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실리 북부 해안
배에서 내리자마자 여행가이드에 나와 있는 5개 도시중에서 제일 멀리있는 팔레모(PALERMO)로 말을 몰았다. 내 방식대로 하이웨이로 안가고 로칼 해안 도로로 가 보았다.
여행가이드에는 볼만한 5개도시라 해서 시실리 수도 팔레모, 그리스식 신전이 있다는 아그리겐토(AGRIGENTO),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이 있다는 시라쿠사(SIRACUSA),
1693년의 지진으로 유명한 카타니아(CATANIA)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화산으로 유명한 에트나산(ETNA MOUNT) 이 다섯 군데인데 모르고 갈 때는 책대로 가 보려고 마음 먹었는데 가면서 보니까 그렇게 되지 않았다.
차를 몰고 거리에 나가보니 한 생선가게가 눈에 들어와 차를 대고 들어가서 한 장 찍어왔다. 우리가 먹는 생선종류하고 거의 비슷하다. 그리고, 흔한 말로 이태리하고 한국하고 비슷한거 세가지가 있는데 첫째, 반도나라(저그는 장화반도, 우리는 토끼반도), 둘째, 졸라 급한 민족성, 세째, 고추가루와 멸치젖 먹는 것. 저그들 앤초비가 우리 멸치젖하고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같은 멸치젖이다. 진열대 고기보니까 생선 매운탕 생각이 간절하다.
여기 시실리까지 내려왔으니 지도보고 섬이나 한번 일주하려고 일단 메시나에서 북쪽길로 해서 서쪽으로 달리면 시실리 주도(州都)인 빨레모가 나오니 오늘은 글로 간다. 길따라 가다보니 오른쪽에 백사장이 보여 내려서 보니 모래와 자갈이 섞겨 있는 해변인데 경치는 괜찮다. 저쪽 마을에서 연기가 자욱한 것이 아침밥 짓는 군불 연긴지 마치 산허리에 쉬어가는구름처럼 걸쳐있다.
나는 심심하면 지도를 본다. 아무 지도나 그냥 펴서 본다. 지도에는 바다가 푸른색으로 그리고 해안이 선으로 표시되는데 그냥 보면서 상상에 빠진다. 여기는 어떻게 생겼을까. 바닷물과 맞닿는 이 해변의 굴곡이 그때는 지도에서는 밋밋한 선으로 표시되어 있다가 오늘 이렇게 내 눈앞에서 입체적으로 다시 살아난다. 상상과 현실의 만남이다.
조금 더 올라 가니 철 지난 해수욕장처럼 방갈로와 가게 설비들이 텅비운채 나홀로 손님을 맞이한다. 뜨거운 여름철에는 신나게 피서를 즐길만한 해변이다. 여기는 그래도 좋은 모래사장이다.
이 때 머리속에 생각나는 노래가 이런거 아닌지. 딩댕동 지난 여름 바닷가에서 만났던 여인. 딩댕동 너무나 짧았던 그대와의 밤. 딩댕동 딩댕동 말이나 해볼걸 또 만나자고 딩댕동 딩댕동 여름은 가버렸네 속절도 없이. 독자들은 내가 이런 노래 부른다고 내 맴이 혼자라 쓸습(쓸쓸하고안스러움)할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침에 적당하게 따뜻한 날씨에 내 혼자 이런 바닷가에 놀고 있으니 손님 전화도안오고 일할 것도 없고하니 내가 신선이 된 것같다. 그래서 이런걸 신선놀음이라 칸다.
다시 차를 타고 조금 언덕진 길로 올라 가니 바다가 그림처럼 푸르게 앉아있다. 역시 지중해 해안은 바닷물이 그냥 좋다.
산허리를 한바퀴 돌아서 올라가면 바다는 저 쪽으로 멀어지는데 또 다시 산구비를 타고 내려 가면 반갑게 마주친다. 마치 한참 못본 님처럼그렇게 반갑고 정답다.
지도를 보니 시실리 본섬 말고도 이 근방에 크고 작은 섬들이 많이 있다. 앞에 보이는 저것도 섬인데 사람들이 사는지 오른쪽으로 마을이 희미하게 보인다.
야자수가 가로수인데 생김새가 통통하다. 파인애플을 그대로 갖다 꽂아 놓은 것같다.
산이 바다속으로 들어 갔다가 마지막 구릉이 물 밖으로 그냥 튀어 나온것 같다. 그 구릉 꼭대기에 홀로 놓여있는 저 집은 백만불짜리 SPOT 이다. 어제 본 아말피하고도 틀리는데 같은 해안이지만 여기는 너무 조용하다. 그러니 집들도 한가하게 드문드문 있다.
1968년 노벨 문학상받은 일본작가 가와바타 나쓰야리(아마 그 뒤 몇 년 뒤에 자살했다)의 설국 이라는 작품의 첫머리에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기차가 긴터널의 끝을 지나자 그 곳은 온통 흰눈으로 덮힌 눈나라였다." 마찬가지로 시실리아 북부 해안 도로를 타고 팔레모로 가는길에는 무슨 놈의 터널이 그렇게도 많은지 긴 터널을 지나면 해안도로로가 나오고 기묘한 산과 기암절벽으로 이어진 바다가 장면을 바꾸어 가며 연출되었다. 그때는 몰랐는데(그냥 보기에 괜찮다고만 생각했는데) 팔레모가서 시실리 여행 가이드 책을 사서 보니 내가 터널지나 오면서 본 그 곳들이 전부 유명한 비치가 있는 리조트였다.
바닷물 색이 TWO TONE으로 구분되어 바위섬과 잘 어울린다. 오늘은 별 계획도 없이 바닷가 해안도로를 따라 가면서 경치가 좋다 싶으면 사진찍고 별 볼 일없으면 운전하고 해서 빨레모까지 갈 작정이다.
바다가 좋은 이유가 가서 마주보면 그냥 가슴이 탁트인다. 넓고 관대한 가슴이던 쫀쫀한 새가슴이던 관계없다.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면 육수맛처럼 그렇게 시원해지는 맛으로 바다를 젓가락으로 건져 묵자. 이렇게 시원하고 잘생긴 시실리 바다를 손으로, 젓가락으로, 국자로, 카매라로 퍼묵으면서 저녁 늦게 빨레모로 들어 갔다.-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