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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혁 May 04. 2017

정신적 여유, 정신적 총량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5시간 걸리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선 5시간이라는 여유가 필요하단 뜻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고, 우리는 여기에만 익숙하다.


그래서 시험날짜가 잡히면, 역순으로 내가 가용할 수 있는 시간을 계산한 후 차곡차곡 계획을 세운다. 오늘은 수학 5시간 공부. 내일은 국어 6시간 공부...


계획을 열심히 세운 후, 우리 대부분은 '시험기간에는 시험공부 빼고는 모두 재밌다'는 절대불변의 진리를 되새기며, 뉴스를 보거나 필기도구에 적혀 있는 작은 글씨 따위를 읽으며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한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바로 '정신적 여유'라는 개념을 고려치 않고 계획을 세워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하루 24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시간 총량이 주어진다. 이와는 별개로 개개인은 서로 조금은 다르지만 '정신적 총량'도 주어진다고 본다.


각자의 정신력에 따라 누구는 100이라는 정신적 여유가 주어지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10이라는 정신적 여유가 주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정신을 집중해서 처리해야 하는 일을 할 때면, 이 정신적 총량이 깎인다. 얼마나 깎이는지 또한 각자의 정신력에 따라 다를 테고.


회사일을 마치면 책을 읽거나 학원을 수강해 자기계발을 해야지!라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본 적이 다들 있을 거다. 하지만, 막상 격무에 시달리고 집에 도착하면, 분명히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시간적 여유는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비를 켜서 예능을 보며 맥주 한잔을 하거나, 즐겨하던 게임을 습관적으로 실행시키고, '자기계발은 다음에...'라는 핑계를 자신에게 되뇐 적이 있을 것이다.


회사일을 하며 내 정신적 총량을 모두 소비했고, 그렇기에 이를 충전하기 위한 행위(티비 시청, 게임, 친구 만나 수다 등)를 하는 것이다. 시간적 총량은 누구에게나 같은 양이 주어지며, 이를 충전할 수 없고, 소비만 가능하다. 반면 정신적 총량은 충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어떤 충전방식을 택하냐에 따라 급속으로도, 완속으로도 충전이 가능하다. 그리고 사람마다 충전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누구는 영화를 보면 정신적 총량이 채워지며, 다른 누구는 친구를 만나 대화를 하며 정신적 총량을 채운다. 반대로 사람을 만나면 이런 총량이 깎이는 경우도 있고.


정신적 총량은 육체의 피로도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육체노동을 한 후에, 체력이 바닥이 났다면, 정신을 가동할 만한 에너지원이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녹초가 된 후에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는 행위를 하기가 힘들다. 그저 누워서 쉬고 싶을 뿐.


물론 격렬한 운동을 통해 정신적 총량을 늘릴 수도 있다. 이는 운동이 큰 정신적 만족감을 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침에 조깅을 한다든지, 축구경기를 하고 내가 만족할만한 플레이를 했다든지. 이런 행위를 통해서 정신적 총량이 늘어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정신적 총량을 소모하는 행위를 할 수 있게 된다.


정신활동을 별로 하지 않고, 육체노동도 별로 하지 않는 백수들은 어떨까? 정확히 말해보자면 취포생들. 이들에게도 정신적 총량은 부족하다. 별다른 육체/정신노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정신적 여유는 항상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이는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다. 스트레스는 우리 정신에 많은 영향을 주며, 그중 하나는 우리의 정신적 총량을 깎아낸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다 보면 다른 정신적 노동을 할 여유가 생기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이 '정신적 여유'라는 개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단 이 개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여유시간(퇴근 후, 주말) 비생산적인 행위만 반복하는 건, 시간이 충분함에도 내 게으른 천성 때문이 아니라, 정신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 후에는 이 정신적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스트레스 때문에 계속해서 정신적 총량이 깎이고 있다면, 스트레스를 제거하면 된다. 이 스트레스를 제거할 수 없다면, 총량을 채우기 위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고.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답은 없다.


내 경우에는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뒹굴뒹굴 나태하게 있으면 이 총량이 채워지더라. 반면, 어떤 사람은 밖으로 나가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 이 총량이 채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정신적 여유를 찾았다면, 그래서 정말 생산적인 일에 내 정신력을 쏟을 수 있다면, 그때 제대로 된 계획을 세워보자. 아니 애초에 계획을 새울 때, 내 정신적 총량을 고려해보자. 그러면 시험기간이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벼락치기는 안 해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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