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서의 평일이 모두 지나갔다. 이제 남은 주말을 보내면, 이번 여행이야기는 끝이 난다.
마지막 남은 주말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하다가, 남편은 가봤지만,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프라하 근교 '까를로비 바리'를 가보기로 했다.
#. 카를로비 바리는...! [네이버 지식백과 퍼옴]
* 전 유럽으로부터 방문자들을 끌어 모았던 체코의 유명한 온천 도시
카를로비 바리는 오흐르제 강과 따뜻한 테플라 강이 합쳐지는 곳, 나무가 우거진 언덕 틈에 위치한 매력적인 온천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는 많은 이들이 의학적 효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뜨거운 광천수 샘물이 솟아나며, 열두 개의 큰 샘물은 잘 개발되어 이 도시에 온천을 제공해 주게 되었다. 휴양지에 있는 우아한 공공건물과 개인 주택들은 대부분 18세기와 19세기에 지어진 것이지만, 카를로비 바리가 세워진 것은 이보다 훨씬 전인 1370년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 4세에 의해서였다.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 [Spas of Karlovy Vary]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 1. 20., 리처드 카벤디쉬, 코이치로 마츠무라, 김희진)
온천수가 특징인 곳이라, 온천수를 받아서 먹는, 독특한 디자인의 컵이 이곳의 유명 기념품이기도 하다. 컵의 윗부분에 물을 넣는 구멍이 있고, 같은 재질의 도자기로 손잡이 부분이 길게 빨대로까지 이어진다.
몇 년 전, 출장으로 프라하를 갔던 남편이 '까를로비 바리'에서 기념품으로 다인이에게 고양이 컵을 사다 준 게 있었는데, 우리의 파괴왕 아가 시절 민찬이가 고양이 꼬리를 홀라당 깨뜨려버려서 누나가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아빠가 까를로비 바리에 또 가게 되면 다시 사다 주기로 약속을 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다 같이 가서 약수도 먹어보고 새 컵도 사 오기로 한 거다.
'까를로비 바리'행을 미리 계획한 건 아니었기에, 주말이 되기 이틀 전쯤 숙소를 검색해 보았다. 런던과 파리에서는 에어비앤비 숙소를, 프라하에서는 남편이 묵고 있던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렀기 때문에, 이번 주말여행만큼은 호텔다운 호텔에서 온천수 수영도 하고 조식도 먹어보자 했다.
호텔을 검색하던 중,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모티브가 된 호텔이 까를로비 바리에 있는 '그랜드 호텔 펍'이라는 포스팅을 발견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는 내러티브 구성도 독특하지만, 영화의 미장센도 아름답고 개성 있는 걸로 유명하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영화는 꽤 오래전에 인상 깊게 봤는데, 영화 속 핑크빛 호텔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왕 가는 거, 영화 속 그 느낌을 누려보자! 하고, '그랜드 호텔 펍' 1박을 예약했다.
까를로비 바리 여행기를 정리하다가, 집에 '그랜드부다페스트' 아트북이 있어서 진짜로 그 호텔이 모티브였는지 궁금하여 오랜만에 책을 뒤적여보았다.
이탈리아, 헝가리 부다페스트, 체코 까를로비 바리, 마리안스케 라즈네 등을 참고했는데, "특히 까를로비 바리가 중요해졌어요. 영화에서 네벨스바드라고 부른 곳은 까를로비 바리를 모델로 했어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아트북 중->
특히 '까를로비 바리'를 언급한 걸 보면, 호텔은 몰라도 이 도시가 영화에 영감을 준거는 확실한 거 같다.
책에서 "영화 속 알프스 산자락인 '네벨스바드'를 참고했다"라고 했는데, '그랜드 호텔 펍' 뒤에 산에 위치한 전망대로 올라가는 계단이 바로 이어져있었다. (오! 그럼 이 호텔이 모티브라고 한 게 과언은 아닐 듯싶다)
호텔 예약을 마치고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일 아침을 맞았다. 하필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주말이었다. 우리는 여유 있게 일어나 근처 맛집에서 아점을 먹고 까를로비 바리에 가기로 했다. 이날은 프라하 시내에 있는 '맛집'이라는 한식당을 찾아갔다. (식당 이름이 진짜 MATZIP임) 완전 관광 중심가에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오픈 시간부터 사람들이 꽤 많았다. 한식당에서 해주는 중식 요리를 맛있게 먹고...! (진짜 한국에서 먹는 중식보다 왜 더 맛있는 거지?!) 이제 까를로비 바리까지 장시간 운전을 해야 하므로 커피를 사러 근처 스타벅스를 갔는데, 그곳은 프라하의 또 다른 관광 핫플인, 천문시계가 바로 앞에 있는 곳이었다.
비 오는 날씨를 뚫고, 드디어 까를로비 바리에 도착했다. 우리는 곧바로 체크인을 하기로 했다. 가족 중에서 나만 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상상하며 호텔을 들어갔다...
하하. 역시 상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지.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이다. 정말 좋은 호텔이었다.)
유럽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앤틱한 인테리어, 높은 천장에 화려한 샹들리에, 클래식한 음악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아직 한낮이었으므로, 우리는 호텔수영장에서 수영을 먼저 하기로 했다. 룰루랄라 수영복을 입고 호텔 가운을 걸치고 호텔 수영장엘 입장했다. 여기서도 매우 민망하게도 래시가드를 입은 건 우리 가족뿐이었다. 다들 아주 가벼운 수영복을 입고 있었다. TPO를 못 맞춰 간 듯한 느낌이다. 담엔 또 갈 기회가 있다면 가벼운 수영복으로 준비하는 걸로... 차가운 물이 있는 깊은 수영장 옆으로, 뜨끈하게 지질수 있는 온천탕도 있었다. 난 물론 온천탕에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아이들의 성화에 아빠와 교대로 온탕과 냉탕을 오고 갈 수밖에 없었다. 물이 아이들 키보다 깊은데, 튜브도 없어서 민찬이를 계속 안고 수영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호텔 직원분이 우리에게 기다란 스펀지 모양으로 된 킥판 같은 걸 던져주셨다. 아이들은 그걸로도 한참을 신나게 놀았다.
수영장 한 구석에서 계단 아래로 내려가면 사우나도 있었는데,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는 곳이 아니었다. (가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어서 못 갔다. 하핫.)
까를로비 바리까지 왔으니, 수영만 할 수 없지! 날이 흐리지만, 깜깜해지기 전에 나가서 거리도 구경하고 온천수도 맛보고, 예쁜 컵도 하나씩 겟하자!! 옷을 갈아입고, 거리로 나왔다.
비가 온 흐린 날씨라, 날씨가 덥지 않고 약간 서늘하기까지 했다. 마을 전체가 관광도시답게 길가에 여러 브랜드의 명품상점들이 들어서있었다. 그리고 곳곳에 노상 카페와 식당들도 줄지어 있었다.
온천수를 맛보기 전, 일단 배부터 채우기로 했다. 구글맵에서 평점 높은 근처 현지 식당을 찾아서 별점과 메뉴 사진들을 확인하고, 갈 곳을 정했다. 중심거리를 조금 지나서 있는 식당의 천막이 있는 노천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여행하면서 찍은 음식 사진이 거의 전무한데, 이날은 오랜만에 먹는 현지식이라 찍어둔 사진이 있다. 아이들은 감자튀김과, 나중에 추가로 주문해서 먹느라 사진에는 없는 슈니첼을 먹었다. 우리는 크림새우와 빵에 들어서 나온 굴라시(체코식 소고기 수프)를 먹었다. 고기, 소시지, 꼬치가 있는 저 플레이트는 메뉴명이 생각이 안 난다. ;; 다 맛있게 먹었는데, 먹고 나면 꼭 라면이 땡긴다. 하핫.
이제 본격 온천수를 맛보러 가볼까. 온천수를 맛보려면 컵이 있어야지! 길거리에 있는 기념품 샵에서 아이들에게 컵을 하나씩 고르라고 했다.
다인이는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가장 마음에 드는 고양이 컵을 골랐다. 민찬이는 고민 없이 자동차 모양의 컵을 골랐다.
온천수의 맛 후기로 "피맛이 난다, 쇠맛이 난다"고 말들하기에, 맛에 예민한 나도 사실 마시는 게 살짝 겁이 났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맛은 봐야지!! 일단 아이들이 처음 마실 때의 반응이 너무 궁금해서 그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동영상을 찍었다.
온천수를 마실 때도, 두 아이의 성격은 극명하게 차이가 났다. 10세는 온갖 호들갑을 떨면서 다른 가족들이 마시고 난 반응을 보며, 겁을 먹었다. 5세는 아빠가 시범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마시자, 한입 마셨다가. 웩~하는 반응이었다.
다인이는 엄마 아빠의 끈질긴 설득 끝에 물을 맛보았는데, 반응이 진짜 반전이었다. "생각보다 괜찮은데?" 하면서 온천수를 계속 마시는 게 아닌가!
까를로비 바리에 이런 식으로 온천수를 받아 마실 수 있는 곳이 꽤 여러 군데 있고, 해당 스폿마다 온도가 달라, 옆에 물의 온도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었다. 나는 한번 마셔보니 두 번은 마시기 싫던데.... 물맛에 익숙해진 다인이는 돌아다니며 스폿마다 물을 받아 맛을 보았다.
(오늘의 여행은 이것만으로도 대성공이다~!!)
이렇게 까를로비 바리 온천수 투어를 마치고, 다시 호텔 앞으로 돌아오니, 조명이 켜진 호텔이 더 예뻐 보였다. 수영을 하고 샤워를 했기에 아이들은 그냥 손발만 씻고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넓은 욕조가 갖춰진 호텔을 이대로 떠날 수 없었기에... 룰루랄라 나 홀로 반신욕을 즐기며 까를로비 바리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음날, 체크아웃 후, 까를로비 바리 전망대에 오른 이야기는 다음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