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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지도는 하지 말아주세요 - 2

by 주머니

일주일 후, 수업을 가는 날이 되었다. 가기 싫다, 가기 싫다하면서 승부를 내지 않는 게임을 가득 준비해서 유치원으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담임선생님 대신 원감선생님이 계셨다. 그리고 그날 그 반 친구들의 수업태도는 훌륭했다. 옆 반으로 수업을 가서 궁금함을 참지 않고 물었다.

“세모반 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원감선생님이 계시던데요.”

“그만두셨어요.”

“네? 갑자기요?”

“세모반 친구들이 좀 강하잖아요. 아이들 때문에도 힘든데 어머니들도 전화를 자주 했어요. 아이가 잔소리로 느낄 수 있는 태도나 행동지적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도 있었대요. 그 선생님 살이 9kg 빠졌어요. 이러다 사람 잡는다며 선생님 어머니가 오셔서 사직서 쓰고 가셨어요.”

그러고 보니 담임선생님은 몇 달이 지나도 점심을 거의 먹지 못하는 듯 했다. 내가 수업을 하러 가면 식판에 밥이 반 이상 남아 있는데도 먹지 않고 그냥 정리하는 걸 몇 번 봤다. 직장생활이 힘들어 그나마 을이라고 생각한 나한테 그랬구나 싶었다. 생활지도를 하지 말아달라는 건 선생님의 말이 아니라 자주 전화해서 불평하는 어느 학부모가 한 말을 내게 그대로 전달한 듯했다. 짜증을 어쩔 줄 몰라 교실에서도 내내 퉁퉁거리던 것도 이해가 됐다. 담임선생님께 생활지도를 하지 말라고 하면 유치원에서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혹시 학부모와 선생님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싶어 안타까웠다. 아무리 그래도 학기 중에 그만둔 건 너무 한 게 아니냐고 학부모의 마음, 건강보다 소중한 건 없다는 선생님 엄마의 마음이 다 이해되었다. 누구의 잘못도 없지만 담임선생님을 잃은 어린 친구들이 제일 짠하긴 했다.


몇 주가 지나고 세모반의 새로 온 담임선생님은 경력 25년차의 선생님. 새로 오신 선생님은 생활지도를 열심히 하셨고 수업태도는 몰라보게 좋아졌다. **이는 게임에 지고 나면 여전히 눈물을 뚝뚝 흘리지만 담임선생님과 눈빛 교환을 하고 나면 자리에 들어가서 조용히 앉았다. 몇 분 지나면 눈물도 그치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25년의 경력은 그냥 시간이 지나서 만들어진 게 아니었다. 담임선생님은 강약조절을 아주 잘 하셨다. 나쁜 행동에는 엄한 표정과 말투로 대응하셨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친구는 따뜻하게 안아주며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밝게 대해주셨다. 잔소리도 많이 하셨는데 코 먹지 말자, 눈물을 참으려면 코를 잡아라, 친구랑 수다 떨기는 소리 내지 말고 입모양으로 하라는 등이었다. 어른인 내가 들어도 너무 웃긴데 그걸 듣는 친구들은 더 크게 웃었다. 코를 먹다 웃어서 컥컥 거리고, 울기 일보 직전의 친구는 코를 잡았다. 입방 뻥긋거리며 수다를 떨기도 했다. 옆 반 선생님께 들어본 바로는 어머니들 반응도 좋다고 했다.

“선생님이 나이가 좀 있으니까 어머니들이 함부로 말씀을 못 하시나 봐요. 그리고 세모반 태도 좋아진 것 보세요. 어머니들도 그걸 아니까 이제 믿어주시는 거겠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가 잔소리라는데 그래도 듣기 싫을 때가 있다. 어른이나 어린이나 간섭하고 지적하면 안 듣고 싶다. 그래도 나를 사랑해서 나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는 건 안다. 내 마음을 알아주면서 잔소리하면 사랑받는다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자주 아파서 힘이 빠진 엄마가 점점 잔소리를 안 해서 슬픈 것도 그래서겠지. 나도 사랑을 가득 담은 잔소리를 연습해야겠다. 아, 저 사람이 나를 생각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드는 잔소리를 찾아봐야겠다. 9kg가 빠진 선생님과 연락이 닿는다면 함께 연습을 해보는 건 어떠냐고 권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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