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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Jul 20. 2023

멸치볶음 같은 선생님도 있습니다.

1학년 - 할머니였던 것만 기억난다.

2학년 - 할머니였고 부잣집 아이들만 좋아했다. 쉬는 시간이면 어깨 주무르라며 예쁘게 깔끔하게 옷 입은 친구들만 불렀다.

3학년 - 남자였다. OO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라며 박수치라고 했다. 어머니가 선생님 먹으라고 참기름 보내주셨다며 고맙다고 다 같이 박수치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도 왜 네가 받은 선물에 우리가 박수를 쳐야 하나 싶었다. 나도 내일 엄마한테 참기름 한 병 달라고 해서 가져오라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나를 무척 싫어했다. 전교 글쓰기 대회에서 상 받아서 문예반으로 데려간다고 6학년 언니가 왔지만 산수 못해서 발바닥 다 맞고 가야 한다고 했다. 나만 보면 그랬다. "글을 백날 잘 써봐라. 산수는 그렇게 못 하는 게" 했다. 참기름 안 줘서 그랬는지 나만 보면 눈을 흘겼다.

4학년 - 30대 여자. 나를 좋아했다. 까탈스러운 노처녀라 아이들이 무서워했는데 나를 예뻐했다. 글 잘 쓰는 거 신기하다며 더 써봐라 했지만 대놓고 아이들 차별했다. 차별받으면서 불편했다. 참기름 안 줘도 좋아해 주는 건 좋았다.

5학년 - 할머니였다. 너희 엄마는 쫄바지 입히면서 긴 티셔츠도 안 입힌다고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물었다. 2학년 선생님이랑 비슷했다. 부잣집 애들을 얼굴만 보고 알아채고 좋아했다.

6학년 - 40대 남자 선생님. 쉬는 시간에 리코더를 부셨고 풍금을 잘 치셨다. 6학년 아들이 있다고 하셨고 늘 아이들 이야기 잘 들어주셨다. 5학년까지 공부 못 했는데 6학년때는 체육 빼고 "수"였다. 선생님 너무 좋아서 열심히 하기도 했지만 점수에 후했다. 이런 선생님도 있구나 했다. 평생 6학년으로 남고 싶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죽었단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맞았단다.

국민학교 졸업한 나는 초등학생을 키운다. 내 아이 걱정은 나만 하는 게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의 부모들은 어쩌나 싶다. 맞은 내 아이, 죽은 내 아이 어쩌나 싶다. 내 아이가 중요하듯 남의 아이도 중요하다. 내 아이가 귀하듯 남의 아이도 귀하다. 내 아이의 안전을 원하면 남의 아이 안전도 지켜줘야 한다. 선생님은 누군가의 아이다. 부모에게 자식은 다 커도 아이니까.


6학년 때 선생님은 아이들과 도시락 자주 드셨다. 엄마가 선생님 도시락을 한 번 싸주셨는데 선생님은 손글씨 편지를 써서 답장을 쓰셨다. 다시는 싸지 마시라, 그렇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하시며 멸치볶음 정말 맛있다 했다. 엄마는 내 도시락 싸주며 멸치볶음만 작은 반찬통에 따로 싸줬다. 너무 많이 싸왔다며 선생님 드리라고 했다. 작은 그릇에 멸치 담아서 저녁을 차리다 선생님 생각이 났다. 어른이 되어서도 몇 번 만났던 선생님. 너는 국어선생님 되라고 하시던 선생님. 대상 못 받아 속상해하던 백일장에서 장려상이 얼마나 대단한데 그러냐며 앞으로 불러서 친구들한테 박수받게 해 주시던 선생님. 멸치볶음 먹을 때 가끔 생각나는 사랑받은 제자였던 기억을 갖고 살게 해 주신 선생님.


그런 선생님 없습니까?

진짜 없습니까?

그래서 선생님이 우습고 하찮아 보였을까?

그래도 아이는 있잖습니까?

당신 아이만 아이입니까?

선생님도 누군가의 아이입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아이가 되고 다치고 상처 입은 아이가 되었습니다.


멸치볶음을 담다가 선생님 생각이 났다. 아니, 멸치볶음을 담다가 누군가의 죽은 아이, 누군가의 다친 아이가 생각났다. 멸치볶음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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