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지(BRUGES)가 나를 울리다
2009년 12월 9일(수) 흐리다가 비
비바람 몰아치는 하이웨이를 달려 브루지에 도착하니 해는 떠있어도 보이지 않고 뿌연 안개속에 어둠이 저만치서 한발 성큼 다가서는데 고속도로에서 내려 한참 빠져나가니 그제서야 불밫이 환하게 밝힌 브루지 시내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분수대 옆에 조각상이 멋들어지게 서있는데 다 큰 처자들이 벌거벗고 물놀이를 즐기고 있어 보기에는 좋았다.
비는 부슬부슬 오는데도 관광객들인지 본토 아들인지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연말이 가까이 왔는지 거리는 네온싸인과 장식등으로 한껏 멋을 내어 한눈에도 여기가 관광지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관광 가이드북에 제일 멋지게 사진이 나와있는 belfort 주소를 gps에 집어넣고 갔는데 가보니 볼거리가 제법 있었다. 해는 지고 비가 오는데도 관광객들은 여전히 이곳 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구경하다 보니 옛건물에 유네스코 지정유산이라는 표시를 우연히 보았다. 브루지 전체가 지정된 것은 아닐테고 몇 건물이 지정된 듯하다
여기서 stadhuis가 제일 오래된 건물이니까 아마 이게 지정된 것같다. Town hall 건물로 1376-1420년경 지은 건물로 유명하다.
시간이 없어 가이드에 소개된 것만 읊어보면 다음과 같다.
The Markt
the markt는 브루지 중심지라 하는데 market 광장이라는 말이다. 가보니 중간에 아이스링크를 만들어 화려한 조명으로 환하다. 13세기경 조성된 마켓으로 지금도 매주 토요일에는 장이 선다고 한다.
겨울기간동안 조성된 아이스링크에서 시민들이 야간 스케이팅을 즐기는 모습이 참 한가롭다. 링크속으로 반사된 조명이 매우 아름답다.
그런데 그 중 한 가족이 눈에 들어오는데 엄마,아빠, 딸 세명이 같이 스케이팅하는데 엄마 아빠는 여기 사람인데 딸이 동양애로 입양아같았다. 중국아니면 한국애일까. 한국애같기도 하고.
갑자기 영화 <수잔 브링크의 아리랑>이 생각나더라고.
수잔 브링크는 스웨덴 이름이고 본명은 신윤숙인데 1963년생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4살때 스웨덴으로 입양되었지만 새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새엄마의 학대로 여러번 자살시도를 하였다. 그후 대학에서 만난 남자와 동거하다 애는 낳지만 남자는 떠나가고 미혼모로 지내다가 입양아 찾는 방송국 프로그램 도움으로 한국에서 친모를 만났고 그후 외국입양 반대 운동가로서 활동하다가 올해 초에 46세로 암으로 세상을 떴다.
희안하게도 이 영화에서 수잔역을 열연했던 최진실이 3개월 먼저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아마도 둘이는 그런 아픔이 없는 저 먼 세상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겠지.
The Belfort
13세기경 건립된 팔각형 종탑인데 이곳에 중세기 브루지시의 권리장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1999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The Stadhuis
브루지에서 제일 오래되었고 아름다운 시청사로 1420년경 완성된 건물로 건물 벽면에 유네스코 지정마크를 우연히 봤다.
-그외 hans memling museum 과 st.janshospitaal 있다.
시간도 별로 없어 대강 구경하고 사진 찍다보니 점심도 거르고 저녁 시간이 되어 어디서 저녁이나 먹을까하고 찾다보니 절친이 말하기로 벨기에 홍합탕이 유명하다고 하길래 시푸드하는 집을 찾아 나섰다.
메뉴판을 밖에서 대강 읽어보고 한 집을 정해서 들어섰다. 주머니에 유로가 좀 남아있어(영국에서는 유로받아주지도 않는다) 제일 비싼 메뉴 seafood platter(해산물 한접시)를 시켰는데 롭스터 반 마리에, 생굴 10개, 크랩, 작은고동, 소라고동, 수염새우등 푸짐하게 주는데 가격은 42유로. 이번 여행중 단일 메뉴로는 최고가를 기록했다. 천천히 랍스터 겁떼기를 살살 베끼고 살점을 입안에 넣고 혀에 닿으니 살살 녹는데 그러고보니 점심을 걸려 더욱 더 식욕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걸 혼자서 다발러 묵고나니 시간이 제법 지났는데 시계를 봐도 아직 8시가 되지 않았서 느긋하게 마무리를하고 차로 가서 돌아갈 준비를 하는데 그 시간부터 운명의 여신이 나에게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까 분수대에서 들어 온길로 다시 나갈려고 하는데 계속 돌아도 브루지 안에서 빙빙 돌고있네. 8시30분까지 가려면 여기서 8시에 출발해도 되니까 아직 시간은 충분하지 그렇게 자위하면서 길을 찾다가 다른 길로 빠져버렸는데 브루지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주위에 가로등불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 이상했었다.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고해서 계속 가로등 있는대로 나가보니 지나가는 차가 있어 세워가지고 oostend 가는 길을 물어보니 길을 가르쳐주는데 아까 내가 하이웨이에서 들어온 길이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기름 없다고 노란불이 들어오네. 길 못찾아, 기름 떨어져, 8시30분까지 배타러 가야되. 이 삼박자가 동시에 확 밀려오는데 아까 브루지올 때 이상한 예감이 점점 확실하게 다가오더라고.
가르쳐준 길로 가도 하이웨이는 보이지 않고 벌써 10분이상을 달리고 있는데 주유 표시등이 이제 눈금이 하나 남아 있네. 조금 더 가니 하이웨이는 아니고 로칼길이 보이는데 이노무 주유소는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네. 제일 불밝은 곳으로 운전해 나가보니 주유소가 있는데 아무도 없어. 가보니 카드로 기름넣는데가 있는데 미국거하고는 전혀 다르네. 지금까지 유럽 다니면서 카드로 기름많이 넣어 봤는데 무인 주유소 카드결제는 처음이라 한번 해보니 잘 안되. 지시문구가 현지어로 나오네. 조금 있으니 현지인 하나가 기름넣으려 오길래 겨우 물어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oostend 가는 길까지 물어보고 시계를 보니 8시10분. 20분이면 가니까 정시에 도착하겠구나 하고 차를 몰았다.
일러준 길로 가도가도 하이웨이가 보이지않아서 마침 길옆에 쉬고 있는 대형 화물차가 한 대있어 그옆에 차를 세우고 oostend가는 길을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약도까지 그려주며 길을 알려주는데 가보니 내가 아까 타고온 하이웨이가 아니네. 로칼길인데 그래도 oostend라는 이정표를 보니까 가면 되겠지하고 그 로칼길을 하이웨이 속도로 질주해가니 앞서 가던 차들이 전부 다 오른쪽으로 비켜서주네.
그전에 길을 못 찾을때 gps에 oostend 주소를 입력하려고 보니 주소가 없어. 궁리끝에 배표끊고 받은 영수증에 혹시 주소가 있을까 싶어 보니까 본사가 영국 ramsgate에 있는지 그곳 주소는 있는데 oostend 주소는없다. 그러니 gps는 있더라도 주소가 없으면 꽝이다.
돌개바람같이 날아서 oostend 가보니 배타는 곳이 아니고 oostend industry zone 1이라는표말이 있더라고. 그기서부터는 아무런 이정표도 없어. 분명 oostend이 맞기는 맞는데 아까 내가 간 ferryboat 선착장이 아니야. 시계는 8시40분. 지금 길만 찾아도 배를 탈 수 있을텐데. 비도 오고 지나가는 차량도 안보여.
오늘까지 멋지게 잘 다녔는데 여행의 막바지에 와서 왜 이렇게 일이 꼬이는 것일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시간이 좀 남았다고 브루지구경을 꼭 가야했나.
-갈 때 기름이 달랑했으면 시간 많을 때 채워야했지.
-돌아올 길을 생각해서 oostend 주소는 챙기고 가야지.
-무슨 놈의 만찬을 해산물 한 접시로 한 시간이나
-왜 돌아오는 시간을 20분만 고려했을까
-ike 글마는 왜 브루지가 이쁘다고 나를 꼬았는지.
-그 잘 찾는 길을 왜 하필 브루지에서는 잃어버렸는지.
결국 선착장을 찾지도 못했고 시간은 9시를 넘겨 떠나간 배가 되고 말았다. 이제는 다른 방도가 없다. 처음 영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온 calais로 가서 기차가 있는지 알아봐야지 하고 그쪽으로 질풍노도처럼 달리면서 나에게 브루지 여행정보를 일러준 절친을 무진장 원망하며 비내리는 고속도로만 바라보며 120마일 car racer가 되버렸다.
oostend와 calais 중간쯤에 dunkerque(dunkirk)라는 곳을 지나 오는데 ferryboat 표지가 붙어 있길래 지도를 보니 확실치 않아 일단 그 쪽으로 가서 알아볼겸 하이웨이에서 빠져 내려가보니 시간은 저녁 10시 5분경이었다. 매표소에 가서 배시간을 보니 막배가 12시에 있네. 이 때는 안도감과 지극한 행복감이 밀물처럼 가슴에 밀려들었다. 여기서는 아침 6시부터 저녁 12시까지 2시간 간격으로 배가 있더라고. 그러니 도버해협을 넘나드는 화물차들이 주고객인데 그래도 ferry boat 회사들의 수지타산은 맞는 모양이다
됭게르크는 2차 세계대전때인 1945년 독일군의 총공세에 밀려 영국으로 철수하기 위해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벨기에 연합군 40만명이 됭게르크 해안에 집결하여 철수작전을 수행한 곳으로 유명하다. 만약 이 철수작전이 실패로 돌아갔다면 40만 연합군이 도버해협에 수장되어 2차 세계대전의 승패가 초기에 날뻔한 절체절명의 철수작전이 이루어진 곳이다. 이 철수작전이 성공하여 후에 연합군이 반격하여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하여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https://youtu.be/KHbX1VixeBw
2017년 7월 영화 <인터스텔라>로 명성을 떨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철수작전을 생생하게 스크린에 재현하여 많은 관객의 관심을 받았다.
일단 배는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니 내일 집에는 갈 수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제는 브루지 구경한것이 고맙게 여겨지네. 이런걸 뭐라고 하지. 변방에 사는 늙은이 말, 아니면 일거양득, 금상첨화, 너그들 마음대로 지어봐라.-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