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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진화 Feb 22. 2022

누구나 그만의 결을 가지고 살아

나의 결을 알게 된 그 날 나는 나의 바닥을 보았다. 

보노보노!

한동안 지쳐 보이는 것 같아 일기 언제 쓸 거냐고 물어보지 않았어


사람이 어떻게 매일 한결같이 살 수 있겠어.

모든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고, 그럴 때가 다 있는 게 아닐까?

살다 보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황에 따라 누구든 무기력 해질 때가 있는 것 같아. 

그럴 때마다 누구나 흔히 겪는 일이니 자책하지 말자.


그럴 때는 마음껏 휴식을 보내고, 마음껏 무기력해짐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자.

그러고 나서 차차 마무리하고 다시 움직이면 되지 않을까?

보노가 하는 모든 것들을 "성실" 이라는 박스로 넣어 맞추려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그리고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 겨우 따라 하는 것 또한 해내는 사람 이니깐 말이야


사람마다 갖고 있는 결이 다 달라서 모두가 다 같은 결을 갖고 살지 않아도 된다 생각해.

결이 어울렸을 때 서로 윈윈 하는 관계라면 어울리면 되고, 결이 다르다면 적당히 맞추면서 지내면 되는 거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나랑은 다른 종족이구나 하고 결론을 내려. 


이 결이 연애관계에서도 성립되는 것 같아. 

난 20대에 연애하면서 내결을 파악하는데 애썼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했고, 궁금했어. 

타인의 성향에 나를 맞추기보다 내 기준에 타인을 맞추려고 엄청 계산했던 것 같아.


대학교 때 CC로 비밀연애를 하다가 결국 알리고, 난 내 이미지가 더 중요해서 최대한 과에서 티를 안 내고 그전처럼 행동하려고 무지 애썼어. 연애하면서 학교생활에 소홀해지고 싶지 않았고, 기존에 오빠들이랑 놀던 모임을 내려두고 싶지도 않았어. 연애해도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때 내가 처음 알게 된 내 결은 "모든 걸 잘 해내려고 하는구나” 어떤 분야든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게 내 성향이라는 걸 알았어. 

난 타인을 신경 안 쓰고 살아내는 마이웨이 성향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던 거지


왜 모든 걸 다 잘하고 싶었을까? 


그때는 내가 하면 모든지 척척 되어가는 모습? 자만감에 빠져, 모든지 그렇게 하고 싶었어. 내가 속한 곳이 작은 우물인데 그곳이 전부인 것처럼, 그 안에서 일인자가 되어야 한다 생각했어.

그래서 하기 싫은 척하면서 내심 좋아했던 과대도 했고, 과탑 자리를 올라가고 떨어지는 게 무지 싫어서 남들에게는 공부 안 했다고 하면서 혼자 공부했어.


그렇게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인턴을 시작하면서 내 우물은 사라졌어. 

내가 다녔던 학교는 전부가 아니었고, 그 안에서는 내가 과탑을 해도 세상에 나오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어.

다시 하얀 백지가 되었어. 인턴을 했던 기업은 작은 곳이었지만 다들 학벌과 능력이 어마어마했어. 웬만한 인서울 대학교에서 박사까지 한 연구원들이었어. 난 매일 새로운 걸 배우면서 기가 팍 죽었어. 모르는 것 투성이라, 이때 처음 내가 모든 걸 잘할 수 없다는 걸 알았어.


2개월을 해야 완료인데 꾸역꾸역 1개월만 다니고 그만두겠다고 교수님께 말하고 나왔어.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여야 하는데 진학을 하겠다고 결정해서 한동안 여기저기 찾아가면 교수님들께 해명을 해야 했어.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것은 뭘까?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들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스펙이 짧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


그때 만났던 CC남친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더 소홀 해졌고, 연애보다는 내 능력치가 우선이라 무엇인가 남는(생산적인) 데이트를 하고 싶었어. 그래서 같이 책을 읽자, 다이어리를 쓰자 이러면서 남친한테 자기계발을 하자고 징징 거렸어. 안 하면 데이트를 못한다고 내 기준에 계속 껴맞추다가 수 없이 싸웠어. 싸우다가 남친 가방을 끊어 먹은 적도 있었지. 나를 바꾸겠다고 타인까지 힘들게 했던 연애였지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된 "내 결" 덕에 인턴을 그만두고 난 나를 다시 시작하는 기회로 삼았어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그때는 내가 너무 초라했어. 아무것도 없는 빈껍데기였어


그때 바닥에서 나를 직면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날 위로해봤어

다음 일기에는 그 기회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이어가 볼게



2022.02.22  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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