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의진화 Feb 26. 2022

그 땐 그게 전부인 줄 알았어

지나고 보면 별거 아닌 일인데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고 두려웠을까?

기회의 시작 첫 단추

일주일 고민 끝에 편입하기로 결정하고 부모님께 취업 말고 진학을 하겠다고 했어

엄마는 날 지지해줬지만, 아빠는 진심인지 장난인지 나에게 ‘학교 못 가면 공장 가야 해’라고 말씀하셨어. 

난 그 말이 충격이었고, ‘절대 공장에는 안가’라는 생각에 독하게 마음을 먹었어. 


보여주리라!! 내가 꼭 학교에 가리라!!!


서울에 있는 편입 학원을 9월에 등록했어. 

편입 시험은 다음 해 1월부터 시작이라 대부분 재수하는 것처럼 1년을 잡고 공부하더라

편입시험이 4개월밖에 안 남은 나로서는 시간이 황금같이 느껴졌고, 마음이 조급해졌어


대학교 수업이 끝나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2시간씩 걸리는 편입 학원에 갔고, 밥도 혼자 먹고, 수업도 혼자 들었어.  그전까지는 학원도 친구랑 다녔고, 밥도 무조건 친구랑 먹었었는데 말이야. 

혼자 모든 걸 해야 한다는 현실이 차갑고 낯설었어. 


학원에서 수업 듣는 사람들은 나 빼고 다 똑똑해 보이는 거야. 난 너무 무섭고 두려웠어. 이들은 언제부터 공부를 시작한 걸까? 내가 여기 배에 같이 탈 수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고, 바로 편입 공부에 집중을 했어. 봐도 봐도 모르겠는 꼬부랑글씨(그 시절 편입 공부는 시사 경제인 영어 내용이 많았어)를 이해하려고 필기하기 바빴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머리에 다 넣어야겠다 싶었지만 마음과 머리는 늘 따로 놀았어.


학원 수업은 저녁 7~10시까지 하고, 나머지 시간은 특강이나 자습이었어. 난 집이 멀어 수업만 듣고 집에 가야 했는데 때로는 ‘괜히 시작한걸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그러는 동시에 머릿속에는 ‘공장 갈 거야?’라는 내면 소리가 들렸고, 난 가방에서 책을 꺼내 지하철에서 공부를 했어. 아빠의 말이 나한테 매 순간 자극제였어.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이 5분이라도 생기면 책을 폈어. 차에서 글씨를 보면 멀미가 나는데도 이때는 조급함 덕에 글씨가 눈에 잘 들어왔어. 그래서 지금까지도 차 안에서 책을 보곤 해. 기회를 잡아 생긴 첫 번째 변화는 대중교통에서 책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야.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데 타인의 시선이 너무 신경 쓰이는 거야. 그래서 화장실에서 빵을 먹은 적이 있어. 혼자 밥 먹는 걸 보여주기 싫어, 숨어 먹었어. 아무도 날 안 볼 텐데 그때는 맛보다 대충 먹고 수업 들으러 가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어.

그날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문뜩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남들이 뭐라고 내가 화장실에서 저녁을 먹지? 너무 슬픈 거야.  항상 할머니께서 뭘 하든 밥은 잘 챙겨 먹으라고 하셨는데 말이야.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난 다음날 혼자 식당에 갔어. 짜장면 집이었는데, 학원 주변가라 혼밥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들 나만 보는 것 같은 거야. 짜장면을 먹은 건지 사람들의 시선을 먹은 건지... 그래도 꿋꿋하게 한 그릇을 다 먹고 나와서 나한테 셀프 칭찬을 해줬지. 두 번째 변화는 이때부터 혼밥을 하기 시작했어 *.*



살면서 처음으로 밥 먹고 잠자는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졌어. 그렇게 4개월 동안 4시간만 자고, 학교에서는 전공수업 대신 편입 공부만 했어.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볼 때마다 점수는 아주 조금씩 올랐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지만 나에게는 좌절할 시간조차 없었어.

내가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야만 했어

엄마, 아빠한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 모임에 가서 우리 딸 4년제 다닌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말 한마디가 중요했어. 그 마음으로 인서울 4년제 대학교 10곳에 시험을 보고 예비 번호로 대학교에 합격을 했어


대학교 입학처에서 전화 온 날은 엄마랑 버스 정류장이었는데 정말이지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어. 소리를 질렀지. “나도 이제 인서울에 있는 대학 4년제 다니는 대학생이다” 내 마음 깊숙이 있던 대학방 앞에 큰 간판이 생겼어. 그걸 얻기 위해 고생했던 4개월이 헛되지 않음에 감사했고, 지금도 곱씹을 때가 많아. 내가 살면서 미친 듯이 매달렸던 순간이 또 있을 수 있을까? 그때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싶을 정도로 간절했어.


생각해보니 이때 연애 중이었어. 편입 공부 전에 남친은 군대에 갔고 나 오히려 잘 됐다 싶은 마음에 '나 공부하니깐 전화 자주 하지마' 라고 했어. 여전히 나만 아는 이기적인 여자 친구이었지. 지금 생각해보니깐 그때 남친이 착했네. 그렇게 싸우고, 본인은 뒷전이라 남는 시간에 데이트하는 걸 알았을 텐데 나랑 연애를 한 자체가 고맙네. 대학 가면 로망으로 남친은 있어야 하는 호기심에 시작한 연애라 큰 의미를 두지 않았던 것 같아.


연애보다 매사에 내가 우선순위였던 난

인턴을 그만둔 기회로 내 학벌 간판을 바꾸면서 우물보다 조금 큰 연못에 들어갔어.

다음에는 대학교에서 놀았던 보따리를 꺼내야겠어. 보노의 스무 살은 어땠어?


2022. 2. 23 로리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그만의 결을 가지고 살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