀 알고 가는 것이 소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가서 증명사진(인증샷)만 박아 올 계획이라면 그런 거 필요 없지만.
근래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더미에 오른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쓴 14권짜리 로마인 이야기라는 책이 있는데 만일 로마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는 책이다. 너무 자질구레하게 이야기가 반복되어서 그렇지 로마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나온 어느 책보다도 월등하다. 나도 이쪽에는 흥미는 있어 조금 보고 갔지만 그 많은 고대 유적과 유물을 하루아침에 보고 이해하는 데는 무리다. 시간 나는 대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더 공부해서 다음에 갈 때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가야겠다. 지금부터 간략 간략하게 설명하고 넘어가는데 좀 더 자세한 보충수업이 필요한 독자는 질문하셔도 좋다. 제가 아는데 까지는 짜배기로 더 알려드린다.
- SAN GIOVANNI IN LATERANO
로마가 그리스도를 국교로 인정한 후 약 4세기경 축성된 최초의 교회로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 간 후에는 로마에서는 대표적인 교회로 번성하다가 교황청이 다시 로마로 이전하면서 베드로 성당이 각광을 받자 그때부터 쇠락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룹 투어 동기생들을 기념 촬영한 곳이다.
교회 정면을 확대하여 촬영하였다. 그런데 저래 지붕 꼭대기에 성상을 세워 놓으면 비바람 치고 천둥 번개 치면 떨어지지 않으려나. 이 교회의 다른 이름은 SAN GIOVANNI IN LATERANO라고도 부른다.
- COLOSSEUM
여기는 너무나 유명한 콜로세움(원형경기장)으로 AD 72년에 시작해서 8년 뒤 AD 80년에 만들어졌다 하니 1930년 묵은 돌박이다. 처음 완공 시에는 약 55천 명 관중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는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북아프리카의 El Djem, 프랑스 니므(지중해를 찾아서 21편 참조)와 Arles, 이태리의 Verona에도 원형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외벽에 군데군데 구멍이 있는데 가이드는 예전부터 로마 시민들이 필요한 돌을 무단으로 빼가서 생긴 구멍이라는데 좀 수긍이 안 가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는 자연적인 마모현상 같은데. 그러니, 가이드 말도 100% 믿을 것도 아니다.
원형경기장 측면 확대 사진. 원래 이 터는 예전에 폭군 네로 황제의 왕궁이 있었던 곳으로 당시 황제인 Vespasian이 명령하여 원형 경기장을 짓기 시작하여 8년 걸려 완공하였다.
낮에도 실컷 구경하고 해질 무렵에는 민박집에 가서 저녁 먹고, 저녁 야경 가이드가 짜배기라 하길래 파김치 같은 시신을 추슬러서 저녁에 로마 야경투어에 조인했다.
로마 병사로 분장한 비즈니스맨. 걍 같이 사진 찍어주고 팁 받는다. 사실 나도 병사를 모델로 찍었으니 돈을 줘야 하는 게 마땅한데, 그렇게 모델이 되는 피사체마다 돈을 줘야 한다면 거부가 되어야만 할 판이다.
- 화려한 문양들(emblem)
이런 걸 문양(emblem) 또는 문장이라고 하는데 각 왕조나 가문의 상징을 표시하는 것으로 유럽에서는 황실과 관련된 건축물 등에는 반드시 집어넣는다. 로마 어디 건물에서 찍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다. 이런 걸 봐서라도 이제 거의 386 폐품 컴퓨터 수준으로 내려앉는다.
여기가 고대 로마 유적지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그냥 로마 포럼이라고 하는데 고대 로마시대에 정치적, 경제적, 사법적 행정 중심지였다. 가이드 투어는 시간상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고 전체가 잘 보이는 언덕에 올라가서 남아있는 돌박이나 돌기둥 가지고 무엇 무엇이라고 설명한다. 요즈음도 시사포럼이라 해서 토론의 장소라는 의미로 쓰는 영어단어와 동일하다. 고대에는 이 안에 황제 저택, 신전, 원로원, 예배당 등이 들어 차 있었다. 사진 중앙 뒤편으로 콜로세움의 벽이 보인다.
다신교였던 고대 로마 사회에서는 여러 신을 봉양했는데 그중의 한 신인 새턴 신을 모시는 신전이었다. 기원전 약 497년부터 모셨던 신전인데 그 뒤 파괴되고 복구되어 현재 8개 기둥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데 기원전에 세워진 기둥이라고 하니 정확하게 2000년이 훌쩍 넘은 해묵은 돌박들이다. 새턴은 로마 신화에서 번영과 평화의 신으로 간주되는데 주로 노예를 포함한 하층민 계층에서 숭배한 신이라고 한다.
Basilica Julia로 율리아 법정이라고 한다. 바실리카는 예배당이나 법정 같은 Court를 포괄하는 장소를 의미한다. 이름 그대로 율리우스 황제가 살아 있을 때 기원전 54년부터 짓기 시작하였는데 황제가 살해되고 난 뒤 조카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완성시켰다. 주로 민사법을 다루는 법정으로 총 180석으로 되어 있는데 1조가 45명씩 4개 조로 나뉘어 토론과 합의로 민사 케이스를 다루었다고 한다.
원래는 중세기경에 만든 교회당인데 그 뒤 1635경 재건축한 건물이다. forum 에는 들지 않는데 오른쪽 옆 황제 개선문을 찍다가 보니까 있어 박았는데 원래 Forum에 속하는 건물은 아니었다.
Triumphal arch of the Emperor 또는 Septimius Severus의 개선문이라고 하는 황제 개선문으로 Ad 203년에 건축하였다고 한다.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즉위
10주년 기념으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황제가 파르티아(현재의 이란, 이라크 지역)와 아랍지역을 평정하고 돌아온 치적을 새겨 놓았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 의하면 외국 원정을 갔다 온 개선장군(황제)은 개선식을 할 수 있도록 원로원에 청원하면 원로원에서 이를 승인하여야 할 수 있었다 한다. 개선장군은 흰 말 4 필이 끄는 마차를 타고 입장하면 연도변에 늘어 선 시민들이 환호하고 개선장군 뒤를 이어 전리품을 실은 마차가 들어오는데 여기에는 포로를 비롯하여 포획한 적국 장군, 볼모로 데리고 오는 황실 세자 등 볼거리가 많아 개선식을 하게 되면 로마 시내가 한바탕 술렁거리면서 시민들에게 많은 구경거리를 제공한 모양이었다.
내려가서 사진을 못 찍어 다시 한번 써 묵는다.
표시한 곳이 Temple of Antoninus and Faustina인데 AD 11년에 황제였던 Antoninus Pius가 죽은 황후
Faustina를 위해 지은 신전이다. 뒤에 황제가 죽고 난 뒤에는 둘 다 이곳에 봉헌되어 제사를 모셨다고 한다. 그 후
11세기경에는 잠시 교회로 용도 변경이 되었다고도 한다.
Temple of Vesta는 포럼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중의 하나였다는데 오리지널은 기둥 20개가 삥 돌아가면서 자리 잡은 형태로 원형 건물이었다. 대략 AD 4세기경으로 추산되는데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1930년대 부분적으로 재건축한 것이란다. Vesta는 Hearth의 여신인데 Hearth를 번역하면 화덕이나 벽난로쯤 되는데 성스러운 불을 신전에서 꺼지지 않도록 1년 365일 동안 여사제들이 불을 관리했다고 한다. 베스타 신전의 여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집안이 귀족 집안이어야 한다. 엄정한 선발 과정을 통해 6 -10세 여아를 뽑는데 30년 서비스를 해야 한다. 처음 10년은 배우고, 다음 10년은 신전에서 봉사하고, 마지막
10년은 새로 선발된 여사제를 교육시키는데 일단 여사제로 선발되면 존경받는 지위가 되고 재정적으로 충분하게 지원을 받는다. 이는 티베트 가정마다 자기 아들 한두 명을 monk 시키려고 하는 것과 똑같다. 이렇게 신분상이나 재정적으로 보장을 받는 대신 30년 봉사기간 동안 순결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직무 태만으로 신전의 불을 끄트리면 죽살토록 매타작 받고 해고된다. 또, 중간에 파계를 하게 되면 벌이 엄청난데 산채로 파묻어 버린다. 혹, 남자와 눈이 맞아 파계하게 되면 여사제는 물론 남자는 채직으로 죽을 때까지 매타작 당한다. 이런 일 없이 30년 봉사 끝나고 은퇴하게 되면 자기가 원하는 어느 곳에 가서 정착할 수 있고 원하면 그때는 결혼도 할 수 있는데 대부분 그냥 그대로 독신으로 살았다 칸다. (나이 들어 남편 밥해주기 싫은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인 모양이다)
Temple of Castor & Pollux라고 제우스의 쌍디(쌍둥이) 아들인 Castor와 Pollux를 봉헌하는 신전이다. 처음 신전은 BC 484년경 건축되었는데 그 배경은 이렇다. 그 시대의 어느 로마 집정관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었는데 그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면 쌍디를 위해서 신전을 짓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는데 결국 그 전쟁에서 승리하여 신전을 지웠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 쌍디가 나타나서 로마군을 도와 적군을 물리쳤다는 야사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로마가 7개의 작은 언덕(hill)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Palantine Hill은 그중의 하나로 공화정에서 제정 로마시대로 넘어가면서 황제들이 궁전을 지어 거주한 곳으로 궁궐 일부와 여러 터만 남아있다. 여기에는 로마 건국 신화에 나오는 로물루스의 움막(huts of Romulus)이라는 터도 남아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라난 두 형제가 커서 동생 Remus를 죽이고 형인 Romulus가 마을을 세운 곳이 이곳이라는 것이다. 1940년대 이곳에서 몇 개의 터가 추가적으로 발견되어 고고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곳이 로마 제국의 최초 발생지로 추정되는데 그 연도가 기원전 753년 경이라고 한다.
지하 무덤 카타콤(Catacomb)
카타콤(Catacombs)은 라틴어의 cata와 tumbas이 합성되어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로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를 말한다.
고대 로마의 지하 무덤은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간 곳으로 알려져 있어 기독교인들이 조성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이고, 그 이전에 생긴 고대 로마인들의 지하 무덤터를 기독인들의 안전한 예배 장소로 이용했을 뿐이라고 한다.
로마 제국에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되기 전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중에서도 폭군 네로 황제의 횡포는 잘 알려져 있다. 술에 취해 로마를 불태우며 그것을 즐기면서 그런 불장난을 기독교인 한 것으로 몰아붙여 기독교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다.
가이드를 따라 지하 무덤으로 들어가 보니 미로처럼 좁은 통로를 통하여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었다. 길이 복잡하여 예전에는 길을 찾지 못한 관광객들이 길을 잃기도 하여 지금은 길을 통제하여 몇 군데만 open 해 놓았다. 묘지이다 보니 그런 송장 냄새가 나지 않을까 하고 우려하였는데 그런 냄새는 없고, 햇볕을 보지 못한 지하이다 보니 쾌쾌한 곰팡이 냄새는 피할 수 없었다.
이 지하무덤 사진은 매우 귀중한 자료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사진 촬영이 일절 금지되는 곳인데 가이드 따라가지 않고 때로는 뒤에서 처지면서 몇 장 훔쳐 찍었다. 소위 말하는 몰카라는 것인데 성범죄자처럼 여성 몸매를 도찰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처벌받지는 않을 것 같다.
Capitol Hill
여기는 다른 언덕인 Capitol hill이다. 뒤에 보이는 건물이 12세기부터 사용된 상원 국회의사당인데 지금은 시장 집무실이고 양쪽으로 꼬치 내놓고 서있는 두 청년이 영어로 말하면 Gemini(쌍 자리 궁)의 주인공이다. 라틴어로는
Dioscuri라 하는데 제우스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아부지는 Zeus이고 어무이는 Leda로 본처 Hera의 아들이 아니다. Leda는 유부녀였는데 제우스가 마음에 두어 Leda를 꼬실 때 백조로 변신하여 독수리가 쫓아올 때 얼른 Leda 품속으로 달려들어 소원을 성취했다고 한다. 두 청년이 왜 여기 서 있는지는 알 수는 없는데 고대 로마시대에는 Forum에도 Castor와 Pollux를 봉양하는 신전도 있었다 하니 그때부터 모시는 신중의 하나인 모양이다. 이 신은 뱃사람의 안전을 지켜주는 신이란다. 하나 더 이바구하면 제우스와 Leda 사이에 난 예쁜 딸이 하나 있는데 바로 Helen이다. Helen 때문에 터진 큰 사건이 Troy 전쟁이다. 흥미 있는 사람은 그리스 신화나 호머의 일리아드 함 펴 보면 어떻게 트로이 전쟁이 끝이 났는지 잘 나와 있다
사람들 때문에 저 기마상이 안 보였는데 로마 오현제 중의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이다. 진품은 박물관 안에 모셔 놓고 보이는 저것은 짝퉁이다. 그리고 이 건물 앞에 있는 작은 광장과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였다고 하는데 계단이 원근감이 느껴지지 않게 디자인하여 계단 어디에서 봐도 동일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사진이 준비가 안되어 그냥 설명하는데 Pollux 뒤로 보이는 건물이 Palazzo dei conservatori라 하는데 박물관이다. 여러 중세기 회화와 조각상이 있는데 그중 유명한 조각 작품이 Bernini의 Medusa(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에 뱀을 달고 있는 괴물)이다. 시간상 박물관 구경은 못하고 화장실에서 오줌마려 쉬만 하고 나왔다. 그 외에도 한 두 개 더 있는데 사진을 준비 못해 넘어간다.
1636년 베르니니의 대리석 조각 작품으로 위에서 말한
콘세르바토리 궁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테네 여신의 저주로 비단결같은 머리카락이 징그러운 뱀으로 변해 있다.
로마 오현제 중의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 황제이다. 오현제는 로마 시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다섯 명의 황제를 지칭하는 것으로 계보는 네르바-트라야 누스-하드리아누스-안토니누스 피우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로 이어진다. 이렇게 중국의 요순시대처럼 백성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명군이 탄생한 배경에는 오현제는 혈연에 의한 세습제로 왕권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고 양자로서 왕권을 받았기에 혈족에 의한 피비린내 나는 왕권 투쟁을 피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하였다.
마르쿠스 아울레리우스 황제는 철학자로서도 유산을 남겼는데 그는 명상록을 통하여 평소의 마음가짐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삶과 죽음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인지, 변하지 않는 세상의 본질은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준다. -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