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 2일(진시황병마용박물관)
2013년 5 월 4 일( 토 ) 맑음
시안 관광의 백미는 이구동성으로 입을 맞추는데 진시황의 병마용갱이다. 시안와서 이것만 보고 가도 시안 구경 다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보고나니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진짜 백미는 담편에 나온다.
이틀째되니 길이 좀 보이고 버스를 바꿔 타고 다닌다. 버스 정류소마다 서는 버스번호와 행선지가 나와있어 한자만 알면 보고 탈 수 있다. 한자도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은 어떻게 다니는지 심히 걱정된다. 번호만 알고 타는가?
시안에서 모든 버스는 시안 기차역을 통과한다. 그리고 시외버스도 모두 시안 기차역에 다 있다. 이건 무지하게 편리한 점이지만 대신 유동인구를 시안 기차역에 한꺼번에 모아 놓은 셈이니 엄청나게 북새통을 이룬다.
병마용갱 가는 버스도 위 사진처럼 직행고속도 있고 완행버스도 있어 일부러 싼 것으로 타고 갔다. 그게 배낭 여행자가 지켜야 할 수칙으로 되어있다.
버스에 내려서 박물관으로 가는 입구에는 관광지답게 좌우로 밥집과 기념품 판매점으로 꽉 차 있다. 아점으로 어디 한 곳에 들려 메뉴사진을 보고 한 그릇을 시켰는데 맛대리가 없다.
원래 관광지 음식맛이 그렇다. 뜨내기 손님이다보니 주인들도 별로 신경쓰지도 않고 손님들도 평생에 한번 와서 그냥 시장하면 한번 먹고가니까 입맛에 민감하지도 않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프면 아무리 못 생기고 투박한 음식이라도 식도를 넘어가게 되어있다.
병마용갱이 시내에서 35키로정도 떨어져 있으니까 시외버스타고 가야한다. 규모도 방대하고 입장료도 비싸다. 물경 120원. 이 돈주고 본전뽑고 보고 나오려면 점심싸들고 아침에 들어가서 7시 문닫을 때 까지 보고나와야 되는데 조금보니까 미국서 예전에 그랜드캐년보는거 하고 비스무리하다. 서 있는 그놈이 그놈이고 모가지 없는 놈도 그 놈이 그 놈이니까 그렇다.
총 건물은 1,2,3호 갱하고 박물관해서 4개가 있는데 들어가 보면 완전 돗때기 시장이다. 특히 박물관이 그렇다. 각 갱은 규모가 엄청나게 넓어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도 별 표시 없는데(그래도 시야가 잘 보이는 앞줄은 바글거린다) 박물관은 장소가 좁아서 한꺼번에 밀려오니 사람들로 몸을 움직이기 힘들다. 지금이 비수기라는데 성수기 때에는 더 심할 것 같다.
4마리 말이 끄는 청동마차. 원래는 진시황릉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여기 박물관으로 옮겨왔다. 실물크기는 아니고 1/2로 축소해서 만든 것이라한다.
마차 무게는 약 1톤이 넘고 말의 키는 약 90cm, 길이는 110cm에 평균 무게가 170-190kg으로 청동으로 주조하여 그 위에 금과 은으로 도금하여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일명 2호차로 불리는 장막이 있는 청동마차로 진시황의 영혼이 타고 다닌다는 것으로 바깥장막을 두 겹으로 해서 그 사이로 뜨거운 물을 흐르게 하여 난방이 되도록 하였다고 한다.
마차는 원형을 박물관 안으로 옮겨 놓고 유리관을 덮어 씌여 있고 실내 불빛이 없기 때문에 그거 보려고 사람들이 밀려왔다 밀려가곤 한다. 조명도 없기 때문에 사진찍기도 엄청 힘들다. 유리관 안에 들어 있기 때문에 플라시를 사용한다 해도 빛이 반사되어 좋은 사진 구하기 어렵다. 이런 경우에는 플라시를 쓰지말고 감도를 높여 찍는게 훨씬 나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위 사진은 2호차 청동마차의 성분을 분석한 표이다. 마차의 주요 부품별에 무슨 광물질이 몇 % 포함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납(Pb), 주석(Sn),
구리(Cu)의 함유율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종종 외국인 관광 단체를 볼수 있는데 그것보다는 현지인 단체관광이 더 많다. 빨간 파랑 노랑 깃발을 앞에서 들고 가이드가 들어오면서 본토말로 뭐라고 한마디하면 꼭 전쟁터나가는 사람마양 우루루 몰려간다. 영화에서 본 한국동란때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바로 눈 앞에서 보는 것 같다. <돌격, 앞으로> 뭐, 그런 비스무리한 느낌이다.
특히 1호갱에서도 비스무리한 행동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 진시황 병마용갱이 세계적인 유네스코 문화유산이기보다는 중국내 인민들에게도 한번쯤은 보고싶어 하는 유물이라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기 때문에 입구에 들어 서면 현지 관광가이드가 라이센스을 가슴팍에 달고 엄청나게 깔려있다. 나에게도 와서 뭐라뭐라하는데 가이드 이용하라는 소리같은데 그런 가이드는 필요없고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영어가이드도 없다. 중간에 한국가이드가 한국인 단체 관광객 몇 명데리고 다니면서 설명하는데 여기에 관한 자료는 워낙 많기 때문에 가이드하는 소리가 다 자료에 나와있는 이바구다.
복도 매점에는 테라코다 병사들 모형을 만들어 모아놓고 옆에 같이 서서 찍는데 일인당 10원받는다. 돈안내면 사진도 못찍게 하길래 소치서(성질나서) 200mm 줌렌즈로 밖에서 찍어버렸다.
또 박물관들어오는 입구에는 각 매점들이 좌우로 장사진을 치고 있는데 목없는 테라코다 만들어 놓고 뒤에 가서 서면 얼굴만 쏙 나오게 해서 돈받고 사진찍어 준다.
1974년 제1호갱이 발굴된 이래 현재까지 총 4개의 갱이 발굴되었는데 공개는 3개만 하고 있다. 추산하기로 약 8천여명의 병사, 130여대의 전차, 520 점의 말이 있는 것으로 지금도 계속 발굴 진행중이다.
1호갱에는 주로 병사들로 6천명의 보병과 전차와 말이 전시관 뒤쪽까지 전시관을 채우고 있다.
1호갱이 제일 크다. 맨뒤쪽에서 도열해 있는 병사들을 찍었다. 뒤쪽에는 파묻힌 병마갱을 복원하여 이리 저리 땜질하여 뒤쪽에 새워 놓았다.
고딩때 전교생이 운동장에 도열해서 늙은 교장샘의 케케묵고 곰팡이핀 다락방 문갑같은 고리타분한 훈시를 듣는 광경인 것 같다. 모두들 조용하게 경청하고 있는 듯하다.
전시관 한 쪽에는 발굴된 테라코타 조각들을 모아서 하나하나 이어 맞춰 복원하고 있었다.
1호갱 크기는 축구장보다도 조금 크다. 높이 1.5미터 정도의 11개 통로에 세로로 38열로 병사들이 도열해 있다. 이들 도열한 병사들 중간마다 말들이 정렬되어 있어 기마부대를 상징한다고 한다.
중앙 맨 앞줄에 3열로 정렬된 보병이 길게 도열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갑옷과 투구도 입지않고 평상복으로 서있다. 함군사(咸軍士)라고 하는데 전투시 제일 선봉에 서서 죽기를 작정하고 싸우는 병사를 뜻한다. 일종의 선봉 돌격대같은 역활을 한 모양이다.
앞줄 함군사(咸軍士)를 가까이 잡아보면 비슷한 모습은 없고 제각각 다른 얼굴 모습을 하고 있다. 이들 병사들의 평균 신장이 180cm로 기골이 있어 보이고 얼굴과 나이, 표정과 복장 계급도 틀리다고 한다. 흙으로 빚어 800도 이상의 가마에서 구워내어 병사들이 마치 살아서 서있는듯 정교한 모습들이다.
현재 복원 작업을 마치고 건조중인 Terra Cotta로
이어놓은 부분에는 비닐같은 것으로 덮어 아물기를
하고 있는듯 하다.
손 발등이 떨어져 나가서 다시 접합한 부분에는 비닐로 덮어 놓았다
하나의 Terra Cotta를 완성하는데 전문 장인 3명이 작업해서 15일이 걸리는데 여기서 발굴된 8천개를 전국에서 차출된 장인 64명이 하루도 쉬지않고 만들려면 약 14년이 소요된다고 하니 얼마나 대규모 작업이었는지 감이 없다. 중국인의 억척같은 장인정신을 칭찬해야 하는지 아니면 무모하다시피한 진시황제의 카리스마를 무서워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사진찍는데 제일 힘들었던 곳이 여기다. 줌렌즈없이는 서 있는 병사들 얼굴을 카매라에 담기 힘들다. 그래서 여기서는 비데오를 더 많이 찍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 틈새서 사진찍다 비데오를 찍다보니 온 몸에 진이 다 빠졌다
전문 장인들을 전국에서 차출하다보니 수도 근방에서 온 장인들은 실물 병졸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 거의 실물 비슷하게 생산했는데 지방 촌에서 올라 온 장인들은 실물보다 몸집이 약간 마르게 생산하여 지방색이 Terra Cotta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정성으로 만들어진 작품의 발바닥에 이를 만든 장인의 이름를 각인했다고 한다. 요새말로 하면 생산 제품에 불량품이 생기면 담당 작업공정 라인의 책임을 쉽게 물을 수 있는거와 비슷하게 책임공정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군병사들의 배가, 특히 아랫배가 올챙이배처럼 볼록하게 튀어 나왔다. 이는 진나라 군사들은 전투개시 전에 술로써 약간 취하게 하여
전투시에는 용감무쌍하게 싸우도록 하다보니 저렇게 술배가 생겼다고 하는데..... 믿거나 마나....그런 소리다.
장사꾼 속셈이 엄청 많은데가 여기다. 1호갱 앞에 각 중대별로 군졸과 말들이 줄을 서 있는데 사방을 막아 놓았기 때문에 가까이 가서 볼 수는 없고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 다 보기 때문에 줌렌즈없는 사람은 terra cotta 얼굴잡기도 힘든다. 그래도 나는 성능좋은 200mm 로 잡아서 조금 상세하게 볼 수 있다. 근데 앞에 조금 공간을 마련해 놓고 그곳에서 장사하고 있다. 사진처럼 앞에서 도열해 있는 병마들을 배경으로 좀 더 가까이에서 사진찍어 주고 돈벌이하고 있다.
2호갱은 1호갱과 약 20m 떨어져 있다. 동서는 약
124m 남북은 폭이 100m가 안된다. 완전히 발굴이 되지 않아 현재도 부분적으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89대의 목재 전차와 이를 끄는 말, 기병등이 실제 말의 뼈와 출토되어 예전에 실제 말들을 묻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2호갱의 면적은 1호갱의 거의 절반 수준이다. 발굴된 것도 별로 없기 때문에 관람객도 거의 없다. 그래서 나도 2호갱에서는 사진만 몇 장 훔치고 대부분의 시간을 1호갱에서 보내고 왔다.
2호갱의 대부분은 아직 발굴을 하지 않은채 많은 부분이 비닐포로 덮어져 있다. Terra Cotta가 처음 발굴시에는 매우 화려하게 채색되어 있어 그 색상이 뚜렷하였는데 세상밖으로 나오자마자 색이 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위와 같이 비닐로 덮어놓고 현재 탈색 방지책을 연구중에 있어 발굴을 서두르지 않는다고 한다.
머리 상투모양과 입고 있는 멋진 갑옷으로 미루어 지휘부의 지휘관으로 추정한다. 병마용갱(兵馬俑坑)은 뜻이 세개의 갱을 다 보고 나오면 그 의미가 좀 더 확실해진다. 병(兵)은 병졸을 의미하며 1호갱에서 발굴된 6천여명의 보병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요새 말로 표현하면 군대의 말단 소총수정도가 될 것 같다. 마(馬)는 말그대로 전차부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2호갱에서 집중적으로 발굴된다고 하는데 이것도 중세기 군대로 치면 기마병이 될거고 현대군대로 치면 전차부대가 될 듯하다. 마지막으로 용(俑)은 병졸이 아닌 용사 즉 지휘관으로 장수를 뜻하는 의미로 3호갱의 지휘부가 대표하는 곳이다. 그래서 1,2,3호갱의 특징을 살려 (진시황)병마용갱으로 명명하는 것 같다.(지노 아마역사가의 추측에 불과한 소견이다)
3호갱은 앞의 1,2호갱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1,2호갱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경사진 넓은 도로가 있어 지휘관이 탔던 커다란 마차가 이동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3호갱은 크기는 작지만 병졸을 지휘하는 지휘부 군영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4마리 말을 배치한 것으로 지휘부 지휘관의 마차를 끌던 말들로 추정된다. 흙으로 말상을 표현하다보니
사람상과는 달리 조금 엉성하게 보인다.
갑옷입은 병사들의 목이 대부분 떨어져 나가고 없는데 목부분이 제일 취약하기 때문에 그렇다. 모형을 만들 때 기본 골격을 먼저 만들고 세부적인 머리와 손모양은 도공이 모델을 보고 제작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비슷하게 만들지 못하면 도공의 목을 베었다고 하는데 좀 믿기 어려운 가이드의 설명이라고 한다.
위 사진같이 병사들의 머리가 대부분 떨어져나가 있는데 두상 조각을 이을 수 없을 정도로 두상이 박살이 나서 그렇다고 한다.
5시경에 나와서 그 옆에 좀 떨어진 곳에 화청지란 곳이 볼거리인데 당 현종과 양귀비가 온천을 즐기던 곳으로 유명해서 시안 관광코스에 꼭 들어있다. 버스타고 나가다가 우연히 조선족을 만났는데 삼성반도체 공장이 시안에 있어 그곳에서 근무한다면서 화청지는 지금 늦어 안되고 별로 볼것도 없다고 만류하길래 그냥 시안으로 나왔다. 그러면서 근처에 있는 화산에는 꼭 가 보라고 권유하길래 나도
화산은 하루정도 당일치기로 생각했는데 이 양반이 적어도 1박 2일은 되어야 한다길래 빨리 이 오늘 여행기마무리하고 내일 1박 2일로 화산으로 달려갈 생각이다.
거대한 벽면에 진나라 여러 풍속들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원래 발굴한 자료인지 아님 발굴 뒤에 현대조각가들이 새워놓은 것인지 알 수가 없다.
200원 내면 멋진 인증샷 사진을 호텔로 배달해주고, 50원짜리는 postcard로 5분 정도 기다리면 되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