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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도는 하지 말아주세요 -1

by 주머니


엄마의 잔소리가 싫었다. 입는 옷마다 안 어울린다고 바꿔 입으라고 했다. 과자 사먹으면 몸에 나쁜데 그만 먹으라고 하고, 친구 만나 늦게까지 놀지 말라고 했다. 결혼 전까지 엄마는 내게 이런 잔소리를 했다. 결혼하면 그만할 줄 알았는데 이제는 아이 키우는 걸로도 잔소리한다. 그런 옷은 입히지 말고 과자 좀 그만 사 먹이라고, 애들 데리고 늦게까지 놀러 다니지 말라고 한다. 다 크다 못해 늙어가는 딸에게 잔소리하는 엄마가 어디 있느냐고 소리 쳤지만 대부분의 친정 엄마들이 그런 잔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는 30대든 70대든 잔소리가 일상이다.



40대 엄마이자 유치원 영어 선생님인 나는 어떤가? 집에서 하는 잔소리 밖에서도 참기 힘들다. 바지를 돌려 입었으니 바꿔 입으라고 한다. 손가락 먹으면 안 된다고 하고, 친구 괴롭히면 단호하게 나무란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가서 수업하는 선생님이 뭐 그런 것 까지 지적하나 싶게 잘못 되었다 싶으면 잔소리한다. 그날도 게임에 지면 엉엉 거리고 크게 우는 친구에게 미리 다짐을 받고 있었다.

“오늘 선생님이 우리 **이 게임 시켜 주고 싶은데 혹시 지면 어떡하지? 저번처럼 또 울면 안 되는데 약속할 수 있겠어?”

꼭 지키겠다며 큰 소리로 대답했지만 승패가 갈린 후 울음은 터지고 말았다. 교실이 떠나가라 울면서 발을 구르고 게임에 사용한 교구까지 집어던졌다. 너무 놀란 나와 달리 담임선생님과 교실에 있는 친구들은 무덤덤했다. 이 정도는 반응은 예상했다는 듯이. 흥분한 친구를 붙잡아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선생님 그냥 수업하세요. **이는 제가 데리고 갑니다.”



수업을 다시 시작했지만 복도에서도 크게 우는 소리에 마음이 불편했다. 괜히 게임을 시켰나 후회하며 수업을 끝냈다. 아직도 씩씩거리며 분을 감추지 못하고 울고 있는 친구에게 뭐라고 말하려는데 담임선생님이 잠깐 이야기 좀 하자며 사무실로 나를 이끌었다.

“선생님, 앞으로 저희 반 아이들에게 생활지도는 하지 말아주세요.”

“네? 생활지도라면 어떤 걸......”

“선생님 오시면 아이들 앉은 자세부터 옷 입은 것까지 뭐라고 하시는데 안 그러시면 합니다. **이는 저한테도 힘든 아이에요. 그냥 게임을 시키지 말아주세요. 그냥 수업만 하고 가주세요. 아이들 태도나 뭐 그런 거는 제가 바로 잡을 테니까요.”

나보다 20살은 어린 담임선생님께 혼이 났다. 울컥했지만 유치원에서 담임선생님은 엄마 역할이고 나는 그저 손님에 불과하다. 더구나 1년 수업을 마치고 유치원에서 재계약을 해주지 않으면 백수가 되는 ‘을 중에 을’인 특활 선생님이 나였다. 그러니 참아야지 했지만 억울함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선생님! 못난 행동하는 친구 한 명이 있으면 다른 친구가 다 따라서 하는데 그럼 수업을 못합니다. 아이가 결과에 승복을 못하면 선생님이 제 수업 전에 미리 좀 말씀해주시고 약속을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하아, 자세 바르지 않은 아이는 제가 데리고 나갈게요. **이는 제발 그냥 두세요. 그냥 시키지 마세요."

담임선생님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는 교무실에서 혼나던 어린애가 된 기분이었다. 조심하겠다 말하고 돌아서 나왔지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유난히 산만하고 태도가 좋지 않아 수업하기가 몇 배로 힘든 반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실 며칠은 그 기분이 그대로 남아서 괜히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화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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