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단, 북해, 경산공원
2013년 5 월 11 일( 토 ) 맑음
이제 여행도 막바지로 치닫는다. 어차피 돌아가야 하는 여행이다. 천천히 느림보 걸음으로 다닐 형편이 못된다. 그래서 오늘의 여행코스는 1. 천단 공원 2. 북해 공원 3. 경산 공원으로 북경의 유명공원을 하루에 둘러보기로 하고 주마간산(走馬看山)식으로 요약해서 올린다.
천단(天壇)은 명청시대 군주가 제천의식을 행하던 도교 제단이다.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것은 황제의 연례행사였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지냈다. 옛 규모로 볼때 세계에서 가장 큰 제단으로 무려 자금성의 네 배이다.(자금성을 이야기하니까 심이 쪽 빠진다) 그런이유로 1998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천단(天壇)을 유럽의 유적에 비교하면 아테네의 파르테논이나 로마 포럼에 있는 신전하고 유사한 것이다. 연대 수는 많이 뒤떨어지겠지만 그 기능은 동일한 것이다. 가기 전에 입이 딱 벌어지는 규모에 겁을 지례 지어 먹었다. 왜냐하면 자금성이나 이화원처럼 또 녹초가 될까봐 그랬다. 오늘은 진짜 독한 맘먹고 관광 안내서에 나오는 요점만 보고 도망 칠 생각이다.
기록에 의하면 주나라시대부터 하늘에 제사지내기 시작하여 한나라이후부터 모든 황제의 기본 의무가 되었다는데 사료 전시실에 들어 가면 재미있는 기록이 있다. 명, 청 황제별로 누가 무슨 제사 몇번 올렸는지 정확하게 보여준다.
열심히 의무를 수행한 황제도 있는 반면 주색잡기에 골몰하여 의무이행을 소홀히 한 황제도 보인다. 청조에서는 역시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가 우등생 반열에 든다.
명대에서는 가정제(嘉靖帝) 세종(1521-1567)때 제사를 많이 올렸는데 이는 통치기간이 무려 46년간 장기 집권이기 때문이지 황제가 백성을 위하여 의무를 이행한 것은 아니었다. 불로장생을 위하여 엽기적인 행동을 한 황제로 치세를 잘하지 못했던 황제로 기록된다.
천단공원(天壇公園)의 핵심 구경거리는 다음과 같이 기년전(祈年殿), 황궁우(皇穹宇) 그리고 원구단(圓丘壇) 3군데로 압축 요약할 수 있다.(가게되면 꼭 둘러봐야 할 곳)
천단공원의 핵심 건축물로 가장 먼저 세워진 건물로 황제가 풍년을 기원하던 제전이다. 직경 32.7m 높이 38m의 원형목조 건축물로 못하나 쓰지않고 완성된 건물로 유명하다. 중앙의 4개 기본 기둥은 4계절을 뜻하고 그 주위 작은 12개 기둥은 일년 12달을 의미하고 바같쪽 다른 12개 기둥은 하루 12시(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를 의미한다. 원래의 명칭은 대기전(大祈殿), 대향전(大享殿)이었으나 건륭(乾隆) 16년(1751) 중수 후 기년전(祈年殿)으로 개칭되었다.
올라가는 계단 중앙에는 거대한 대리석에다 용, 봉황을 조각한 돌을 묻어 놓았는데 용봉석(龍鳳石)이라 한다. 황제의 위엄을 상징하는 것 같다.
기년전 안을 둘러보면 중앙에 제단이 있고 좌우로 삥 돌아가면서 제기와 제물들이 놓여 있다. 눈길을 끄는건 제기에 담긴 제물인데 우리가 아는 돼지가 아니고 양이다.
기년전 밑에 있는 자료 전시실에서 찍은 것인데 진시황제가 하늘에 제사지내려 행차하는 모습이다. 난 이 사진 보자마자 딱 한 분이 머리에 떠 오른다. 삼성 이건희회장. 요새 티비에 나올 때 이런 모습으로 옆에서 둘이서 한 팔씩 부축해서 불편한 걸음을 옮긴다. 중국 최초 통일 국가를 이룬 진시황제와 전자업체 세계 1위를 달성한 이회장과 일맥 상통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기년전 안과 밖에 새겨진 단청에는 어김없이 용과 봉황이 등장한다. 황제와 황후의 권위를 상징하는 동물로 기년전 현판에도 용과 봉황으로 가득하다.
황궁우는 역대 황제들의 신주를 모신 사당으로 우리의 종묘와 같은 것이다. 명나라 가정제(嘉靖帝) 9년인 1530년에 지은 건물로 청(淸)나라 때인 1752년에 현재의 남색 기와로 개축했다고 한다. 기년전이 여러차례 소실로 20세기에 들어서 새로 지어진 것인데 비해서 황궁우는 원래의 건축물이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 더욱 더 가치가 있어 보인다.
천단공원에서 제일 화려한 건물이 황궁우다. 황궁우 천정 및 내부 양식으로 천정 중앙에 금색으로 용을 장식하고 좌우로 돌아가면서 대칭무늬로 눈이 부시게 화려하게 단청색을 입혔다.
황궁우를 둘러싼 외부 부속물도 좌우대칭 기하학적으로되어 있는데 이슬람 양식을 본받았다고 한다.
(퀴즈문제) 위 사진에서 서로 대칭이 아닌 부분을 찾아 보세요. 찾으신 분은 정답을 댓글로 보내 보세요. 경품이
있는지 없는지...
푸른 기와가 눈에 띄여 별도로 구도를 잡아 보았다.
기년전(祈年殿)에서 황궁우(皇穹宇)로 오는 길(황궁우에서 기년전을 보고있다)을 보면 중간에 별도로 대리석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신도(神道)"라하여 황제만 걸어 갈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를 아는 관람객들은 꼭 중앙으로 황제처럼 걸어 가려고 한다.
황궁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회음벽과 삼음석이다. 회음벽(回音壁)이란 황궁우(皇穹宇)를 둘러싼 원형 담장을 말한다. 일명 ECHO WALL이라 하는데 황궁우를 빙 둘러싼 원형벽에다 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벽을 타고 황궁우 안을 빙빙 돈다고 한다. 그 원리는 산동지방에서 나는 아주 미세한 재질로 만들어진 벽돌 벽이 음파 손실을 최대한 적게하여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원리다. 그래서 가 보면 벽에대고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많다. 실험정신이 가득 찬 인민들이다.
삼음석(三音石)이란 황궁우 계단으로 통하는 바닥받침돌인데 제1석에서 손벽치면 한번 울리고 제2석에서는 두번 울리고 제3석에서는 3번 메아리가 울린다는데 몇명이 실험을 해 보는데 별 신빙성이 없는 말이다. 이 모든 장치는 천자가 제문을 읽을 때 회음벽 밑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좀 더 입체감있게 들리도록 고안했다는 이야기다.
황제가 제천의식을 거행했던 곳이다. 3층 월단으로 둥근 원형으로 되어있다. 자료실에 있는 사진을 보니 예전에 천자가 여기서 제사지내는 모습을 스케치한게 있어서 어떻게 제를 지냈는지 조금은 감이 온다.
원구단 중앙에 동그란 돌이 하나 놓여있는데 천심석(天心石)이라 한다. 제를 지낼 때 천자가 여기에 올라 예를 올린다. 하늘과 소통하는 자리란 소리다. 관광객 너도 나도 올라 가서 인증샷을 찍는데 붐빌 때는 인증샷 찍기도 힘든다. 그 옛날에는 저 돌 위에 천자들이 올라가서 제를 지냈으니 모두들 천자 흉내를 내고 싶은 모양이다.
이게 자료실에서 찍은 오리지날 스케치 사진이다.
여기까지가 관광가이드에 소개된 부분이다. 책에 없는거 하나만 더 보여 주고 천단공원 종친다. 천단공원에 나무 수종이 대부분 측백나무인데 약 6만그루가 있는데 그중 100년이상 짜리가 3600 그루정도 있다. 옛날 키신저 특사가 첨으로 중국방문해서 천단공원에 들렀는데 고령의 측백나무들을 보고 매우 부러워했단다.
사진은 그중 하나로 500년정도 되었는데 모습이 9마리 용을 닮았다해서 구룡백(九龍柏)이라고 부른다.
자금성 옆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예전에는 황실정원으로 약 900년된 호수정원이었는데 1925년부터 시민공원으로 개방해서 크지 않은 규모로 완벽하게 보존된 황실정원이다. 5개의 인공호수로 이루어진 황실정원으로 예전에는 자금성의 일부였다가 분리된 곳이다.
현재 북경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공원으로 해질무렵 갔더니 주말을 즐기는 시민들로 가득하다.
중앙에 경화도(琼华岛)란 인공섬에 세워진 백탑(白塔)이 눈을 끄는데 사진만 찍고 올라 가 보지는 못했다. 영안사(永安寺)에 위치한 백탑은 라마교식으로 만들어졌는데 흰색 탑에 13개 둥근 고리가 첨탑에 장식되어 있는데 13 의미는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에 이르는 13단계를 의미한다.
백탑이 있는 영안사는 청조때 만들어진 라마교 사찰이라고 한다. 해 질 무렵 늦게 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있다. 백탑 위로 올라 가는 것은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것 같다.
영안사 입구에는 거북사자, 학, 봉황 조형물이 서 있다. 이 모든 조형물이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상징하는 것이다.
백탑이 있는 영안사(永安寺)로 가는 교각이 낙조에 물들기 시작한다.
공원 안에는 인공 호수가 5군데나 있어 어디서나 물놀이하기가 쉽다. 그런 이유로 북경에 10대 시민공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북경시민이 가장 선호하는 공원이란다.
그냥 호수가를 걷다보면 늦은 오후 햇살이 교각의 돌난간을 물들이기도 하고 그 사이로 늘어진 버드나무와 잔잔한 호수의 물결이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자연의 고요함이 가져다주는 힐링이 바로 이런 것일까?
단순한 공원이라 하기에는 멋진 건축물이 많이 보이는 이유가 원나라까지는 명색이 궁전이던 것을 명청대에 와서 황제의 정원으로 용도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요(辽)나라 시기에 건립하기 시작하여 요(辽)ㆍ금(金)ㆍ원(元)ㆍ명(明)ㆍ청(清)의 5대를 거쳐 여러 차례의 중건을 통해 건립된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황가(皇家) 궁전 정원으로 꼽힌다.
이화원(颐和园)의 장랑(长廊)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비스무리한 회랑이 호수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북해공원 나가는 문. 마침 떨어지는 노을이 단청을 금빛으로 물들인다. 낙조에 물든 자금성 황금기와를 구경하기 위하여 서둘러 발걸음을 경산공원으로 재촉했다.
낙조시간에 맞춰 경산공원에 오르면 황금색 자금성 궁궐지붕들을 볼 수 있다는 가이드책을 따라 힘들게 올라갔다. 북해공원에서 지체하다가 경산공원에 오른시간에는 땅거미가 제법 빠르게 몰려들었다. 북경 시민들중 사진에 취미있는 사람들은 다 올라 와 있었다. 전부 다 튼튼한 삼발이와 사진기 하나씩 들고서 자금성의 낙조를 찍으러 온 것 같다. 오늘 낙조는 조금 있는데 구름에 가려 자금성 궁궐까지는 다다르지 못한다. 대신 자금성 궁궐의 전체를 사진에 담아왔다.
자금성의 동서남북 네 귀퉁이에 있는 망루. 자금성 안에서는 볼 수는 없는데 경산공원 가는 길에서 만났다. 주위에 시민들이 낙조에 물든 망루를 찍기 위해 해가 떨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경산공원으로 올라가기 전에 자금성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앞에 섰다. 자금성(紫禁城)을 고궁박물원(故宮博物院)으로 개칭하고 일반에게 공개한 것이 1925년이었다. 바로 전해인 1924년 11월 낙엽이 뒹구는 늦가을에 마지막 황제 푸이는 쓸쓸하게 바로 이 신무문(神武門)을 통해 강제로 출궁조치를 당하여 아버지 순친왕 집으로 옮겨갔다. 1908년 푸이가 3살 때 울면서 12대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고 약 16년간 살았던 궁궐을 마지막으로 떠나게 된 것이었다. 시간이 늦어 성문은 굳게 닫혀있지만 90여년전 힘없이 걸어 나오던 푸이의 그 초라한 어깨에 낙조가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원래 평지인 이곳을 인공으로 만든 산으로 높이는 108미터이지만 자금성 근방에서는 제일 높기 때문에 올라 오면 좌우 앞뒤 사방으로 시야가 확트인다. 이 야산에 정자가 5개있는데 제일 높은 곳이 만춘정(万春亭)으로 전부 여기서 바글거린다.
조금전에 보았던 북해공원의 백탑도 노을속으로 서서히모습을 감춘다.
1994년 세워진 북경 CCTV 타워가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405m로 중국내 3번째 높은 전망대라 한다.
경산공원 만춘정에서 본 북경 시내. 경산공원도 예전에는 청 황실이 소유한 정원이었다고 한다. 청조 망하고(공식적으로 1911년 신해 혁명부터)부터는 국민당 군마 목초지로 이용되다 1928년부터 공원화가 되었다고 한다.
일단 경산공원에 오르면 사방천지가 훤하게 보이지만 이 경산공원 만춘정 꼭대기에서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33세의 젊은 나이로 사직을 마감하고 여기 경산공원 만춘정에 올라 한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탁발승 주원장(朱元璋)이 1368년 몽고족 원나라를 밀어내고 개국한지 277년만에 농민반란으로 시발된 이자성(李自成)의 반란으로 북경이 점령되자 어린 세 아들만 피신시키고 황후와 첩실과 딸들을 자금성에서 모두 죽이고 환관 1명을 데리고 자금성 북문 신무문(神武門)을 나와 경산공원 만춘정에 올라 유언을 남기고 나무에 목을 매었다. 그 때가 1644년 꽃피는 3월이었다.
숭정제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짐이 제위에 오른지 17년, 위로는 하늘에 죄를 짓고, 반역의 무리에게 땅을 잃은 것이 세 차례였다. 이제 도적이 창궐하여 궁궐까지 이르렀으니 이것은 모두 중신들이 짐을 그르쳤기 때문이다. 짐은 죽어 지하에 돌아간들 선제를 뵐 면목이 없다. 그래서 머리털로 얼굴을 가리고 죽는다. 도적들은 짐의 시신을 갈기갈기 찢어도 좋고 문관들을 모두 죽여도 좋지만 다만 능침만은 허물지 마라. 또 우리 백성들 한 사람이라도 상하지 말라.>
죽기전에 지금 내가 내려다 보고 있는자금성 궁궐을 바라보며 일장춘몽같은 일생을 눈물로 돌아 보고 자기신세를 한탄하며 목을 맨다. 왜 왕손으로 태어나서 이런 굴욕을 당하는지, 차라리 없는 집의 일반 백성으로 태어났더라면 배불리 먹지는 못하더라도 마음편하게 살 수 있었거늘...지금 여기 만춘정에서 복작거리는 그 후손들은 그 아픈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캐논과 니콘으로 자금성 노을잡기에 바쁘다.
오늘은 노을을 기대하긴 힘들다. 경산공원 만춘정에서 자금성을 가로 찍기 6장을 합성한 대작이다. 금지된 도시(FORBIDDEN CITY)가 아니고 이제는 개방된 도시이지만 여전히 돌아 보는게 녹녹치 않은 장소이다. 점점 어둠 속으로 잠기는 자금성을 얼마동안 바라보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가로등도 하나없는 어두컴컴한 경산공원 길을 천천히 내려왔다.-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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