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엄마, N잡러 되다
엄마, 대학생 되다 - 1
1997년도의 대한민국은 IMF로 온 나라가 엉망이었다. 크고 작은 회사들이 부도가 나고 가족들은 해체되고 명예퇴직을 당한 가장들이 넘쳐났다. 대학 등록금이 없어 합격을 하고도 못 가고, 잘 다니던 학교도 휴학을 하던 때, 나는 97학번으로 대학에 가야 했다. 공부는 늘 중간에서 잘하지도 못 해서 성적에 맞춰 대학을 골라야 했지만 IMF는 성적만이 아니라 대학 등록금을 걱정하게 만들었다. 언니도 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나까지 다니면 부모님의 부담은 너무 클 것 같았다. 그런 고민을 했지만 원하던 대학의 전공학과에는 붙지 못했다. 합격은 했지만 원하지 않던 대학의 인문학부는 철학과, 한문과, 사회과로 나눠진다고 했다. 누가 들어도 취직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인문학부를 4년이나 다니고 취직할 자신이 없었다. 아빠는 늘 대학까지만 지원해주겠다고 하는 분이었다. 너희가 졸업하면 아빠는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짓고 살겠다던 아빠는 정말 2년 뒤 고향으로 내려가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대학까지만 지원해주겠다는데 인문학부를 졸업하고 취직을 못 한다면 아무것도 해주지 않으실 게 당연했다. 4년 등록금이 부담스럽다고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졸업해도 취직도 안 되는 학교보다는 전문대가 나을 거라는 부모님 속마음이 이해가 되는 19살은 취직이 잘 되는 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문대 호텔경영학과로 입학을 했고 부모님의 기대처럼 졸업 전에 취직도 했다. 좋은 호텔에 취직해서 열심히 살았지만 누군가 학교를 물으면 전공만 말하고 말았다. 전문대가 왜 그리 부끄러운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비밀처럼 말했다. “나 전문대 나왔어.”
지적 허영심이 많아서 잘난 척하는 걸 좋아하고 다 아는 척해야 마음이 편했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못 하지만 그때는 더 그랬다. 대화를 하다 모르는 주제가 나와도 아는 척했다. 어려운 문제를 이야기해도 이해하는 척 고개를 끄덕였다. 잡학 다식하고 유식한 척했다. 그러나 졸업한 대학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그 자리가 불편했다.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바꾸며 그 순간을 모면했다. 그리고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퍼붓곤 했다. ‘나 왜 4년제 안 보냈냐고, 내가 눈치껏 전문대 간다고 해도 엄마가 말렸어야지’ 하곤 했다. 전문대를 나와서 무시당한다고, 집안 형편 때문에 전문대를 나와서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던 20대에 얼마든지 내가 번 돈으로 등록금을 내고 편입을 하거나 다시 입학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으면서 서럽다고 했다. 지적 허영심이 많았던 이유도 학벌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비록 전문대를 나왔지만 굉장히 똑똑하고 무척 유식하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지적 허영을 부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