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와호수 트레킹
2013년 4월 30일( 화 ) 맑음
내일은 카트만두로 내려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이 이 산골짝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멀리는 못가고 근처 페와호수 트레킹코스가 편도 한시간 반이라 하니 오늘은 그것으로 마지막 트레킹 종치고 안나푸르나 산골짜기를 훌쩍 미련없이 떠나려한다.
폐와호수 오른쪽 중간에 보이는 조그마한 섬에 힌두사원이 있다. 오늘은 그곳까지 내려 갈 계획이다. 산이란 오름과 내림이 있어 어찌보면 인생살이하고 비슷한 점이 있는것 같기도 하다. 하나 틀린점은 인생은 올라 갈 때는 사는 보람이 크게 느껴지고 내리막이면 절망감을 가지게 되는데 산트레킹은 오르나 내려가나 둘 다 힘이 들 뿐이다. 적어도 non trecker인 나에게는 역시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뭉쳐진 다리 근육이 풀리는지 내려 가는데 엄청 힘들었다.
사진처럼 저런 돌계단이 산허리를 돌아가며 놓여 있다. 가파른 곳에서는 다리가 풀려 허벅지 근육이 아프다. 이런 트레킹 길을 좋아하는 내 절친 ike 와 gc는 실컨 봐라. 왜냐하면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이런 예쁜 길은 아무리 걸어도 눈에는 질리지는 않지만 근육이 풀린 다리는 당근 싫어한다.
산중턱에 내려와서 인증샷 한 장. 어제 얻어 쓴 네팔 모자를 오늘도 쓰고 다닌다. 네팔 현지화를 향한 첫걸음이다. 돌방구 위에 카매라를 세우고 timer로 찍었다.
내려 오다 보니 패러글라이딩 출발지가 산허리 어디쯤되는데 지형을 보니까 공터에서 비상준비를 하고 있다. 지형조건이 중요한 모양이다. 바람의 강도와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등이 그러하다. 출발하는 동작을 보니 처음에는 잽싸게 뛴다. 선생은 앞에 학생(손님)을 달고 빨리 뛰어라고 소리지른다. 금방 발이 지면에서 떨어지면서 두 사람이 하늘로 날아 오른다. 흡사 새들이 비상하는것 같다.
내려 오는 길가에서 보니 바로 코앞에서 나풀거리고 있는 것 같다.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해 보기에는 내 담력이 너무 작은거 아닐까. 내려 오면서도 쉬다 걷다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게다가 오늘부터 날이 엄청나게 덥다. 이렇게 땀을 많이 흘리니까 몸이 좀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이게 한시간 반 코스라 하는데 나에게는 두시간 반짜리같다. 쉬다 걷다 쉬다 쉬다 걷다 쉬다쉬다 쉬다 걷다를 반복해서 겨우 산아래로 내려왔다.
사진처럼 요가트레킹이란 광고를 보았다. 이게 요즘 유행한다는데 돈많은 미국이나 유럽애들 꼬셔 트레킹하고 쉬면서 요가를 메뉴로 첨가한 모양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다.
산 맨밑에 있는 마을을 지나는데 현지인이 한국말로 어디서 왔어요라며 묻길래 보니까 틀림없는 현지인이라 혹시 한국에서 일하다가 돌아왔는지 물어보니 그게 아니란다. 잠깐 와서 쉬었다 가라 하길래 가보니 집앞에 재봉틀 두대 갔다 놓고 그걸로 옷수선 비지니스를 하고 있었다. 한국말은 아주 잘하는데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보니 페와호수가에 있는 한국식당에서 일하면서 배웠다 하였다. 그래서
그럼 한국시험봐서 한국에 일자리나 알아 보지하니까 저는 가난해서 돈이 없어 엄두도 낼 수가 없어요그래. 그러면서 자기는 못 사는데 여기 놀러 오는 한국인이나 미국사람들은 부자인데 왜 그런지 그게 공평한지 따지기 시작하여 점점 어려운 "자본의 불균형 분배이론"에 접근하려고 하길래 잘못하면 칼막스 이론이나 앵겔스법칙도 나와야 되고 아님 제3세계 종속이론도 설 풀어야 하고 어쩌면 내 절친 한겨레신문에 있는 한승동 선임의 전공인 해방신학도 나와야 될것 같아 딱 한마디로 입을 막아 버렸다. 예로부터 가난은 임금님도 구제를 못하는 법일쎄. 네팔은 지금은 가난하지만 앞으로 산아제한하고 공무원들이 좀 더 깨끗해지고 질높은 교육정책을 하다보면 자연유산이 풍부한 네팔도 점점 나아질걸쎄. 이 친구가 한국인 가게에서 일하다가 짤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말하는 폼이 한국인에 대한 불만내지 원망이 가득한 것 같았다. 식당에서 한 달 열심히 일하고 한달에 6천루피 받았다 하니 그게 저임금인지 적정임금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하여간 주인한테 못다한 원망을 나한테 하는 것 같았다. 사진 한방 찍어 줄라하다가 듣는 나도 심사가 틀어지기 시작해서 차한잔 먹고 가라는 걸 뿌리치고 호수가로 휭하니 가버렸다.
호수가를 식당과 게스트하우스가 빽빽하게 들어 차있다. 어떤 방갈로에서는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라이브뮤직을 들려주기도 하고 정원식 식당등 관광객들이 좋아 할만한 부대시설들이 많았다.
천천히 호수가를 돌아 나가니 호수가에 나랑 닮은 동무가 있길래 사진으로 잡았다. 한 척의 보트가 물 위에 떠 있는게 혼자 돌아 다니는 부평초같은 내 신세랑 매우 흡사한 것 같아 정다운 동무를 만난것 같았다.
호수와 산들이 잘 어우려저 한 폭의 산수화다.
호수가를 천천히 둘러 보면서 가다 보니 시내로 접어드는데 낯익은 은행 간판이 눈낄을 끈다. 예전에 서울서 군대갔다 와서 복학해서 학교졸업하고 첫 입사한 직장이 바로 영국 차타드 은행 서울지점이었는데 이국만리 여기서 보다니 감개무량하다. 당연하지 여기서 보는게. 영국계 은행이니 네팔에 진출하는게 이상할 것도 없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고 해서 한국식당을 찾아 보는데 잘 보이질 않는다. 여기 서너개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물어물어서 한국식당을 찾았다. 주린 배를 생선매운탕으로 주문해서 먹어보니 그간 카트만두와서 열흘동안 생선을 못 먹었다는 걸 알았다. 매운탕 비슷한 맛은 나니 작은 뚝배기 찌게 한그릇을 흔하게 쓰는 말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 비워 버렸다. 입맛이란걸 잘 바꿀수도 없거니와 배낭여행하게 되면 그런 식도락은 당연히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니까 배낭여행의 첫번째 조건이 아무 음식이나 배고플 때 잘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어디를 헤집고 다니더라도 배는 불리고 다닐 수 있으니까.
한국식당에서 간만에 배를 불리고 사원으로 가는 나루터에 가보니 현지인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흰두사원은 카트만두에서 지겹도록 보았으니 배를 타고 건너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접어 버렸다.
페와호수 뒷쪽에 무슨 다른 사원이 있다 하는데 찾아 가지는 않았다. 페와호수에서 보면 하얀색 사원 꼭대기만 보인다. 멀어서 걸어 갈 수는 없고 버스나 택시를 타야 할 것 같다.
돌아 나가는데 길 숲속에는 새들로 가득하다. 모두들 카매라 들이대고 한컷하려고 하는데 새들이 가만있지를 않는다. 나도 겨우 겨우 한마리만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혼자서 잘 놀다 보니까 다시 사랑곶으로 돌아 가야 할 시간인데 다시 걸어서 간다는 것은 힘들것 같고 버스는 이미 끊겨고 해서 택시를 타고 들어 가야 하는데 여긴 널려 있는게 택시다. 택시 운전사 한 녀석이 내 카매라를 보더니 사진 한장 찍어 달란다. 이맬주소 준다고. 위 사진은 택시드라이브 또래 친구들인데 중간에 있는 빨간옷이 800루피에 갈 수있단다. 택시타고 산에 올라 가는것이 꼭 산 정상에 올라갈 때 케이블카타고 올라 가는 것 하고 똑 같다. 높은 산에 올라 간다는게 인자는 쉽지가 않다. 유행가 가사처럼 세월을 한탄해야 하나....아니면 체력단력을 게을리한걸 후회해야 하나...
네팔인같이 보이려고 5불주고 네팔전통 의상인 "씨스로"를 걸쳐 보았다. 완전 짱께풍이 줄줄 흐른다. 이걸 걸치고 다른 상점에 들렸더니 주인장이 대뜸 나보고 인도네시아에서 왔냐고 묻는다. 그외에도 네팔, 필리핀, 부탄등등 다국적 명칭이 나오는데 뭐라고 불려도 좋다. 어떻게 이름이 불리던간에 ‘지노’라는 IDENTITY는 하나뿐이니까. 단지 내가 바라는 것은 나를 아는 사람이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글마 찌질하게 생긴것하고는 달리 사람괜찮네" 그런 소리를 들었으면 하는데 내가 나를 아직도 모르는데 남들이 나를 괜찮은지 좋은 놈인지 나쁜놈인지 어떻게 알수가 있을까. 그래도 기행문은 꼬박꼬박 적어 보내니 적어도 나쁜놈 축에 들지는 않을 것 같다. -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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