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악 화산기행(1)
2013년 5 월 5일(월) 비 그리고 흐림
버스 안에서 만난 조선족 권유도 그렇고 나도 하루나 이틀 정도는 시간을 마련해 두었으니 다른 볼거리 접어 버리고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카메라 2대와 삼발이 그리고 비옷과 얇은 긴 팔 하나를 25원(4불) 주고 여기서 산 짝퉁 north face 작은 배낭 하나에 꾸려 가지고 나가면서 3일 뒤에 베이징으로 갈 뱅기표도 끊어놓고 아침도 거르고 부랴부랴 나가서 볼일 보고 시안역 가서 시외버스 타고 화산 도착하니 12시경이었다. 시안에서 약 두 시간 거리다.
중국의 5악이라 해서 동서남북과 중앙에 명산을 각각 하나씩 정해 놓고 예로부터 황제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유교나 도교의 도량으로써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온 명산을 지칭한다. 동악(東岳)은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바로 그 시조에 등장하는 산동성의 태산(泰山:1545 m)이고, 서악(西岳)은 시안에서 120km 떨어진 섬서성 화음에 있고 내가 갔다 온 화산(華山:2154m)이고, 남악(南岳)은 호남성 형양에 있는 형산(衡山:1290 m)이고, 북악(北岳)은 항산(恒山:2017 m)으로 산서성에 있다. 중악(中岳)은 하남성의 숭산(嵩山:1494 m)을 말한다. 중국에서 이러한 오악이란 개념은 예로부터 전해져 오던 산악 신앙의 영향이 었다고 한다. 전국 시대 이후 오행사상의 영향과 함께 5 악의 관념도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오행사상은 우리나라에도 전파되어 과거 신라시대에는 토함산, 계룡산, 지리산, 태백산, 팔공산을 오악으로 삼아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고려시대에도 이러한 오악에 대한 숭배 사상이 있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유람을 즐기던 중국인은 오악을 가보지 않으면 산을 보지 못한 거로 간 줄 될 정도로 여러 사람들이 가보고 싶은 산들 중의 하나였다. 시안 가면 꼭 가 볼 기회를 만들려고 헀으니 이번이 제대로 된 찬스라고 할 수 있다.
(노란선은 버스 탄 길, 적색은 케이블카, 녹색은 걸었던 길로 시간만 되면 중앙에 있는 길 따라 걸어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시도해 볼만한 트레킹 코스다)
버스 타고 화산으로 가는 도중에 비가 간간히 뿌렸다가 그쳤다가 하길래 오늘 날을 잘못 잡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오기 전에 여러 자료를 보면서 등반 계획을 세워 놓았기에 별 문제는 없었다. 밑에서부터 바로 올라가기에는 너무 힘들고 해서 시간 없는 사람은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중간까지 가서 등반하라고 되어있다. 난 별수 없이 그대로 따라 했다. 이번 여행길에서 돈 제일 많이 풀었다. 서악 화산 구경한다고. 입장료가 180원 그리고 케이블카까지 버스 타고 가는데 20원에다 케이블카비 80원.(그래 봤자 70불이지만 여기 현지 사정에 비하면 큰돈이다)
위 사진이 전체 화산 등산로 개요다. 케이블카 그 자체가 하도 높이 올라가서 사람 오금을 저리게 한다. 비수기라 손님도 없고 젊은애들은 밑에서 걸어 올라오면 케이블카까지 오는데 5-6시간 걸리는데 올라가서 보니 거의 젊은 남녀 커플들이다. 혹 나이 든 사람도 보이는데 전부 케이블카로 올라가서 근처에서 조금 보다가 내려온다. 화산이 오악 중에서 높이가 제일 높고(2154m) 길이 가파르고 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하길래 조금 걱정했는데 그것보다 더 한 게 절벽 바위 위에 말뚝만 박아 놓아서 사진 찍다가 발만 한발 잘못 디디면 황천길로 갈 수 있어 진짜 오금이 저려서 말뚝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화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절이 하나 있는데 그 절 앞에 어느 도사가 누워 자고 게시더라. 주무시는 모습이 세상만사를 초월하고 단잠에 빠진 그런 낮잠 삼매경이다.
시안에서 버스를 타고 화산 버스 정류장에 들어서면 모두를 근처 지정된 상점에 내려 준다. 그곳에서 위 화산 약도를 가지고 화산 산행에 대해서 주인장이 브리핑한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부대원들에게 작전지시를 내리는 것처럼 지휘봉을 들고 일장 훈시를 한다. 그것까지는 좋은데 전부 중국말로 하니까 알아들을 수가 있나. 나를 자기들 동포로 취급하며 잘 들어라고 하는데 할 말이 없다. 아마 나를 미국서 자란 중국 미주 똥포로 간주하면서 중국말도 못 알아듣는 나를 매우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중국 똥포던 조선 똥포던 중국말 못 알아듣는 것은 똑같다. 운 좋게 같이 온 무리 중에 영어가 조금 가능한 중국 처자가 있길래 상세하게 물어보니 자기들은 저녁에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갈 계획이란다. 알아보니 산 중간까지는 케이블카로 올라갈 수 있다고 해서 나는 그쪽을 택했다.
입장료, 케이블카와 버스 요금을 주면 버스로 케이블카 입구까지 태워 주는데 산길을 여러 번 빙빙 돌아서 올라가며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는데 화강암 돌산이 많이 보인다.
케이블카 타기 전에 화산 등산로를 다시 한번 표시해준다. 등산로를 크게 보면 이렇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면 바로 북봉 밑으로 내려준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올라 북봉 운대봉(雲臺峰)을 밟고 중봉 옥녀봉(玉女峰)~동봉의 조양대(朝陽峰 혹은 朝陽臺)~남봉 낙안봉(落雁峰)을 거쳐 서봉 연화봉(蓮花峰)으로 간다.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해서 버스를 타고 원래 출발하였던 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북봉으로 걸어서 올라가는 입구에 지취화산팔용사(智取華山八勇士)의 기념비가 있다. 국공내전 당시 공산당이 국민당 잔여 부대를 소탕한 길이고, 현재는 북봉 케이블카를 대신해서 걸어서 올라가는 길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산들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된 돌산이었다. 케이블카가 올라갈수록 산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서서히 북봉을 향해 올라간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북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로 가이드레일이 잘 되어 있지만 목을 빼어 난간 밑으로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난다. 비도 간간이 내려 길도 촉촉이 젖어있다. 모든 길은 돌을 쪼아서 만든 것 같았다.
북봉 쪽에서 바라본 서봉 연화봉(蓮花峰). 연화봉 정상이 안개에 묻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연꽃처럼 생겼다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사랑의 자물쇠’ 연인들이 자물통에 각자의 이름을 새기고 변치 말자고 맹세하고 자물쇠를 난간에 채우고 그 열쇠를 절벽 밑으로 던져 버린단다. 이 바보들아, 그리한다고 변할게 변치 않나 변할 건 다 변하는 법이다.
중국의 색이 한국 축구 국민응원단 붉은 악마와 같이 빨간색이다. 그 유래가 도교에서 나와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빨간색이다. 화산 가는 길에 ‘紫氣東來(자기동래)’란 글자가 보이는데 뜻은 '자줏빛 상서로운 기운이 동쪽에서 온다’는 의미다. 이 말의 유래가 중국 고대 주나라 관리 윤희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그가 누각에 올라 먼 곳을 바라보니 동쪽에서 안개 같은 상서로운 기운이 감돌더니 서서히 서쪽으로 왔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나는 용과 같았다. 그는 동쪽에서 훌륭한 성인이 이쪽으로 올 것이라고 직감하고 목욕재계하고 맞을 채비를 했다. 몇 달 뒤 노자가 동쪽에서 푸른 소를 타고 왔다. 윤희가 마중 나가서 맞아 그의 가르침을 받들었다고 전한다. 이 고사대로 자주색이 상서로운 기운을 준다고 해서 중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紫氣東來(자기동래)를 기억하면 된다.
북봉에서 바라본 화산 전경. 구름으로 시계가 흐리다. 돌산으로 나무들이 자랄 수는 없지만 그 깨어진 돌 틈 사이로 강인한 생명체가 솟아오른다.
북봉에서 바라보니 사진 왼쪽 상단의 화산 마을이 저 아래 속세처럼 멀고 아득하게 느껴져, 내가 마치 천상의 세계에서 속세를 내려다보고 있는 신선이 된 듯하다.
창룡령 계단을 밑에서 위로 올려다보니 첨 생각은 저 계단을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처럼 공중에 걸린 길 같았다. 계단은 화강암 덩어리를 통째로 바위를 쪼아 계단 하나하나를 만들고 난간을 세웠다. 처음에 250개 계단이었는데 그 뒤 계속 계단을 증축하여 지금은 530개 계단이 완성되었다.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 성경 이야기 소돔과 고모라에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를 잊고 뒤를 돌아보다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린 롯의 아내처럼 창룡령에서 뒤를 돌아보다 돌계단 그 자리에서 무서워서 얼어붙을 수도 있다. 그냥 앞만 보고 한 발자국 한걸음 천천히 올라가야 한다. 이 창룡령을 지나야 오운봉으로 가고 산장으로도 갈 수 있다.
오운봉산장에서 바라본 화산 전경. 왼쪽 높은 봉우리가 서봉 연화봉(蓮花峰)이다. 산장 앞에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가 있다.
북봉 가는 길에서 만나는 오운봉산장으로 다양한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다.
오운봉산장( 五云峰)의 직원. 오월에도 중공군 야전 코트를 걸치고 있다. 또한 등산객에게도 중공군 코트를 대여도 해 준다. 그만큼 오월이라도 밤에는 기온이 내려가 춥다는 말이다.
오운봉산장 전망대에서 연화봉을 배경으로 삼발이로 인증샷. 화산 제1호 인증샷이다. 왼편으로 서봉 정상인 연화봉이 보인다.
서봉 연화봉((蓮花峰)으로 오른편으로 칼로 깎아 자른듯한 절벽이 일품이다.
한 폭의 중국 산수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선장애는 북봉에서 올려다본 동봉의 동쪽 절벽으로 선인의 손바닥 모양을 한 절벽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금쇄관 아래쪽에 있는 전망대에서나 오운봉에서도 볼 수 있다. 섬서지방의 관중팔경(关中八景) 중 제1경으로 부를 정도로 장엄하다.
당 시대부터 건물이 지어지기 시작해서. 여러 번의 중수를 거쳐, 1985년에 중축했다고 한다. 계단 양쪽 난간에 자색의 소원을 비는 띠와 자물쇠가 치렁치렁 매달려있다. 금쇄관은 동•서•중봉으로 이어지는 길을 막고 있는 관문이다. 여기를 지나지 않고서는 다른 길로 갈 수 없는 그런 길을 막고 있는 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금쇄관(金锁关)을 지나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뉘어진다. 동봉으로 가는 길과 중봉과 서봉으로 가는 길인데 일단 돌아서 가기로 하고 중봉으로 해서 동봉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인생살이가 이런 길을 택하는 것과 동일하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이란 시에서 이렇게 관조하고 있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여행자이기에, 오랫동안 서있었다,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구부러지는 데까지
눈 닿는 데까지 멀리 굽어보면서;
그리고 다른 한 길을 택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좋은 이유가 있는 길을,
풀이 우거지고 별로 닳지 않았기에;
그 점을 말하자면, 발자취로 닳은 건
두 길이 사실 비슷했지만,
그리고 그 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아직 밟혀 더럽혀지지 않은 낙엽에 묻혀있었다.
아, 나는 첫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두었다!
길은 계속 길로 이어지는 것을 알기에
내가 과연 여기 돌아올지 의심하면서도.
어디에선가 먼 먼 훗날
나는 한숨 쉬며 이 이야기를 하고 있겠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걸은 길을 택했다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런 수직 바위 계단 길을 군대에서 유격 훈련하듯이 쇠사슬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나는 덜렁이는 카메라 때문에 저 길로 올라가지 않고 옆으로 우회하는 계단이 있어 계단으로 통과했다.
중봉으로 올라서면 조그마한 정자 옆에 내력을 중국어, 영어, 일어 그리고 한글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음악의 신들이 아름다운 선율로 봉황을 꼬셨다는 이바구다.
<역사기록에 의하면 진목공의 딸인 롱옥이 아주 아름다운 미모를 가졌고 또 음률에 능통하고 춤을 잘 추었습니다. 어느 날 화산의 또 다른 은거 중인 선비 소사와 같이 생황과 퉁소를 연주한 후 서로의 음률에 매료되어 부부가 되어 화산에 은거합니다. 매일 밤 생황과 퉁소를 연주하여 아름다운 봉황과 온갖 새들이 다 모여들어 춤을 추었다고 해서 후인들은 이곳에 인봉정을 지어 기념하고 있습니다. >
1984년에 만든 새로운 험도(险道)로 인봉정에서 양공탑으로 가는 길에 있다. 중국인들은 서로 앞을 다투어 험한 길 만들기 시합을 하는지 바위에 수직으로 계단을 만들어 쇠사슬을 잡고 돌계단 하나하나를 딛고 오르도록 만들어 모험을 좋아하는 인민은 도전해서 올라간다. 이 험로를 통과하면 동봉 정상으로 나아가는 완만한 길을 만난다.
서안사변의 한 주역인 서북군 지휘관이었던 양호성이 1931년 동봉과 서봉에 세운 탑으로 위 사진은 동봉 정상에 세운 탑이다. 여기가 동봉 정상인 조양봉(朝陽峰)으로 동쪽에 있어 일출을 관람하는 곳으로 관일대라고 한다.
동봉 관일대에서 바라본 중국 산수화 한 점으로 구름이 하늘과 계곡에 닿여 있다. 바다 구름이라 말하는 운해가 산을 품고 하늘에 맞닿아있다. 지금 가고 있는 등산로가 북봉을 지나 중봉의 인봉정을 지나 동봉 관일대까지 온 것이다.-J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