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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노킴 Nov 18. 2021

지노 배낭여행기 - 지중해를 찾아서 53

스위스 국립공원 - 울고도 못 넘은 박달재

2009년 12월 3일(목) 맑음


연주회를 끝낸 아시안 연주자

1시간 반 연주회를 즐감하고 기념으로 두 연주자들을 찍어주고 바로 소금 도시를 등지고 스위스 눈밭으로 달렸다.


스위스 국립공원 약도

소금 도시 다음에 스위스에 들어갈 때 반드시 들려야 할 곳을 한 군데 사전에 점을 찍어 놓았다. 다름 아닌 스위스 국립공원. 여길 보고 융프라우로 해서 레만호까지 가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여기서 최악의 상태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내가 젤 좋아하는 데가 미국 국립공원이다. 현재는 63개 중 2/3 정도 가봤는데 죽기 전까지 목표가 100% 가보는 것이다. 근데 모두 가보기가 힘든 것이 미국이란 땅덩어리가 워낙 크기 때문에 그렇고, 대부분의 많은 NP가 서북부에 치우쳐 있어 동부에 사는 내가 가기에도 만만치 않은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국립공원)

그런데 여행 가이드 보니까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내려갈 때 조그만 더 내려가면 스위스 국립공원을 갈 수 있다고 하길래 큰맘 먹고 갔다가 욕 되바가지로 쓰고 한마디로 십겁 했다.



눈덮인 스위스 산들

스위스 국립공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온통 눈구덩이로 황칠이 되어있어 풍경사진 찍는데 완전히 돌아 버렸다. 왜냐하면 이태리 아말피처럼 차로 한구비 돌아서면



눈으로 뒤덮인 스위스 산들

눈앞에 나타난 새로운 풍치가 마음을 앗아가 버려 좀 전에 찍은 것은 무효 컷으로 하고 다시 새로운 구도의 풍경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말끔하게 치운 고속도로

내려갈 때 하이웨이는 눈이 와도 말끔히 치워져 있어 국립공원에 가도 그럴 줄 알았지. 그리고 여기 국립공원에 구태여 가고 싶나 하면 스위스 전체가 국립공원 수준인데 왜 여기에다 별도로 국립공원을 만들어 놓았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절로 나온다. 왕중왕. 그리고 여행 가이드 북에도 스위스에 단 1개밖에 없는 국립공원이라고 최고의 찬사를 잔뜩 늘어놓았다.



눈아 없어도 험준한 산길

문제는 공원 가는 길에 들어섰는데 박달재(pass)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반쯤 올라가니 이틀 전에 왔다는 눈이 그대로 길에 얼어붙어 있었다. 평지는 그런대로 저속으로 가는데 30도 이상 고개를 후륜구동 때문에 경사를 못 올라가고 중간에서 바퀴가 헛구르고 있다.



눈오는 산골짝 중턱에 자리잡은 마을

겨울 타이어를 장착한 조그마한 르노차나 피아트, 푸조들은 잘 올라 가는데 후륜구동인 벤즈는 가다가 결국 중간 언덕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고서 버렸다.  



마을이 눈속에 묻혀 적막하다

 어느 영감님 도움으로 차를 겨우 돌려세워 처음 들어왔던 길로 다시 나가면서도 설경 사진은 계속 찍어댔다.


스위스 국립공원 약도

지도를 보니까 조금 돌아가는 길이 있길래 그기로 차를 몰아가는데 경찰이 차를 세우더라고. 보니까 이태리 경찰이었다. 길이 스위스와 이태리 국경 사이를 들락날락하는 모양이더라고. 실제로 공원이 스위스 지역과 이태리 지역으로 갈라져 있다. 공원 좌우로 3천 미터 이상 높은 산들이 위엄 있게 포진하고 있다.   



겨울 왕국

어제저녁 잘츠부르크 연주회를 마치고 바로 그 길로 내려왔기에 거의 밤새워 운전했고 잠은 새벽에 차에서 세시 간 정도 눈을 붙여 견딜만한데 그 촌구석에 식당이 없다. 빵 파는 데 있어서 가보면 문 닫고 아무도 없고 폭설 때문에 작은 시골 마을들은 아예 모두들 문을 걸어 잠가 놓았다.


 

머리속에 가득한 음식

배는 디비지게 고프고 해서 차 안에 남아돌던 빵 쪼가리 하고 그전에 불가리아 나오면서 돈 처분한다고 사놓은 땅콩으로 입가심을 조금 하고 나서야 허기를 면할 수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3일 연짱 한식에 중국식에 일식으로 함포지락을 누렸는데 어찌 오늘은 모든 것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구나.  



    

눈으로 뒤덮인 시냇가

진짜 경치는 한마디로 눈이 덮여 절경이다. 내가 지난밤부터 오늘까지 오스트리아-이태리-스위스산들을 연이어 타고 가는데 특색은 나라마다 틀렸다.


오스트리아 겨울산

오스트리아산들은 기암 바위산이 많아 영화 나바론 요새에 나오는 깎아지른 절벽 중간으로 길이 나있는 경우가 많지만 산세는 높고 험했다.



스위스 겨울산

스위스산들은 산에 나무가 많아 쭉쭉 뻗은 침엽수에 눈이 쌓여 나뭇가지가 아래로 축 처져 있는데 그런 나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여기 찍어나 저기 찍어나 같은 장면이다.


  

겨울눈으로 파묻힌 시골 마을

그 첩첩산중에서도 아침 8시 반에 꼬마들은 학교 간다고 가방 메고 혼자 가는 놈, 엄마 손잡고 가는 놈 보니까 사람 사는 데는 여기나 저기나 매일반인 것 같아  환경이 좋고 나쁨이 그리 중요한 게 아닌 것 같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환경에서 만족하며 사느냐 하는 것이 더 고려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버지니아에서도 이 시간에 꼬마들은 학교 간다고 삼삼오오 스쿨버스 정차장에서 모여 버스 오기를 기다리고



무임승차한 모로코 십대들

 저 못 사는 모로코에도 아이들 학교는 보낼 거고


온통 눈밭으로 뒤덮인 시골 마을

여기 이렇게 추운 스위스 첩첩산중에서도 더운 입김을 호로 불어내면서도 꼬마들은 뭐가 좋은지 싱글 방글거리며 학교 가고 있다.



    

겨울 시골 마을

길을 돌아가도 좀 가보면 마찬가지로 눈이 쌓여있고 해서 겨우 식당 한 군데 찾아서 따뜻한 수프와 스테이크에다 주는 빵을 게걸스럽게 털어 넣고 나니 약간 살만했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밫나는 산봉우리

지도를 펴 들고 국립공원 가는 길을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85킬로미터 거리에 지름길이 있는데 오후에는 날이 좀 풀려 길이 좋을 수 있으니 그리로 가라 하길래 일단 가르쳐 주는 대로 가 보기로 하였다. 이때까지도 사방이 눈으로 뒤덮인 국립공원에 가보려고 그 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가로등만 홀로 선 시골 마을

가르쳐 주는 대로 고개를 올라가 보니 저번 길보다는 길 폭도 넓고 차량통행도 많아서 갈 수 있겠구나 하고 한 10분쯤 계속 올라갔는데 경사가 차차 급해지고 눈이 많이 깔려 있는 곳에서 또 바퀴가 헛돌아가기 시작한다.


빙판길 충돌 직전에 미끄러지는 차들

빙판길에서는 브레이크를 밟아도 차가 경사면을 따라 줄줄 내려간다. 그러면 뒤에서 따라오던 차들이 저만치 뒤에 서서 접근을 못하고 그냥 서서 내차만 바라만 보고 있다.

핸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가 없어 될수록 가까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때 내 심정은 이런 것도 예상하지 못하고 겁 없이 이런 빙판길로 접어든 나를 질책하기 이전에(고민으로 내 머리털이 다 빠진 것 같다)  



떠뜻한 호텔 룸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어수선해지기 시작하여 그냥 차를 여기 두고(카메라, 컴퓨터 전부 다 싫다) 어디 호텔에 몸만 들어가서 따뜻한 차나 한 잔 마시고 따신 물로 샤워하고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차가 뒤로 미끄러져 내려갈 때 잽싸게 핸들을 반대로 꺾으면 차가 길 중간에 일자로 선다.  그다음에 앞뒤로 몇 번 조금씩 왔다 갔다 하면서 차를 돌려세울 수 있었다. 그리고 저단기어로 아까 올라왔던 그쪽으로 다시 돌아 나왔다. 물어보니 나가는 길이 지금 그런 길 외에는 없단다. 천상 그 길로 갈 수 없으면 어제 밤새 달려왔던 길로 오스트리아로 다시 나가서 오토반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국립공원 약도

국립공원이 박달재만 넘으면 되는데 그리고 그 길로 해서 빠져나갈 수 있는데 어떻게 고개를 무사히 넘는 방법이 없을까? 아니면 어제 밤새 달려온 길로 다시 나가야만 할까?



높은 고개에 있는 스키장

높은 경사면을 가진 스키장인데 저 위로 어떻게 올라 가는지 모르겠다. 눈에 덮인 이곳의 산들을 보니 멋진 눈으로 뒤덮인 스키장이 여기저기 많을 듯하다.



고민하고 있는데 어느 총명하게 생긴 아지매가 해답을 주었다. 차를 기차에 싣고 가면 대부분이 눈을 치운 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게 한다는 말은 일단 스위스 국립공원은 이번에는 그냥 접고 여기를 벗어나는 것이다. 여기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 생각하고(만일 눈이 갑자기 오게 되면 꼼짝없이 호텔에 갇힐 수도 있겠다 싶어서) 아지매가 가르쳐주는 대로 기차역으로 갔다.    



첩첩산골의 겨울 풍경

오늘 아침에 내려오는데 간간이 차를 싣고 있는 기차 화물칸 같은 그림 표지가 중간에 간간이 보이더라고. 이게 바로 그 차를 실어다 주는 기차역 표시인걸 그때 알았다. 기차 시간이 7시 15분에 있는데 150 sf (약 100유로) 이래.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냥 나가면 되니까 그렇게 하려고 했더니 기차역 아가씨가 여기서 두 시간 기다리지 말고  차로 40분 정도 운전해 가면 그곳에는 다른 기차가 수시로 있다고 한다.  



얼어붙은 호수

그 길로 가보니 내가 오늘 아침에 국립공원 들어가기 전에 내려왔던 길이라 눈은 없어 수월하게 찾아갔다. 출발 5분 전인데 여기서는 35sf (25유로) 아까보다 무지하게 싼 요금이라 어디 가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기차를 타고 가서 거기에 내리면 눈이 없냐고 서너 번 확인하고 차를 기차에 실었다.        


 이기차는 객실은 없고 그냥 동그란 반원통 같은데 차를 싣고 운전자는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있고 기차는 달리는데 기차가 터널 속으로 계속 달린다. 이런 오지에는 기차선로가 밖으로 노출되면 눈이 오게 되면 제설작업을 할 수없게 되어 기차도 발이 묶이니까 아예 터널 안에 선로를 깔아 눈사태에 관계없이 운행하는 모양이다    



스위스 오지의 겨울 충경

그런데 어떤 선로는 터널이 아니고 일반 기차선으로 달리는 것도 있었다. 결국 내가 모르고 기어들어간 곳은 진짜 스위스 오지로 터널로 차를 운반하는 마을이었다.



스위스 시골마을 겨울 풍경

기차에 차를 싣고 한 20여분 달리고 내려주는 곳에  작은 마을이 있길래 내려서 보니 도로에 눈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생모리츠 호텔

호텔을 찾아가니 폭설로 12월 12까지 휴업이란다. 할 수 없이 차를 계속 몰고 나가니 이정표가 보이는데 취리히까지  약 200킬로 미터라고 한다.


집에 와서 이곳을 찾아보니 스위스의 유명한 겨울 스키 리조트 중의 하나인 생모리츠 휴양지였다. 이곳 생모리츠는 스위스에 겨울관광(스키)이 처음으로 태동한 곳으로 그때가 1864년이었다. 눈이 풍부해 겨울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한 곳이고 옛날부터는 미네랄 온천이 발견되어 여름 스파 리조트로도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생모리츠가 선구자적인 업적으로 이름을 날린 것이 최초의 전깃불이 1878년에 크리스마스를 밝혔고, 최초의 알프스 골프 토너먼트가 1889년 이곳에서 열렸고, 스위스 최초의 스키 리프트가 1935년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스위스 겨울산

 그래 오늘은 취리히 가서 잔다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그 눈구덩이에서 무사하게 빠져나온 것을 단한군데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또다시 고파져오는 배를  찬물 한 모금으로 달래고 이 모진 목숨을 이어가려고 취리히로 열심히 달려갔다.  



겨울 크라스마스 트리

뱀꼬리: 스위스 국경 통과하는데 50유로 징수 안 하더라. 갸들이 돈말 안 하는데 내가 먼저 50유로 안 받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새벽 2시경에 통과했는데 그냥 가라 하길래 50유로 굳히고 잽싸게 국경 넘어와 버렸다.


다음은 스위스 눈구덩이에서 찍은 설경이다. 내가 그때 사진 찍으면서 아무 생각 없이 눈으로만 보았듯이 여러분도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그냥 감상하면 된다.




         겨울 생모리츠 설국


                                    

스위스 생모리츠 겨울 풍경

경상도 사투리에 이런 표현이 있다. <엉성시립다> 한마디로 무엇에 질렸다는 이바구인데 눈이 비록 엉성시러워도 그런 멋진 설경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언제 다시 한번 가 볼 수 있을련지?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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