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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머니 Apr 18. 2023

아빠를 닮았다는 심한 말

우리를 닮은 너희들

양갈비 냄새는 일주일 안 빤 양말 냄새 같기도 하고 상한 고기 냄새 같기도 하다. 이걸 왜 먹나 싶었는데 전문점이 유행할 정도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중 한 명은 내 남편이다. 월남에서 돌아온 사람처럼 월남쌈을 좋아하고 칭기즈칸의 후예인양 양갈비를 사랑한다. 양갈비를 샀다고 하면 말투가 부드러워진다. 큰 마트 가야 발견하는 양갈비가 보이면 고민 없이 몇 팩을 넣는다. 프렌치랙 숄더랙이 무슨 차이인지 모르기에 보이는 대로 사 온다. 카트에 담을 때부터 냄새가 싫어서 그럼 안 되는 걸 알지만 롤팩을 하나 뜯어서 그걸 장갑인양 끼고 담는다.


양갈비를 사 왔으니 칼집을 내고 올리브오일을 바르고 허브솔트를 잔뜩 뿌린다. 비닐장갑을 끼고 해도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구워도 냄새는 가시지 않지만 남편은 양갈비를 샀다는 전화에  들떠했다. 90킬로가 넘는 몸으로 나비처럼 사뿐 거리며 걸어왔을 것이다. '양갈비다! 양갈비를 먹는 거야' 하면서 한국무용하듯 걸어오는 남편이 눈에 선하다.

(딸이 그린 아빠. 얼굴이 커서 종이 안에 다 안 들어온다며 이목구비만 그렸다.)


아빠도 닮고 엄마도 닮은 식성을 가진 딸은 온갖 나물과 해산물도 좋아하지만 양갈비도 좋아한다. 양갈비 구웠다니 아빠랑 둘이서 누가 큰 갈비를 먹을 것인지 심각하게 논의했다. 작은 갈비를 먹기로 한 딸은 모자라면 아빠 것 뺏어 먹겠다고 말했다. 남편은 다음엔 네 조각 구우라고 퉁퉁거렸다. 넌 얼굴도 아빠 닮고 식성도 아빠를 닮았다니 버럭 화를 낸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고. 엄마가 딸한테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며 큰소리를 친다. 모자라면 양갈비도 양보하겠다던 아빠는 어이가 없다며 양갈비 다 내 거라고 싸운다.


둘은 닮았다. 식성도 얼굴도 닮았다. 사뿐 거리는 걸음도 닮았고 착하고 순한 웃음도 똑 닮았다. 닮은꼴의 40대 중반남과 10대 초반녀는 식탁에서 머리를 맞대고 양갈비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나를 닮은 아들은 오늘도 옆에서 계란만 먹겠다고 악을 쓰고 있다. 밥 속에 시금치를 숨기고 계란으로 덮어 위장술을 펼친다. 40대 중반녀와 5세남은 식탁에 머리를 맞대고 한 입만을 외치고 있다.


결혼 전에는, 낳기 전에는 몰랐던 제일 행복했던 시간이 벌써 하루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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